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빠가 키워라
이충헌 지음 | 글담
아들은 아빠가 키워라
이충헌 지음
글담 / 2010년 8월 / 304쪽 / 11,800원1장.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 아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들
여성의 바람이 거세다
수만 년간 지속돼 온 남녀의 영역과 역할이 바뀌고 있다. 실력과 자신감, 리더십을 갖춘 여성들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른바 ‘3시(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 합격 비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 합격자 비율이 각각 51%, 66%, 38%로 전년 대비 20% 후반의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7, 9급 합격자도 10명 중 6명이 여성이다.
사회 곳곳에서 이처럼 여풍女風, 여초女超 현상이 거세다. 대표적인 금녀 공간이었던 육군사관학교는 1998년부터 여성 생도를 뽑기 시작했다. 최근 5년간 육사 입학 경쟁률은 남학생이 17대 1, 여학생이 35대 1로 두 배쯤 높다. 산업인력공단이 국가기술자격증에 응시한 수험생을 대상으로 합격률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58%로 남성 44%보다 무려 15% 높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주부의 합격률이 70%로 가장 높았다. 세대를 뛰어넘어 여풍현상이 대세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여성 국회의원 수가 지난 1992년 3명에서 2008년 41명으로 늘었다. 의료계 역시 여풍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재 전국 의대생의 40% 가량이 여학생이다. 사실 남성이 여성에게 치이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위권 학생 중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서울대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10년 전 25%에 비해 1.6배 늘어난 수치다.
2장. 왜 아빠가 필요할까 - 아빠가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한국 아빠
산업화 시대엔 돈을 잘 벌어 오면 좋은 아버지였다. 당시엔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안하면 이상적인 아버지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컨대 외도를 하지 않고, 도박이나 술을 많이 하지 않고,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좋은 아버지였다. 아이들과 가끔 나가 외식을 하거나 공놀이라도 하면 단숨에 최고의 아버지로 등극했다. 그 시절엔 누구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일하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일에 지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밀함을 보여 줄 여유가 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집안의 중심이자 절대 권력의 소유자였다. 아버지의 말 한 마디는 거의 법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의사와 맞지 않을지라도 무조건 따랐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상당수의 아빠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이 보고 자란 아버지의 모습과 시대가 원하는 아버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공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외적인 성공보다는 가족 간의 유대와 친밀감이 더 강조되는 시대다. 우리 세대의 아빠들은 절대 권력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막상 자신은 육아와 가사 일에 동참하길 강요받는다. 자신은 정작 별로 받아 본 적이 없는 남성들이, 아이와 즐겁게 놀아 주는 가정적인 아빠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40대 남성들은 가정보다는 사회에서의 성공에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공한 삶, 가족을 위한 희생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자란 아빠들은 가정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야 하는 오늘날의 역할이 낯설다. 그래서 주말에 가족과 다함께 외식을 하는 것으로 그동안 못 놀아 준 것을 만회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이나 파스타를 사주고 오는 길에 공원에서 조금 놀아 주면 즐겁고 뿌듯하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해낸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시간을 돈으로 때우려는 모습, 마치 의무 방어전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자녀들과의 감정적인 교류가 어색한 우리시대 아빠들의 자화상이다.
아빠의 휴일 사용법: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빠들이 자녀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 평균 3분이라고 한다. 그것도 “책 좀 읽어라”, “게임하지마라”, “공부 좀 해라”처럼 일방적인 지시 명령이 대부분이다. 아이가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고민은 없는지 등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유태인 가정의 중심은 아빠다. 아이들은 아빠를 흉내 내며 배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유태인의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다. 이때는 일을 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을 멈추고 안식일을 엄격히 지킨다. 그 시간을 이용해 평소 일 때문에 마주하기 힘들었던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아빠는 자녀를 한 명씩 방으로 불러 일주일 동안 공부한 것,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이야기한다. 보통 30분 내외지만 아이들에게는 일주일을 정리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아빠와 감정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주중에 바쁜 업무에 치인 한국 아빠들은 주말 동안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바쁘다.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 등산이나 낚시와 같은 자신의 취미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평일에 일찍 귀가해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이들에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마저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좋은 아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는 아빠를 보면서 성장한다. 아빠의 행동은 그대로 아이에게 반영되어 인성과 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굳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멋진 생일 선물을 사주거나 놀이동산에 데리고 가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아이와 나누는 교감이 훨씬 중요하다. 10번의 선물보다 1번의 가벼운 스킨십이 아이를 변화시킨다.
3장. 아들이 만년 2등일 수밖에 없는 이유 - 아들을 문제아로 만드는 학교 교육
왜 아들의 뇌, 딸의 뇌는 다를까?
우리 집엔 8세 아들과 5세 딸이 있다. 아들은 새 장난감 자동차를 사줄 때마다 일주일을 못 넘긴다. 나사까지 풀러 분해를 하는 탓에 금세 망가뜨린다. 작동 원리를 알아보겠다며 라디오를 온통 분해해 놓기도 한다. 그러더니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지냈다. 전혀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게임 아이템을 구입하고 척척 레벨을 올려 간다.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리지만, 상대방에 별로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다. 그저 놀이터에서 같이 숨바꼭질을 하거나 컴퓨터 게임 정보를 나누는 정도다. 이에 비해 딸은 장난감 자동차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인형들에게 이름을 지어 말을 건넨다. 엄마처럼 우유를 타서 먹이고 업어 주는 등 업어 주는 등 인형을 마치 아기처럼 대한다. 말을 배우는 것도 무척 빠르다. 오빠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도 단어 구사력이 오빠보다 낫다.
게다가 아들 녀석은 내가 집에 가도 도통 쳐다보지도 않는데, 딸아이는 달려와 바로 안긴다. 애교도 만점이어서 왠지 마음이 더 간다. 퇴근하고 나면 곁에 붙어 조잘조잘 얘기를 해와 피곤해도 몇 마디 대꾸를 해줘야 한다. 유치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 대한 얘기도 곧잘 한다. 나이가 들어 걱정된다며 할머니에게 너무 무리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도 딸아이다. 주위에 별 관심이 없는 아들과 달리 딸은 주위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와 같은 아들과 딸의 차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딸은 인형놀이나 소꿉장난을 좋아하지만 아들은 자동차를 갖고 놀거나 전쟁놀이를 즐긴다. 아들은 수학이나 과학에 더 우수한 반면, 글쓰기나 외국어에선 딸을 당해 내지 못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딸은 절친한 단짝 친구와 보내면서 우정을 키운다. 이에 반해 아들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지만, 인간관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4장. 아들의 아빠가 된다는 것 - 아들에게 좋은 아빠란?
당신은 어떤 아빠인가?
25년간 2,300명 이상의 아빠와 아들을 상담해 온 시리학자 스테판 폴터는 다섯 가지 유형의 아버지 유형을 제시했다.
먼저 ‘성취지상주의형’이다. 눈에 드러나는 실적으로만 가치를 평가하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정서적 공백이나 대인 관계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완벽을 추구한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들은 숨이 막힌다. 아들은 직․간접적으로 아버지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 밑에서는 상실감과 상처만 받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아들은 무관심해지거나 의욕을 상실하고 엇나가기가 쉽다.
두 번째는 ‘시한폭탄형’이다. 공포감을 기반으로 한 양육 스타일을 말한다. 이런 아버지는 협박하고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휘둘러 권위를 세우려 든다. 이들은 술을 마시고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한다. “오늘 회사에서 어땠어요?”라는 인사말에도 화를 낸다 하지만 이들은 직장에서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낸다. 가족에게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로 인한 자괴감을 덮어 버리기 위해 더욱 격분하는 것이다. 자신의 싫은 점이 아들에게서 보이면 더욱 폭발한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아들은 늘 혼란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수동형’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아버지가 여기에 속한다. 안정적이고 근면하며 말수가 적다. 하지만 가족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이 별로 없다. 물론 아들에 대한 애정 표현이나 격려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저 바라만 보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이들은 아들과 견해가 다르더라도 별로 개입하지 않고 인정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무관심의 일종으로, 장기적으로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엄마가 가족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남성으로서 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우지 못한다. 이는 성인이 된 뒤 결혼 생활의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네 번째 유형은 ‘부재형’이다. 아들과 정서적인 유대가 없다는 점에선 수동형과 유사하지만, 가정 내 역할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측면에서 수동형과 구분된다. 수동형 아버지는 가정 안에서 존재하지만, 부재형은 말 그대로 아들 곁에 존재하지 않는 유형이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들은 자신이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 극심한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또한 사람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를 주변 사람들에게 터뜨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상한 멘토형’이다. 말 그대로 넓은 이해심과 리더십을 겸비한 경우다. 사랑과 훈계를 적절히 사용하고 아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실패할 경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기보다 아들의 생각을 존중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아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지원한다. 여러 가지 유형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찔리는 부분이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중엔 거의 ‘수동형’ 아빠로 지내다가 여유가 생기는 주말에만 ‘자상한 멘토형’ 아빠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껴안아 주거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끔 음식을 만들어 주는 행동이 스스로 괜찮은 아빠라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마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아빠들이 그럴 것이다.
아들에게 가장 해로운 유형은 평소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수동형) 시험 때만 되면 공부하라고 보채고(성취지상주의형),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시한폭탄형) 아빠다. 자신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들여다보고 아빠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변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모습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문제점을 깨달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행동이 변하게 된다.
아빠는 아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다리
“아들에게는 세상의 미래가 모두 들어 있다. 엄마는 아이를 품속에 꼭 안아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아빠는 아이를 가장 높은 언덕으로 데리고 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도록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다이아몬드의 책 『사랑한다 아들아』에 나오는 마야 인디언 속담이다.
엄마의 사랑은 아들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지녔다. 반면 아빠의 자극은 아들을 바깥세상으로 뻗어 나가게 하는 원심력을 지녔다.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안정감을 제공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면, 아들이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빠의 역할인 것이다. 아빠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아들에게 자극을 주어 세상에 나가도록 해야 한다.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을 도와주는 사람, 아빠: 생후 9개월이 되면 아들은 짚고 설 수 있을 정도로 운동 능력이 발달한다. 걸음마를 배우면서 조금씩 엄마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주변에는 온통 신기하고 처음 보는 것투성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들의 걸음 속엔 세상을 향한 욕구가 담겨 있다.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해야 했던 상황에서 이젠 스스로의 힘으로 주변을 살피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은 아들이 손을 대는 순간 아들의 것이 된다. 때론 스스로 그 물건을 만들어 낸 것처럼 우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9~15개월 정도 된 아들의 활동 반경은 그리 넓지 않다.
엄마 품을 떠나 정신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가도 문득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자지러지듯이 운다. 자신을 돌봐주고 인정해주는 엄마상이 아직 내면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아 유기된 것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아들은 엄마의 품으로 돌아와 직접 재충전을 받아야만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만 2~3세는 분리 개별화 과정이 완성되는 시기다. 아들의 마음속에 엄마상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아들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좋은 엄마의 이미지와 가끔 혼을 내는 나쁜 엄마의 이미지를 섞어 엄마상을 마음속에 정착시켜 나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들은 엄마가 곁에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란다. 이때 아빠는 아들이 자연스럽게 분리 개별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아빠의 지속적인 격려는 아들이 안정적인 어마 품에서 벗어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들을 대하는 아빠의 태도는 엄마와는 사뭇 다르다. 엄마는 아들이 아장아장 걸으면서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행여 다칠까 겁을 내며 제재한다. 이에 비해 아빠는 아들이 드넓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을 대견해하며 격려의 눈빛을 담아 그저 바라본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들의 눈빛에서 바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런 아빠의 태도는 아들의 독립심을 길러주는 자양분이 된다.
아빠는 아들을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인정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본다. 독립심을 심어 줘 아들이 엄마로부터 보다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 내는 힘을 길러 주어, 자연스럽게 엄마 품을 떠 날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들은 엄마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다. 여기에 아빠가 등장함으로써 아들은 사랑과 욕구에 대한 관념을 넓히게 된다. 엄마와의 일대일 관계가 아빠로 인해 삼각관계로 확장되는 것이다. 엄마가 아닌 타자 즉 아빠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엄마와의 일대일 관계는 사람과의 신뢰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생후 1년 동안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는 시기로 보았다. 이때 엄마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많으면 아이는 사람에 대한 의심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1~3세까지는 자율성이 발달하는 시기로 아빠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격려하고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칭찬해주고 용기를 줌으로써 아들의 자율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