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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오동환 지음 | 세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오동환 지음

세시 / 2010년 11월 / 440쪽 / 15,000원





쨍하고 금이 가 바람 결 스며들고 구름장까지 잔뜩 낀 뇌 얘기는 '머저리' 표 보자기에 고이 싸 선반에 얹어 두자. 이런 얘기 말이다. 몸무게가 몇t씩이나 나가는 코끼리는 그 뇌의 무게가 겨우 5kg밖에 안 되고 체중이 수십t도 넘었을 쥐라기공원의 그 무시무시한 공룡은 뇌의 무게가 겨우 0.7kg밖에 안 됐다는데, 사람만은 체중에 비해 가장 무거운 뇌를 가졌다느니 불과 1.4kg 무게의 뇌인데도 브리태니커 10만권 분량의 정보 처리 능력을 가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개의 회로를 접속시킬 수 있다느니 하는 얘기로 시작되는 그 닳고 닳아 때가 반질반질한 상식선상의 흔해빠진 얘기 말이다.

자그마치 1천억 개의 뇌세포를 가진 인간의 뇌는 인간의 몸 전체의 총사령관실이자 명령실, 통제실, 주조정실, 조타실이기도 하다느니, 그 오른쪽 뇌가 어떻다느니, 그 대뇌가 어떻고 소뇌가 어떠하며 뇌세포의 저장 통로는 바둑판 모양, 격자무늬로 되어 있다느니 호모 사피엔스(=사회적 동물), 호모 로켄스(=언어적 동물),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동물) 따위 말들도 모두 대뇌 기능 때문에 생긴 말이라느니….

이런 얘기쯤이 어떨까. 쌍뇌아와 무뇌아 얘기 말이다. 선천적인 무뇌아에 대해서는 가끔 들어온 얘기다. 그런데 뇌가 두 개나 달린 쌍뇌아는 무엇이란 말인가. 1996년 10월 12일자 중국의 신화통신은 쌍뇌아에 대해 보도했다. 중국의 랴오닝솅에서 두 개의 뇌가 달린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두 개의 뇌가 교대로 일을 하는 바람에 잠을 거의 자지 않는데도 그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창조주 창조신에게 묻고 싶다. 무뇌아와 쌍뇌아는 당신의 실수인가 미필적 고의인가. 당초부터 정해진 설계에 의한 고의적인 작품인가 아니면 아차, 하는 그 눈부신 실수 끝에 열린 돌연변이 작품이란 말인가. 만약에 착각과 실수가 아닌 고의요 작위라면 어떻겠는가. 무뇌아는 물론이고 쌍뇌아가 아니라 3뇌아 4뇌아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뇌의 죽음, 뇌사만 해도 그렇다. 엄청나게 커다란 의문점을 필자는 지울 수가 없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왜 무슨 이유로 심장이 멈추는 심장사가 되면 뇌는 즉시 심장 뒤를 따라 죽는데 반해 뇌가 먼저 죽는 뇌사가 왔을 때는 왜 무엇 때문에 심장은 즉시 뇌를 따라 죽지 않는 것인가. 그게 정반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심장이 죽을 경우 뇌는 즉시 따라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대로 뇌가 죽으면 심장은 당연히 즉각 따라 죽어야 할 것이 아닌가. 왜 뇌는 심장에게 "내가 죽거든 너도 즉시 따라 죽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이며, 설혹 그런 명령이 없다 하더라도 심장은 왜 즉시 뇌를 따라 죽지 않는단 말인가. 뇌는 그런 명령을 할 줄 모르는 것인가, 할 줄 알면서도 그런 명령을 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심장이 그런 뇌의 명령을 듣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그 어떤 경우가 됐든 심장사가 뇌사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창조주 당신이 애초에 그렇게 설계한 것인가? 그런 질서를 만들어놓은 것인가? 왜 극심한 광기에 물들어 새까맣게 죽은 뇌를 가진 사람은, 된통 미쳐 흑수병의 깜부기처럼 새까맣게 썩어버린 뇌를 가진 불쌍한 인간들이 다만 멀쩡한 심장만을 쿵쾅거리며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게 만드는 것인가. 2분의 1 또는 3분의 2의 뇌사자를 만들어 거리를 떠돌게 하면서도 창조주 당신의 마음은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또 이런 얘기는 어떤가. 아름다운 뇌 얘기다. 뇌는 아름답다. 뇌 속에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구름다리처럼 무지개다리처럼 뇌 속에 뇌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뇌와 연수사이의 뇌로 소뇌에 이어져 있는 뇌다리, 바로 그 뇌다리에 많은 뇌신경의 핵이 있고 중요한 지각 신경도 바로 그 뇌다리를 통해 건너다닌다고 하지 않던가?

뇌는 아름답다. 뇌 속에 활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 반구의 안쪽과 간뇌에 속해 있는 신경 섬유로 그 모양이 만곡을 이루고 있는 곳이 활을 닳았다고 하지 않는가. 뇌 무지개, 후각을 지배하는 뇌 무지개, 무지개다.

뇌는 아름답다. 뇌 속에 반짝이는 뇌 모래가 있기 때문이다. 뇌 속엔 솔방울 모양의 송과체라는 게 있다. 그 송과체 부근에는 작은 모래 모양의 단단한 알맹이가 있다. 그것이 바로 반짝이는 뇌 모래, 뇌사다. 그러나 아아 슬프다. 그 반짝이는 뇌 모래는 뇌속의 석회가 가라앉아 붙어 생기는 것으로 주로 노인에게 많은 퇴화현상이라 하지 않던가.

뇌는 아름답다. 뇌 속에는 뇌 신경 세포가 움직일 때 일어나는 미량의 전류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작은 전류의 흐름을 따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숱한 작은 전구를 꿰어 달면 그 숱한 작은 전구마다 반짝이는 불들이 켜질 수도 있을 것이다.

뇌는 아름답다. 뇌 속엔 하늘이 다 있기 때문이다. 정수리 그것이 바로 뇌 하늘, 뇌천이 아닌가.

그러나 뇌바람만은 불면 안 된다. 불어치면 안 된다. 머리 아프고 어지러운 신경병인 뇌풍이 아니라 해도 그렇다. 머릿속에서 쌩하니 뇌풍, 뇌바람이 불면 무엇보다도 먼저 뇌다리, 구름다리가 흔들리고 뇌 무지개, 뇌 활이 찌그러지기 쉬운데다가 반짝이는 뇌 모래가 흩날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 전류를 따라 줄줄이 켜진 숱한 작은 전구의 반짝이는 불빛마저 꺼뜨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가. <곤충기>를 써 유명한 파브르는 '일하는 것만이 살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것은 '죽고 있는 증거'란 말인가.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는 '작곡가가 작곡을 못하면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 그럼 시를 못 쓰는 시인도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도 건축을 못하는 건축사도 모두 다 죽어 마땅하다는 그 말인가. 드뷔시의 귀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정말 그런가?" 소곤소곤 다시 한 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일 못하는 사람은 꼭 죽어 마땅하고 죽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일이란 그만큼 중요하고 특히 전문가의 일이란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사람 자격'으로서의 용도가 폐기된 폐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마치 용도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물건을 폐기처분하지 않을 수 없듯이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 쓸 데가 없어진 인간은 그 존재가치 자체가 희미해진다는 소리일지 모른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을 대면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독일 청년들을 대놓고 명언중 명언을 날렸다. "내가 청년 제군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세 마디 말이다. 일하라! 더욱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 이 명언 중 '청년 제군에게'를 '노인 제위에게'로 바꾼다면 어떨까. 그런다 해도 전혀 변색되거나 달라지고 망가질 명언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귓속까지 파고들다 못해 폐부까지 파고드는 가장 실감나고 절실한 명언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야 모두들 어디서 무슨일을 어떻게 하든 일들은 하게 되고 하고들 있겠지만 노인들이야 청년들처럼 그렇지가 못하지 않은가. 노인들 누구나가 일에 파묻히든 매달리든 시달리든 무엇인가 일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스마르크의 명언 '일하라! 더욱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에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명언을 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격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창 일하는 도중이라면 어떻게 죽은들 좋다." 일에 열중하고 몰입해 있다가 팍 쓰러져 죽는다면 어떻게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고종명을 오복의 하나로 쳐왔다지만 살 만큼 살다가 일 속에 파묻히고 몰입한 채 그대로 죽느니만은 단연코 못할 것이다. 그 일이 보람차고 창조적인 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80 현역이니 90 현역이니 하는 말처럼 근사하고 부러운 말은 드물 것이다. 물론 80이니 90이니 하는 숫자 자체가 부러운 건 아니다. 80+현역, 90+현역으로 나이에 '현역'이 붙어야만 그런 숫자는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령에도 은퇴하지 않고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 말이다. 노련이니 노숙 또는 노대가라는 어휘 또한 그런 고령의 현역들을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성경에선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불교에서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꼭 '먹지 말라' 반드시 '먹지 않는다'는 경계와 충고의 뜻만은 아닐 것이다. '농부가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백일 동안의 양식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듯이 일을 안 하고 놀고 먹으면 그만큼 얻는 것이 없고 대가가 없고 보수가 없어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하는 즐거움과 일하는 복락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그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손해라는 뜻일 것이다.

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층생첩출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 겹치고 자꾸만 쌓일수록 그 인생은 즐겁지 않을 수 없고, 눈 앞에 할 일이 태산 같을수록 그 인생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 즐거움은 단순한 즐거움, 이미 예견되고 정해진 정도의 그런 즐거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일을 후회 없이 여한 없이 유감 없이 원만하고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즐거움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그 태산 같은 일, 산더미처럼 쌓인 일, 하고자 하고 바라는 층생첩출의 모든 일을 하나도 빠뜨리거나 생략하지 않고 마음껏 몸껏 모조리 깡그리 유감없이 완벽하게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선가 '일 다 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는 속담까지 있지 않은가.

알콜 중독, 마약 중독, 납 중독, 시멘트 중독, 돈 중독, 사랑 중독…. 그 많은 중독 중에 가장 신선하고 깨끗하고 도도한 중독이 있다면 그게 무슨 중독일까. 단연 일 중독이 아닐까. 설령 일 중독의 독 바이러스가 야금야금 녹색 목숨 이파리를 갉아먹는다 해도, 또는 일 중독으로 인한 일의 독 가루가 육신의 밑바닥에 한 겹 두 겹 침잠한 뒤 그것이 서서히 차올라옴으로써 마침내는 천근 납덩어리로 굳어져 사람의 목숨을 짓눌러 압사를 시키거나 돌연사를 일으키고 만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가. 또한 벌레, 지상을 기어 다니는 모든 벌레 중에 일 벌레라는 벌레처럼 징그럽지 않고 신선하고 깨끗하고 도도한 벌레는 없을 것이다. 일이란 즐겁고도 행복하다. 일이 없으면 대가가 없고 보수가 없고 수입이 없고 그리고 심심하고 따분한 정도로만 불행은 머물러 주지 않는다. 그냥 비육지탄, 고이 앉아 허벅지에 찌는 살만 한탄하거나 시간 죽이기, 소일거리, 심심풀이에나 마음을 두고 있는 정도라면야 무엇이 문제랴.

그 심심하고 따분한 한가로움이 지독한 불행을 불러와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것이야말로 문제다. 자기 일에 바쁜 사람은 나쁜 짓을 구상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일이 없이 한가하고 편안한 상태, 즉 사무한신과 무사안일에 빠져 있으면 자연히 남의 일에나 관심을 갖게 되고 남을 해치는 등 나쁜 짓을 구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유명한 말이 <대학>에 나오는 '소인한거위불선'이다. 소인이 한가하게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연안은 짐독'이라는 말이다. 연안이란 시골 초가지붕 처마 밑의 제비처럼 마음이 한가하고 편안함이고 짐독이란 짐새라는 새가 지닌 독을 가리킨다. 그 무서운 독조인 짐새의 털을 술에 담가 마시면 죽는 것처럼 일을 안 하고 편안하게 헛되이 놀고 즐기는 것은 마치 독약처럼 자신을 해치기 쉽다는 뜻이다.

진통제 하나 없는 아픔, 도무지 참기 어려운 고통이 실직의 고통 실업의 고통이다. 미대난도(尾大難掉)니 미대부도(尾大不掉)라는 말이 있다. 꼬리가 커서 잡고 흔들기가 어렵거나 잡고 흔들 수가 없다는 뜻이다. 즉 일의 끝이 크게 벌어져 처리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가리킨다.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의 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커져 잡고 흔들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면 오죽 좋으랴. 머리카락 끝까지 일에 푹 파묻힌 채 일손이 부족해 쩔쩔매는 행복감을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을 것인가.

일을 하되 그 일 그대로 정당해야 일이다. 사기사(事其事)라 했다. 일을 비뚜로 하고 왜곡되게 해서는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 '먹는 떡에도 살을 박으라 한다'는 속담처럼 이왕이면 잘해야 하고 올바로 해야 한다. 속된 말로 '끝내 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일에 익숙하기 못한 생수, 생무지를 하루 바삐 능숙하고 능수능란하게 만들고 판설지 않게 판수익히는 일이야말로 시급하다. 전체의 사정에 익숙하게 되는 것이 판수익는 것이고 판수익히는 것이다. 즉 사물의 일부분만을 보는 눈이 아닌 전체와 대강을 볼 줄 아는 눈으로 하루 바삐 개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섯눈을 뜨는 것이다. 코끼리 전체를 입체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이다.

둘째는 '떡국이 농간을 하는'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재질도 부족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다만 한 가지 일에 오랜 세월 종사하다 보니까 그런대로 일을 썩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다. 즉 나태와 타성 덩어리이긴 하지만 한 가지 일에 대한 오랜 경험에 의해 그런대로 일이 손에 발에 머리에 달라붙어 익숙해진 사람 말이다.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짓는다고 했는데 그런 서당 개가 3년도 아닌 6년, 9년, 12년, 오랜 세월 계속 짓는다면 꽤는 명작 풍월을 지을 법도 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피해야 할 일은 이른바 시근종태라는 고질병이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일을 잘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작태 말이다. 속된 말로 시작만 해놓고 '끝내주지를 못하는 짓'이다.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말아버리는 짓 말이다.



무식보다는 유식, 지식, 앎을 찬양하는 말이, 명언이, 격언이, 속담이 단연 많은 것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무엇이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듯이 무식의 無보다는 유식의 有가 나을 터이니까. 무식 찬양 론論, 설說, 설舌, 성聲부터 보면 그 예가 몇 안 된다. '모르는 게 약이다', '식자우환이다'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을 사게 된다. '글을 아는 것이 우환의 시작이다'… 소동파. '지식-이중인격자'…카뮈. '지식 없는 곳에는 죄가 없다'…독일 속담. '지식이 과분하면 사람이 늙지만 돈이 과분하면 젊어진다', 지식은 최로제, 돈은 최소제…유태인 속담. 정도다. 지식 찬양론, 說, 聲이야말로 분분하게 많고도 화려하다. '배워야 산다'는 말부터가 인간에게 잔뜩 겁을 뒤집어씌워 주기에 충분하다. 배우지 못하면 꼼짝 없이 죽는다는 말이 아닌가. 설마 죽기까지야 할까마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만 해도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식=힘'이라 했지만, 같은 영국의 저술가 새뮤얼 존슨은 '지식이란 힘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보았고 인정했다. 즉 '지식 힘'이고 '지식>힘'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부귀보다도 낫다'…프랑스 속담. '지식은 황금을 파내는 것과 같다'…러스킨. '돈을 下, 힘을 中, 지식을 上으로 삼을 것'…플라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아한 것은 지식뿐이다'…에머슨. '지식은 자유의 원천이다'…투르게네프. '삶의 지식은 삶보다도 소중하다'…도스토예프스키. '지자불혹'…<논어>. 무식을 빙자한 지식 찬양의 소리 또한 드높다. '무식이란 모든 재난의 어머니다'…라블레. '무학은 악의 어머니다'…몽테뉴. '무식은 신의 저주이며 지식은 하늘에 이르는 날개다'…셰익스피어.

배운 것이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모독하는 가장 심한 말은 무엇일까. '몰자비', '글자 없는 비석'이라는 뜻의 눈 뜬 장님은 아무것도 아니다. '행시주육'이라는 말이 있다. 무식한 사람은 '걸어다니는 송장이요 뛰어다니는 고깃덩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 무식한 사람을 모독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하긴 '마우금거'라는 말도 있긴 있다. 사람의 형상이라 사람의 옷만 걸쳤을 뿐 무식하기로 말하면 마치 마소(말과 소)와 같다는 뜻이다. 낫 놓고 ㄱ(기역)자도 모르는 눈뜬 장님, 목불실적, 불식일정자의 판무식, 전무식쟁이와 박학다식한 사람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식한 사람을 모독하는 말에 '일룡일저'라는 것도 있다. '하나의 용 하나의 돼지', '하나의 용이 되고 하나의 돼지가 된다'는 뜻이다. 즉 학문이 있고 없음으로 해서, 앎이 있고 없음으로 해서 뚜렷한 현우의 차이가 생긴다는 말이다. '유지무지교삼천리'라는 말도 있다. 지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 거리가 3천 리나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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