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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지음 | 에코리브르
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지음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 688쪽 / 35,000원



1부 가독성과 단순화의 국가 프로젝트




자연과 공간

어떤 종류의 지식과 통제는 시야를 좁혀 봐야 한다. 이러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의 장점은 평소에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실제를 예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순화는 시야의 중심에 있는 현상을 한층 읽기 쉽게 만들어 세심한 측정과 계산을 용이하게 하며, 선택된 현실을 좀 더 총체적이고 총량적으로 개관하게 하며, 고도의 체계적 지식이나 통제 또는 조작을 가능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독일 프로이센과 작센에서 고안된 과학적 조림(造林)은 이러한 프로세스의 모델을 제공한다. 과학적 조림은 분명한 목표를 가진 막강한 권력 기관의 특징, 즉 지식의 형태와 그 조작에 관한 일종의 은유로 사용된다. 일단 삼림 경영에서 단순화, 가독성 조작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이해하면, 우리는 근대 국가가 도시 계획, 농촌 정착, 토지 행정, 농업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그와 유사한 렌즈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근대 초 유럽 국가는 삼림을 국가 재정이라는 시각에서 보았다. 국가는 삼림에서 생기는 세수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그렇지 않은 것들(사냥, 채집, 어로, 목탄 제조, 광물질 채집 등)은 무시했다. 이에 따라 국가 재정 삼림에서는 다양한 용도를 가진 실제의 나무가 목재와 땔감의 양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나무로 대체되었다. 한편 18세기 후반 과학적 조림의 등장은 중앙집권식 국가사업이라는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삼림학자는 전체 삼림의 목재와 산출 수익을 계산하기 위해 삼림을 측정하고, 플롯(삼림을 일정하게 나눈 구역)에 대한 나무 목록을 작성하였다. 계산의 최종 목적은 정상적인 성장이라는 조건 하에서 나무의 크기와 나이로 구성된 정교한 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삼림학자는 자신의 시야를 상업적 목재에 극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삼림 전체에 대한 개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림학자에 의해 관념화된 산림에는 계산과 측정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관련 세 가지 암호가 있었는데, 현대 용어로 말하면 '다양성의 최소화', '대차대조표', '지속가능한 산출'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18세기 후반 국가 관리 삼림과학의 논리는 상업적 착취의 논리와 동일하다.

우리의 목적과 관련해서 결정적인 것은 삼림과학에서 나타난 그 이후의 논리적 단계이다. 그것은 세심한 파종, 조림, 벌목을 통해 국가 삼림 감독관이 측정하고 평가하는 데 더욱 손쉬운 삼림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결국 표준적인 나무를 추상적인 존재에서 현실적으로 바꾼 균일한 수령의 단일 종 삼림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숲은 정돈되지 않은 자연에 단정하게 정리된 과학적 구성을 강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극단적으로 삼림 자체를 보지 않고 삼림감독사무소의 목록과 지도만보면 삼림을 정확히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읽기 쉬워진 삼림의 통제 환경은 여러 가지 이익을 가져왔다. 우선 감독관에 의한 개괄적 조사가 가능해졌다. 또한 중앙집권적 장기계획에 따라 감독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균일한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수익에 변동을 주는 요인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조작과 실험을 용이하게 하는 가독성 있는 자연 환경을 창출했다. 물론 과학적 삼림 관리라는 이상적인 꿈은 그 기술의 내재적 논리였을 뿐이다. 그것은 실제로 구현된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여기에는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이 있다. 화재, 폭풍, 가뭄, 기후 변화 등 예측 불허의 자연적 요인이 삼림관리를 좌절시켰고, 인근 주민들의 무단 가축 방목과 땔감 채취 같은 인위적 요인도 삼림관리 계획에 차질을 가져왔다. 이상적인 여느 계획과 마찬가지로 삼림과학인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계획을 실제 삼림에 적용하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도시, 사람 그리고 언어

역사적으로 외부인에 대한 도시 근교의 상대적인 비가독성은 바깥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해 왔다. 이러한 이익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은 외부인이 목적지를 성공적으로 찾기 위해 현지 안내원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만약 대답이 '예'라면 해당 지역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약간의 절연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비가독성은 정치적 독자성의 신뢰할 만한 원천이었다.

도시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당국은 낡고 복잡한 도시에 대한 치안과 통제의 편의를 촉진시킬 목적으로 지도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주요 도시들은 대혁명 이후에 정밀한 군사지도 제작 대상이 되었다. 이는 폭동이 발생했을 때 효과적인 진압을 위해 당국이 정확한 소요 장소로 빨리 이동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는 공간적 비명료성을 극복함으로써 외부인에게 도시의 지리적 투명성을 높이도록 노력해왔다. 낡고 복잡한 도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삼림업자들이 미개발된 숲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19세기 후반 시카고 중심부의 조감도는 격자형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행정가의 관점에서 시카고의 기본계획은 유토피아적이다. 도시 전체에서 직선과 직각이 반복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총체적인 조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없다. 지상의 격자형 도시 질서는 지하에서는 수도관, 하수구, 전선, 지하철 등의 질서 있는 배치를 촉진한다. 이것은 지상의 질서만큼 도시 행정가에게 중요하다. 세금을 거두고, 인구조사를 시행하고, 물자와 사람을 운반하고, 폭동을 진압하고,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대중교통, 쓰레기 처리 등을 계획하는 모든 일이 격자의 논리에 의해 훨씬 더 단순해진다.

서로 다른 언어가 초래한 문화적 장벽이야말로 내부자에게는 쉽게 접근 가능한 세상이 외부자에게는 불투명하게 남아 있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자치의 기반이라는 측면에서 독자적인 언어는 복잡한 거주 유형보다 훨씬 강력하다. 언어는 차별적 역사, 문화적 감수성, 문학, 신화, 음악적 전통의 전달자이다. 이런 면에서 고유 언어는 식민지화나 통제 등은 차치하더라도 국가 지식을 확립하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장애물이다. 국가의 모든 단순화 작업 중에서 단일한 공식 언어를 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며, 이는 다른 분야의 단순화를 위한 선행조건이다.

과거 프랑스가 브르타뉴와 옥시타니 같은 지역들에 대해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던 이유도 지역에 대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이 되자 모든 국민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법적, 행정적 서류가 프랑스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의 중앙집중화 뒤에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도사리고 있다. 한때 라틴어 구사 능력이 소수 엘리트 그룹에게 폭넓은 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처럼 표준 프랑스어 구사력이 프랑스 문화에 대한 완전한 참여 여부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움직임 속에 함축된 논리는 문화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고, 방언과 지역 문화를 기껏해야 예스러운 고루함으로 격하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표준 프랑스어와 파리는 단순히 권력의 핵심이라는 위치에 머물지 않았다. 시장의 성장, 물리적 이동, 새로운 경력, 정치적 후원, 공공 서비스, 교육 제도 등 모든 측면에서 유창한 프랑스어와 파리의 연계가 사회적 지위의 향상과 물질적 풍요의 첩경이 되었다. 이처럼 국가의 단순화는 국가의 논리에 순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약속했다.

2부 변혁적 비전들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

모든 국가의 단순화는 지도의 특성을 갖고 있다. 복잡한 세상 가운데 제작자가 관심을 갖는 측면은 정확하게 요약하되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이 지도다. 지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하는 도구이다. 또한 지도는 그것이 묘사하는 단순한 사실을 요약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확실한 힘을 갖고 있다. 지도의 이러한 변형 능력은 지도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특정 지도에 대해 모종의 관점을 배치한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민간 기업은 그런 논리에 따라 세상의 지도를 만들 것이고, 그와 같은 지도의 논리를 보편화하는 데 필요하다면 무슨 힘이라도 사용할 것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국가 발전의 비극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많은 것은 다음 세 가지 요소의 치명적인 조합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자연과 사회의 행정적 질서화에 대한 열망이다. 이 열망에 적절한 용어는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일 것이다. 하이 모더니즘은 하나의 신념으로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넓은 스펙트럼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었다. 하이 모더니즘의 주요 옹호자들은 공학자, 계획자, 고위 행정관료, 건축가, 과학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자들이었다.

둘째 요소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근대 국가의 힘이 통제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요소는 이러한 계획에 저항하기에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하이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는 욕망을 제공했고, 근대국가는 욕망을 위해 작용하는 수단을 제공했고, 무력화된 시민사회는 유토피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형을 제공했다. 20세기 들어 국가가 주도해 발생한 대형 참사들은 숭고하고 이상적인 계획을 가졌던 진보주의적 지도자들의 책임이었다. 이들은 국민의 관습, 노동, 생활 패턴, 도덕적 행동과 세계관에 엄청난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사용하고자 했다. 이들의 유토피아적 열망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대한 신념 없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이 모더니즘의 걱정스런 모습은 과학적 지식의 권위에 입각한 인간 조건의 개선을 말하면서 그것과 다른 경쟁적 판단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인간이 물려받은 모든 관습과 실재는 과학적 추론에 입각해 있지 않기 때문에 재검토되고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하이 모더니즘 견해의 원천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이다. 만약 계획된 사회 질서가 역사적 현실의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인 발현보다 더 낫다면 두 가지 결론이 뒤따른다. 하나는 최상의 사회 질서를 식별하고 창조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새로운 시대에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지에 의하여 그와 같은 과학적 계획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거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닌 같은 인물이 갖고 있던 하이 모더니즘의 강성 버전은 그들이 개입할 대상에 대해 가공할 잔인성을 배양했다. 하이 모더니즘이 시간적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미래이다. 과거는 장애물이자 극복해야 할 역사이고,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계획에 착수하기 위한 기반이다. 하이 모더니즘의 담론과 그것을 채택한 국가의 공개적인 선언에 나타나는 핵심적 특징은 완전히 달라진 미래를 지향하는 용감무쌍한 진보라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하이 모더니스트들로 하여금 그곳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단기간의 수많은 희생이 정당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 보편화되어 있는 5개년 계획은 그러한 확신의 실례이다.

하이 모더니즘 도시: 실험과 비평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하이 모더니즘 도시 디자인의 화신이었다. 1920~1960년 활동한 그는 지구적 야망을 갖고 비전으로 무장한 건축가였다. 그의 유산은 실현하지 못한 초대형 계획 논리 안에 남아 있는데, 이런저런 기회가 있을 때 그는 파리, 알제리,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도시에 계획안을 제안했다. 그의 정치관은 조르주 소렐의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와 생시몽의 유토피아적 모더니즘이 기묘하게 결합된 것이었다. 근대 도시 계획의 핵심적 장전인 근대건축국제회의의 아테네 헌장은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거대하고 기계시대적(machine-age)이며, 위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도시를 강력히 선호한 그의 견해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하이 모더니즘 논리를 대표하는 측면을 갖고 있었다.

수백 년에 걸쳐 도시 생활이 만들어낸 물리적 환경에 대해 르코르뷔지에는 인내심이 없었다. 그는 19세기 말 유럽의 여러 도시가 경험했던 혼란, 어두움, 무질서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이고 전염병이 만연한 상태를 경멸했다. 그의 경멸은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도시가 원래 모습보다 효율적이고 건강해지려면 과거에 물려받은 것 대부분을 척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기존 도시를 경멸한 다른 이유는 미학적 근거였다. 무질서와 혼란은 시각적으로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과업을 이상적 산업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규정했다. 기존 도시 파리가 그에게 단테의 지옥과 비슷한 모습이라면, 자신이 만들 도시는 '조직화되고, 평화롭고, 힘차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르코르뷔지에가 가졌던 최초의 도시주의 원칙은 '계획은 독재자'라는 격언이었다. 그는 설계의 전반적인 논리라는 측면에서 로마 제국의 도시들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계획 원칙이 요구한 중심화는 도시 자체의 중심화를 통해 재현되었다. 그의 도시는 대도시 중앙에 위치한 중심부가 상위 기능을 수행하는 일두(一頭)도시였다. 이것은 그가 파리 부아쟁 계획에서 중심업무지구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업무 기능을 하는 사무실에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모든 명령이 나온다." 그에게 있어 마천루는 도시의 두뇌이자 국가 전체의 두뇌이다. 모든 것이 그곳으로 집중되며 그것은 모든 활동이 비롯되는 심사숙고와 명령의 작업을 의미한다. 단 하나의 두뇌가 도시와 공장을 계획하듯이 단 하나의 두뇌가 도시의 중심 업무 지구에서 그리고 공장의 사무실에서 활동을 통제한다. 위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도시는 사회 전체의 두뇌이다. "대도시는 전쟁, 평화, 노동 같은 모든 것들을 명령한다." 철학, 기술, 취향이든 상관없이 도시는 지방을 지배하고 식민지화한다. 영향력과 명령의 선(line)은 오직 중심에서 주변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는 자신의 도시 계획이 권위주의적 조처를 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가 소비에트 연방에 매료된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혁명적이고 하이 모더니즘적인 국가가 자신처럼 선견지명 있는 계획가를 환영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혁명적 도시 계획이 보편적인 과학적 진실의 표현이기 때문에 대중이 그 논리를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계획을 환영할 것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가정했다. 자신의 도시가 기계 시대 정신의 합리적 표현이기 때문에 근대적 인간이라면 반드시 환영하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도시의 주민이 경험했을 종류의 만족은 결코 개인적 자유의 기쁨은 아니었다. 그것은 합리적 계획에 논리적으로 부합해야 하는 기쁨이었다. "이제 권위가 개입해야 한다. 우리는 인류가 다시 태어날 장소를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 도시 공동체의 집합적 기능이 체계화되면, 모두를 위한 개별적 자유도 생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도시의 시민들이 고상하고 과학적으로 계획된 기계 도시 속에서 각자 주어진 역할을 긍지를 갖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3부 촌락과 생산의 사회공학



소비에트 집단화, 자본주의적 야망

국가는 어떻게 사회를 움직일 수 있을까? 우리는 농촌 생활과 생산을 재설계하려는 위로부터의 거대한 시도 이면에 깔린 논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왕실이나 정부 같은 중앙의 입장에서는 이 절차를 문명화 과정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길들이기'를 위한 시도라고 본다. 농촌과 그 생산물 그리고 주민을 중앙정부 입장에서 한결 용이하게 파악하고, 한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사회적 조원술(gardening)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길들이기 노력의 몇 가지 요소는 주거나 경작의 '정착화', '집중화', '급진적 단순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우리는 소련의 집단 농장과 탄자니아 우자마아 촌락이라는 악명 높은 농촌 단순화 계획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러한 설계 이면에 깔린 정치적 논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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