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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멘토 붓다

이중석 지음 | 불광출판사
내 인생의 멘토 붓다

이중석 지음

불광출판사 / 2011년 1월 / 432쪽 / 18,000원



내 인생의 멘토 붓다의 가르침



붓다에게 배우는 행복 수업

붓다께서는 제자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 사람의 성격과 자질에 따라 적절한 가르침을 내리셨는데, 일종의 맞춤식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붓다의 맞춤식 멘토링은 매우 다양한 일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붓다께서 마가다 국의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영취산에 계실 때였다. 그때 영취산 인근의 묘지 부근에서 소나라는 비구가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었다. 경행을 할 때는 부드러운 발의 피부가 벗겨져서 피가 낭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깨달음이 얻어지지 않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수행해 왔다. 붓다의 제자 가운데에서도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집착을 떠나고 번뇌로부터 해탈할 수 없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재가신자로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 집에 가면 재산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누리며 보시도 많이 하고 재가신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퇴전(처음의 생각을 버리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라고 한다. 붓다께서는 소나의 이런 마음을 아시고 소나를 찾아가셨는데, 소나가 수행하는 주위에 핏자국이 떨어져 있었다. "소나여, 그대는 집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예, 그러하옵니다." "그러면 소나여, 그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예, 그러하옵니다."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해도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예, 그러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지나치게 팽팽해도 안 되고 지나치게 느슨해도 안 됩니다. 알맞게 줄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붓다와 소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다음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소나여, 불도 수행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고행이 지나치면 마음이 격해져 고요해질 수 없으며, 지나치게 풀어져도 게으름에 빠진다. 소나여, 수행에서도 그대는 중도를 취해야만 한다." 소나는 붓다의 거문고 줄의 비유를 명심하고 수행에서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붓다의 말씀을 잘 되새겨 보면 몸과 마음을 항상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무의식적으로 몸을 심하게 학대해야만 깨달음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는 그릇된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런데 붓다께서는 6년 동안 수행하시면서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몸소 체험하시고 녹야원의 다섯 비구들에게 그것을 가장 먼저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소나에게도 중도로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중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고려하는 가장 합리적인 길이다. 물리적 거리로서의 절반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가장 적절한 것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의 실천이 쉽지는 않다. 수행도 그렇다. 용맹 정진을 한답시고 추운 데 앉아서 버티다가 병만 얻어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들이 경탄할 만한 어려운 고행을 하고 나면 사실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달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남들이 못해 본 고행을 했다는 아상(我相)이 붙어 고집불통이 된다. 이런 사람들과는 합리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수행은 몸과 마음을 항상 적절한 상태에 놓고 자기의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예로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이 일어나는 구나', 게으름이 일어나면 '게으름이 일어나는 구나', '어, 화가 치미네, 잠재워야지' 하는 식으로 늘 마음을 살펴서 제어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고행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서있으면 앉고 싶어 하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번 게을러지면 점점 더 게으름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하여 적절한 고행으로 자신의 해이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너무 극심한 고행으로 몸도 상하고 성격까지 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붓다의 가정 관리법

붓다께서는 재가사회의 기본은 건전한 가정생활에서 비롯된다고 보셨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가르침을 내리셨다. 『육방예경』이 대표적인 경전이지만, 그 외에도 재가불자들을 위하여 훈계하신 것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가족 간의 화목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땅히 다섯 가지로써 가족 간에 공경하고 친목해야 한다. 하나는 서로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이고, 둘은 항상 좋은 말을 하는 것이고, 셋은 서로 유익하게 도와주는 것이고, 넷은 같이 이익을 얻는 것이고, 다섯은 서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가정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께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법, 부부간의 화목 등에 대해서도 일일이 언급하셨다. 어느 한쪽의 충성이나 효도를 강조하지 않고, 서로서로 존경과 신뢰를 통하여 화목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한편 불교의 자비정신은 '무연대자(無緣大慈),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데, 불교에서는 모든 이들을 나와 한 몸으로 본다. 서로 의존하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화를 내면 그 파장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쳐서 결국은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생활상의 기본적인 덕목을 강조하셨다. 한편 사회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우리는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말하지만, 원인을 궁극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회구조, 부패한 정치인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붓다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밭이 잘 가꾸어질 때 그 사회가 건전해진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항상 개개인의 정신 계발에 역점을 두셨다. 마음자리를 계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고 붓다께서 무조건 마음만 강조하신 것은 아니다. 건전한 경제활동은 사회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건전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는 것을 권장하셨다. 붓다께서는 재가자들의 재산 운영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직업과 훌륭한 기술을 배워서 재물을 모으고, 그 재물을 네 몫으로 나누되, 한 몫은 자기의 생활에 쓰고, 두 몫은 사업을 경영하고, 나머지 한 몫은 가난해질 때를 대비하여 저축해 두어야 한다.

이는 보통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재산이 넉넉한 장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재산을 네 몫으로 나누어 한 몫은 이자를 늘려 가업을 번창시키고, 한 몫은 가정 살림에 넉넉히 쓰고, 또 한 몫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나 수행자에게 보시하고, 나머지 한 몫은 일가친척이나 오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쓰라.

그리고 항상 절약과 검소로써 집안을 다스리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부모와 처자를 공양할 수 있게 되고, 손님과 고용인을 돌보아줄 수 있게 되며, 친족과 친구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고, 임금과 사문, 도사를 받들어 섬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재물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편리함을 준다고 생각해야지 궁극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재물은 생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궁극의 목적처럼 되어 죽는 날까지도 재산을 늘리는 데만 급급하다가 결국은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재산을 나누어 적절하게 쓰되, 보시를 염두에 두고 살면서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곧 재가자들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다.

순간의 마음이 지옥과 극락을 결정한다

붓다께서 마가다 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붓다께서 판차사라라는 마을에 잠시 머무르시면서 탁발을 나가신 적이 있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사를 단정하게 걸치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그날은 마침 그 마을의 축제일이었다. 젊은 남녀가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축제에 정신이 팔려 붓다께 공양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깨끗이 씻어두었던 발우를 그대로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붓다께서 빈 발우를 들고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마라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사문이여, 먹을 것을 얻었습니까?" "마라여, 얻을 수가 없었다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마을로 돌아가 보십시오. 이번에는 얻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마라에게 의연히 대답하셨다. "설사 얻은 바 없다 해도 보라, 나는 즐기면서 산다. 마치 저 광음천(光音天)과 같이 나는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간다."

광음천은 브라만교의 천신들 중의 하나인데, 기쁨을 음식 삼아 먹고 살며 입으로부터 밝은 빛을 내면 그 빛이 말이 된다고 하는 신이다. 붓다께서도 그와 같이 해탈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신다는 말씀이었다. 붓다께서 마음의 갈등을 느끼실 때는 늘 악마인 마라가 등장한다. 이것은 마음의 번뇌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을에 다시 들어가 볼까? 지금쯤은 어쩌면 축제가 끝나 누군가가 음식을 공양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마라를 등장시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의연하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셨다. '밥 한 끼 먹지 않아도 나는 해탈의 기쁨으로 살아간다'고 하시면서 거처로 돌아오셨던 것이다. 이러한 점이 붓다와 우리가 다른 점이다. 사람들은 붓다가 되면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줄 안다. 그러나 붓다도 똑같이 배고픔을 느끼시고, 덥고 추운 것도 느끼시며 몸이 아픈 것도 느끼신다. 마음의 갈등도 느끼신다. 그러나 우리 범부들과 붓다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조금만 배가 고파도 못 참고 안달이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나는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간다고 하시면서 의연하게 대처하셨다.

언젠가 붓다께서 당신은 첫 번째 화살에는 맞아도 두 번째 화살에는 맞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시되 거기에 대한 반응,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욕을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금방 반응한다. 그 사람을 미워하고 똑같이 욕설이라도 해 주고 싶은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그러나 붓다는 욕설을 마음에 두시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어리석은 중생의 죄업을 면하게 해 줄까를 생각하신다. 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누군가 부처가 된다고 해서 이 세상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붓다가 세상에 출현하셔도 죄짓는 사람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 그러면 뭐가 달라지겠는가? 부처가 된 자신의 내면세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달리 보인다. 육도 윤회도 반드시 죽어야만 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지옥도 되고 극락도 된다. 분노에 차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순간이 아수라다. 병상에 누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하지만 아기를 품에 안고 사랑하는 그 순간은 관세음보살이다. 행복할 때 그때가 곧 극락이다. 붓다께서 탁발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시면서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간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화두삼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행과 해탈의 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 붓다의 탄생과 출가

사캬무니 붓다의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후에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 '붓다(Buddha)'로 일컬어졌으며, '사캬족의 성자'라는 의미에서 '사캬무니'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사캬무니를 한자로 음사한 것이 석가모니이다. 사캬무니 붓다를 '석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캬 족의 성인으로서 세상에 으뜸가는 분이라는 뜻의 '석가모니세존'을 줄인 말이다. 붓다의 부친은 사캬 족 출신으로 카필라바스투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다. 부친의 이름은 슛도다나였고, 모친은 마야였는데, 불전에 의하면, 슛도다나 왕은 오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아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인 마야 부인이 꿈을 꾸었는데,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태 안에 드는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고 한다. 마야 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왕자를 출산했다.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와 마야 부인이 카필라바스투에 돌아오자 부왕인 슈도다나는 무척 기뻐했다. 그 당시에는 귀한 집의 아기가 태어나면 브라만들이 와서 축하하고 관상을 보는 풍습이 있었는데, 축하객 중에 아지타라는 덕이 높은 선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려, 깜짝 놀란 슛도다나 왕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아지타 선인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태자께서는 출가하지 않고 집에 계시면 무기를 쓰지 않고도 덕으로써 전 세계를 정복하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반드시 붓다가 되실 것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 이렇게 훌륭한 분이 붓다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되니 그것이 애석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러한 예언을 들은 왕은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출가하여 집을 떠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태자는 여러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랐다. 어려서부터 워낙 총명하고 자비심이 많았기 때문에 누구든 태자를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태자가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듯하고, 아들 라훌라까지 낳게 되자 부친인 왕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싯다르타 태자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슛도다나 왕이 어떻게 하면 출가하지 않고 자기의 대를 이어 나라를 다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태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늙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병들지 않고, 셋째는 죽지 않으며, 넷째는 서로 이별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 네 가지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저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부왕은 태자의 대답에 할 말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태자가 마음을 돌이키기만을 기다렸으나 태자는 결국 가족과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29세에 출가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출가의 결정적 동기에 대해서는 사문출유(四門出遊), 혹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언젠가 싯다르타 태자가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갔는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주름투성이의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을 만났다. 그동안 왕궁에서 비참하게 늙은 행색의 노인을 본 적이 없던 싯다르타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고, 모든 사람이 늙으면 노인과 같이 비참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매우 울적해졌다. 다른 어느 날 남쪽 문으로 나갔을 때 병든 사람을 보았고, 서쪽 문으로 나갔을 때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행렬을 보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결국은 병들고 죽게 된다는 말을 시종에게 들었다. 그날 이후로 싯다르타 태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다.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 사람들의 근본적인 고통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의 북쪽 문으로 나갔을 때 한 출가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비록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온몸에 빛이 났다. 기품과 자신감과 평화로움이 흐르고 있었다. 시종에게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묻자, 해탈을 구하여 수행하는 자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저 수행자의 길이야말로 내가 갈 길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즉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뒤로 한 채,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인간의 필연적인 고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싯다르타 태자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것이다.

구도 수행, 영원의 진리를 깨닫다

붓다의 깨달음은 새벽 별이 빛나는 순간 갑자기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다. 출가하여 만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보통사람으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어려운 수행을 통하여 정각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째는 출가다. 인도에서는 원래부터 출가의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주로 브라만 계급을 비롯한 상층부의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이들의 생애는 보통 학습기, 가주기, 임서기, 유행기 등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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