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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연애한다

문은식 지음 | 생각의나무
문은식 지음

생각의나무 / 2010년 11월 / 283쪽 / 13,000원



지금 내겐 나 자신뿐이다




절박한 진실 앞에서

서른여덟이 되던 어느 날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어느새 삐죽삐죽 고개를 내미는 흰 머리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거울 속에 서 있는 나를 소리 없이 바라보았다.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들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회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38년 동안 살면서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도 아니었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미련도 아니었다. 빛나는 이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하는 처량한 눈물도 아니었고, 삶이 힘들고 지쳐서 흘리는 서글픔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촉촉이 젖은 내 눈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가슴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기의 눈을 바라보면서 흘리는 눈물이 어떤 느낌인지.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처럼 깊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날 비로소 삶의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 원래 나 혼자인 거다." 나는 이렇게 고요히 속삭였다. 몇 번을 내 달팽이관에 대고 이야기했다. 진실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또 혼자 살다가 혼자 간다는 사실! 그것이 내 심장을 적신 절박한 진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가슴 저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잊고 살던 당연한 사실이 새삼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마치 푸념처럼 되풀이하던 말, 누구나 한 번씩 내뱉는 일상적인 말이건만, 시장통 어느 친숙한 아주머니에게서도 가끔 듣던 소리건만 그 말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평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혼자인 시간을 좋아했고 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축복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 순간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스스로 '그래, 원래 나 혼자다'라고 외쳤던 것은 외로움에서 나온 절규가 아니었다. 고독에 대한 연민도 아니었다. 스스로 삶을 처량하게 여겨 튀어나온 궁색한 변명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도 아니요, 더 이상 세상살이에 상처받기 싫어 방어하는 힘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인가? 나이 서른여덟에 거울에 비친 눈동자를 보면서 흘린 굵은 눈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곧 '나 자신'임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절대적 동반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우주만물과도 견줄 수 없는 숭고한 보물이 '나 자신'임을 믿게 되는 계기였다.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흘린 눈물이었다. 마치 오랜 세월 찾아 헤매던 자화상을 내 거실에서 찾은 느낌처럼 말이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행복을 가꾸고 함께 울고 웃는다. 그러나 나와 함께하는 가족도 나 자신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도 나는 아니요, 아무리 존경하는 부모도 나 자신은 아니다. 내가 먹는 밥으로 그들의 배가 부르지 않고 그들이 먹은 밥 한 술에 내 배가 부르지 않는다. 오직 함께 상을 차리고 나누어 먹는 기쁨이 있을 뿐, 나는 내 밥에 먹어야 한다. 동료도 있다. 생명처럼 소중한 친구가 있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있고 인생의 방패가 되는 선후배가 있다. 그러나 두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땀방울을 흘려도 그들은 나 자신이 아니다. 내가 아플 때 그들이 아프지 않고 그들이 아플 때 내가 아플 수 없다. 다만 그 아픔을 위로할 뿐,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 할 수 있다.

또 온 마음을 주고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며 행복을 나눌 것 같은 연인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람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전부 알 수 있을까. 생을 마치는 날 함께 다음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곁에 있을 뿐이다. 이것은 냉정한 이야기도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도 아니다. 냉소적인 비웃음도 고독 예찬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진리일 뿐이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가장 근원적인 본질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온 영혼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우주에 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더 큰 상처뿐



상처의 늪

누구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상처는 실망감일 수도 있고 배신감일 수도 있다. 소외감이나 박탈감일 수도 있고 때로는 씁쓸함일 때도 있다. 자존심이 상해도 상처가 되고 무시를 당하거나 거부당해도 상처는 남는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부모나 형제로부터도 상처를 받는다. 누구나 긴 세월 살다 보면 명치 언저리에 상처 한두 줌은 묻어 두고 살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꿈을 함께 나누던 가수가 있었다. 유명한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능 많은 청년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꿈나무였고, 무엇보다 노래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러나 처음 만났던 기획사에서 사기를 당하고 좌절했다가 아픈 가슴을 안고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념과 도전정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청년은 무척 사랑스러웠고 열정도 대단했다. 그러나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청년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도 형제도 그를 돌봐줄 수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별거 중이었고 형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자기의 꿈을 믿어달라고, 최선을 다해 정상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를 뒷바라지하면서 한 번도 보답을 바라거나 대가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좋은 인연이 끝까지 가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을 지원하기로 결심했을 뿐이었다. 그 뒤 나는 3년 동안 그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신 부담하고 그가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전화가 안 되더니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고 어느 순간 연락할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3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의 꿈을 위해 노력한 나는 망연자실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억에서 그를 지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소식이 끊어진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다시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나와 인연을 끊은 후 그 청년은 다른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며 기회를 찾아 기웃거렸다. 그러나 어디서도 정착할 수 없었고, 결국 1년이 지나 마음을 접고 군대에 갔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씁쓸함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몇 날 며칠 동안 혼자서도 실실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가장 괴로운 것은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이었다. 끊임없이 내가 나를 몰아세웠다. "네가 사람을 잘못 본 거야. 왜 그랬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이런 상처와 배신감을 들지 않았을 거 아냐." 그리고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초등학생과 찍은 작은 사진이었다. 오래전 익산에서 공부를 하던 무렵 결연을 맺었던 보육원 아이였다. 주말이면 이따금 보육원에 들러 놀아주기도 하고 함께 자장면도 먹으면서 조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아이였다. 통통한 볼에 해맑은 웃음이 예뻐서 장난처럼 꼭 찔러보기도 했던 귀여운 아이였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함께 추억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친구였는데,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 역시 익산을 떠나면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 아이와 나누었던 소중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엄마, 아빠가 밉지 않니?" "왜요? 왜 미워요?" "너를 버렸다는 생각은 안 들어?" "삼촌, 저 그런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엄마, 아빠가 날 버린 게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서 잠깐 여기에 맡긴 거예요. 엄마랑 아빠가 키우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 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퍽 놀랐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에서 뿜어 나오는 진실한 기운에 다시 한 번 움찔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그 아이는 엄마, 아빠가 자기를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상처가 될 만한 일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길 수 있었다.

오래전 사진을 보며 떠오른 어린 친구의 한 마디가 배신감이라는 상처를 스스로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깊어 가던 상처의 고름을 짜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스스로 배신이라고 말하던 나는 이제 가수가 되려던 청년과 겪었던 일도 꿈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상처가 될 만한 일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이 보기엔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법할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살았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상처라고 말할 때 진짜 상처가 된다. 보육원 아이와의 작은 기억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는 상처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상처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이야기하는 거다. 상처라는 것은 내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전달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상처라 여길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도 나를 아프게 하거나 우울의 연못으로 던져버리지 못한다. 내가 걸어온 삶의 발자국 중 하나일 뿐 나를 지배하거나 힘들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상처가 되느냐, 아니면 성장 에너지가 되느냐는 오직 내가 나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 나는 더 이상 나를 떠나 군에 간 청년을 마음에 가두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용기 있는 자가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음을 열면 들리나니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육십 대 후반의 부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더러 식사도 하고 같이 차도 마시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던 좋은 인연이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그러나 그날 부인의 모습은 예전 같지 않았다. 교양 넘치고 점잖으며 따뜻한 분이라 늘 편안하게 대했었는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어둡고 서글퍼 보였다. 그런 그분을 보면서 분명 말 못할 아픔이 있구나 싶었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그렇게 부인과 헤어진 다음날 다시 전화를 받았다. 어제 그 부인이 내게 급히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심상치 않다는 느낌에 나는 급히 부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차를 마시고 한참을 앉아 있자니 부인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어제보다 더 침울한 기운으로 말문을 열지 못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망설이세요? 뭐가 두려워서 마음을 열지 못하십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부인은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을 보면서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영혼을 단단히 묶고 있는 고통스런 밧줄이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40년 동안 가슴에 묻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마음을 열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두렵고 창피해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그 부인이 40여 년 동안 혼자 겪어야만 했던 고통의 원인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사연이 너무나 애절해서 여기에 다 전할 수는 없지만,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버리다시피 방치한 세월이 강한 죄의식이 되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 그 부인의 한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자식을 버리고 그 죄 때문에 자신을 미워해본 사람의 애절한 아픔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부인은 나에게 40여 년 동안 숨기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놓았다. 고백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가슴속에 그런 고통을 담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미련한 짓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인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네요. 이럴 줄 몰랐어요." 나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렸다. "예, 스스로 마음을 여셨으니까요." 나는 그동안 영적인 풍요와 행복 그리고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에 대해 다양하게 연구와 실천해 왔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성숙하고 아름다운 삶의 원리를 발견해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그런 여정을 밟아오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못했을 때였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련법과 명상법, 영혼을 단련하는 프로그램에 다양하게 참석해 왔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 답답했던 경험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하고 또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과 상실감뿐이었다. 그럴 때는 더욱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더 열심히 수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닦달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영혼은 건조하고 날카로워졌다. 원인은 딱 하나였다. 내가 나 자신을 활짝 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행이나 명상은 아무리 훈련해도 핵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오히려 겉치레가 되고 형식적인 타성에 빠졌다.

훈련과 공허함이 반복되며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순간, 스스로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하기로 작정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치 여러 겹 두껍게 포장되어 있던 마음과 영혼이 밝은 햇살 아래 스스로 무거운 외투를 벗고 깨끗한 속살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 삶을 더덕더덕 덮고 있던 포장지를 하나하나 벗겨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 꺼풀씩 훌훌 던져버릴 때마다 모든 수고와 인내를 감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삶이 다가왔다.

세상에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과 체계가 매우 많이 있다. 여러 가지 성격분석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가르침들이 자아를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나는 네 가지 눈으로 자아를 바라본다. 물론 그동안 공부했던 다양한 학설들을 내 수준에 맞추어 재조명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며 자신과의 대화를 슬기롭게 이끌어준 분명한 관점이다.

'나'는 우선 욕망의 자아, 현실의 자아, 이상의 자아, 본질의 자아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욕망의 자아란 그야말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원초적인 에너지다. 먹고 자고 성욕을 채우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와 함께, 소유, 관계, 명예, 권력, 인기 등을 얻으려는 다양한 욕망을 모두 포함한 자아다. 이 자아는 늘 무언가 얻고자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칭얼거리는 어린아이 같은 자아다.

두 번째로 현실의 자아는 지금 내가 처한 외적 모습이다. 가정에서는 어떤 처지에 있고 직장에서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주변 상황과 여러 관계 속에서 얽혀 생활을 형성한 내 삶의 모습이다. 현실의 자아는 늘 고달파하고 방황한다. 사춘기 소년처럼 불안정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만큼 피곤하다.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처럼 주변 눈치를 보며 숨죽여 지낸다. 환경과 관계 속에 끼어 있는 나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역할에 대한 부담과 피로가 있다. 욕망의 자아가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는 것에 부응해야 하면서 동시에 이상의 자아가 제어하는 규제에 따라야 한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아 의기소침할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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