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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걷는 디자이너

정수하 지음 | 멘토프레스
길 걷는 디자이너

정수하 지음

멘토프레스 / 2011년 1월 / 294쪽 / 14,500원



제1장. 유년의 꿈과 크레파스




크레파스 소녀

아직은 낡은 증기기관차가 시골의 철로를 달리던 때였다. 기관차의 하얀 연기가 멈추는 한 벌판이 있었다. 민간 겸용의 군용열차가 멈추는 그곳은 군부대 앞이었다. 그 동네 마을의 아이들 대장은 그곳에서 탄생했다. 보초병의 눈을 피해 그곳에 침입하여 탱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자가 대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별 하나를 얻은 나는 불가사리 대원이 되었다. 우리들의 임무는 탱크 속의 모든 부품을 분해하는 것이었다. 분해 작업이 용이한 폐선 하나를 찾아낸 후 우리는 곧바로 선체에 잠입했다. 나는 대장이 일러준 장소로 갔다. 누구든 폐선 쪽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딱총을 쏘며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파라솔이 꽂혀있는 곳으로 두 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을 멈춘 나는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내 또래인 그들은 남매처럼 보였다. 그 둘은 바다를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이 덮인 시커먼 폐선들, 갈매기….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둘 다 그림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들의 도화지에는 폐선과 어선들, 갈매기가 하얀 눈이 내리는 바다와 함께 수많은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야, 너네들 여기서 모하냐?""보면 모르니? 그림 그려, 겨울바다." 나는 잠시 그 낯선 색깔들을 바라보다 크레파스 통을 코에 갖다댔다.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수상한 냄새가 코를 울렸다. 그중 하나를 집어 계집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색이야?" "치~ 빨간색." "이건?" "노란색." 내가 보기에는 피색과 똥색이었다. 화가 난 나는 크레파스 통을 던져버렸고 그림을 찢은 후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눈 바닥에 주저앉은 계집아이가 울먹인다. "너 알아? 저 크레파스 우리 아빠가 선물로 보내준 거야. 그리고 저 그림, 겨울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그린 거야. 근데 니가 왜 찢는 거니?" 나의 시선은 크레파스 쪽으로 향했다. 색깔들이 눈 속에 콕콕 박혀있었다. 그 색깔들…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 그러나 그냥 생각으로 스쳐가 버렸다.

고래와 노인

장항에 다시 가게 된 것은 그 후 십여 년이 넘어서였다. 군산을 거쳐 넘어온 장항에는 매서운 추위로 얼어붙은 항만은 인적이 끊긴 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몸을 녹일 겸 인근 주점에 들어갔다. 그 때 마주친 한 남자를 나는 쉽게 기억해냈다. 상처투성이의 얼굴 불가사리 대장. 그는 어선의 기관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림 감으로 탐나는 얼굴인데다가 카메라 대신 인물화로 옛정을 대신하고 싶었다. 스케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불쑥 입을 연다. "재미있군. 그 애는 그림을 그만두고 너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그게 무슨 말이죠?""그 애, 그 후 장님이 되었거든. 백내장인가 뭔가…." 주점을 나온 뒤, 밤새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친구들은 서울로 향했고 나는 동지나행 어선에 올랐다. 그 뱃길에 동참하기 위해 옛 대장에게 카메라를 바쳤다.

그 배는 일본 포경선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 포경선과 우리 배가 만나면, 그들의 고래 고기와 우리의 농어상자가 바다에서 교환된다. 연한 불고기 맛에 가깝고, 다시 씹으면 상상 속의 고래 고기 같다는 막연한 추측에 젖어있는 나에게, "이게 진짜 바다 맛이야. 저 바다를 삼키는 고래. 그깟 물회는 바다소풍 나온 애들 도시락이지. 어때… 맛이?"무선사인 노인이 간장과 깨소금을 살짝 뿌린 고래 생고기를 내 입에 넣어준다. "어때… ? 당장이라도 저 바다에 뛰어들고 싶지 않냐?" 그의 고래 고기 예찬은 서사적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는 태풍이 불어 닥쳐도 고래 등에 앉아 책을 읽을 위인이었다.

군악대의 금서

군생활의 추억은 한국남자에겐 영원한 이야깃거리다. 고교시절 밴드부에서 드럼과 인연이 있던 나는 사단의 군악대로 차출되었다. 익히 들어온 그곳의 군기를 예상을 했지만 드럼치는 횟수와 '빠따' 맞는 숫자가 비슷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디자인 작업이 있었다. 제대를 앞둔 고참들의 군악대 생활을 글과 사진, 삽화 등으로 편집 디자인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꽤 두꺼운 기념책자 제작이었다. 『당신의 날들을 기억하며』라는 표제의 그 책은 멋 부릴 줄 아는 딴따라들에게 웬만한 디자인 감각으로는 감히 바칠 수 없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드디어 제대를 며칠 앞둔 고참에게 나의 기념책자를 전했다. 천천히 책장을 넘겨본 그가 나를 따로 불러 황송스럽게도 술을 따라준다. "이름이 참 멋있구나…. 책 만드느라 그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너라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라 따로 불렀다." 그는 책 한 권을 내게 주었다. 그것은 『근대 한국 군악대의 역사』라는 표제가 새겨진 책이었다. 귀한 흑백사진과 자세한 설명이 담긴 그 책은 한 독일 작곡가의 기록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멀지 않은 훗날 내게서 사물놀이를 배우는 젊은 독일인들이 덩실덩실 우리 춤을 출 거라는 그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 이전에 나는 나라는 인간의 도도한 여행을 먼저 떠올려 본다.

제2장. 디자인의 길 위에 서다



베를린의 이방인

1982년 여름 어느 날, 나는 하늘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는 중이었다. 나의 첫 외국여행지 독일. 그곳은 부모님의 마지막 여행지이기도 했다. 동독 속의 서독영토 서베를린. 당시 냉전의 장벽과 철책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육지 속의 섬이기도 했다. 집세가 싼 장벽 쪽에서 2차대전의 탄흔이 남아 있는 낡은 집을 얻어 숙소 겸 작업실로 삼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소주와 김치에 중독되어 있는 한국인의 저녁 발걸음은 뻔했다. 반갑게 들어서는 고국의 식당들. 간판부터 인테리어까지 새마을정신과 군사문화에 절여진 무딘 감각의 조잡한 장식들. 그곳의 초라함과 어색한 분위기는 외국식당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것이 한국의 디자인인가? 그 물음은 오랫동안 나의 화두가 될 것이다.

늦은 밤 지하철을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문득 열차 안의 공기가 심상치 않아 주위를 들어보았다. 그곳엔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흑인 남자가 좌석에 돌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슬픔 혹은 분노를 억누른 채 침묵을 삼키고 하얀 눈만 반짝거렸다. 침묵의 장엄함이 거기에 있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타박(Tabac)이라 불리는 궐련이었다. 문득 나는 이방인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싶었다. 불쑥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 흑인 옆에 털썩 앉았다. "한 잔 하러 갈까?" "그러지." 그날 이후 나의 담배는 궐련으로 바뀌었다. 당시 유럽전역의 학생이나 예술가 또는 히피족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즐겨 피우는 것이었다. 친근한 미소를 잦는 그들과 함께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린 같은 별을 응시하는 무언의 동반자였다.

잔디밭의 이단아들

베를린 국립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그곳의 입시생들은 한국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누가 누구 것인지 모를 만큼 닮아 있는 한국의 입시작품과 달리, 그곳 입시생들의 작품은 어떤 유사성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테크닉과 아이디어가 난무했다. 제법 뛰어나다는 그런 독창성이 아니라 자기 내키는 대로, 그래서 어설프고 짜증나는 작품까지, 그것도 보란 듯이 뽐내는 그런 치들도 뒤섞인 난장판의 시험장이었다. 시험방법도 달랐다. 자신이 택한 컨셉을 연구한 스무 점의 그림을 학교에 제출하는 1차 자유시험, 그것이 통과되면 입시장에서 내준 테마로 그리는 본시험이었다. 독일에 유학했던 선배의 정보가 적중했다. "하나의 컨셉을 여러 각도로 관찰하는 자세, 그게 유럽 디자인과 교수들이 좋아하는 입시생이야."

내가 존경하던 호방하고 노련한 교수는 디자인과 학과장이었다. "디자인은 인생이고 인생은 디자인이다."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지위와 경륜을 알렸다. 그는 교실보다 테마수업의 현장이나 학교 뒤뜰 같은 잔디밭 강의를 즐겼다. 2차대전 중 부서진 어느 건물의 골조가 폐허처럼 남아 있는 조그만 잔디밭은 늘 많은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거리의 낙서가 천차만별이듯 잔디밭 학생들의 행색도 각양각색이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찢어진 성조기로 장식한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 나치의 마크에 가운데손가락으로 찌르는 펑크족 학생 등 다들 제멋대로다. 그러나 강의가 끝날 때 즈음이면 그들의 노트나 소설책, 셔츠나 스케치북, 하다못해 자신의 손바닥이나 앞에 안은 사람의 등짝 같은 곳에 낙서에 가까운 디자인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었다.

언젠가는 자기들 공식작품의 소중한 아이디어로 활용될 그 낙서행위는 세계 어디든 디자인과 학생들의 성스러운 습관이자 특권과도 같았다. 어쨌든 그 성소에는 다양한 낙서쟁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과 데모꾼들, 우수에 젖은 철학가와 학구파들, 잠꾸러기와 몽상가들, 레즈비언, 펑크족, 마약족 등이 함께 어울려진 여린 풀과 거친 가시덤불까지 같이 있는, 뒤섞인 잔디밭과 똑같았다. 카페 '필름 뷔네'와 방랑자들의 사랑방

학교 건너편에 자리 잡은 커다란 고급카페. 그곳에서는 또 다른 자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카페는 달마가 동쪽을 찾아간 까닭처럼 화두를 찾아 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의 의문점이 풀리기 시작한 곳이다. 카페의 외진 곳이나 창가를 고집하는 그들은 세상을 떠다니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 베테랑 여행자들이었다. 소설 속 인물처럼 근사한 모습은 아니지만 말투와 행동은 역시 '자유인' 그대로였다.

군 훈련만 받고 온 사람보다 전쟁을 치른 사람의 다문 입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그들은 말을 아끼지만 여행자임을 뽐내는 듯한 고고함은 어쩔 수가 없다. 여행에 철학 또는 정신세계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그 행위는 자신들이 몸소 겪은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숭고한 마음도 있겠지만 너도 직접 겪어봐야 알 것이니라, 라는 식의 다소 도도한 자세도 한 자락 깔려 있었다. 하긴 세상에 그 무엇이 경험만 하겠는가. 논리와 정보와 철학까지 무시하는 그들의 여행. 그것은 그들의 말처럼 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신의 땅을 걷는 것이니 그야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비논리적이고 비철학적이면서 또한 운명까지 땅의 쓰레기로 밟고 지나가야 하는 일이다. 방랑자의 쪼그라진 입이 내 귀에 다가오더니 속삭인다. "길 걷는 디자이너 하면 되잖니." 길 걷는 디자이너? … 내가 눈을 껌벅이자 그가 윙크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길에서 디자인 일해서 그 여비로 계속 길을 떠나는 거야."그의 발에 입 맞추고 싶을 만큼 멋진 생각이었다. 다음날, 노교수 앞으로 달려간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저 여행 떠납니다." 난데없는 보고에 교수는 파이프만 빨아대면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말했다. "제가 꿈꾸는 기차여행은 편도 티켓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윽고 교수님은 파이프를 입에서 떼고 말했다. "물론이지. 왕복 티켓은 관광객이나 끊는 거니까."그는 묵시적으로 동의해준 것이었다.

가우디의 땅

유럽의 남쪽으로 향할수록 디자인은 곧 고급을 의미했다. 그 미적 도도함이 그들의 찬란한 전통문화로부터 나왔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충분하지 않았다. 뜨거운 햇빛에 반짝이는 올리브와 포도밭길을 걸으며, 안달루시아의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노랫소리를 들으며, 경이로운 토스카나의 언덕에 섰을 때, 나는 그들의 디자인이 자연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원초적 기운이 사라진 채 실용성과 기술만을 모태로 한 중부유럽과는 달리, 스페인과 이태리의 디자인은 자연으로부터 강렬한 호흡을 선사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디자인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태양빛의 양에 따라 사람의 질도 달라진다는 말은 유럽에서도 꽤 유효한 것 같았다.

디자인뿐이랴.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다. 방안에서 탄생하는 문학작품조차 북쪽은 동화나 공상추리 소설같이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다. 태양열이 약한 그곳은 에너지 비축을 위해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강한데, 그들의 예술 역시 치밀하고 논리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내일, 또 내일로 미루기까지 하는 남유럽 사람들에게는 낮잠 자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영감과 즉흥성이 관성처럼 붙어 있다. 그 즉흥성에 열정을 보탠 곳이 스페인이다.

공사기간의 마침표를 무시한 가우디의 현재진행형 건축들, 젊은 피카소에게 예술적 영혼을 담보해준 도시의 뒷골목길들. 달리와 미로의 놀이터이자 작업장이던 카페와 화랑이 있는 광장. 그들이 열애에 빠진 그 도시의 예술적 기운을 사람들은 느낀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만의 빛을 본다. 바다, 언덕, 성당, 광장이 흐뭇하게 어우러진 자연과 신의 듀엣, 찬미곡도 들려온다. 도시의 매혹적인 색조에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관대함과 열정적이며 그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디자인이 점점 희미해지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가 보였다.

역사를 문화로 바꿔놓은 그 도시는, 관광객의 적선에 길들여진 채 늙은 숨소리만 내쉬는 로마나 파리, 경주나 교토와 달리 싱싱한 숨결이 살아 있는 디자인 도시를 만들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땡처리로 불러들이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바르셀로나의 기지개를 보러 오는 관광객의 숫자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도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꽉 들어찬 그곳에는 현대적인 분수와 빛줄기를 한껏 뿜어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화려한 쇼를 거부한다. 그 빛과 물줄기는 주위의 늙은 건물에 대한 예우 차원의 섬세한 디자인적 컨셉으로 발산될 뿐이다. "어때, 이 정도면…?" 자신의 퍼포먼스가 그 정도면 알맞겠냐고 물어보듯 물과 빛으로 그들의 엄중한 세련미를 슬쩍 드러낸다.

디자인 견문록

한번은 유럽 각 나라의 디자인적 특성을 음식으로 비교한 적이 있었다. 네덜란드, 그들은 외국음식을 유별나게 꺼린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에도 히딩크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 친다. 그들의 까탈스러운 식성은 하루 세 끼 먹는 치즈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디자인은 세상 밖의 음식을 거부하는 치즈 속 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소소하다. 동화풍의 귀여운 집, 만화 같은 지폐도안,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제품들이 그렇다. 반면에 독일의 접시에 놓이는 것들은 모두 굵직굵직하다. 장식미를 무시한 우직한 식기와 통나무 같은 맥주 컵까지 본다면 그들의 미련스러운 디자인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음식 문화국 프랑스. 전식, 본식, 후식의 순서엄수. 음식마다 바뀌는 와인선별. 세계최장의 식사시간.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식사문화를 보면 디자인에도 그에 못지않은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잔뜩 멋 부린 음식 앞에서의 별 의미 없는 대화처럼 그들의 디자인에는 우아한 수다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들의 여성적 디자인 감각과 세계 최고의 아스피린 소비국이란 사실도 다 그 우아한 수다 덕분일 것이다. 음식문화의 사각지대 영국. 그들은 음식보다는 고상한 식탁보와 식기, 찻잔에 무게를 둔다. 디자인은 침착하고 균형이 잡혀있다. 반면에 무미건조한 아이디어나 싱거운 색감의 디자인도 많은데, 그것은 그들의 전통적 형식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음식과 연결이 힘든 디자인 솜씨를 발휘하는 나라도 있다.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족의 야만적인 식탁. 그러나 지금 그 북구 사람들은 청아한 볼륨으로 다듬은 세계 최고급 식기용품을 만들어낸다. 유럽의 후생국인 그들은 유럽의 다른 땅처럼 근엄한 역사나 화려한 전통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로움이 강조되어야 하는 디자인에서 매우 큰 장점이다. 귀족적인 우아함과 낭만적인 세련미까지 짊어져야 하는 남부 유럽의 디자이너를 조롱하듯 그들이 택한 것은 단지 간결함과 실용성뿐이다. 몇 안 되는 인구와 특별한 경제정책도 없는 그들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 대열을 차지한 연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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