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서 사람에게
김다은 외 지음 | 생각의나무
해에게서 사람에게
김다은 외 지음
생각의나무 / 2010년 11월 / 241쪽 / 11,000원
1부 해에게서팽나무에 부쳐 (나의 누이, 나의 어머니였던 당신에게) - 이재무
당신이 영면하신 지도 어느새 20년이 지나버렸군요. 시간도 공간에 의해 총량과 성질이 결정되는 시대입니다. 서울에서의 한 시간과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몽골 초원 혹은 티베트 고원에서의 한 시간은 길이와 넓이와 깊이에서뿐만 아니라 성질에서도 큰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당신과 더불어 살던 수십 년 전의, 무無시간에 가깝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워낭소리처럼 느리고 살갑게 오고가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생몰연대를 모릅니다. 대략 수령 300년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마저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당신을 추억하는 이 마당에 그깟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그리 대수겠습니까. 우리 속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처럼 당신이 부재한 이후에야 당신의 존재를 뼈아픈 회한 속에서 더욱 실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동네 우물이 있던 자리가 당신의 거처였지요. 그 우물을 마시고 자란 무병의 마을 사람들은 죽어 산으로도 갔지만 더 많이는 대처로 떠나갔더랬습니다. 그 우물 곁에서 스무 평 그늘밭을 일구시어 노동에 지쳐 부은 발등을 불러들여 쉬게 하시던 당신. 어릴 적 공부나 심부름에 게으른 날은 어머니께서 손수 당신의 몸 일부를 꺾어 들어와 종아리를 파랗게 물들이며 아프게 하곤 하였지요. 그래서 철없던 그 시절 난 까닭 없이 당신을 미워하곤 하였답니다. 아주 당신이 마을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끔찍한 생각에 젖은 적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매 맞고 사립을 나서 찾아간 곳은 정말 어이없게도 당신의 품이었습니다.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았던 터라 당신에게 발길이 절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 나를 당신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단 열매를 떨궈주곤 하였습니다. 단것에 주린 시절인지라 당신이 내주는 열매가, 우리 또래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주전부리가 되었답니다. 한여름 밤 당신의 목에 무등을 타고 과년한 고모들이며 큰 누이들이 등목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성에 눈을 떠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나는 당신의 품안에서 자랐습니다. 그 시절 당신은 나의 누이였고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들어서는 나도 여느 청년들처럼 당신을 떠나 대처로 나갔습니다. 대처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살림을 부리며 사는 동안 나는 당신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대처에서의 생활습속을 익히고 따르느라 당신을 그리워할 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상경파들의 주소가 긴 생활이 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대처에서의 싸움에 져 서럽고 괴로울 때는 불쑥 얼굴을 내밀어오는 당신으로 인해 전전반측하며 날밤을 새기도 하였답니다. 어쩌다 의무에 이끌려 고향을 찾아가면 맨 먼저 당신이 달려와 반겼습니다.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하고 가지를 내밀어 등을 두드려주곤 하였습니다.
스무 해 전 나는 당신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우람하던 당신의 몸이 볼품없이 마르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부는 텅 비어서 더 이상 수액을 빨아올리지 못했고 여기저기 부스럼딱지며 종양으로 성한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해 봄 안간힘으로 잎과 꽃을 피우던 당신의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몇 마리 나비가 날아왔습니다. 늙은 몸이 피우는 잎과 꽃은 여전히 젊고 환했습니다. 그 잎과 꽃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한 장의 만장도 수의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내 생의 반토막이 그렇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몸 속에서 당신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생활이 나를 흔들 때마다 당신은 내 안에서 나를 격려하고 호되게 혼을 내기도 하십니다. 당신은 영원한 나의 연인입니다.
꽃보다는 지난 가을 단풍잎 - 정명숙
단풍잎아, 단풍잎아! 얼마나 꽃이 부러웠으면 초록빛 네 몸뚱이에 붉은 꽃물 들여 단풍으로 태어났니? 먼저 단풍으로 거듭난 너의 위대한 변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 순수한 초록일 때는 꽃에 가려 눈길도 받지 못하다가 장미꽃 같은 붉은 옷으로 바꾸어 입었을 때에야 비로소 주목받게 되는 너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늘 1인자인 꽃의 뒤안길에서 2인자의 배경으로만 머물러야만 했던 너의 암울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랬어. 넌 언제나 2인자였어. 봄이 오면 되바라지게 꽃부터 먼저 피워올리는 화사한 봄꽃에게 1인자의 자리를 내주었지. 하이얀 벚꽃, 노오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 하물며 지천에 널려 있는 함초롬한 풀꽃에게까지도……. 겨우내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을 틔워올린 보람도 없이 각양각색의 봄꽃에게 전령사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지. 이게 네가 받은 유년기의 첫 시련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
그래도 넌 포기하지 않고 다가올 여름에게 희망을 걸었지. 묵묵히 제 할 일 다 하면 진가를 알아주려니, 열심히 물을 퍼올리고 아침 햇살을 모아 나뭇가지가 휘청이도록 이파리들을 매달았지. 그렇게 당당한 초록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던 여름, 사람들은 너도나도 잎이 무성해진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어. 하지만 정작 그네들이 찾은 것은 힘들게 키워낸 너의 무성함이 아니라 그 크기가 드리워낸 그림자였어. 사람들이 찬미한 대상이 잎이 아닌 그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는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받았지. 왕성한 활동시기인 청년기에 받은 두 번째 시련이었어.
그렇게 처절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맞은 노년의 가을에 넌 큰 물살을 앓았지. 아무리 물을 퍼올리고 햇살을 모아도 잎을 키워내기는커녕, 에너지가 소진된 너는 불덩이 같은 붉은 몸살을 앓았어. 그때야 사람들은 잎이 아닌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찬사를 해주었어. 붉은 열꽃에 시달리는 너를 보려고 사람들은 숨가쁘게 올라야 하는 높은 산도 마다하지 않았어. 세상일이란 참…….
단풍잎아! 서울의 북한산, 경기도의 소요산, 충청도의 속리산, 강원도의 설악산, 전라도의 지리산, 경상도의 주왕산, 이름난 명산에서 너를 찬미하는 소리가 들리니? 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인제야 알아챈 그네들의 합창소리가 들리니? 이 축제가 너의 마지막 진혼제임을 그 사람들은 알까? 기나긴 무명 시절의 서러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온몸의 절규임을 알기나 할까? 산하를 온통 붉은 잎으로 물들이는 너의 붉은 열꽃을 보면서 이렇게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마지막까지도 잎의 소명을 다한 2인자의 삶이 뿜어낸 내공 때문일 거야. 떠나더라도 이 사실만은 꼭 잊지 말아줘. 만인의 박수를 받고 퇴장하는 네가 진정한 1인자였다는 것을…….
가슴속에 꽂히던 대평원의 낙뢰에게 - 정해종
부시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참 멀고도 아득했습니다. 남아공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뻗어 있는 고속도로 N1은 국토를 대각선으로 연결하며 나라의 심장 같은 도시들을 가로지르지요. 지도상에 나타난 N1은 자를 대어 놓고 그어놓은 듯 곧은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간을 조금 넘어 킴벌리라는 도시 인근의 한 농장이 내가 찾아가는 곳이었지요. 그 농장에 부시만 아티스트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열댓 살쯤 되는 고물 자동차는 그 먼 길을 용케도 잘 달려왔지만, 너무 밟아댄 탓인지 킴벌리 시를 50킬로미터쯤 앞두고 엔진이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1천킬로미터를 넘게 달려왔으니, 갱년기의 엔진이 버티기엔 무리였을터입니다. 결국 고철 값으로 차를 처분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경황없이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길,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오른편 창밖으로 먹구름이 파도처럼 몰려오더군요. 버스가 불빛 한 점 없는 평원으로 들어서자 이내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낙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순간 강렬한 섬광이 칠흑 같은 허공을 갈라놓았고 우레가 평원을 뒤흔들었습니다. 드넓은 평원은 낙뢰가 어떻게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지상에 꽂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지요. 가끔씩 서너 개의 낙뢰가 한꺼번에 떨어지기도 하더군요. 그 놀랍고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시종 부시먼 아티스트들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 부족 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겸손한 삶은 우리의 모든 것을 대변하며, 우리는 자연에게서 그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그것을 삶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단순성으로 정치적 격변과 가혹한 폭력들, 현대라는 이름의 격랑을 견뎌왔습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자연의 사람들로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쩌자고 생각을 멈추어버린 것일까요. 무얼 얻기 위해 지금까지 석기시대의 마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요. 스스로 진화를 거부해버린, 바보스러운 정도로 단순한 뇌구조를 가진 그들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접하고 삶의 태도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보고, 알고, 믿는 것들에 대해 심각한 오만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정신일 것입니다.
버스는 서너 시간 동안 꽤 먼 거리를 질주해왔지만, 강렬한 섬광과 폭음의 전쟁터를 빠져나가진 못했습니다. 여전히 낙뢰와 우레는 대평원을 흔들어대고 있는 중이었지요. 그러나 그 섬광과 굉음이 비단 창밖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부시먼에 대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내 두개골과 가슴에는 수도 없이 우레가 울고 낙뢰들이 와서 꽂히며, 섬광과 굉음과 포연이 난무하는 난폭한 황홀경에 빠지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낙뢰는 부시먼의 이야기들에 사로잡히게 하고, 부시먼의 이야기들은 왜 낙뢰처럼 내 가슴에 와서 박히는 것이었을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해와 거대한 빌딩 숲들로 인해 우리는 먼 곳을 바라볼 수 없으며,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으로 인해 주변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지 못합니다. 도시적 삶은 반성적 사고를 차단하고 문명에 대한 오해와 오만은 우리를 오직 앞만 보며 질주하는 맹목의 삶으로 몰아가지요. 그게 바로 원시고 야만인 줄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날 밤 내 가슴에 와 박히던 낙뢰, 당신은 그렇게 문명국 첨단의 도시에서 온 나를 아프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너에게 - 고은주
마흔 즈음에, 비로소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혹은 마침내 이 나이가 되어서야, 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늘 내 곁에 있었으나 미처 볼 수 없었던 너. 때로 내 눈에 보이긴 하였으나 느낄 수는 없었던 너. 흙과 돌, 꽃과 나무, 하늘과 땅, 그리고 그사이에 깃든 모든 것들 속에 너는 존재한다. 너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이며 그 이상이다. 그러나 좀처럼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너. 나 또한 너의 일부분임을 깨닫던 순간부터 너는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골격근량, 체수분, 체지방량, 기초대사량 등의 단어들로 채워진 건강검진 결과표가 의례적인 숫자의 나열로부터 벗어난 순간이었다. 체성분 분석기는 내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냉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의사의 운동 권유를 처방전처럼 받아들었던 그날, 무작정 산책을 나섰다가 나는 너와 맞닥뜨렸다.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내 몸이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저녁이었다. 상심과 조바심을 오가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너는 사뭇 느긋한 얼굴이었다. 이후로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매일 저녁 공원을 찾았다. 공원의 산책로는 오르막과 내리막, 숲과 광장, 흙바닥과 콘크리트 바닥으로 고루 뒤섞여 이리 굽고 저리 뻗어 발걸음을 유혹한다. 걷다가 돌연 길을 잃기도 하고 멋모르고 제자리를 맴돌기도 하면서 공원의 산책로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길의 흐름에만 익숙해졌을 뿐 풍경은 여전히 낯설다. 기분에 따라, 혹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빛과 습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풍경. 풍경의 중심에는 꽃이 있다. 메꽃, 원추리꽃, 벌개미취, 닭의장풀, 개망초, 부처꽃, 금계국……. 이 많은 꽃들에게도 각자 이름이 있다. 고모나 숙모, 혹은 올케언니에게도 이름이 있듯이. 꽃의 화사함을 혐오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젊다는 이유로 자주 꽃의 은유에 희생되었다. 그 시절, 세상의 화사한 모든 것은 내게 난감한 대상일 따름이었다. 꽃의 아름다움을 불편해하던 시절도 있었다. 생식기를 다 드러낸 채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들의 자유로움이 나는 불편했다. 아마도 그것은 질투에 가까운 불편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들에 내가 바라본 꽃들은 대부분 화병에 꽂혀 있었다. 그래서 혐오와 불편함 속에서도 나는 꽃이 애틋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싫을 것도 애틋할 것도 없는 꽃들. 땅에 뿌리를 박고 피어 있는 꽃들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윽고 나무를 숨차게 바라본다. 그리고 흙과 돌과 하늘을……. 너를, 아름다운 너를, 참으로 무심한 너를……. 이제 나는 공원이 아니어도 너를 만날 수 있다. 늘 지나다니는 길, 자주 찾는 장소, 새로운 여행지, 심지어 영화나 미술작품 속에서도 너는 내게 명료하게 보인다. 너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지배한다. 나는 왜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까? 왜 이제야 너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을까?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았으리라. 마흔 즈음에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너. 자연이라는 이름의 존재. 나를 포함한 너무도 커다란 존재. 그 존재 덕분에 나는 이제 굳이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어졌으므로.
2부 사람에게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 서영은
조그만 뜰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집입니다. 뜰은 크지 않지만 나무들이 제법 많습니다. 향나무, 도장나무, 주목, 영산홍 같은 정원수 외에도, 본래부터 자생해온 산목련과 아름드리 소나무와 유실수인 대추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있고, 큰 바위가 오른쪽으로 뜰을 품듯이 껴안고 있습니다. 덩치가 염소만 한 개들 세 마리는 뜰에, 몸집이 작은 요크셔종 한 마리는 집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의 가족입니다. 거두고 보살피고 사랑을 나누니 가족이지요.
식물군에 속하는 가족의 특징은 너무나 내성적이고 조용한데다 한자리에만 가만히 있어, 그 존재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조용함은 집안의 가구나 벽에 걸린 그림들의 정물성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음이 바로 적극적인 삶의 형태일 뿐, 나무들은 그 부동의 자세 안쪽으로 쉼 없이 움직여서 가지와 일을 살찌우며, 꽃이나 열매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잊은 듯이 지내다 어김없이 그 자리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나무들을 보면 숙연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단 뿌리를 내린 그 한 자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순연함. 살아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자기방어조차 할 줄 모르고, 이득을 취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을 스스로 봉쇄하고 흙 속에 파묻어버린 다리. 이 세상에 넘치도록 가장 많아서 다른 생명체와 먹이를 다툴 필요가 없는, 흔하디흔한 빛과 물만 먹고 사는 겸허한 생리. 생명을 위협하는 풍상과 화마조차도 피하지 않고,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물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고사하고 마는 고고한 성품. 그래서 모든 나무는 의연함과 신령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동물 가족인 봉순, 점순, 봉이, 귀동이는 먹이를 탐하고,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한시도 가만있지 아니합니다. 뛰어다니거나 짖거나 매달리거나 배설하거나 하는 것이 그들의 타고난 생리입니다. 생리로 보면 나무의 고고함과 동물의 부산스러움은 대척점에 있습니다. 나의 하루는 눈뜨자마자 이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로 분주해집니다. 집 안에 사는 녀석은 8년 전 한 친구의 부탁으로 한식구가 되었는데, 온 집안을 자기 화장실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어쨌든, 방심했다 하면 어느새 녀석의 배설물을 밟기 때문에 간밤에 저질러놓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치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