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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강인선 지음 | -
전 세계 지식사회를 이끌어내는 곳

하버드대학교



하버드는 케임브리지 시에서 최고 대지주다. 하버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빌딩만 해도 5백 채가 넘는다. 이중 3분의 1은 대개 학생과 교직원들을 위한 기숙사와 아파트로 임대해준다. 아파트 임대료가 엄청나게 비싼 보스톤 지역에서 그나마 학생들이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버드 내의 하우징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버드의 학부생은 약 6천7백 명, 남학생이 51.5% 여학생이 48.5%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약 4백50명, 10% 수준이다. 하버드의 입학허가를 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약 3천 개의 대학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하버드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업성적이든, 과외활동이든, 남다른 재능이 있어야 한다.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뽑는 과정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한다. 시험 성적처럼 객관적이고 정확한 수치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점들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버드에서 학부를 다니든, 경영대학원이나 법과대학원 같은 프로페셔널 스쿨을 다니든, 또는 수년에 걸쳐 박사과정을 하든, 학생들은 모두 나름대로 하버드 대학이 제공하는 독특한 교육환경을 체험한다. 그러나 역시 ‘진짜 하버드생’으로서 하버드 대학의 진수를 맛보는 것은 역시 학부생이다. 흔히 대학은 단순한 직업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과 지식을 쌓는 곳이며, 대학시절은 눈앞의 현실과는 다른 이상(理想)에 빠져볼 수 있는 독특한 시기라 한다.

하버드 대학은 미국 역사에서 여섯 명의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존 아담즈, 존 퀸시 아담즈, 루더포드 B. 헤이즈, 시오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가 바로 하버드 출신들이다. 미국의 권력 엘리트들 이외에 하버드의 명성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연구와 저작을 통해 미국의 학계와 지식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그룹이다. 하버드의 교수진 중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은 약 37명. 924년부터 1991년까지 하버드 출신 퓰리처 상 수상자 역시 30여명에 이른다.

찰스강을 따라 자리한 하버드 커뮤니티

하버드 대학이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市(시)는 찰스江(강) 너머의 보스톤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다. 찰스강을 따라서 하버드와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눈에 띠는 고층 빌딩조차 찾아보기 힘든 소박한 도시다.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인 보스톤은 교육기관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보스톤에 가면 건물 몇 개 건너에 하나씩 학교가 있을 만큼 다양한 학교들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라면 대학원을 포함한 하버드 내의 모든 교육기관을 말하고, 하버드 대학(Harvard College)은 4년제 학부를 지칭한다. 현재 하버드 대학은 4년제 학부와 인문과학 대학원을 비롯하여 경영, 치과, 디자인, 의학, 신학, 교육, 법학, 행정, 보건정책 등 10개의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버드와 직접 관련이 있는 하버드 커뮤니티의 수는 약 3만명. 40여개에 달하는 각종 학위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는 학생 수는 약 1만7천7백 명(대학원생이 약 1만1천명, 학부생이 약 6천7백 명)에 달한다. 학생들의 출신 국가도 다양해서 약 1백30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하버드에 모여 있다. 교수 등 강의진이 2천2백 명, 교직원 수는 약 9천5백 명 정도 된다. 하버드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기관이다. 1900년대 초 하버드 커뮤니티는 약 5천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1백년에 걸친 성장과 팽창은 하버드 스퀘어를 분주한 도심의 거리로 변모시켜 놓았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하버드 스퀘어는 상점과 식당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하버드의 중심가다. 하버드는 케임브리지시에서 최고 대지주다. 하버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빌딩만 해도 5백 채가 넘는다. 이중 3분의 1은 대개 학생과 교직원들을 위한 기숙사와 아파트로 임대해준다. 아파트 임대료가 엄청나게 비싼 보스톤 지역에서 그나마 학생들이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버드 내의 하우징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아파트의 경우, 스튜디오가 9백 달러, 원 베드룸 아파트가 1천 달러를 넘는데, 학교 밖으로 나가면 같은 수준의 아파트라도 수백 달러를 더 부담해야 한다. 현재 케임브리지 내에서는 하버드가 더 이상 팽창할 곳이 없는 까닭에 하버드 대학은 찰스강 건너편 경영대학원이 있는 알스톤 지역으로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의 3천여개 대학 중 1,2위 다툼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해마다 발표하는 미국대학들의 순위에서 하버드 대학(학부)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1백점 만점으로 볼 때 하버드는 93점, 3위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은 92점, 프린스턴과 예일대학이 91점으로 공동 4위였다. 현재 하버드의 학부생은 약 6천7백명, 남학생이 51.5% 여학생이 48.5%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약 4백50명, 10% 수준이다. 하버드의 입학허가를 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약 3천 개의 대학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하버드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업성적이든, 과외활동이든, 남다른 재능이 있어야 한다.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뽑는 과정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한다. 시험 성적처럼 객관적이고 정확한 수치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점들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버드에 입학원서를 내는 학생들은 전 세계 5천 여개의 고등학교 출신들이다. 지난 해 지원서를 보낸 학생 수는 1만6천5백94명. 이들 중 약 2천명이 입학허가를 받았고 이중 1천6백20명이 등록했다. 지원서를 내는 학생들 중 평균 12~13%만이 입학허가를 받는 셈이다.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입학생들의 SAT( Scholastic Aptitude Test) 성적은 대개 600점에서 800점 사이이며, 대부분 학업성적 면에서도 최우등생인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입학허가를 받는 데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SAT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 입학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부를 잘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외에 남다른 점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버드의 입학생들 중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까닭으로 학부생 중에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 경시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받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학생들이 있고, 이미 프로 작가 수준으로 글을 쓰는 학생들도 있다. 유명인사의 자녀들도 많아서, 엘 고어의 딸과 같은 클래스였다든지, 솔제니친의 손자와 함께 공부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영화 〈스타 워즈〉에 출연했던 나탈리 포트만도 다니고 〈리빙 라스베이거스〉의 엘리자베스 슈도 교정을 오간다. 하버드 입학생들은 재능과 출신학교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그 인종적 배경도 다양하다. 2001년 졸업하게 될 학생들 중 35%가 미국사회의 소수그룹 출신들이다. 이중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18%로 가장 많고, 8.6%가 히스패닉, 8%가 흑인, 0.7%가 미국 인디언이다. 외국 학생은 전체의 7%를 차지한다.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합해서 한국 학생의 수는 1999년에 1백83명으로, 일본학생(1백51명)보다 많고, 중국(2백27명)보다는 적다. 한국학생은 1994년 1백33명, 1997년 1백74명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졸업 후 평균 연봉도 가장 높아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대학원 순위를 보면,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스탠포드와 함께 1위로 평가받았다. 졸업 직후 학생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하버드가 10만5천1백2 달러로, 스탠포드의 10만1천3백53달러보다 약간 높았다. 의과 대학원 역시 1위, 법과 대학원은 예일과 스탠포드에 이어 3위, 교육대학원 1위. 케네디 스쿨은 공공정책 분야에서 시라큐즈 대학원에 이어 2위. 박사과정의 경우 10위권 안에 드는 학과는 생물학(1), 화학(2), 경제학(1), 영문학(3), 지질학(7), 역사학(6), 수학(2), 물리학(3), 정치학(1), 심리학(6), 사회학(7) 등이다. 하버드에서 학부를 다니든, 경영대학원이나 법과대학원 같은 프로페셔널 스쿨을 다니든, 또는 수년에 걸쳐 박사과정을 하든, 학생들은 모두 나름대로 하버드 대학이 제공하는 독특한 교육환경을 체험한다. 그러나 역시 ‘진짜 하버드생’으로서 하버드 대학의 진수를 맛보는 것은 역시 학부생이다. 흔히 대학은 단순한 직업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과 지식을 쌓는 곳이며, 대학시절은 눈앞의 현실과는 다른 이상(理想)에 빠져볼 수 있는 독특한 시기라 한다. 하버드의 학부생들은 구체적으로 일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 ‘프로페셔널 스쿨’을 찾는 대학원생들과는 다른 것을 배우고 느낀다. 미국의 역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하버드 대학의 명성은 부자보다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만들어왔다. 하버드 대학은 백악관과 의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을 배출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면서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하버드 출신들은 어김없이 ‘권력’의 상징인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제 워싱턴은 더 이상 하버드 출신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대학 재학 시절 정치에 관심이 많던 학생들도, 학생회에서 활동했던 학생들도 이제는 워싱턴이 아닌 뉴욕과 실리콘 밸리로 향한다.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안정과 번영은 별다른 경력 없는 대학졸업자들에게도 깜짝 놀랄 만한 연봉을 제시하고, 덕분에 워싱턴은 이제 하버드 출신들의 경력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곳으로서 우선 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여섯명의 대통령과 37명의 노벨 수상자 배출

확실히 하버드 출신들이 가는 길은 달라졌다. 관료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 세워진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에서조차도 학생들은 정부나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 등 공공기관보다는 투자은행과 컨설팅 회사와 벤처기업에서 첫 직장을 구하고 싶어한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획기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내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일찌감치 백만장자의 꿈을 향해 떠난 학생들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서 남아 있는 학생들을 초조하게 한다. 젊은 하버드 출신들의 선호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격돌하고 있는 두 명의 후보들은 하버드 출신이다. 현직 부통령이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앨 고어는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1965년 입학),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 역시 하버드 경영대학원(1975년 입학) 출신이다.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된다면 또 한 명의 하버드 대학 출신 대통령이 되겠지만, 부시가 당선된다면 하버드 경영대학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사 경영자가 아닌 국가 경영자를 배출하는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하버드 대학은 미국 역사에서 여섯 명의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존 아담즈, 존 퀸시 아담즈, 루더포드 B. 헤이즈, 시오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가 바로 하버드 출신들이다.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하버드는 ‘권력의 제 4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하버드 출신들을 워싱턴으로 불렀다. 훗날 데이비드 할버스톰이 케네디 행정부 시절에 대해 쓴 책의 제목처럼 하버드는 그 시절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로 케네디 행정부를 채웠다. 맥조지 번디(안보 보좌관), 아서 슐레징거(특별 보좌관), 데이비드 벨(예산 담당), 리처드 뉴스타트(자문위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駐인도 미국대사), 에드윈 라이샤워(駐일본 대사) 등이 바로 당시 케네디 행정부를 이끌어간 하버드 출신들이었다. 미국의 권력 엘리트들 이외에 하버드의 명성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연구와 저작을 통해 미국의 학계와 지식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그룹이다. 하버드의 교수진 중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은 약 37명. 이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약 30명이 넘는데, 지난 반세기 동안 1.5년에 한번은 하버드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셈이다. 1965년에는 로버트 번즈 우드워드(화학)와 줄리안 S. 슈윙거(물리학)가 동시에 노벨상을 수상, 하버드가 한 해에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24년부터 1991년까지 하버드 출신 퓰리처 상 수상자 역시 30여명에 이른다. 하버드 대학이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지방 대학에서 오늘날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최고의 대학으로 자라난 데는, 대학의 체질을 개혁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재정을 강화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이 설립된 것은 1636년. 당시 북미 대륙에는 멕시코와 캐나다의 퀘벡 지역에 스페인 계열의 두 대학이 있었다. 하버드는 북미 대륙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대학이었다. 흔히 하버드가 성직자들을 키워내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목표를 명시적으로 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시 졸업생 중에 성직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그러한 오해를 사게 됐다.

이 대학이 하버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638년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이 지역의 목사였던 존 하버드가 자신의 토지와 장서를 이 대학에 기부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하버드 대학’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하버드생들이 ‘야드’라고 부르는 하버드의 舊(구)캠퍼스에는 바로 이 존 하버드의 동상이 있다. 하버드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존 하버드의 모습은 사실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고 훗날 이 동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하버드가 오늘날 명성을 얻기까지엔 존 커클랜드 총장의 역할이 있었다. 1807년 총장에 취임한 커클랜드는 기존의 고전적인 대학교육 방식에서 탈피하는 개혁에 착수했다. 의과대학원을 확충하고, 법과대학원과 신학대학원을 설립하면서 오늘날 하버드 대학의 기본틀을 만들어냈다.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와 자연주의자로 알려진 루이 아가시즈 같은 사람들이 하버드에 교수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하버드는 비로소 대학자들이 모여드는 대학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은 연구의 메카로서 하버드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하버드 교수들의 약 35%가 전쟁과 관련한 연구에 매달렸고, 의학과 물리학 등 하버드의 연구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다.

평범한 수재가 죽어라 공부해야 겨우 따라가는 곳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말처럼, 하버드의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반드시 하버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학교 분위기가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굳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흔히 하버드 학생들이 해내야 하는 공부의 강도는 ‘평범한 수재가 죽어라고 공부해서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곳 하버드의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영광타령’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공부하기가 힘들 때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로 시작되는 신세한탄이다. 하버드에서 교수와 동급생들로부터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낙제하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A를 받기도 어렵지만, B 이하를 받는 것도 역시 어렵다. 실제로 많은 하버드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부담과 경쟁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난 해 ‘하버드 크림슨’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가질 뿐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 또 64%가 한 달에 두 번은 주말에도 나가지 않고 기숙사에서 공부를 한다. 이런 심리적인 부담은 대개 “하버드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이 기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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