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김정수 지음 | 소울메이트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김정수 지음
소울메이트/ 2010년 10월 / 387쪽 / 14,000원
PART 1.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불균형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물질은 풍부해졌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정치 발전이라는 난제도 여전하지만 일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사회와 구성원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정보통신의 기술과 인터넷의 눈부신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얻기 쉬워졌으며, 많은 정보로 무장한 똑똑한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좋은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재미는 물론 훨씬 자극적이고 대담해진 대중문화는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명 우리 삶에 편안함과 즐거움이라는 일정한 축복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삶에서 행복과 만족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우리가 행복하고 성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음에도 우리들의 내면에 흐르는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편함은 우리가 이룬 발전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 시대의 특성은 무엇이고, 우리는 시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30대의 문제들 :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30대는 현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그것을 지속함으로써 안정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공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일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과는 별개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대인관계와 그에 따른 감정의 처리는 30대 현실의 또 다른 주요 축이 된다. 대인관계 중에서도 이성관계와 결혼은 매우 사적이지만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30대는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30대 후반이 되면 중년기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자신의 일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40대의 문제들 : 30대에 가졌던 현실의 무게는 40대가 되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이로서 사랑과 기쁨을 주었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부딪히기 시작하고 자녀의 양육비용도 현저히 증가한다. 또한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더 강해진다. 40대는 사회에서나 집안에서 중심이 되어야하고, 또한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로 삶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이다. 직장인들은 40대가 되면 치열한 경쟁에서 어느 정도 승패가 결정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성취감이나 무력감 중 어떤 감정을 선택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녀양육에 전념해온 사람들은 자녀의 대학입시 성공 여부에 따라 자신의 30대와 40대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40대 중후반이 되면 현실의 문제에서 자신의 문제로 관심과 고민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안정된 자리를 잡고 경제적 여유를 위해 별 생각 없이 매진해왔던 자신과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일을 할 것인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집단의 가치를 따를 것인가? 혹은 자신만의 가치를 따를 것인가? 미완성 상태로 나이만 먹어가는 자신을 좀 더 완성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과거 10대에 경험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고 소위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문제는 문제의 원인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생각과 판단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생각이고, 좋은 일이 있으면 기분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문제를 그렇게 여기고 나름의 해결책을 밖에서 찾으면서 잠깐 기뻐했다가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정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혹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진짜의 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PART 2.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나라는 생각은 무엇인가?내 안의 또 다른 나 :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하고는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나의 일상은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주체이며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느낌의 주체이다. 또한 나는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의 주인이자 책임자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은 채로 습관처럼 하루를 보낸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잊어버린다. 그래서 가끔 나를 살펴보면 문득 내가 낯설고 처음 보는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문득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혹시 나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다중인격장애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나 또 다른 묵시적인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분명히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어떤 중요한 말이나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혹시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생각과 느낌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꾸 떠오를 때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내 안의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아의 욕구, 나는 소망한다!욕구는 생존을 위한 자아의 에너지 : 어린 시절 자아는 어머니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함은 그 자체로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을 주지만 어쩔 수 없는 자아의 운명이다. 초기에 자아의 목표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즉 생존이며 둘째는 만족하는 것이다. 생존과 만족을 위해서 자아는 자아 중심적이며 또한 맹목적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욕구다. 젖을 먹고 싶어하는 것, 자고 싶어하는 것, 불편하면 우는 것,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하는 것은 욕구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욕구는 에너지며 또한 자아의 자산이다.
욕구는 마음속에 있는 에너지가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며, 마음의 만족을 추구한다. 일단 욕구가 만족되면 마음은 편안해지고 욕구는 줄어든다. 사람에 따라서는 욕구가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갑작스럽고 강력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충동'이라고 한다. 욕구는 흔히 도덕이나 양심에 의해 제어되고 조절된다. 욕구는 그것이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까지 당사자나 다른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주는 영향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욕구를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끼곤 한다. 특히 욕구를 제어하고 조절하려는 도덕이나 양심이 강한 사람들은 욕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구조와 욕구 : 마음이 어떤 모양일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한 사람은 프로이트Sigmunt Freud다. 프로이트는 마음을 다층적인 구조로 이해했으며 그 속에 여러 주체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마음에서 욕구를 느끼는 주체를 이드id라고 했다. 이드는 라틴어로 '미지의 힘인 그것'이라는 뜻으로 본능적인 미음을 말하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드는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이드의 대부분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욕구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마음도 있다. 도덕, 윤리, 양심 등이 그 대표선수로 본능적 욕구가 튀어나오는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데, 프로이트는 나를 위해서 지켜본다는 의미로 이것을 초자아Superego라고 했다.
참고로 프로이트의 자아와 이 책에서의 자아의 개념은 다소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현실 검증을 하고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마음의 한 주체를 자아라고 했고, 이 책에서 사용하는 자아는 마음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이드와 초자아를 포함하는 개인으로서 스스로를 의식하는 주체의 의미로 자아이므로 차이가 있다. 이드는 쾌락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자아는 현실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쾌락과 즐거움을 따르려는 욕구는 강력하므로 누구나 그것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기질적으로 욕구가 강하거나 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평생 스스로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술, 도박, 게임, 마약 등은 쾌락과 충동의 세계로 안내하는 대표적인 물질과 행동들이다.
나에 대한 욕구, 자기보전의 욕구 : 자아가 성장하면서 함께 발달하는 욕구는 대상에 대한 욕구를 느끼다가 때가 되면 욕구의 주인인 자신을 향하게 된다. 자기애는 욕구라는 에너지가 밖을 향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향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자기애는 생명과 존엄성을 가진 한 사람에게 매우 당연한 욕구이며 권리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스스로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고 배움과 발전의 동력을 제공한다. 자기애의 욕구가 침해당하거나 좌절당했을 때 경험하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엄청난 것이다. 그 이유는 개인의 존재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아는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고 상처를 받게 된다. 자아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욕구는 성취나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표현되곤 한다. 성취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성공과 성취의 에너지가 되지만 지나치면 일에 대한 강박증, 일중독, 타인의 일에 대한 무시나 착취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애가 강하면 자아의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것에 골몰하므로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못한다. 지나친 자기애는 내면의 진정한 자신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스스로를 자아의 욕구 안에 가둬버린다. 또한 자아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관계를 힘들게 함으로 자기애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아의 성장, 나는 성장한다!분리와 '나'라는 개념 : 아이는 어머니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개념이 생기면서 '나'의 개념을 갖기 시작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다. 분리는 자아를 만들고 자아는 자신만의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즉 생각이 생기는 것이다. 분리된 존재로서 나의 생각이 생기면서 험난한 '나의 여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곧바로 진정한 '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 분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모든 분리는 통합의 반대 과정이다. 어머니와의 분리는 대자연과의 분리일 수 있고 통합에 역행하는 단절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의 분리 이후 나름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절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다. 어쩌면 삶이란 통합의 상태에서 적절하게 분리되었다가 이후 다시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자아의 운명인 생각 : 생각은 자아의 본연의 활동이다. 자아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생각은 자아의 운명이며 또한 자아의 분신이다. 생각 때문에 자아는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생각은 자아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생각은 항상 스스로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면서 압박하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훨씬 자극이 많은 환경은 더 많은 생각을 할 것을 은연중에 요구하고, 자아는 그 요구에 순순히 응하면서 계속 생각에 생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많은 생각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아의 성장과 자기의 자각 : 충분히 성장하고 건강한 자아는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자아의 생각과 판단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며, 자아가 추구하는 가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자아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무렵이 되면 마음속으로는 왠지 모르는 답답함을 느끼고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기도 한다.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나 좌절,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별이나 상실은 한계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한계를 느끼는 시기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대개 40대 전후가 된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아의 지배자들
나는 내 정신의 온전한 주인일까? : 정신의 실체는 매우 복잡하고 설명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의식적으로 나를 통제하는 것은 자아이며, 자아는 내면의 다양한 힘에 의해 지배된다. 자아를 지배하는 힘은 개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한 사람이라도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성적이고 공격적인 에너지가 우세한 반면 중년 이후가 되면 권력이나 힘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며 내면의 근원적인 욕구가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즉 욕구가 향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또한 마음은 한가지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에너지와 힘이 합종연횡合從連橫하며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 내고 행동을 만든다.
다양한 자아의 지배자들이 존재한다 : 마음의 진짜 주인은 의식과 의지가 아니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본능적 욕구와 충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프로이트다. 본능의 주된 부분은 성적 욕구와 공격적 욕구이며, 본능은 무의식에 존재하고 따라서 우리를 지배한다고 했다. 무의식적 본능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도 "나의 성욕은 의지를 넘어선다"고 해 욕망의 힘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자아의 지배자로서 내적 욕구와 충동, 그리고 외부 대상에 대한 욕구를 들 수 있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게 되는 정신적 상처, 즉 트라우마도 자아의 강력한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자아가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아를 완전히 왜곡시켜 자신과 세상을 보는 시선을 완전히 비틀어버리곤 한다. 그 결과 정체성의 혼란, 기억상실, 감정의 기복, 해리현상 등 병적 증상이 생기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경계성 인격장애, 다중인격장애 등은 정신적 외상과 관계가 있는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임상을 하면서 분명히 배운 한 가지는 개인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내적 욕구가 더 중요하며, 어떤 사람에겐 대상에 대한 욕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보다 완전한 자기에 대한 열망이 클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상황이나 환경이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지배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다양성과 정신의 복잡성을 의미한다. 문제는 지배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아의 지배자들에게 자아가 완전히 지배당하고 압도당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굴복된 자아는 출구를 찾기 어렵고 성숙과 발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