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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의식

리처드 슈스터만 지음 | 북코리아
몸의 의식

리처드 슈스터만 지음

북코리아 / 2010년 10월 / 472쪽 / 20,000원




1장. 신체미학과 자기 돌보기 - 미셸 푸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를 저명한 학자로 생각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대담한 독창성이다. 그 두 가지는 다름이 아니라 고전의 철학적 생각을 삶에 있어서 특별한 방법으로 새롭게 만든 것과 그것의 신체적 미적 표현을 구분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두 차원은 푸코의 후기 작업에서 ‘존재의 미학’에 대한 그의 중심적 생각, ‘그 자신의 기술’그리고 ‘몸과 쾌Pleasure’의 수양을 통해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신체미학은 삶의 예술로, 몸의 경험과 숙련된 개선을 철학의 중심에 둔 원리이다. 오랫동안 근세기의 데카르트주의와 관념론에 의해 강화된, 지배적인 플라톤주의의 전통은 플라톤주의 이전의 더 오래된 고대와 서양 외적인 사상에 있어서 명백하고 중요한 사실로 인해 우리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몸을 통해 살고,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하기 때문에, 특히 철학이 삶과 구별되는 방법, 즉 자신에 대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수양을 포함하는 비판적이고 제어된 자기 돌봄이라고 여겨질 경우, 몸에 대한 연구, 돌봄 그리고 개선이 철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강조된 몸에 대한 의식의 분위기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철학적 삶을 한쪽 면으로 치우친 마음의 삶으로 다루고 있는 피에르 아도Pierre Hadot를 따르고 있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으로 현대적 관심(푸코를 포함하여)을 부흥시킨 아도는 이러한 삶을 치료상의 원리에 있어서의 프로그램에 따른 실천으로 정의한다.(예를 들면 ‘명상’, ‘격렬한 감정의 치료’그리고 ‘자제’) 아도는 이러한 삶을 ‘정신의 훈련’이라고 확실히 칭하고 있으며, 이것은 몸의 훈련 그리고 필요와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아도는 “육체적 훈련이 행해지던 장소인 짐나시온Gymnasion은 철학 강의가 행해지던 곳과 같은 장소였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하였다.

신체미학은 임시적으로 개인의 훈련에 대한 비평적· 개선적 연구 그리고 감각적 인식(Aesthesis)의 위치로서 그리고 창의적인 자기 꾸미기로서 개인의 몸의 사용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러한 신체적 돌봄을 구축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 지식, 대화 그리고 원리에 봉헌된다. 만약 우리가 몸에 반대하는 철학적 편견을 뒤로 한다면 그 대신에 단순히 지식, 자기인식, 올바른 행동, 행복 그리고 정의에 대한 철학의 중심 목표를 되찾는다면, 신체철학의 철학적 가치는 명백해질 것이다.

만약 자기인식이 철학의 중심적 목적이라면, 몸의 차원에서 개인의 지식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몸의 복잡한 존재론적 구성을 세계 안의 물질적 대상 그리고 세계를 향한 의도적인 주관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인식하면서, 신체미학은 몸의 외적인 형태뿐만 아닌 몸의 산경험을 다룬다. 신체미학은 우리의 느낌을 감지하는 것을 향상시키려 하므로, 지나쳐가는 기분과 오래 지속하는 자세 양쪽에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런 까닭에 신체미학은 우리의 건강한 삶과 실천을 악화시키는데도 보통 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신체의 기능부전을 드러내어 낫게 한다.

철학의 다음 번째 목표는 올바른 움직임(Right Action)이다. 그것을 위해 지식과 자기인식이 필요하고, 강렬한 의지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움직임은 우리의 의지력인 몸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Power of Volition) - 우리가 움직이려고 하는 만큼의 움직일 수 있는 능력 - 은 신체적 효력에 달려 있다. 올바른 움직임에 대한 앎과 원함은 우리가 그것을 행할 때 우리의 몸을 쓰려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또한 몸이 하는 일 중 가장 단순한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몸의 놀랄만한 무능력은 오직 이러한 무능력에 대한 우리의 놀랄 만한 둔함과 어울릴 뿐이다. 이러한 상태는 부적당한 신체적 의식과 조절에서 생긴다.

몸을 제어하기 쉬운 것(Docile)으로, 즉 등록된 사회적 힘에 순응하는 위치로 놓는 푸코의 매우 독창적인 관점은, 위에 언급한 점들 모두 중요하지만 경시된 점들을 뛰어넘어 신체가 정치적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역할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드러냈다. 그것은 복잡한 힘의 계급관계가 어떻게 폭넓게 행사될 수 있는지 그리고 법에 있어서 그것을 명백하게 할 필요 없이, 공식적인 강요 없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들은 몸에 뿌리를 둔 느낌의 습관들을 포함한 우리 몸의 습관을 통하여 암시적으로 관찰되고 강요된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우세한 사상은 신체적· 사회적 관념에 있어서 몸에 밴 습관으로 암호화함으로써 은연중에 지배할 수 있고 보존될 수 있다.

2장. 침묵하는, 절름거리는 몸의 철학 - 메를로퐁티의 신체적 주목의 부족



서양철학에서 메를로퐁티는 몸을 다루는 중요한 철학자로, 몸의 문제에서는 성인처럼 추앙받는 인물이다. 물론 라 메트리, 디드로, 니체 그리고 푸코 또한 열정적으로 인간 경험의 몸의 차원을 다루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엄격하고, 조직화된 그리고 꾸준한 메를로퐁티의 논의와 겨룰 수 없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경험과 의미에 있어 몸의 우선성을 증명하였다. 몸이 단지 모든 지각과 행위의 중심적 소스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표현하는 능력의 핵심이며, 따라서 모든 언어와 의미의 핵심이라는 그의 주장은 메를로퐁티의 지칠 줄 모르는 수사법의 가차 없는 흐름에 의해 몸의 철학을 정복한 듯이 보인다.

“우리의 우선적 주관성처럼 그것은 언어를 조건 짓는 인식이지만, 그것 자체는 세계에 대한 분명치 않은 이해에 의해 침묵의 인식으로 남는다. 새로 생기는 언어와 제스처로서의 언어에 필요한 침묵의 배경을 형태화하는 것은 이미 암묵의 언어이며, 모든 표현의 바탕이다. 모든 인간의 몸의 사용은 이미 초기 단계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더욱 깊은 역설이 있다. 물론 몸의 표현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철학자들을 능가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몸이 그 자체의 명확한 신체감각적이거나 자기감수적 느낌과 같은 자기의식적 감각에 있어서 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메를로퐁티의 태도는 ‘신체의 현상학’이라는 한정된 목표와 그의 일반적 철학 개념에서 나온다. 그가 몸의 표현성을 침묵이라고 역설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강의 ‘철학의 찬미’에서 그는 철학을 ‘절름거리는 것’으로 묘사하였지만, 어쨌든 철학을 명확히 이 절름거리는 비유를 가지고 찬양하였다. “철학의 절름거림은 그것의 미덕이다.” 왜 메를로퐁티와 같은 명석한 신체철학자가 그의 철학적 연구의 특성을 밝히는 데 몸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그러한 비유를 사용하였을까?

메를로퐁티의 중심 전략은 ‘몸의 약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본질적· 필수적 힘을 분석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몸이 약한 이가 많았던 것은 아마도 철학에 있어서 몸을 거부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으로 몸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하게 하는 철학에 가장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철학에 있어서 ‘몸의 약함’은 ‘의식의 결함’을 의미한다. 몸의 불완전한 감각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처럼 몸의 욕구가 지식을 좇는데서 마음을 방해한다. 게다가 몸은 명확한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겉에 드러난 몸의 표면을 그것의 전체로서 직접적으로 볼 수 없으며, 몸은 그것의 내적인 활동이 주체의 관점으로부터 어떻게든 가려져 있기 때문에 특히 신비로운 것이다.

이 용감한 전략은 호소력도 있고 기발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 문제는 단순히 몸이 마음보다 우월하다는 과감한 역가치화가 철학의 이지주의자적 전통에 지나치게 위배되기 때문은 아니다. 또한 그것을 취소하는 것이 오래되고 엄격한 몸과 마음이 이원론을 보강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신체적 결핍은 불행하게도 니체의 ‘마음과 몸의 계급관계의 전도’가 경험적인 측면에서 너무 현실성 없는 생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마음이 우리 몸의 어떤 행위에 있어서 성공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기능하는 동안 마음은 때때로 지치고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추론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주요 목적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그 자체의 것과 실제 경험할 세계에 대한 우리의 만남을 재활성하는 것이다.” 이 말은 ‘지식이 언제나 발화하는 지식에 선행하는 세계로 회귀하기 위해’ 지식과 반성에 선행하는 지각과 경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반성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현상학의 “극단적인 반성은 결국 반성하지 않는 삶에 의존하는 그 자체의 의식과 같다. 그것은 반성하지 않는 삶의 의식과 경쟁하는 반성을 만들려는 야망을 추구하며 우리의 기본적인 전반성적인 상태로서, 우리의 경험에 직접적인 기술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철학은 반성이 이미 존재하는 진리라기보다는 항상 진리의 바탕이 되는 우리의 생각 위에 있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기술하는 노력이다.

만약 철학의 목표가 단순히 우리의 구현화된 인간 상태에서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것을 최초의 경험과 그것의 존재론적 가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교체하여 명확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라면, 자기의식적 반성을 통해 우리의 신체적 지각과 기능을 강화시키려는 모든 계획은 철학에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져 기각될 것이다. 더 나쁜 경우는 그것이 철학의 궁극적인 기반, 중심, 목표로 지지되었던 지각의 원래의 수준에 위협적인 변화와 방해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 지각에 기반한 고전된 보편적인 현상학적인 존재론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전념은 명확한 신체적 의식의 가치를 기각하는 더욱 심화된 이유를 제공한다.

메를로퐁티의 신체철학적 중요성에 대한 뛰어난 옹호에서 부족한 것은 실제의 몸을 의식의 반성적· 실천적 훈련의 장소로 보는 건강한 이해이며, 신체의 지각과 행위를 우리에게 더욱 가치 있는 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경험과 행위를 달성하기 위해 재구성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프라그마티즘은 보충적인 철학적 관점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신체적 깨달음에 대한 실천적인 노력을 충실한 내용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에서의 지각적 통일성을 다시 잡기 위해 “지식에 선행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미래를 위한 더 나은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장. 신체적 주관과 신체적 종속 -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성과 노화



신체미학적 힘과 의식을 더 잘 수양하는 것이 그러한 종속된 주체를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보부아르는 이러한 신체미학적 관행의 해방적 잠재성을 어떻게 여겼을까? 그러한 문제를 탐구하기 전에 보부아르의 두 건의 주요 연구, 『제2의 성』 그리고 『노년』에 주목하여 검토한다. 이 책들은 도처에 있는 여성과 노인에 대한 인간의 카테고리에 있어서 신체적 차이와 종속에 대해 탐구한다. 만약 몸이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도구라면, 자유는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면 보부아르는 우리에게 더 큰 자유를 쟁취하도록 돕는 몸의 제도를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것으로 신체적 수양을 명백하게 확언하였다.

분석적 신체미학에 있어서의 보부아르의 공헌 - 인간의 구현화와 여성과 노인에 대한 그녀의 특수한 표현 연구 - 은 매우 풍부하며, 여기서의 적절한 분석을 위한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그녀는 구현화의 형이상학과 생물학을 심리학적 발전과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상태를 통해 만들어진 방법으로 확장시켰으며, 어떻게 신체적 삶이 나타나기도 하고 고쳐 만들어지기도 하는지를 신앙과 문학에 의해 탐험하였다. 때때로 과학적· 사회적 진보에 의해 진부해지기도 했지만, 분석적 신체미학에 대한 그녀의 관점은 의의가 있다. 특히 그것들이 이 장의 중심적 초점인 프라그마티즘(Pragmatism,실용주의) 신체미학과 그것의 해방적 잠재성을 담는다는 것에 관해서 말이다.

애매함(Ambiguity)은 보부아르 철학의 핵심 개념인데, ‘제2의 성’은 두 가지 다른 몸의 개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녀가 주장한 대립하는 불안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이는 그 둘의 불안한 긴장은 특히 여성의 구현화의 경험에서 예리하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보부아르는 몸을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메를로퐁티의 실존적 현상학의 용어로 정의한다. 그것에 따르면 몸은 단순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소유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가능하게 하고, 도구적인 상태이다. “만약 몸이 물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상태이고,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도구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이 성적인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가정에 도전하면서, 그녀는“몸은 우선 주체성의 복사, 즉 도구이며 그것은 세계의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부아르는 행위적·표상적 신체미학을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완전한 여성 해방은 신체적 수양에 종사하는 고립된 개인의 수단만 가지고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처음으로 경제적인 여성이 가진 조건의 진화를 요구하는 인간 사회로의 긍정적인 행동을 통한” 그들의 자유를 계획하는 정치에 대한 그들의 활동적인 종사를 요구하는 연합된 정치적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즉, 여성 해방은 개인의 몸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과 노예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더 큰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에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 보부아르의 견해다.

4장. 비트겐슈타인의 신체미학 - 심리철학, 예술철학, 정치철학에 있어서의 설명과 개선



비트겐슈타인은 민족주의, 유태인혐오 사상, 권력 그리고 소유에 대한 정치적 논의의 수업에서 쓰인 노트 <문화와 가치(Vermischte Bemerkungen)>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미적 감정’을 지니는 것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철학자가 느낌을 정신적 삶의 복잡성에 대한 원초적인 설명으로서 발명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철학을 할 때, 우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을 실체화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의 생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여기 우리의 생각에 대한 설명이 느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마치 우리의 확신이 단순히 이 요구의 결과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심리철학, 미학, 윤리학 그리고 정치학 같은 영역에 있어서 신체미학적 느낌의 역할을 인식하였다. 그러한 감각이 우리의 개념의 알맞은 개념적 분석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인식론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철학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가 철학을 좁은 범위에서 개념적인 분석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아마도 이 인용을 쓰고 싶어질 것이다.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하는 것 - 건축을 하는 것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 은 스스로 일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철학이 좀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철학이 미학과 심리철학, 정치이론을 어떻게 강력하게 묶는지를 감상하기 위하여, 우리는 정치철학에서 튼튼하게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 정치철학을 정의하는데 쓰이는 모범적인 문헌을 회상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대화문인 『국가(Politeia)』가 그것인데, 이것은 가장 많이 읽힌 철학 서적 중 하나이며,‘정의’라는 주제를 낳은 고대의 유물이기도 하다. 이 영향력 있는 작업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본질적으로 미덕이며, 그 경우의 미덕은 단지 외적인 사회적 규약이 아닌 특별한 심리학적 성취와 기질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국가』의 뛰어난 부분은 소크라테스의 정치적 이론의 심리적 토대가 더 옳은지, 그와 대립하는 철학이 더 옳은지를 보기 위한 영혼의 기본적 능력, 필요 그리고 욕구를 분석하는 심리철학에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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