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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에블린 웰치 지음 | 에코리브르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에블린 웰치 지음

에코리브르 / 2010년 5월 / 527쪽 / 33,000원



서론




최초의 근대 쇼핑지를 추적해보면, 중세 후기의 획일적인 과거를 배경으로 18~19세기의 쇼핑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수입으로 비교적 제한된 범위에서 지역별로 생산된 소규모의 물품을 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가구의 수입이 생필품 이외의 물건을 소비할 정도는 되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의 쇼핑은 주로 식료품 구입에 집중되었으며, 대부분의 물품이 자급자족의 목적으로 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18세기 소비재 위주의 대중 시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르네상스 학자들은 특권계층의 후원이나 국제무역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계몽주의 시대의 급격한 소비자 증가 현상이 실은 훨씬 이전에 벌써 시작되었으며, 그 장소도 런던이나 파리가 아니라 15세기 이탈리아였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993년 경제사학자 리처드 골드스웨이트는 "르네상스 시대의 물질문화로 말미암아 처음 생겨난 소비자주의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혁명적인 단계에 이르렀고, 마침내 사치스러운 낭비와 패션에 연연하는 우리 시대의 상품문화로 절정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직관을 갖고 르네상스 시장을 경험하기위해 문화역사학자의 접근 방식을 채택하기로 하였다. 자료 중 일부는 이 책 제목에서 제시하는 영역을 넘어서기도 하지만, 대개 1400~1600년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중계무역항 베네치아는 시의 소매상들이 도시민은 물론이고 해외 고객까지 상대하면서 상업적으로 발전하며 전문화했다. 그리고 시골 깊숙이까지 뻗은 도로와 운하, 항구를 갖춘 대규모 도시가 많았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도시화가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예컨대 16세기의 토스카나 카센티노 지역의 인구는 1450명이었는데, 1590년 당시 식료품점 아홉 곳, 빵집 두 곳, 푸줏간 두 곳, 약국 세 곳, 포목점, 이발사, 재단사, 제화공, 모직 · 가죽 · 철 작업장,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제1부. 쇼핑을 보기



시장과 은유

15~16세기의 장터를 기술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일련의 고정관념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세 초, 또는 그 이전부터 행상, 시장, 가게, 노점상은 잠재적 의미가 가득한 은유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시장에 대해서는 다산과 풍요, 부 등 긍정적인 시각에서부터 세속성, 관능, 더러움, 질병 등 부정적인 관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양 극단 중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장에서 사용되던 언어와 시각 이미지는 인간의 생존과 안락을 향상시키는데 필수적인 교환의 역할을 강조했다. 잘 관리되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잘 관리되는 도시는 생계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해야 했다. 도시 찬양자들은 도시의 물질적 부를 철저히 강조해왔다.

빵이나 밀가루 등 기본 품목의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하거나 빵의 품질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암묵적인 사회계약이 깨지게 된다. 기근이 들었는데도 정부가 식량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에 식량 공급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의 안정성마저 흔들렸다. 대개 수동적이라고 여겨지던 가난한 여인네들조차 빵을 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하루하루를 곡물 공급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은 군주에게 항거하겠다며 위협했다. 당시 사람들이 기근과 식량부족을 늘 두려워했다는 것에서 미루어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집에서도 빵이나 그 밖의 생필품을 구매하고 좀 더 세련된 가재도구를 구입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성적 충동과 시장 사이에는 은유적 관계는 물론이고 실제적인 관계도 존재했다. 이탈리아에서 사창가는 시장통 가운데나 그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 약종상처럼 위신 있는 상점도 관능적인 반응을 자극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1425년 시에나의 설교자이자 윤리학자인 산 베르나르디노는 소년들이 선술집의 포도주나 약종상에서 파는 단것 때문에 타락할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다양한 상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자 장터를 규제할 시각언어와 문자언어를 구성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가장 골칫거리이던 행상인들에 대한 최종 토론에서 드러난다. 로마의 번영을 나타내는 직설적인 이미지를 팔기 위해 여자는 물론이고, 로마 시장과 거리에서 가장 골칫거리이던 사람들(돌팔이 의사나 약장수)까지 배제했다. 16세기에 자주 언급되던 돌팔이 의사나 약장수는 자칭 '성 바오로의 후손'이라고 우기면서 이탈리아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장터로 간다는 것이 동전 몇 닢을 들고 시내 중심지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도시민들은 상품이 가득 쌓인 진열장과 판매대를 보면서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재차 확신했다. 한편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감상하거나 달콤한 먹을거리를 먹고 선술집에 들어가거나 매춘부를 사는 일은 흥분과 오락, 위험을 제공했다. 소식지를 구매하거나 이발소나 약재상에서 소문을 듣는 식으로 정보가 순환되었다. 이런 유혹 앞에서 구매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그들의 재산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와 도덕적 위상까지 드러냈다. 그들이 이발소의 소문을 믿든, 염소 치즈를 파마산 치즈로 속이든, 그들의 관점에서는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가 단순히 남의 말을 믿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것이 현명하고 정보력을 갖춘 개인으로서 그들의 공적 정체성을 정의해 주었다.

쇼핑과 감시

르네상스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쇼핑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장의 신용 거래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상적인 도덕 도시에서는 쇠고기가 송아지고기로 팔리면 안 되듯, 정육점의 아내가 판사의 아내와 혼동되어서도 안 되었다. 외면에 정확한 표식을 해서 내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는 도덕적인 문제였다. 거짓말은 소비자에 대한 범죄이자 신을 거스르는 죄였다. 상품과 사람들에게 분명한 표지를 붙이는 것이 해결책으로 떠올랐고, 그 결과 정체성을 가시화하려는 도시 법령도 다수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일상적인 해결책은 판매인이 사기 행위를 저지른다는 전제 하에 중립적인 제도에 그 처벌을 맡기는 것이었다. 예컨대 어떤 상인이 사기를 치면 그가 거주하고 일하는 도시 당국이 그를 처벌해야 했다. 따라서 상업의 효율성은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이냐에 달려있었다. 시와 종교단체는 물론이고 길드도 정부와 합세하여 감독의 임무를 맡았다. 이러한 자율규제는 효율적으로 보여야 했으며, 길드 간부들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정교한 절차를 따랐다.

'정확한 도량형'에는 도량형이 상인과 마찬가지로 신뢰할 만해야 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통화, 추, 벽돌이나 타일의 크기, 정육점의 아내에게 허용되는 의복 등에 관해 공식적인 수치를 발표하고 강화하는 정책은 가시적인 차이를 기반으로 안정성과 형평성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도시 당국과 길드, 종교단체에서는 이런 식의 정체성 표기법을 공고히 했다. 이처럼 공공 영역에서 도량형과 측량 행위를 준수하는 것은 상업의 신용도를 높이고 도시를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측량 도구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도구 자체의 신뢰성이 확인되어야 했다. 저울 제작자들은 대부분 허가증을 받았고, 공공 측량소나 상점마다 휴대용 측량 도구를 들고 다니는 방안도 마련되어, 담당 관리들이 기계의 측량 도구와 공인 도구를 비교할 수 있었다. 측량 도구에 주석 인장이 찍혀 있으면 그 도구의 신뢰성이 보장되었다. 추가 보호책으로 공회당과 성당, 교회에 점토, 석조, 놋 등으로 만든 상설 측량 도구를 비치하기도 하였다.

구매자들이 상품의 품질과 도량형에 의심을 품은 만큼이나 판매자들도 구매 대금으로 받은 현금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왕립 조폐국을 운영하던 영국이나 허가받은 주조소에서 '리브르 투르누아'를 발행하던 프랑스와 달리, 이탈리아는 정치적으로 분할된 반도 내에서 여러 주조소가 경쟁을 벌였다. 공통 통화로 바꾸길 거부하는 것은 공통의 도량형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독립의 신호였다. 주화에는 시각적 정체성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다. 즉 주화는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라 권위의 상징이며, 주화의 별칭을 보면 통치자와 주화가 거의 동일시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돈은 다른 교환 형태에 비해 신뢰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각각의 정부가 무엇을 인정하는지 주의해야 했으며, 자신이 받은 주화가 잘리거나, 가짜이거나, 땀으로 더러워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화폐의 가치가 다양하고 급변할 수 있기 때문에 물물교환이 현금보다 안전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그 정도의 안전성을 보장해준다고 간주되었다.

종류가 다른 두 물건을 물물교환하려면 두 물건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데, 이때도 정부와 길드가 관여했다. 진품 인증 표식과 마찬가지로 정직한 가격이 존재했다. 비록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잘 통하긴 했지만, 가격 책정과 규제는 강탈자에게서 사회의 최빈곤층을 보호하려는 방책이었다. 신용거래는 각기각색의 거래, 심지어 푼돈이 오가는 사소한 거래에도 존재했다. 북부 이탈리아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지불완료가 아니라 지불하겠다는 약속으로 판매가 종결된 정도'가 밝혀지기도 했다.

제2부. 소비의 지리학



시간

도시 당국과 교회는 한 주의 날들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의 시간에도 관심을 보였다. 1376년 루카의 상인들은 각 범주의 상점 개점이 허용되는 시간을 상세하게 정의했다. 하루 중 어느 때에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팔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단히 복잡 미묘한 개념은 하루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러나 한 해의 시작 및 기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란 자연과 문화 중간에 걸쳐 있는 개념이었다. 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하루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의 표시고, 구분되거나 예배와 기도 등 특정한 전체의 리듬을 따르거나, 규칙적인 간격을 만들어내는 물시계나 모래시계 등 측정 가능한 기구를 이용해 나뉘었다. 종소리와 시간은 가게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표시하고, 또 하루를 다시 여러 단계로 구분해주었다. 종소리가 공식적인 점심시간을 알렸다는 증거는 없으나 행정장관, 판사, 그 밖의 시 관리들은 정오경에 분명하게 업무를 멈추었으며, 소매상인들도 일손을 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의 지도를 비롯한 16세기의 지도는 인적이 없는 거리와 빈 공간인 광장을 이용해서 관리들이 갈망하던 질서와 이상적인 형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매일, 매달, 또는 매년 물건을 사고팔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기적으로 점령하는 공간에 대해 일종의 권리를 얻었다. 일시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독이 필요했다. 베네치아, 밀라노, 비첸차, 브레시아 등 시 정부가 공회당과 성당의 외관을 값비싼 건축재로 치장하면서 상설 구조물과 일시적이고 시간에 기초하는 활동 간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장소

상점과 다른 공공 구조물의 차이점을 알아내는 것이 상점을 정의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소매상 대부분은 이런 구분이 어려웠으며 도매와 소매 거래를 모두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14세기 후반에 유럽 전역으로 직물을 수출한 부상(富商)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는 자신의 상점에서 직물을 소량 판매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기 상점의 직물로 스타킹을 만들어서 지역 공동체에 기성품으로 판매하였다. 따라서 도매상과 소매상의 실제적인 주요차이점은 도매업자의 재고가 소매업자의 재고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었다.

한편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이 뒤섞이면서 야기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증인과 공증인을 내세운 거래가 집 안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포목상, 식료품상, 그 밖의 상인들은 고객의 집으로 직접 물건을 들고 찾아가거나 견본을 보내오기도 했다. 집 안에서 물건 구입이 허용되긴 했어도 판매는 금지되었다. 집 안, 특히 일층에 상점을 열 수 있었지만 대개는 별개의 구역으로 간주되었으며 출입구도 달랐다. 입법자들은 문 하나를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상점의 개폐 시간을 결정하는 명확한 방법을 고안해내기 위해 고심했다. 규제되지 않은 상품을 집 안에서 판매하는 것은 오늘날의 암거래와 유사했으며, 시 당국과 길드는 이런 행위를 제한하거나 위법 행위로 간주했다.

대도시나 소도시 모두 사정은 비슷했다. 1567년 트레비소의 재산 조사를 보면 주거지의 일부를 임대해주고 상당한 임대 수입을 거둔 경우가 허다했다. 신분과 상관없이 많은 집주인들, 심지어 돈이 많은 부자들조차 안정된 수익을 바라며 지하실, 다락, 헛간 등을 제작소, 창고, 마구간 용도로 빌려주었다. 주거지와 상업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가시적인 표시, 즉 간판이 필요했다. 간판은 상점에서 어떤 상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상점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상인들은 자기 가게와 상품을 알리기 위해 특정한 기호를 이용하면서도 특정 상품을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왕관, 무어인의 머리, 천사, 태양, 달 등 총체적인 이미지를 선호했다.

공개 시장에서 편안한 상점 내부로의 이동, 즉 거리에서 공연처럼 진행되던 거래가 좀 더 진지하고 안전하며 은밀한 거래로 대체된 것은 중세 후기에서 근대 초기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두 장(場)이 늘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상점 주인이 장터에서 행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행상이 상점 주인의 대행인으로 거래하고 상점 주인은 행상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곤 했다. 이 두 종류의 상거래 중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으며, 대신 각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보였다. 공개 시장은 가시성, 비교, 가격통제, 품질보장, 가격에 대한 공동 합의를 허용했다. 한편 좀 더 개인적인 거래는 공공 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공손한 예의와 다시 찾아오리라는 확신, 그리고 장기간의 신용 거래를 제공했다.



제3부. 구입과 흥분



정기 시장

시끌시끌하고 냄새까지 풍기면서 매일 열리던 시장과 어둠침침하고 조용했을 포목상이나 약종상의 양극단 사이에는 다른 형태의 구매와 판매 기회도 많았다. 기본적인 상업 목적은 모두 동일했으나 그중에서 더욱 흥미진진한 판매 형태도 있었다. 이탈리아 정기 시장이 유럽 전체적으로 볼 때는 미미했지만 반도 내 배급망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항구에 도착하는 대형 화물은 상인들이 정기 시장 체계를 이용해 항로나 육로로 공급할 수 있도록 작은 꾸러미로 다시 분류되었다. 대형 정기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이 내륙 지방에서 다시 판매되면서 희귀품이 반도의 오지까지 보급될 수 있었다. 이런 체계 덕분에 상인들은 자신의 지역에만 물건을 대는 공급 과 잉 현상을 피하고 잠재 고객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정기 시장은 특이성 때문에 9일마다 열리도록 되었으나 15일에서 30일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거의 전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렸으며, 특히 여름과 가을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을 끄는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관련 관습이 늘어나면서 상업 거래에 종교적 배경이 제공되었다. 예컨대 레카나티는 로레토의 마돈나 교회의 전통에, 피렌체의 임프루네타 정기 시장은 임프루네타의 기적을 일으키는 이미지에 의지했다. 또 움브리아의 세니갈리아 정기 시장은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에 의지했다. 15세기 중반 이퀼라 읍이 성인 시에나의 산 베르나르디노의 시신을 갑자기 획득한 후에 매년 열리는 사프란 장의 날짜를 바꾼 것을 보면 상업과 종교의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정기 시장이 열리던 장소로 미루어 정기 시장의 위치가 상설장과 임시장의 중간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예컨대 살레르노와 페루자에서는 시 전역에 걸쳐 정기 시장이 열렸으며 교회 광장, 거리, 시 외곽의 들판 등에 임시 노점상이 마련되었다. 판매점의 배치는 시의 상설 건축물에 강제하기 힘든 위계질서를 모방한 경우가 많았다. 레르노아 시 경계 지역인 포르타 노바에는 곡예사와 마술사가 공연하고 확률 게임을 할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 공간 옆에는 핀, 바늘, 골무, 직물 등을 파는 임시 노점과 선술집, 포도주 가게가 나란히 있었다. 더 세련된 성 페테르 교회 옆 부지에는 약제사와 향신료상, 금세공사, 보석상 노점이 들어섰다. 해변과 항구에서는 신선한 육류와 염장 육류, 생선류 등이 팔렸으며, 마을 밖의 산 로렌초 평야에서는 값비싼 직물 중에서 주로 벨벳이 대량으로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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