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관: 인류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찬구 지음 | 지상사
인류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생명사관
이찬구 지음
지상사 / 2010년 10월 / 544쪽 / 33,000원
1편 생명사관의 원리역사ㆍ역사관, 그리고 왜곡된 역사관들
역사란 무엇인가 :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단순한 기록은 '사초(史草)'며, 그것은 '실록(實錄)' 수준의 기록이어서 분량이 방대하기 마련인데, 사초와 실록 중 후대에 알려야 할 '가치'가 있는 일들을 가려내기 위해 노력을 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학인데, 이 역사학의 검토 과정을 통과한 '알짜' 기록들이 역사책에 실리는 '역사'입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겨누는 '가치'가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달라 그 내용의 편차가 매우 커서, 역사학이 겨누는 목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나라의 가치관이 인권ㆍ평화ㆍ환경 등으로 압축되거나 보편화되어, 가치의 국제적인 표준 설정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문화가 진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보편적인 가치와 그 가치의 목표를 향하여 효율적으로 이끌어주는 학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철학'인데, 역사철학은 여러 나라의 역사학으로 하여금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바라보게 하는 눈이라는 뜻에서 '역사관(歷史觀)'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넓은 의미의 '역사관'은 '가치관'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역사철학은 필연적으로 궁극 가치 또는 궁극 원리를 탐구하는 인생관ㆍ종교관ㆍ우주관으로 발전하게 되어, 인생관을 다루는 철학, 종교관을 다루는 신학, 우주관을 다루는 과학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어떤 역사관이 올바른 역사관으로 되기 위해서는 '철학ㆍ종교ㆍ과학'을 동시에 아우르는 통합적인 인식 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습니다.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이 실패한 근본 이유 : 역사의 본질을 정신이라고 주장한 유심사관과 역사의 본질을 물질이라고 주장한 유물사관은 공교롭게도 시작된 시기와 시작된 나라가 동일하고, 완성된 시기와 완성된 나라도 동일합니다. 덧붙이면 그 두 역사관은 B.C 4세기(같은 시기)에 그리스(같은 나라)에서 시작하여, 19세기(같은 시기)에 독일 땅(같은 나라)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역사관은 무너진 시기도 동일합니다. 둘 다 20세기 후반에 무너졌습니다.
이 역사관들이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를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두 역사관들은 '우주'를 외면한 채 '지구의 역사'를 우주의 역사로 착각하였고, 둘째, 역사의 본질인 '생명'의 양면성을 외면한 채 생명을 구성하는 두 개의 요소인 '정신'과 '물질' 중 각기 정신이나 물질 '하나만'을 역사의 본질로 보았으며, 셋째, 그 역사관을 주장한 분들(헤겔과 마르크스)은 오래 전의 학자들이어서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지 못해 우주의 본질에 관해서 깊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역사관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역사관이 없거나 잘못되면, 가치관이 잘못되고,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없게 되며, 한 번밖에 없는 우리 인생이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헤겔의 유심사관(국가 제1주의)과 지구의 반 정도를 피바다 속에 몰아넣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계급 제1주의), 이 잘못된 두 개 역사관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아울러 이 두 개의 잘못된 역사관을 극복하는 제3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분들을 깨우치실 때 참고하라는 뜻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제3의 역사관'인 생명사관을 소상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3의 역사관 '생명사관'이 보는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
세계 역사의 단일화적 경향성 : 고고학과 인류학에 의하면, 약 1만 5천 년 전에는 이 지구상에 오늘날의 인류와 같은 지혜를 가진 250여만 명의 호모사피엔스들이 약 200여 명씩 떼를 지어 군락생활을 하면서 '대외적인 자기 보호'와 '대내적인 질서 유지'라고 하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 약 1만 2천여 개의 '씨족적 국가사회'가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후 이들 1만 2천여 개의 '씨족적 국가사회'들은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서로 점령하거나 통합하여 규모가 더 큰 수천 개의 '부족적 국가사회' 시대를 열었고, 그들이 다시 1천여 개의 '대(大)부족적 국가사회' 시대와 5~6백 개의 '민족적 국가사회' 시대를 거쳐서, 근세에는 2백여 개의 '대(大)민족적 국가사회' 시대로 발전해 내려왔다는 것이 고고학과 인류학의 통설입니다.
이들 200여 개의 대민족적 국가사회들은 최근세에 이르러 '세계 분단의 최소 단위'인 '자본과 공산의 양대 진영'으로 분합(分合)하면서 지구 전체를 큰 두 덩어리로 갈라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자본 진영은 '국가 제1주의'적인 유심사관으로 무장하고, 공산 진영은 '계급 지상주의'적인 유물사관으로 무장한 채 갈등과 대립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두 진영을 주도하던 강대국들이 유도탄과 핵무기 등 고성능 살상무기를 보유하면서부터 인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량 살상무기의 사용이 지구 역사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모든 나라들이 공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지구의 멸망만은 피해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어낸 것이 '국제연맹'입니다. 국제연맹이 결성된 것은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칸트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은 지 12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아 온 인류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국제적인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 멸망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국제연맹'을 구성하고 각 회원국이 자국 주권의 일부를 국제연맹에 양도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를 한 덩어리로 묶어 운영하는 '세계국가'의 방향으로 이 국제연맹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렇게 인류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칸트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제연맹을 구성하게 되었으나, 이것이 참가국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유명무실해지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파멸적인 고통과 절망을 체험해본 인류는 국제연맹보다 더 적극적인 국제기구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국제연합(UN)'입니다.
세계 역사는 이처럼 국가사회의 규모(S : Scale)를 점점 더 확대시키면서 국가사회의 숫자(N : Number)를 점점 다 감소시키는 역비례의 방향, 즉 'N = 1/S'의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장차 칸트가 주장한 대로 양대 진영이 통합되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세계국가'가 탄생할 경우에는 S가 1이 되어 N도 1이 되는 단계가 올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세계 역사의 단일화적 경향성'이라고 명명합니다.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은 자유자본주의가 추구해 온 정신이나 유물공산주의가 추구해 온 물질을 중심으로 한, 반쪽의 일방적인 역사 발전의 법칙성만을 주장하다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생명사관은 법칙성 대신에 경향성을 중시합니다. '경향성'은 '법칙'과 '변칙'을 동시에 감안하는 '유형적 가능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령, '세계 역사의 단일화적 경향성'이라는 말 속에는 오늘의 인류가 큰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경우에 '지구촌 한 마을' 시대와 하나의 '세계국가' 시대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의미가 들어있을 뿐, '지구촌 한 마을' 시대와 하나의 '세계국가'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사관은 인류가 핵무기 확산을 막는 일을 등한시하고 환경오염을 막는 일을 소홀히 할 경우, 인류는 '지구촌 한 마을' 시대와 하나의 '세계 국가' 시대를 목전에 놓고서도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고 보는, 그런 경향성이나 유형성의 역사관입니다. 인류 역사의 운명은 인류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어떤 요지부동하는 법칙이 있어 그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생명사관이 갖는 '경향성'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의 단일화적 경향성'은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과 '세계국가의 현실화적 경향성'을 자신 속에 포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 :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무제한으로 보장하던 '자유자본주의' 국가들은 개인과 기업이 지니는 능력과 여건의 차이 등으로 인해서 19세기 중반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소수의 '독점자본가'들에 의해 지배되는 소위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독점자본가와 권력자들 간에 정경유착이 심화되어 '부패 구조'마저 뿌리를 내렸으며, 그 결과 사회 전체가 극소수 부유층과 절대다수 극빈층으로 갈라져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고, 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려 경제공황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1929년에는 미국에서 경제대공황이 일어났고, 이것이 전 세계로 급속하게 확산되어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전격적으로 제한하는 각종 강력한 사회주의 통제경제 정책을 강행하여 그 위기를 극복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자유자본주의가 몰고 온 독점자본주의의 폐해를 사회주의적인 통제 방식으로 제거했던 것입니다. 루즈벨트의 그러한 정책들은 "독점재벌들의 횡포로부터 서민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강력한 통제경제 정책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 학파'의 주장과 독점재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ㆍ소비자단체ㆍ행정부 등이 힘을 모아서 대항해야 한다는 '갤브레이스'의 '대항력 이론'에 기초를 둔 정책들이었습니다. 그때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도 미국이 취한 것과 유사한 강력한 사회주의적인 입법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이 수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은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복지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독점자본가들의 지나친 이익추구 행위에 철퇴를 가한 정책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공공복지정책' 또는 '사회주의적 복지정책'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적인 통제경제정책을 폭력 수단이 아닌 정치공학적인 방법으로 강행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라는 뜻에서 '혼합경제체제'라고 합니다. '수정자본주의'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한편 일찍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부추기기 위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자유자본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해보려고 시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1918년에 제정된 1차 소련헌법과 1924년에 개정된 2차 소련헌법 아래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산의욕이 날로 저하되는 것을 지켜본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심각한 고민 끝에 1936년 3차 개정헌법을 제정할 때 농민에게 생산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해서 '반경 200m 이내의 가택 부속지', 즉 '텃밭'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용권과 수익권을 완전히 보장해준 사실이 있습니다. 스탈린은 또한 공장에서도 목표량 이상의 생산 실적을 올린 경우에는 그 초과분에 해당하는 이익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 가택 부속지에서의 면적당 산출 실적이 국가가 운영하는 '협동농장'의 산출 실적을 크게 웃도는 사태가 빚어지자, 그것이 공산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여, 이후 그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공장에서도 생산 실적이 상상 이상으로 급증하자 생산 목표량을 또다시 대폭 올려 초과달성에 따른 이익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일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놓고야 말았습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화적 경향성을 시작 단계에서 완전히 봉쇄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70년 동안 자행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냉혹한 규제들에 대해 불평불만이 계속 축적되어, 급기야 20세기말(1990년)에는 축적된 불평불만이 일시에 폭발하여 옐친이 주도하는 시민봉기가 일어났으며, 1991년에는 소련 시민들이 공산주의 깃발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또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하여 동구라파 7개 공산 국가들에서도 공산주의 깃발을 모두 끌어내리는 사태가 빚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중국에는 공산 국가들이 맞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사전에 예견하고 이를 피해가기로 결심한 탁월한 지도자, 등소평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택동이 사망한 지 3년 만인 1979년에 중국 공산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백성을 잘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후 2년 만인 1981년부터 등소평은 또 다시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본격적인 도입을 선언하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공산 진영 안에서 불고 있는 '자유화의 바람'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기후(大氣候)다."
그는 선언을 한 후 실제로 '자본주의 자유시장 제도'를 도입했고, 그때부터 중국은 급속히 변모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모든 중국인들이 언론의 자유와 복수정당 제도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현재 3,000불을 넘어선 중국 1인당 평균국민소득이 장차 4,000~5,000불을 넘어서게 되면, 그때에 가서는 중국인들 대부분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 인민들이 언론의 자유와 복수정당 제도를 요구하는 단계가 오면 지난 '3차 천안문 사태' 때 있었던 것과 같은 대량살육과 무력진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경제 역량과 문화 역량이 성장할수록 강압정치의 효율은 격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북한도 모든 공산 국가들이 걸어온 이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불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 발전을 필자는 '공산주의 사회의 자유주의화적 경향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주의화적 경향성'과 '공산주의 사회의 자유주의화적 경향성', 이 둘을 합하여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사회가 교류와 협력을 계속할 경우에는 양쪽의 단점은 지양되고 장점은 통합되어 두 체제 중 더 좋은 체제로 포개지거나 제3의 체제로 발전하게 된다"는 갤브레이드의 '수렴 이론'이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 이것은 역사의 신이, 자유자본주의 사회에게는 개인의 극단적인 자유만을 주장하지 말고 전체의 질서도 함께 중시하라고 충고하고, 공산주의 사회에게는 전체의 질서만을 주장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도 함께 중시하라고 충고하여 두 진영이 이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사관의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로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이 실패한 이유를 동시에 설명해주는 논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국가의 현실화적 경향성 : '세계 역사의 단일화적 경향성'과 '양대 진영의 동질화적 경향성'은 급기야 '세계국가의 현실화적 경향성'으로까지 발전하여 '지구촌 한 마을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암시해주면서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단계에서 인류는 지금 넘어야 할 두 개의 장애물을 눈앞에 놓고 있습니다. 첫째 장애물은, 모든 나라가 군사비를 계속 증액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전 세계의 깨어있는 언론사와 반핵단체ㆍ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모든 나라의 종교인과 지식인들을 앞세워 대규모의 민간운동기구(가칭 '세계시민연대')를 꾸려내어 이를 통해 각국의 국가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면서 국제연합의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