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뇌
질 볼트 테일러 지음 | 윌북
긍정의 뇌
Jill B. Taylor 지음
윌북 / 2010년 12월 / 262쪽 / 12,000원Part 1 뇌졸중, 8년의 기록
뇌졸중 이전의 나의 모습 : 우리 가족은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에서 살았다. 나보다 18개월 먼저 태어난 오빠는 뇌 장애로 인한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어린 시절 내가 지켜본 오빠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방식이 나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뇌에 흥미를 가졌다. 내가 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건 바로 나와 오빠의 차이, 세상에 대한 인식과 정보 처리 방식,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 때문이었다. 1970년대 말 나는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 있는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밟았다. 석사 학위 없이 곧바로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의 생명과학부 박사과정에 입학해 6년 동안 공부했다. 의과대 1학년 커리큘럼을 이수했고, 윌리엄 앤더슨 교수의 지도 아래 신경해부학을 전공했다. 1991년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인체육안해부학, 인체신경해부학, 생물조직학을 의과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1988년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 오빠가 공식적으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오빠는 우주를 통틀어 생물학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인디애나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내게 하버드 의과대학 신경과학부에서 박사 후 연구원 자리를 제의해왔다. 그래서 2년 동안 로저 투텔 교수와 함께 뇌의 시각피질에서 움직임을 감지하는 부위인 MT영역의 위치를 연구했다. 투텔 교수를 도와 MT영역의 뇌 속 위치를 해부학적으로 확인한 나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맥린 병원의 프랜신 베네스 교수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은 뇌과학을 연구하면서 갖게 된 목표였다. 그녀는 정신분열증과 관련한 인간 뇌의 해부 연구 부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권위자로,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이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오빠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1993년 맥린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NAMI 전미 정신질환자협회에서 주최하는 연례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마이애미 여행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중증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자녀들 등 1,5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다른 가족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오빠의 병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달았다.
이듬해인 1994년, 나는 NAMI 본부의 임원이 되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자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에 앉게 된 셈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뇌 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과학자들의 원활한 연구를 위해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뇌조직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나는 연구소 일을 사랑했고 NAMI 가족들과 함께 연구 성과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으로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장밋빛 삶과 전도유망한 미래가 날아가 버렸다. 1996년 12월 10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나 자신이 뇌질환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뇌졸중이었다. 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의 뇌가 정보 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뇌 속에서 일어난 출혈 때문에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쓰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 : 1996년 12월 10일 아침 7시,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자 왼쪽 안구 뒤를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운동을 하면 피가 제대로 돌아 고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음악을 틀고 러닝머신에 올라가 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희한한 감각이 정신없이 밀어닥쳤다. 이러다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긴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몸과 뇌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거실을 지나 욕실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챘다. 동작 하나를 취하는데도 몹시 힘들었고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실룩거렸다.
내 몸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아직 모르는 채로 욕실 벽에 몸을 기대고 균형을 잡았다. 몸을 앞으로 숙여 수도꼭지를 틀자 갑작스레 욕조 안으로 물이 콸콸 쏟아졌다. 그 물소리에 깜짝 놀랐다. 물소리가 예기치 않게 크게 들려 정신이 바짝 들었고 한편으로 혼란스러웠다.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에도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은 것이다. 샤워기의 물방울들이 작은 총알처럼 가슴을 때리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의식을 현실로 되돌려 내 몸 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점검했다. 정상적인 인지의 흐름이 뚝뚝 끊겨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가까스로 몸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버틸 수는 있었다. 욕조에서 나와 옷을 고르느라 무진 애를 썼고, 8시 15분에야 출근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연구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가 되어 옆으로 풀썩 떨어지며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우아, 이거 멋진데!'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응급전화를 걸기까지 : 뇌졸중이 일어나면 신속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집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좌뇌의 지시가 끊겨 순차적인 사고를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외부 세계와 인지하는 일이 버거워졌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지 집중할수록 머릿속의 욱신거림이 심해졌다. 주의력을 놓치지 않고 더듬더듬 정신을 차리는 것만도 버거웠다. '내가 뭘 하고 있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한 순간 또렷하게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정신이 명료해진 순간, 하버드 뇌조직 자원센터에 연락하면 동료들이 도와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전화번호만 기억나면 되는데.' 하지만 좌뇌가 피 웅덩이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상세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전화기 번호판을 보면 혹시 도움이 될까 싶었다. 전화기를 앞에 놓고 몇 분 동안 책상에 가만히 앉아 명료한 물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몇 분 동안 전화기를 잡고 헛수고를 한 끝에 마침내 숫자 4개가 불현듯 떠올랐다. 2405! 잊어버리지 않도록 힘이 떨어진 왼손으로 펜을 들어, 마음속에서 본 이미지를 재빨리 종이에 적었다. '전화번호의 앞 숫자가 어떻게 되더라?'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가는 어떤 것,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와중에 855라는 번호가 갑자기 떠올랐다. 처음에는 앞에 붙는 숫자치고 너무 높아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마음속으로 지금 해야 할 일과 말해야 할 것을 계속 연습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미끈거리는 생선을 붙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생각하는 데만도 4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명료한 물결이 밀려왔을 때, 종이에 끼적거린 숫자를 보고 전화기 번호판에 붙어 있는 숫자와 하나하나 맞추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동료이자 좋은 친구인 스티브 빈센트가 전화를 받았지만, 나의 뇌는 그의 말을 해석하지 못했다. 좌뇌가 더 이상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질이야! 도와줘!"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말하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다행히 스티브가 내 목소리를 알아챘다. 내가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생각 이상으로 좌뇌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닫자 혼란스러웠다. 좌뇌는 스티브가 말한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지만, 우뇌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톤을 듣고 그가 나를 도와주려 한다고 판단했다. 그제야 나는 편안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그가 나를 도우러 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스티브가 문간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의사 명함을 건넸고 그는 즉시 조치를 취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의식은 있었지만 정신착란 상태였다. CT촬영 후 나는 즉시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사람들이 바퀴 달린 침대를 구급차에 고정시키고 보스턴을 가로질러 달렸다. 친절한 보조원이 옆에서 돌봐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내 등을 가볍게 어루만지자 마음이 편해졌다. 마침내 나는 걱정을 내려놓았다. 1996년 12월 10일 정오가 가까운 시각, 내 몸을 이루는 분자들의 전기적 생기가 희미해지고 나의 인지적 뇌가 신체 작동을 통제하던 연결 끈을 놓았다. 정신과 신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 마침내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신경치료실에서 : 다행히도 위급한 상황을 넘긴 나는 신경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계속해서 쿡쿡 쑤시는 머리와 오른팔의 느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자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말하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했으므로 삶의 방관자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우뇌가 나를 지배하면서 타인의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비록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내 모습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상인처럼 정보를 처리할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의료진들이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현실을 마주하자 서글퍼졌다. 뇌졸중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장애의 원인이며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에서 4배나 많이 발생한다. 나는 뇌졸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뇌가 회복을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 서로 나누고 알리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의료 전문가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초기 대처를 하고 증세를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의사들이 그들 기준에 따라 내 뇌가 작동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지 말고, 나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집중해주기를 원했다.
초기 회복 기간 동안 나 자신을 관찰하고 경험한 일은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뇌졸중을 겪으면서 비로소 우리 몸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개별적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뇌를 잃는다는 게, 더 정확히 말하면 왼쪽 뇌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의 타고난 능력이 체계적으로 하나씩 의식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 온도와 진동, 고통, 자신의 팔다리 위치를 더 이상 지각할 수 없게 되면 신체의 경계 인식이 바뀐다. 여러분의 에너지가 주위의 에너지와 섞여들면서 늘어나고, 스스로를 우주만큼이나 거대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 여러분이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지 일깨워주던 머릿속의 작은 목소리는 침묵한다. 여러분을 예전의 감정적 자아와 연결해주던 기억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의 풍성함만이 여러분의 인식을 사로잡는다. 모든 것이 순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여러분의 마음은 평화를 누리며 행복의 바다를 헤엄칠 방법을 궁리하게 될 것이다.
둘째 날이 저물 무렵에는 혼자서 몸을 뒤집고, 부축을 받아 침대 가장자리에 앉고, 누군가에 기대어 똑바로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비축되었다. 하루 종일 간헐적으로 내 몸에 힘이 차올랐다가 바닥나기를 되풀이했다. 에너지를 보존하는 법과 잠을 자며 보충하는 법을 익혔다. 늦은 밤 스티브가 찾아와 어머니가 다음 날 아침 일찍 보스턴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라는 개념마저 사라진 것이었다. 그날 밤 깨어 있는 내내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라고 반복하면서 조각을 짜 맞추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입원 후 닷새째 날에 나는 수술을 견디는 데 필요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물리치료사가 계단 오르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나를 어머니 품에 맡겼다. 어머니가 보스턴 시내를 마치 인디애나 시골길처럼 운전해서 가는데 어찌나 위태위태하던지! 햇빛을 가리려고 옷으로 얼굴을 덮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기도했다.
수술을 준비하며 : 1996년 12월 15일, 내가 살던 윈체스터 아파트로 돌아왔다. 여기서 채 2주가 남지 않은 수술에 대비해야 했다. 어머니가 나를 보살펴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히 기본으로 돌아갔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쓰는 법, 퍼즐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신체의 회복 과정은 정상적인 발달 단계와 비슷했다. 각각의 단계를 익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하려는 의지였다. 일단 시도해야 했다. 시도한다는 것은 뇌에게 '이봐, 이쪽 연결이 중요해. 연결을 만들어보고 싶어'하고 말하는 것이다. 수천 번을 시도했는데 아무 성과도 없다가 어느 순간 약간의 성과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았다면 영영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로 우리는 뇌가 알아서 일정을 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보통 수면 주기는 90분에서 110분 정도라고 하지만 나는 6시간가량 자고 20분간 깨어 있었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일찍 깨어나면 다시 잠을 청해야 했고, 주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심한 두통과 짜증이 몰려와서 감각 자극을 가려내거나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며칠 잠을 푹 자 기력이 다시 채워지자 좀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냈다. 시간과 에너지를 전혀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 있을 때면 무엇이든 배웠고, 어머니는 내 손에 뭔가를 들려주거나 운동을 시켰다. 그러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뇌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최대치에 달했다는 것을 존중해, 침대에서 쉬면서 뇌의 컨디션을 조절했다. 어머니와 함께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파일을 복구하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뇌출혈이라는 심각한 외상을 겪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골프공 크기만 한 혈전 때문에 뇌세포들이 아직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은 이미지나 느낌으로 어른거리다가 금세 사라졌다. 읽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전에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읽는다는 개념 자체가 어려웠고, 읽는 법을 배울 때면 머리가 아팠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고를 당한 초기에는 뇌에 부담이 컸는데, 심지어 추상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혈전이 두 언어 중추 사이를 흐르는 섬유들을 압박하고 있어서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보 처리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언어 능력을 되찾으려면 혼자서 뇌 속의 회로를 찾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읽는 법을 다시 배우려고 분투하는 동안 나의 뇌 기능은 매일 조금씩 진전을 보였다. 마침내 소리 조합을 크게 읽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교하고 어려운 수술을 견딜 만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했다. 아파트에서 나와 5분만 걸어 올라가면 펠스웨이라고 하는, 작은 산악 호수 두 개로 둘러싸인 멋진 숲 지대가 나왔다. 예전에 일과가 끝나면 이곳에 와서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긴장을 풀곤 했는데, 이곳은 자연과 소통하며 원기를 회복하는 특별한 곳이었다. 수술을 받기 전에 꼭 한 번 펠스웨이에 가보고 싶었다. 수술 전날 친구 켈리와 함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원하던 꿈을 이루었다. 보스턴 시내 불빛에 내려다보이는 표석 위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힘차고 긴 호흡으로 기운을 차렸다. 다음 날 있을 수술이 어떻게 되든 내 몸은 건강한 수조 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생명의 힘 그 자체였다. 뇌졸중 이후 처음으로 내 몸이 개두 수술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