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버틀란트 러셀 지음 | 비아북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버틀란트 러셀 지음
비아북 / 2010년 8월 / 246쪽 / 13,500원
1장 성장의 원칙, 충동의 욕구인간의 모든 행동은 충동과 욕구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욕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 대신에 특정한 행동을 지향하는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충동은 인간 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욕구보다 더 근본적이다. 맹목적인 충동은 전쟁의 원천이 되지만 과학, 예술, 사랑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충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동이 죽음과 퇴보를 향하지 않고 생명과 성장을 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충동이 배제된 채 목적과 욕구에 의해서 좌우되는 인생은 지루하다. 하지만 산업주의와 조직은 문명국가의 국민들에게 충동이 아니라 목적에 의거해서 생활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한다.
사람들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당장 만족감을 주는 대상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자신에게 충족감을 줄 만한 대상을 마음으로 상상한다. 모든 욕구는 무엇이 부족함을 자각하는 순간과 그것을 충족시킬 기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인 간격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힘인 '의지'는 꽤 멀리 떨어진 대상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면서 그로 인한 행동이 주는 고통 그리고 멀리 떨어진 욕구와 상반되기는 하지만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욕구와 충동의 끈질긴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금까지의 정치철학은 거의 예외 없이 욕구를 인간 행동의 원천으로 보는 입장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 대신에 특정한 행동을 지향하는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은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리 지르며 달리고자 하는 직접적인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이런 충동은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어른들 자신이 아이나 개보다 합리적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하고 자기 행동에서 충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깨닫지 못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은폐해 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무모하고 강력한 충동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동이 강할 때 그 충동을 충족하고 나면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대개는 잠재의식상의 선택적 주목Selective Attention에 의거해서) 스스로를 설득한다.
충동은 인간 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욕구보다 더 근본적이다. 충동은 부차적인 거짓 욕구들을 동반한다. 충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은 그 충동을 충족했을 때 뒤따르는 결과를 원하고 있고, 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때 사람들의 행동은 그 자체가 동기가 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책이나 그림으로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창조적인 충동이 고갈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어떤 일을 완수하고 나면 그 일에 차츰 흥미를 잃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예술 창작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직접적인 충동이며, 우리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욕구는 다른 옷을 입은 충동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은 흔히 이성이나 욕구의 활동이 아니라 충동의 활동에서 자라난다. 충동에는 공격적인 충동과 공격에 대한 저항의 충동이 있다. 이 두 가지 충동은 이성에 따라 활동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성과는 배치되는 상황에서 활동한다. 공격적인 충동에 부합하는 신념은 베른하르디(독일군장군)나 마호메트 시대 정복자들의 진술이나 <여호수아서>에서 발견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 우수하다는 신념, 자신들은 어떤 면에서 선민選民이라는 신념이다. 이런 신념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미덕과 악덕을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를 우월한 인종의 승리와 구원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태도를 합리화한다. 현대 정치에서 이런 태도는 제국주의로 나타난다.
2장 왜 사람들은 국가에 순종하는가? - 국가의 역할 국가의 핵심적인 장점은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폭력을 법률로 금지하여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반면 국가의 핵심적인 결점은 대외적인 무력의 사용을 촉진하고, 민주적인 제도 내에서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점은 국가가 권력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는 데 있다. 국가의 과도한 권력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부각하고 국민의 자유를 축소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이는 곧 성숙을 저해하는 개인의 무력감을 낳게 된다. 개인적인 무력감의 예방이 작은 도시국가로 회귀하는 것으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산업화 이전 시대로 회귀하는 것만큼이나 복고적인 일이다.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역할을 연방 정부 혹은 중재재판소에 역할을 국한시키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집단에게 긍정적인 정치적 창의성을 점차적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은 국민의 집단적인 힘을 축적하고 있는 저장고라는 점에 있다. 이 힘은 내적인 힘과 외적인 힘, 두 가지로 나뉜다. 내적인 힘은 법률과 경찰이고, 외적인 힘은 군대에 체현되어 있는 전쟁 수행력이다. 국가는 단일한 정부가 명하는 대로 단합된 힘을 사용하는 특정지역 주민들의 단체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문명국가의 경우 국민에 대한 무력 사용은 과거에 제정된 법률에 의거해서만 실행에 옮겨진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무력 사용을 규제하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외국인에 대한 무력 사용은 거의 예외 없이 현실의 혹은 가상의 국가적 이익에 의거해서 실행에 옮겨진다.
국가 권력은 국내의 반란과 대외적인 패전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이런 제한 사항에 구속을 받기는 하지만 국가 권력은 절대적이다. 현실적으로 국가는 과세를 통해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혼인과 상속 법률을 정하고, 국가가 혐오하는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다른 국가에 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전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 때면 언제라도 건전한 신체를 지닌 남성들에게 전투에 나가 목숨을 내걸라고 명령한다. 국가의 의도와 견해에 어긋나는 의견을 내놓는 행위가 곧 범죄가 되는 일들이 숱하게 많다.
사람들이 국가 권력에 순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전통적인 이유와 대단히 현대적이고 절박한 이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국가에 순종하는 전통적인 이유는 군주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봉건 제도 아래에서 성장했으며, 그 영토는 원래 봉건 군주들의 소유였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이유는 계속 쇠퇴해왔고 오늘날은 일본 그리고 그 정도가 미약한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 의미를 상실했다. 동족 의식은 민족국가의 단합을 야기하는 주요 요인이지만 그것에만 의지해서는 민족국가의 강력한 단합을 달성할 수 없다. 민족국가의 강력한 단합은 대개 두 개의 터무니없는 공포심을 토대로 형성된다. 하나는 내부의 범죄와 무질서에 대한 공포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공격에 대한 공포심이다.
국가를 형성시키는 동족 의식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국가를 강화시키는 공포심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당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말고도 민족국가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종교적인 양상을 띠는 애국심이다. 애국심이 깃든 종교적인 요소는 교육, 특히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에 의해서 강화된다. 물론 이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이다. 애국심은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애국심이 지향하는 선은 전체 인류를 위한 선이 아니라 자기 나라만을 위한 선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조건을 충족하는 종교는 우리에게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서 애정의 불균형을 조절하고 인간의 공통된 필요를 파악함으로써 우리의 목적을 보편화한다. 기독교는 유대교 내부에서 이런 변화를 이루어냈다. 이런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단순한 민족 종교의 폐해를 씻어낼 수 있다.
3장 전쟁은 제도다 - 전쟁의 본질전쟁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사실은 경제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인류의 대부분이 화합보다는 충돌을 지향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개인 생활에서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할 때 자신을 남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보다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활동을 시작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다툼을 하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충동,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충동이 있다. 전쟁을 야기하는 것은 신중하게 계산된 사리 추구의 동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충동이다. 평화주의자들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이따금 공동체 전체를 사로잡는 전쟁에 대한 충동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과 경제 구조, 그리고 도덕적 원칙의 광범위한 변화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모든 문명국가에서는 두 세력이 얽히면서 전쟁이 일어난다. 극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평상시에도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전쟁을 예언하고 그런 예상을 하면서도 전혀 언짢아하지 않는다. 전쟁이 임박한 상황이 아닌 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임박하면 사람들은 전쟁열에 사로잡히고, 원래 호전적이던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전쟁열을 고취하는 충동은 평상시에 일부 사람들을 호전적인 성향으로 몰아가는 충동과는 크게 다르다. 평상시에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교육받은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가 관여하는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생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보다 아는 것이 적은 사람들을 가르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지식일 뿐이다.
오늘날 여러 국가를 전쟁으로 몰아넣는 수많은 충동들은 그 자체가 활기찬 혹은 발전적인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상력과 모험에 대한 애호가 없으면 사회는 머지않아 정체되고 부패하기 시작한다. 파괴적이고 잔인무도하지 않은 한, 갈등은 인간의 행동을 고취하고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이나 인습적인 것을 뛰어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이 파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대의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 파괴, 증오가 낳은 사악한 결과를 파괴하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는 어떻게 전쟁이 이런 충동들의 배출구가 되는 것을 막으면서 이런 충동들을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 평화주의자들과 모든 군국주의자들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런 면에서 군국주의자들은 우익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평화주의자들은 그릇된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정당 간의 갈등,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 그리고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근본 방침의 갈등은 수많은 이로운 결과를 낳는 반면 해로운 결과를 낳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갈등들은 공적인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큰 폐해 없이 경쟁을 즐기는 감정의 배출구를 제공하며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기여한다. 정치 활동을 강화하는 모든 요인들은 전쟁의 욕구를 야기하는 관심과 똑같은 종류의 관심을 평화로운 방식으로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창의성, 능력,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이것이 자신의 인생을 편협한 소심함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공한다.
4장 행복의 조건을 찾다 - 소유와 분배
어떤 경제 체제의 효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느냐 또는 분배적 정의를 보장하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의 본능적인 성장을 가로막지 않느냐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경제 체제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인간의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둘째, 창의적인 충동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생산을 증대하는 열광적인 태도는 인간의 사고를 훨씬 중요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했다. 근대적인 방법을 이용하면 상당수의 인구는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고도 일용품을 생산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과학적인 지식과 예술, 더 널리 확산된 지식과 정신적 발전, 임금노동자들의 더 많은 여가,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왜곡된 경제 체제로 인해 이 모두는 사치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설 가운데 이의 제기가 가장 적은 것은 생산량 증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가설이다. 즉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고, 여성과 아동을 노동자로 고용하고, 효율성이 저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노동시간을 최대한도 늘려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생산제일주의는 너무나 불합리하고 무자비하다. 사람들은 생산이 되기만 한다면 무엇이 생산되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다. 우리의 경제 체제 전체가 이런 견해를 조장한다.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어떤 종류의 노동이냐를 따질 것 없이 일체의 노동을 임금노동자들에게 이로운 일로 둔갑시킨다. 생산을 증대하려는 열광적인 태도는 인간의 사고를 훨씬 중요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계가 노동생산성의 증대로 이익을 누리는 것을 차단한다.
현재의 분배 체계는 어떤 원칙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복에 의해서 부과된 체계로부터 비롯해서 정복자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편성된 제도가 법률에 의해서 정형화된 것으로 단 한 번도 근본적인 개조를 거친 적이 없다. 분배 체계의 개조는 어떤 원리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까? 분배 체계의 개조 방안으로 가장 널리 주창되는 사회주의는 그 주된 목표를 '정의'에 둔다. 사회주의는 현재의 불평등한 분배 체계는 부당하다고 보고 이를 폐지하려고 한다. 사회주의의 핵심 이론은 요구 혹은 수행되는 노고에 편차가 있다는 점에서 불공평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평성 하나만을 경제 체제 개조의 근간을 형성하는 원칙으로 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공평성이 확보되더라도 공평성 그 자체가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오늘날의 노동운동은 변화를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천이지만 그 속에는 개혁 세력이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여러 경향들이 존재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공평성을 지향하는 운동이며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노동운동은 도덕적인 견지에서 볼 때 반격을 가할 여지가 없으며, 편견과 독선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심각한 대항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의 모든 사상들은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고 노동운동을 지탄하는 사상은 전설 속에 묻혀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운동이 생명에 이로운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확실치 않다.
5장 희망과 두려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교육의 원칙
인간사에서 창의성을 야기하는 원칙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것을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막으려는 투쟁이 아니라 유익한 것을 확보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현대 교육이 위대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것은 위대한 희망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은 순종과 규율 대신 독립성과 충동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교육은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에 건설적인 의문과 지적 탐구심, 진취적인 태도가 승리를 거둔다는 세계관, 사고의 대담성을 조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원인들 뒤에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을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교육이 성격 및 의견 형성에 미치는 효과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부모와 교사들은 대개 자신의 진정한 소신을 공공연한 행동 수칙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습득한다. 교육은 대체로 기존 질서를 지지하고 근본적인 변화에 반대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위기에 처해 있는 기관들은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교육 조직을 장악하고 유순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미덕에 대한 존경심을 주입한다. 그리고 개혁자들은 상대를 유리한 위치에서 밀어내려는 시도로 대응한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동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들에게 아동들은 후일 어느 한편의 군대에 신병으로 충원될 인적 자원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