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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인 아이

마틴 셀리그만 지음 | 물푸레
낙관적인 아이

마틴 셀리그만 지음

물푸레 / 2010년 12월 / 407쪽 / 17,800원



PART 1 아이들은 왜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




아이들을 더 낙관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라: 부모는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길 바란다. 많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바른 행동을 하며 살았으면 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장애를 이기는 도전 정신이 있었으면 한다. 부모로서 가장 큰 소망은 아이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며, 자신들의 장점은 모두 갖되 단점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두를 다 해내야 한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모두 엄청난 기회의 시대에 태어났다. 아이들은 유례가 없을 만큼 폭넓은 자유와 선택을 누릴 수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좋은 부모이며, 오늘날이 아이들에게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모든 면에서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이들의 타고난 적극성과 낙관적인 성향을 없애는 그것은 바로 '비관적인 생각'이다. 비관적인 생각은 재앙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실패의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 비관주의는 일종의 유행처럼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이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들이 이런 세계관을 갖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비관주의는 뿌리 깊이 박힌 정신의 습관이다. 비관주의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기복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시련이 발생하면 더욱 강해진다. 지금 비관주의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가장 심각한 결과 즉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결책은 바로 우리 손에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현실에 기반을 둔 낙관적인 태도와 융통성을 가르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의 우울증과 비관주의를 예방하는 데 그 효과가 입증된 프로그램을 소개함으로써 부모, 교사, 코치 모두에게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방침을 알려줄 것이다.

아이들이 비관주의에 더 쉽게 빠진다: 아기는 생후 2년의 세월을 거치며 무력한 상태에서 벗어난다. 무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고 지배하게 되려면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반응을 해서 바라는 결과를 얻는 법을 익혀야 한다. 생후 2년 동안 아기는 주위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는데 매우 중요한 두 가지를 배우게 된다. 말하기와 걷기가 그것이다. 아이에게 이 시기는 뭔가를 성취하고 지배하는 능력을 갖기 위한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다. 걷기 시작한 아기들은 자기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으면 바로 걷어차고, 뭔가가 자기 뜻대로 안될 때면 고집을 부린다. 다행히 이 시기의 아기들은 쉽게 무력감에 빠지지 않는다. 취학 전 아동은 숙달된 행동을 통해 낙관적인 사고의 기초를 쌓는다. 부모가 적절한 도움을 주며 아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게 하면 아이는 극복해야 할 장애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해내려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 숙달된 행동보다는 실패에 대한 태도가 낙관주의자가 될지 아닐지를 결정짓는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실패와 성공의 이유에서 나름의 이론을 발전시키며,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생각들에 기초해 기본적인 낙관주의 혹은 비관주의가 생겨나는 것이다. 사춘기가 가까워지면 세상에 대한 아이의 시각이 점점 구체화된다. 지금 아이는 비관적이고, 수동적이고, 내성적일지도 모른다. 거부와 실패 같은 힘든 경험으로 사춘기가 시작되면 우울증에 빠질 확률에 매우 높아진다. 현재 열세 살짜리 학생들의 약 3분의 1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그중에 약 15%가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이미 1984년에 유아부터 성인에게 나타나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징후에 대해 20년간이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부터 비관적인 사고를 가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어떤 것도 잘 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낙관적인 사고를 갖도록 하기 위해 어른들에게 쓰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 충분히 가르치기만 한다면 초등학생들과 십대 청소년들이 우울증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할 연구팀을 꾸리기로 했다.

PART 2 아이의 양육법, 무엇이 문제인가?



잘못된 자존감 높이기 운동: 우리는 공립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도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와 교사들은 자존감을 높이라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비록 악의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행하는 방식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외려 낮추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뭔가에 숙달되고, 끈기를 갖고, 좌절을 극복하고, 도전에 맞서는 아이들의 행동은 외면한 채 아이들이 느끼는 기분만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을 우울증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경쟁이란 단어는 자존감 운동 덕분에 나쁜 말이 되었고, 무턱대고 시를 외우게 하는 일도 사라졌으며, 평범하고 힘든 일들은 되도록 피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만약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을지도 모를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한 시도이다. 자존감 운동은 학생들이 빼어난 능력을 잃은 것보다 더 많은 이점이 있다고 간주된다. 또한 교사뿐 아니라 부모도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몹시 애쓰고 있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제임스는 백 년 전에 '자존감(Self-esteem) = 성공(Success) / 욕구(Pretensions)'라는 자존감을 산출하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제임스에 따르면, 사람은 성공할수록 기대치가 낮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기대치가 줄어들면 사람은 자신에 대해 더욱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제임스는 두 단계의 심리적 기능을 접목시켰다. 첫째, 자존감은 자족감, 만족감처럼 다분히 정신적인 상태이다. 하지만 둘째로, 이 기분은 우리가 세상에서 이룬 현실적인 성공과 직결되어 있다. 자존감을 구성하는 이 두 측면, 즉 만족스러운 기분을 갖는 것과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팽팽한 긴장 상태를 이루며 자존감 세우기 운동의 이론적인 토대가 되었다.

아이가 '좋은 기분'을 갖도록 격려하고 뭔가를 '잘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것은 하나의 연속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이론가들, 그리고 모든 임상학자들은 이 연속체 사이 어딘가에 속해있다. 부모와 교사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달래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좋은 기분을 갖는 것' 쪽으로 기운 사람들은 아이의 기분을 나아지도록 만들기 위해 어디든 끼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잘 하는 것'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바꾸고, 좌절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작은 성공보다는 끈질긴 노력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이 연속체에 동참한다. '좋은 기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믿는 교사들과 더불어 아이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갖도록 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알고 있다. 한편 '잘하는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두 가지 기술을 갖고 있다. 하나는 비관주의를 낙관주의로 바꾸는 것이며, 또 하나는 무기력감을 성취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높은 자존감을 갖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존감 향상을 위해 아이들이 좋은 기분을 갖도록 부추긴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아이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것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우울증: 부모와 교사를 중심으로 자존감 높이기 운동이 일어났고, 아기의 타고난 낙관성과 더불어 많은 기회가 새롭게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지금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슬픔과 비관주의, 수동적인 상태에 빠져있다. 원래 우울증은 중년 여성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그리 흔치 않은 증상이었지만, 지금은 감기처럼 흔한 질환이고, 그전과는 달리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우울증은 개인을 무기력하게 하는 일종의 장애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여겨지면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나의 목표, 나의 성공, 나의 쾌락이 중요하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실패했을 때 입는 상처도 커진다. 살다보면 언제든 실패와 무기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각된 시대이며, 이는 우울증의 새로운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들은 거의 모두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슬픔과 불안을 느끼고 분노의 감정도 경험해 봐야 한다. 아이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아이가 받을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칭찬 일색의 말로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 하면서 자존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나선다면, 우리는 아이가 목표를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아이가 잘 해낼 기회를 빼앗는 것은 결국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아이를 하찮게 여기고, 굴욕감을 주고, 무시하는 일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존감 높이기 운동과 좋은 기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쁜 기분을 겪지 않도록 막아서는 바람에 반대로 좋은 기분을 느끼고 몰입하는 것에 더 어려움을 느꼈고, 실패를 피해가게 한 덕분에 성취감을 경험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또한 정상적인 슬픔과 불안을 감추게끔 하여 우울증에 빠질 위험을 부추기고 있으며, 사소하고 자기충족적인 성공만을 장려함으로써 값비싼 비용을 치룬 실패자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

PART 3 낙관주의 알아보기



낙관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비관주의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비관주의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 운동코치, 언론 등을 통해 이러한 이론을 배우고, 다시 다음의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이 순환을 깨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벌써 비관적인 사고에 젖어있다면 학교생활도 잘 못해낼 가능성이 크다. 불안감이나 우울증에 빠질 위험도 크고 낙관적인 사고를 가졌을 경우에 비해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릴 때부터 비관주의를 갖게 되면 평생 시련이나 상실, 실패를 무기력하게 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당신이 약간의 도움만 준다면 아이는 충분히 낙관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낙관주의는 흔히 긍정적인 생각 혹은 정말 힘든 상황이라도 할리우드 영화처럼 멋지게 끝날 거라고 기대하는 습관 정도로 여겨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낙관주의라고 본다면 낙관주의는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같은 말들로 늘 자신을 응원하고, 골프 퍼팅을 할 때마다 공이 구멍으로 쏙 들어가도록 그저 상상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학자들은 지난 20년간의 연구를 통해 무엇이 낙관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지 밝혀냈다. 낙관주의는 긍정적인 말이나 성공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원인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다들 인과관계를 나름대로 생각하는 방식을 갖고 있으며, 나는 이런 개인적인 특성을 '설명 양식(explanatory style)'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설명 양식은 어릴 때부터 발달되며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평생 지속된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 운동코치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설명 양식을 배운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자신을 어떻게 비난하는지 듣고, 그 내용뿐 아니라 비난하는 양식까지도 받아들인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혼낼 때 '오늘 열심히 하지 않았구나.'라는 말 대신 '넌 정말 게으른 애야.'라고 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게으르다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영구적이고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 잘 듣고 있다가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한다. 부모가 비관적이라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직접 비관적인 사고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혼내거나 아이 앞에서 자기 탓을 할 때는 잘 생각해서 행동해야 한다. 자기 비난에 대한 아이의 설명 양식은 부모가 만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규칙은 정확성이다. 과장된 비판은 아이가 행동을 바꾸는 데에 필요한 만큼 이상의 죄의식과 수치심을 유발한다. 반면 무슨 일을 저질러도 비판하지 않으면 아이가 책임감은 물론 자기 행동을 바꿀 의지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규칙은 상황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낙관적인 설명 양식에 따라 아이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 생각 없이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뜻을 담아 아이를 비판하면 아이는 자신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구체적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면 아이는 낙관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는 어떤 경우든 아이의 성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일시적인 원인에 중점을 두어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낙관적, 비관적 사고의 기초는 지금도 형성되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뿐 아니라 당신이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 비난하는 방식을 보고 낙관적 혹은 비관적인 사고를 갖추게 된다. 비관적인 아이는 우울증에 빠지거나 성취감이 낮아질 위험이 크다. 그러나 우울증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며, 부모와 교사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이에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아이가 우울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연속체에서 어느 지점에 속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낙관적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부모가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으면 아이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낙관적인 부모 밑에서는 낙관적인 아이로, 비관적인 부모 밑에서는 비관적인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모가 감정적으로 예민해지면 아이들의 신경도 따라서 곤두서게 된다. 이아들은 미묘하든 확실하든 상관없이 엄마가 감정을 드러내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감정들을 상당 부분 이런 과정으로 익힌다. 내게는 평상시에 지극히 정상적이다가 가끔 극도의 공포에 빠지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녀가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바로 전화였다. 전화가 오면 이 친구는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한 마디 할까 말까 할 정도였다. 전화와 관련해 충격적인 경험을 했거나 어린 시절에 통화 금지를 당했던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갖고 있다는 데에 종종 당혹감을 표시하곤 했다. 어느 해 추수 감사절에 그 친구네 집 부엌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그녀의 아버지를 찾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소에는 그토록 말씀을 잘하시던 친구의 아버지가 진땀을 흘리며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 말도 못하시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 내내 전화 통화를 겁내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그런 특이한 공포증을 갖게 된 것이었다. 당신은 화가 나면 주위에 누가 있든 말든 큰 소리로 그 일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가 설명하는 방식을 몹시 진지하게 듣는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설명 양식까지 배워서 자기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부모만 은연중 아이에게 설명 양식을 주입시키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코치가 끼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그들은 날마다 아이가 잘한 일과 못한 일들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아이를 나무라는 과정에서 아이가 세계를 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으면 아이들은 금방 그의 설명 양식으로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교사는 아이들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비판을 한다. 그런 비판은 가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편견이나 나쁜 버릇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공공연하게 입증된 편견 중 하나가 바로 남학생과 여학생에 대한 부분이다. 교실에서의 무기력감에 관한 선구적인 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교사들이 어떻게 비판하는지를 관찰해 보았다. 여학생에게 문제가 발견되면 교사는 능력이 부족한 점을 들어 아이를 비판했다. 반면 남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교사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산만하다거나 집중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나무랐다. 이런 식의 비판은 훨씬 관대하다. 노력과 집중, 올바른 행동은 일시적이며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묘한 성적 차별은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실패에 대해 비관적으로 해석하면 시도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비관적인 해석은 실패와 더불어 무기력감과 수동적인 태도를 낳는 반면, 낙관적인 설명 양식은 실패를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도전이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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