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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인생

지현곤 지음 | 생각의나무
달달한 인생

지현곤 지음

생각의나무 / 2010년 9월 / 250쪽 / 12,800원



1 곤두박질해도 돼, 다시 일어난다면



달에 닿은 내 작은 방


두 팔을 좌우로 펼쳐본다. 손끝에서 팔꿈치를 지나 어깨를 타고, 두 어깨를 이어 반대 팔꿈치를 타서 그쪽 손끝으로. 한 손끝에서 다른 손끝까지 일직선으로. 그 길이에서 한 손바닥 너비를 더한 만큼의 가로 폭과, 그 길이의 하나 반만큼 뻗어 있는 세로 폭의 작은 방.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나는 바위처럼 머물러 살아왔다. 온전한 자의라고도, 철저히 타의라고도 할 수 없는 내 삶의 여건은 본의 아니게 면벽 수련이나 다름없는 인생을 내게 내밀어주었다. 가끔 조카의 도움을 받아서 치과나 안과를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내 방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집 안에서 늘 지내다 보니 내 인생 기록에는 서서히 고조되는 갈등도, 커다란 클라이맥스도, 드라마틱한 결말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잠이 들고, 깨어나 TV를 보는 일상의 반복일 따름이다. 내게 주어진 여건은 변화 없는 일상을 반복하도록 종용했다. 그러니,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차고 또 지는 달을 동경할 수밖에. 야속한 달은 365일 내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방의 위치가 절묘하여 북향으로 기울어 있기에 달의 궤적과는 또한 무관하다. 그나마 온전한 북향은 아니어서 9월에서 3월까지 반 년 정도 잠깐씩이나마 달을 볼 수가 있다.

내 방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을 열면 좁다란 베란다에서 시작하여 방문틀로 솟구쳐 올라가는 달의 모습이 보인다. 지는 달을 보려면 화장실로 가야 한다. 화장실 쪽 창문을 통해 뒷집 옥상 위로 떨어지는 달을 바라보려 변기 위에 올라앉아 기다리기도 했다. 뜨는 달에서 지는 달로 갈 때까지 딱 6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출입문으로 뜨는 달을 보게 되면 '6시간 후면 화장실 창문에서 지는 달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그리로 지는 달을 보게 되면 '6시간 전에는 달이 저 앞에 있었겠구나' 한다. 그사이에도 출입문 앞쪽 저 너머로 아파트가 하나 우뚝 솟았다. 그로 인해 뜨는 달을 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화장실 창문 너머의 달은 우리 집보다 더 높은 뒷집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내 앞뒤로 세상은 그렇게 건물을 높다랗게 쌓아 올리고 있는데, 2층 내 방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마치 나처럼. 보기 어려울수록 그리움은 더해간다. 자주 만나는 친구를 대하는 마음보다 자주 볼 수 없을 때 그리움이 더하는 것과 같아. 하물며 자주 만난 적조차 없는 달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내 집이 남향이어서 매일같이 달을 만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저 달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고 동경할까. 이스터 섬에 들어앉아 변함없는 세월을 보내는 모아이 석상처럼 살아가는 나에게는, 뜨고 짐을, 그리고 차고 기움을 거듭하는 저 달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습이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내 마음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달처럼 높이 솟아 훨훨 날아갈 수 있다면,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나를 위한 조그만 방주

나의 큰누나는 마산 소재의 경남대학교 정문 옆에 조그마한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빨간 간판의 다모아 문구점.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들이 이르기를 마산 시내에서, 아니 어쩌면 전국에서 제일 작은 문구점일 거라고 하더란다. 그 문구점의 옆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면 작은 문이 하나 나온다. 그 문 안쪽으로는 곧장 계단이 있어 2층으로 이어지는데, 옛날에 지은 주택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사람 어깨 폭 정도의 좁은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와 2층에 서면 정면에 현관문이 보인다. 그 현관문에서 등을 돌려보면 딱 그 계단 폭만 한, 그러니까 어른 어깨 너비만 한 베란다가 나 있다. 그 베란다의 끝에 있는 작은 출입문을 열면 그곳에 내가 있다. 하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내 몸이 세상 구경을 하려면, 이 좁은 폭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휠체어가 도저히 올라올 수가 없는 길이다. 한때 복지기관의 도움과 정부의 보장구 후원에 힘입어 전동 휠체어를 장만해두었다. 하지만 커다란 앞바퀴를 가진 전동 휠체어가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란 무리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 움직이기 위한 도구로 휠체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로 친척집에 맡겨둔 실정이다. 어떤 분들은 휠체어도 없다는데 나는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가끔 바깥으로 나갈 때도 있다. 최근에는 눈이 나빠져서 안과에도 가보았고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나가고 싶어서 움직이는 쪽이 아니라 꼭 가야만 하기 때문에 외출하는 셈이다. 이때에는 내 조카아이가 나를 안아서 계단을 내려가 휠체어로 데려다주고 다시 방으로 안아주어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내가 오랫동안 좁은 방에서만 지내어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조카의 품에 안겨 계단을 오르내리다 문득 우울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 조카가 어렸을 때에는 내가 삼촌으로서 똥기저귀도 갈아주고 했는데, 지금은 어른이 되어서 나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것이다.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적적해왔다. 그 쓸쓸함 탓인지 어느 날은 문득 방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기도 했다. 이 정도 지났으면 나도 내 스스로 움직여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제대로 쓰지 못할지언정 전동 휠체어는 의미 있는 물건이다. 아주 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 어디로든 움직여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카툰을 그리면서 간간이 작품 한구석에 조그맣게 나를 그려넣을 때면, 늘 이 전동 휠체어에 앉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내게 있어 전동 휠체어라는 이 도구는 커다란 세상 속에 놓인 나를 위한 작은 방주가 아닐까.

기술은 과연 인간을 자유롭게 할까?

세그웨이를 아시는지. 아이폰 홍보를 할 때 빌 게이츠가 타고 나오는 걸 보곤 했다.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터넷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세그웨이의 개발자 딘 카멘은 세그웨이 이전에 전동 휠체어를 먼저 개발했다고 한다. 아이봇이라는 이 휠체어는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도 생각지 못한 기능들을 갖추었다. 일단, 높낮이 기능이 있어 장애인과 일반인의 눈높이를 맞추어 줄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바퀴가 회전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며, 이때 세그웨이에 활용된 자이로 센서가 휠체어에 탄 장애인의 균형을 잡아 쏠리거나 뒤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 그리고 광폭 타이어로 되어 있어 보통 휠체어나 전동 휠체어로는 갈 수 없는 해변이나 모래밭에도 들어갈 수 있다. 이걸 타본 하지마비 장애인이 말하기를 마치 새로운 다리를 얻은 것 같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장비인가. 장애인이 계단을 오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건 이미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로 넘어오면 문제가 된다. 바로 돈이다. 미화로 26,000달러, 우리 돈으로 4,500만 원이 넘는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하게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 물건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나. 4,500만 원은 일반인들도 몇 년을 일해야만 벌어 모을 수 있는 돈이다. 그 휠체어가 필요한 장애인이 그 정도를 버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니, 제집 하나 갖기도 어려운 판국에 영원히 벌지 못할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획기적이라도 현실적으로 그 휠체어를 자신의 수족으로 활용할 인원은 많지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몇몇 부유층만 활용하다가 2009년 3월로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해야 할까. 요즘 광고를 보면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는 자유도 '살 수 없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이상으로 달려가기 어려운 높다란 현실의 담벼락 앞에서, 때로 이렇게 씁쓸함에 젖어든다.

2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들어



온기를 불어넣어줄 그 누군가가 있다면


카툰 작가로서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하니 사람들과의 접촉이 좀 더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매스컴을 통한 간접 접촉이었고 개인적인 만남의 경우는 메일이나 인터넷 활동 등을 통한 온라인 관계가 태반이다. 주고받는 메일의 내용도 다양하다. 내 작품이 좋다거나, 내게 용기를 주고 싶다거나, 나를 본받고 싶다는 등…. 한 번은 어떤 분이 작가라고 밝히면서 자신은 달만 보면 재수가 없는 콤플렉스를 지녔는데 그런 달을 좋게 생각하는 내가 대단하다며 뜬금없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메일이 가끔 오는 것도 내가 어느 정도 알려진 작년까지의 일이다. 깊은 관계가 되려면 오프라인에서 종종 얼굴도 보고 여타의 활동도 같이 해야 할 것이 아니겠나. 죽고 못사는 사이가 아닌 이상에야, 안 보면 멀어지고 뜸해지게 마련이다. 물론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있고 애써주시는 분들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외로움이 없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도 군중 속의 소외라고 외로움을 느낀다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배부른 소리인지는 몰라도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개인적인 측면도 있고, 이성적인 측면도 있다. 이 사회에 한 인격으로 태어났으니 결혼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나름 완벽주의자인 탓에, 무작정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성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없을 수 없음에도 누구와 함께한다는 걸 마음속으로만 품을 뿐이다.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거나 가끔 속이 답답하거나 할 적에 곁에서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줄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한다. 그 누군가의 손길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았으면, 혹 이 책이 나온 뒤에 책을 보고 마음을 움직여줄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하고 작게, 수줍게 상상해보고, 혼자 실소해본다.

인터넷을 하면서

인터넷 덕분에 방안에서 세상 소식을 접하기가 참 수월해졌다. 물론 옛날 텔레비전이 있을 때도 편리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서로 소통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요즘에는 눈이 아파서 오래 붙잡고 있기가 좀 어렵기는 해도 내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만화 그리기와 더불어 인터넷 웹서핑이다.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받아온다거나 다른 사람이 올린 풍경 사진 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터넷에서 세상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좋지만 익명성에 기반한 안 좋은 일도 있다. 인터넷 악플에 시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이 험해서 그런지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젊은이들도 있다는데 익명성을 기반한 공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나의 실체만 드러나지 않는다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란 용기라기보다 폭력이요, 야만이 아닐까. 옛날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 했다는데, 요즘처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소리를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천천히 올라가는 길

오래전에 마산시에 불쑥 전화가 온 날이 있었다.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려지고 난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런 일로 연락이 올 일도 없었으리라. "지현곤 작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저희 단체에서 강연을 하는데 강연을 좀 서주시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이런 통화였다. 아마도 약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에 대해 들었다면 내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고, 내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까 아마도 생각하기를 '장애가 있더라도 대외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사람이다'쯤으로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때 혼잣말로야 나도 그렇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면서 전화로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끊었다. 번번이 욕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런 것도 그런 내 욕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내 그림이나 상황이 더 나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작품이 잘 팔리지 않을 때에도 그러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팔려는 의도를 가졌는데 막상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팔고 싶다 혹은 팔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가 의도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고통을 받는 건 그리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탐욕을 털어내려고 더더욱 노력하고 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다. 옥상으로 가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각 층마다 왜 계단이 여러 단으로 되어 있겠는가. 한 번에 다 못 올라가니 밟고 올라가라고 층층이 있는 게 아닌가. 한 단계를 지나 그 다음 단계로 딛고 올라가는 것이 순리이다.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내 자신을 추스르고, 자유롭지 않음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 내 스스로를 달래어본다. 그렇게 한 단씩 한 단씩 천천히 딛고 올라가보는 거다. 옥상이 높다고 한들 어차피 끝은 있게 마련이니까.

3 '우리'라는 이름의 선물



다시 꾸고 싶은 꿈


언젠가의 꿈. 조카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게 고쳐달라고 가져온 물건이 있었다. 분명히 고칠 수 있노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나는 그 물건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예상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되느냐면서 그걸 붙잡고 쩔쩔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내게서 그 물건을 선선히 건네어 받더니 조금 만지작거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다시 내밀었다. 받은 물건은 완전히 고쳐져 있었다. 나는 원래 예지몽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꿈이란 정말로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에 대한 느낌을 두뇌가 재해석하여 재구성한 일련의 영상이다. 힘든 일이 있는 날이면 꿈속에서 어떤 물건이나 상황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끙끙거리는 꿈을 곧잘 꾸곤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갖추어졌다. 어떤 때에는 분명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기도 했다. 그날, 그 꿈속에서 나타난 그 사람에게서 나는 예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그 사람, 그 누군가를 향해서 꿈속에서 한없이 펑펑 울었다. 서러움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있는 감정은 꿈속의 내 안에서 원 없는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존재와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의 그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항상 기다려왔나 보다. 내가 힘들어하는 순간에, 어느 커다란 존재가 나타나 나를 지탱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기를. 한없이 울다 깨었을 때는 새벽이 아직 어둠에 잠겨 있을 시간이었다. 눈가를 더듬어보니 실제로 운 건 아니었다. 한 번 잠들면 깨는 일이 없이 자는 내가 그날은 새벽에 깨어나 한참을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내 자신을 호소하거나 울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런 꿈속의 대상 앞에서는 마음껏 서럽게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 상대를 향해서 한없이 펑펑 울어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지만 그 꿈은 쉽사리 다시 꾸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꾸어보고 싶은 꿈.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만나 기대어 보고픈 사람.



마음은 표현해야 전해진다

오영이라는 카툰 작가가 있다. 내 인터뷰가 신문에 난 이후로 연락을 주었는데, 그분도 고향이 울산이라 같은 경남권의 동향이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낀 모양이다. 같이 카툰을 그리는 분들 중에 직접 연락이 닿는 한 분으로서 이분은 내가 게을러 잊을 만하면 연락을 준다. 뜸할 때면 한 번씩 연락이 오가고, 잊을 만하면 소식이 전해지는 관계이다 보니 몇 달 만에 연락이 되기도 한다. 언제는 내가 인터넷 검색 순위 1위가 되었을 적에 축하한다고, 부럽다며 메일을 주기도 하였다. 내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어도 축하한다는 연락을 당장에 전해준다.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이루어진 전시회는 물론이고 인사동 우림 갤러리에서 있었던 전시회에도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주었다. 내가 가지 못하는 그 전시회의 광경을 나는 그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잘해주는데도, 어리석은 나는 친화력이 부족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 마음에 조바심이 많아 그러한 듯하다. 40년간 홀로 고립되어 지내다보니 한두 해만에 사람을 만나 처음부터 껴안고 술 한잔하자, 반갑다 친구야,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대범하지는 못하다. 내 나름대로 성격은 섬세하다고 느끼는데 마음에 둔 뜻을 드러내는 대외적 표현력은 많이 부진하다. 이걸 경상도 사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 얼마간 연락을 할 생각도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났더니 그 분이 지난 설날에 약간 농 섞인 말투로 섭섭한 뜻을 담은 메일을 내게 보내었다. 본인은 나를 각별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그분을 덤덤하게 보시나보다, 하는 이야기에 그간 연락한다는 걸 쑥스러워 미루고 미룬 내 자신이 못났구나 싶었다. 마음은 표현해야 전해진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좀 더 사귐성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가끔 이분에게 장난 섞인 메일을 보내어 보아야 겠다. 그러면 다른 것은 몰라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그분에 대한 답례는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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