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
안병대 지음 | 명진출판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
안병대 지음
명진출판 / 2011년 1월 / 288쪽 / 17,000원
Chapter 01 400년 동안 살아 있는 사람
한가한 땅에서 태어난 대담한 사람박사과정을 마친 나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에 가 보고 싶어, 버밍엄 대학 부설 셰익스피어 연구소의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런던 대학 도서관에서 지인과 함께 며칠 동안 셰익스피어 자료들을 끌어 모은 후, 1992년 7월 하순 미들랜드 노선의 런던발 기차를 탔고, 1시간 반가량 북서부를 향해 달려 도착한 버밍엄 역에서 다시 코치(coach, 영국의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400년 전에 셰익스피어가 살던 에이번 강가의 작은 도시(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Stratford-upon-Avon)에 도착했다.
셰익스피어의 출생 기록은 에이번 강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다. 1564년 4월 26일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와 어머니 메리 셰익스피어는 새근거리는 셋째 아이 윌리엄을 안고 교회로 가 존 브래치거들 목사에게 영아세례를 받으며 특히 아이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당시 생후 3일 후에 세례를 받는 관례를 받아들인다면, 아마 그의 출생일은 1564년 4월 23일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자유농민이었다. 할아버지 리처드 셰익스피어는 1535년 스트랫퍼드 인근 스니터필드에 정착했고, 그 지역 내 윌름코트에 사는 로버트 아든의 토지를 임대하여 경작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스니터필드를 떠나 1551년경 스트랫퍼드의 헨리 가에 정착했는데, 존은 평생을 그곳에서 장인 겸 상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존은 1556년에 부친에게 토지를 임대했던 로버트 아든의 막내딸 메리 아든과 결혼했는데, 그들은 큰딸 조앤과 둘째 딸 마거릿을 모두 젖먹이 때 잃었고, 셋째 윌리엄 이후로는 다섯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
셰익스피어는 7살 때 스트랫퍼드 문법학교에 입학해 매일같이 라틴어를 외웠고, 상급학년이 되어서는 희랍어도 익혔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연인 앤 해서웨이는 스트랫퍼드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쇼터리의 휴랜드 농장에 살았는데, 그녀는 넉넉한 집안의 7남매 중 장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 친구인 존 아저씨네 식구들을 소꿉놀이하던 시절부터 잘 알았었는데, 앤은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 많았다. 그래서 떠돌이 유랑극단의 공연이 있던 날이면 왁자하고 번잡한 구경꾼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솜병아리 같은 셰익스피어를 다정하게 챙겨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 셰익스피어가 점차 청년이 되어가자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연극에 미치게 만든 사람나에게 연극이 다가왔다. 연극은 부드러운 몸짓과 달콤한 목소리로 나를 유혹했다.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연극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꿈꾸는 것 같았다. 아니 연극은 꿈 그 자체였다. 나는 꿈같은 무대에서 왕, 광대, 귀족, 장군, 무덤지기가 되기도 했고, 직접 꿈의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행복했다.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꿈으로만 채울 수 없고 꿈은 깨어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꿈에서 깨어나 다시 꿈꾸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연극은 중독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에게도 연극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함께 성장했다. 아버지가 행정관이었을 당시만 해도 시내의 길드홀에서는 런던에서 온 명성 높은 여왕극단과 우스터 극단의 공연이 여러 차례 열렸다. 셰익스피어는 본능적으로 연극을 알아보았다. 그는 배우들의 몸짓과 언어에 따라 사람들의 영혼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잠자리에 누워도 그들의 눈빛과 눈물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폭소와 읍소와 재담과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는데, 그곳에는 슬픔과 기쁨과 분노와 연민과 공포와 감동이 다 있었다.
1578년 학교를 떠난 셰익스피어가 이후 몇 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졸업할 무렵 셰익스피어는 아마 아버지의 일을 도왔거나, 아니면 시골 학교의 선생 또는 북쪽 랭커셔 지역으로 가서 호텐 집안의 개인 교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호텐의 소개로 토머스 헤스키스 경 집안과 연을 맺었고, 그의 후원 극단인 헤스키스 극단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1592년 6월, 런던은 급변하고 있었다. 로즈 극장 근처에서 일어난 도제 노동자 폭동으로 당국은 극장을 폐쇄했다. 또 늦은 여름부터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흑사병이었다. 결국 런던 인구의 14% 정도가 사망했고, 극장은 무려 20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 셰익스피어는 이 기간에 장편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써서 사우스햄튼 백작에게 헌정했다. 다른 극작가들처럼 일시적으로 시인으로 전환하여 후원자에게 의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은 보통 20~40편의 대본을 보유하고 매일 다른 작품을 공연해야 했는데,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한 극단에서 6개월 동안 8~12개 작품을 공연하다 보니 항상 대본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유명 극작가들이 연극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대학 출신의 재사들은 시골 문법학교만 나온 셰익스피어를 탐탁지 않아 했다. 예로 셰익스피어를 두고 라틴어를 조금 하고 희랍어는 부족한 인물이라 폄하했고, '벼락출세한 까마귀'라고까지 조롱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혜성처럼 등장해 런던 연극 무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셰익스피어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빴다. 오전에는 오후 공연을 위한 리허설에 참여한 후 배우들에 맞춰 대본을 손보고, 오후에는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다. 또 밤이면 대본을 쓰느라 늦도록 불을 밝혔다. 셰익스피어는 제독, 더비, 레스터, 펨브룩 극단과도 관계를 맺었지만, 체임벌린 극단에 소속되어 20여 년간 활동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594년에 그는 그 극단 소속의 배우 겸 극작가였고 주주였다. 이후 은퇴하기까지 그의 삶의 여정은 대체로 부와 명예가 동반된 장밋빛이었다. 물론 외아들과 부모가 세상은 뜬 일은 커다란 슬픔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샘솟듯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 사극 10편, 희극 13편, 비극 10편, 로맨스극 4편 등 총 37편의 극작품과 장시 4편, 소네트 154편을 세상에 선사했다. 희극은 그의 런던 시절 전반에 걸쳐 무대에 올려졌는데 〈실수 연발〉, 〈사랑의 헛수고〉, 〈베로나의 두 신사〉,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헛소동〉,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자에는 자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등으로 대체로 경쾌하고 명랑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셰익스피어는 10편의 비극을 썼는데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오레이너스〉, 〈아테네의 타이먼〉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초로의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1616년 4월 23일 운명했고, 4월 25일 홀리 트리니티 교회 성단소 앞에 매장되었다. 1623년, 극단 동료 헨리 콘델과 존 헤밍스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작품 전집을 이절판으로 출판했는데 〈페리클레스〉를 제외한 36편의 작품을 담았고, 책 서두에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인 벤 존스의 헌시를 다음과 같이 실었다. "그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었다."
Chapter 02 햄릿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다햄릿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의 봄 학기 강의실에서였는데, 햄릿의 첫인상은 나에게 뭔가 근본적인 외로움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그사이 극장에서, 학술대회에서, 책에서, 강의실에서 수없이 햄릿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햄릿이 아직도 편하지 않다. 사실 햄릿은 무거운 인물이다. 슬픔과 무거운 복수심이 시종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언제나 날이 서 있다. 내면은 언제나 펄펄 끓어 넘친다.
생각은 무겁다. 그러나 그의 고뇌는 가벼운 화살처럼 관객의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행동은 양면적이다. 수도승처럼 침묵하면서도 광대처럼 자유롭다. 언어 역시 그 경중을 다 담고 있다. 대양을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사나운가 하면 등성이를 넘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감미롭다. 햄릿의 언어는 숙고와 격정, 침울과 경쾌, 냉소와 격려, 비판과 관용, 질책과 배려, 난폭과 친절, 느림과 빠름, 어둠과 밝음이 어우러진 심포니다. 그럼에도 햄릿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다.
나는 엘시노어 궁의 정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대관식의 끝자락에서 검은 상복 차림의 햄릿을 만났다. 그는 엄청난 불행과 고통에 직면해 있었다. 선왕인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고 왕위를 계승한 숙부 클로디어스가 어머니와 초고속으로 결혼했기 때문이다. 햄릿은 가슴이 미어진다. 왜, 어째서, 무엇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는지 끝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세상은 무심히 잘 굴러간다. 처세에 능한 궁정 대신 폴로니어스는 아들 레어티스를 프랑스로 보내고, 오필리어에게는 가벼운 연애관이나 설파한다. 그러나 햄릿은 독살당한 선왕의 망령과 조우하며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한다.
아버지의 원수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햄릿은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본다. 살인자 클로디어스 왕은 불안하다. 그는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상대를 읽어내고자 한다. 햄릿이 실성했다지만, 그는 햄릿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햄릿의 친구들이 염탐꾼으로 동원되고, 왕의 최측근 대신으로 소위 정보부장 역할을 하는 폴로니어스도 햄릿을 읽고 분석하여 보고하느라 여념이 없다. 햄릿은 고독하다. 아, 잡초만 무성한 감옥 같은 궁전, 빛은 어디에 있는가, 서성이기만 하는 겁쟁이로 사느니 아, 죽고 싶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복수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온통 번민에 싸여 있는데, 오필리어와의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햄릿은 번민을 물리치고 복수의 칼날을 다시 벼린다. 그러나 복수심을 다잡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직접 클로디어스의 양심을 확인할 수는 없을까. 순회극단의 방문을 그 기회로 삼는다. 연극, 그것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선왕을 독살한 장면과 같은 내용의 공연이 펼쳐지고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햄릿은 참회 기도를 하는 왕 앞에서 다시 칼을 거둔다. 절호의 기회이지만 그의 영혼을 천당에 보낼 수는 없었다. 햄릿은 한탄한다. 어머니에게도 진실을 털어놓을 순간이 왔다. 극을 보고 진노한 왕을 대신하여 마침 왕비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햄릿은 대화를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착각하여 피를 뿌린다. 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원수와 결혼한 어머니를 폭풍처럼 힐책한다. 햄릿은 정신이상자로 몰려 영국으로 추방당한다. 한편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오필리어는 미쳐서 궁전을 헤매고, 오래지 않아 프랑스에서 귀국한 레어티스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왕은 레어티스에게 햄릿의 짓임을 밝히고, 복수를 부추긴다. 레어티스가 결투를 모의하는 사이 실성한 오필리어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는 오열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덴마크로 돌아온 햄릿은 친구 호레이쇼와 함께 묘지를 지나다가 오필리어의 장례식을 마주한다. 햄릿은 삶의 무상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비극의 끝은 햄릿과 레어티스가 벌이는 결투다. 햄릿은 결투 중 레어티스의 독 묻은 칼에 상처를 입는다. 왕비는 왕이 햄릿을 위해 마련한 독배를 마시고 쓰러진다. 레어티스도 햄릿의 칼에 찔려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햄릿은 이 모든 비열한 계략을 주도한 왕을 찌르고 그의 입에 독배를 쏟아 붓는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도록 부탁한다. 그리고 폴란드 원정에서 귀환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에게 왕위를 이양한다. 햄릿은 그제서야 번민과 고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사람의 삶이, 죽음이, 사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따위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인간, 회의하는 인간, 그것이 햄릿이다. 이야기 상자 밖에는 '복수'라는 제목이 쓰여 있으나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이루는 온갖 사연을 만난다. 막이 열리면, 우리는 햄릿과 그의 적대자 클로디어스 왕 그리고 그 궁전에 기거하거나 혹은 초대된 모든 이들의 언어를 듣고 표정과 몸짓을 보고, 그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읽어낸다.
또 우리는 서슬 퍼런 왕의 어조에 고개를 높이 들고 햄릿의 침울한 번민에 가슴을 들여다본다. 또 호레이쇼의 우정에 고개를 끄덕이고, 폴로니어스의 수다에 고개를 내저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왕비의 미소에 쓴웃음을 짓고, 오필리어의 순수함에 연신 감탄한다. 선왕의 망령에 흠칫하고 각기각색의 배우들과 만나 어깨춤을 추는가 하면, 긴박한 결투에 손에 땀을 쥔다. 어떤 사람은 쯧쯧 혀를 차고 어떤 관객은 통탄한다. 어떤 이는 첫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의로운, 정직한, 충직한, 용맹한, 냉소적인, 명랑한, 순진한, 너그러운, 회의적인, 위선적인, 비굴한, 교활한, 순종하는, 나약한, 무정한, 우울한, 배반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만난다.
Chapter 03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사랑, 오셀로의 "죽이고 사랑하리라"사랑은 삶과 역사와 운명을 바꾼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생사를 넘어서고, 조국과 제국의 운명을 바꾸고, 온 생애를 사랑을 위해 바친다. 생이 끝날 때면 우리는 사랑을 알 수 있을까?
1980년대 후반 나는 서울 시내 어느 극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연한 〈오델로(당시 영화 제목)〉를 보았다. 오페라 영화였다. 극장은 한산했고, 화면은 어둑했다. 장군 오셀로의 외침은 넓은 객석을 압도했다. 폭풍우 치는 바다 장면이 지나고 오셀로는 아내 데스데모나와 반갑게 재회한다. 그러나 오셀로는 아내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몇몇 장면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행복한 만남, 의심으로 가득한 분노가 서린 얼굴, 운명을 한탄하는 비틀거리는 몸짓, 처연한 기도, 목이 졸리는 아내, 자책과 회한이 담긴 눈물과 자살 그리고 키스. 화면은 시종 음울했다. 행복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나는 도밍고의 절창을 들으며 밀려드는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머리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랑이 어디 있어! 바보 아냐? 정신을 차리고 한 번 더 확인했어야지." 그러나 오랫동안 나는 책에서 무대에서 오셀로를 거듭 만나며 그것이 특별한 사랑임을, 아니 그것이 지독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사랑은 누구든 눈멀고 귀먹게 하는 마취제지요. 사랑은 누구라도 우습고 허튼 상상의 감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고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니라! 1604년 11월 1일, 셰익스피어가 소속된 왕실극단은 〈베니스의 무어인〉이라는 제목의 이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화이트홀 궁전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셰익스피어는 다른 비극과 달리 오셀로를 단일 플롯으로 이끌고 있다. 오셀로의 스토리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오셀로 군대의 기수 이아고는 부관 승진을 기대했으나 자신보다 경험이 일천한 캐시오가 그 자리에 오르자, 오셀로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이아고는 충직한 부하로 가장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철저히 오셀로를 무너뜨린다. 오셀로의 비밀 결혼 사실을 폭로하여 베니스 사회에 물의를 빚는가 하면, 캐시오가 파직되도록 소동을 일으키고는 다시 그의 복직을 돕는 체한다. 이아고의 덫에 걸린 오셀로는 부인과 부관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에 눈이 멀고 거짓 증거에 현혹되어 그들의 간통을 확신하고 아내를 목 졸라 죽인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자 자살하기에 이른다. 캐시오는 오셀로의 자리를 승계하고, 이아고는 처형당할 처지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