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학
주미사 지음 | -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
Oxford University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튜 아놀드는 그의 작품집에서 옥스퍼드를 ‘꿈꾸는 첨탑의 도시(a city of dreaming spires)’라고 이름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는 수많은 첨탑들로 둘러싸인 39개의 칼리지(College)로 구성되어 있다. 옥스퍼드 대학은 영어권에서 가장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또한 세계적인 정치가, 문사, 학자, 예술가들을 배출해 온 대학으로서 유명한 졸업생들의 면면을 열거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정도다. 옥스퍼드를 거쳐간 현직 정치가로는 블레어 영국 수상, 헤이그 보수당 당수, 클린턴 미국 대통령 등이 있으며, 19세기 이후 영국 수상의 반수 이상을 배출해 왔고, 주요 선진국의 유명 대학 중 신생 독립국들의 정치지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 옥스퍼드다. 하지만 옥스퍼드의 강점은 과거의 찬란한 역사나 세계적인 명사를 배출했다는 데 있지 않다.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 순수자연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던 옥스퍼드 대학은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연구 중심 대학 중의 하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힉스, 멀리스, 센을 비롯한 다수의 학자들이 이곳에서 중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외국인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어, 대학원의 경우에는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대학원 전체 학생 수의 50%를 점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
옥스퍼드 대학은 칼리지 시스템이라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외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 시스템은 대학 자체가 자연발생적인 역사의 산물이었음을 말해준다. 늦어도 1096년경에는 수업이 행해졌고 헨리2세가 영국 학생들의 파리대학 유학을 금지한 1167년 이후 빠르게 발전해 왔다. 1215년경 존 왕과 로마교황 사절이 대학의 설립 허가서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대학이 탄생하였다. 이후 1249년에서 1264년 사이에 유니버시티, 밸리올, 머튼 칼리지가 설립되어 가장 오래된 칼리지들로 꼽힌다. 어쨌거나 대학 설립 이후 100년도 못돼 옥스퍼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서 교황, 왕, 신부들과 학자의 인정을 받았다.
한편 옥스퍼드 시는 옥스퍼드 대학의 존립 기반이다. 현재의 옥스퍼드 시는 대학을 통해서 지역 경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대학인(Gowner)과 도시민(Towner)들간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학인들이 도시를 만든 케임브리지와는 달리 옥스퍼드에는 대학이 설립되기 전부터 도시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초기에 도시민들은 대학인들이 옥스퍼드를 대표하려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했다. 14세기 이후 이들의 끊임없는 긴장이 존재해왔으며 1355년에 발생한 Scholastica day의 대량학살 등 피비린내나는 충돌이 발생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대학 내의 안전한 기숙사에 거주해야 한다는 칙령이 내려졌고 그 결과 각 칼리지의 담은 매우 높아졌으며 칼리지 내부에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설들이 생겼다. 이후 왕의 보호를 받는 대학은 도시에 대해서 우위를 갖고 도시를 장악했으며 옥스퍼드 시의회는 14세기 이후 500년 동안 매년 회개세를 대학에 납부해야 했다. 19세기말까지 대학은 자체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4세기 이후 옥스퍼드 대학의 발전은 영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4세기 밸리올 칼리지 학장인 존 위클리프는 교황의 뜻과 어긋나게 라틴어가 아닌 영어 성경의 사용을 주창하였다. 1530년 헨리 8세는 캐더린 왕비와의 이혼을 받아들일 것을 옥스퍼드 대학에 요구하였으며 그 이후 옥스퍼드 대학은 왕의 편에서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16세기 메리 여왕 시기 영국 국교회의 크랜머, 라티머, 리들리 주교는 옥스퍼드에서 종교재판 끝에 화형당했는데 그 화형 자리는 지금도 옥스퍼드 시내 브로드 스트리트의 한 가운데 남아 있다. 17세기 혁명 시기에 찰스 1세는 옥스퍼드에 임시의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17세기 옥스퍼드의 철학자 존 로크는 반역죄로 국외로 도주한 바 있으며, 18세기 기하학 교수 에드먼드 핼리는 혜성의 도래를 예측했다. 또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 형제의 종교 모임이 옥스퍼드에서 최초로 행해지기도 하였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기에 옥스퍼드는 여러 면에서 세계 사상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옥스퍼드 대학은 1840년대 가톨릭주의 종교운동인 ‘옥스퍼드 무브먼트’의 진원지였으며 20여년 뒤에는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간의 유명한 '진화론 논쟁'이 대학 박물관에서 행해졌다. 19세기 후반 모듈린 칼리지의 아일랜드인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선구자적인 감수성을 발전시키다가 너무 앞서 나간 시대정신으로 말미암아 많은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20세기 초반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머튼 칼리지 학생 T.S. 엘리엇은 20세기 서구문학을 지배해 온 그의 시 세계의 주요한 영감을 옥스퍼드에서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옥스퍼드 대학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이 무렵부터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었으며 대학원 칼리지들이 설립되었다. 1878년부터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20년에 여학생들이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칼리지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거절하여 대학은 새로 키블, 서머빌 등의 여학생 칼리지를 설립해야 했다. 1974년이 되어서야 기존의 칼리지들이 여학생을 받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세인트 힐다 칼리지(여학생 전용)를 제외한 모든 칼리지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대학원 교육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학부칼리지가 받아들이는 대학원생 수를 늘림과 동시에 대학원생으로만 구성된 칼리지들도 생겨나게 됐다. 너필드, 세인트 앤토니, 울프슨 등 7개의 대학원 칼리지가 1930년대부터 최근까지 설립됨으로써 리서치 중심의 대학의 기능을 확립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옥스퍼드대학은 의학을 비롯한 주요 과학 분야의 연구시설을 확충하였다.
2. 옥스퍼드 대학의 칼리지 시스템
옥스퍼드 대학의 칼리지 시스템은 아마도 다른 대학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칼리지는 우리나라 단과대학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학문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이며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당연히 모든 칼리지들이 자체 재정과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525년에 울시 추기경이 세웠고 1546년에 헨리8세에 의해 다시 설립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는 매년 120명 가량의 학부생과 50여명의 대학원생을 35개 전공 과정에서 선발하고 있으며 지구과학 등 11개 전공은 학생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물론 칼리지마다 선발하는 학과의 수와 종류는 차이가 있다. 학부생들은 우선적으로 자기 칼리지의 튜터(Tutor)에게서 튜토리얼(Tutorial)이라고 불리는 개인교습을 통해 전공을 배우고 강의는 학기 당 한 두 개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3년 과정의 학부과정이 끝나면 대학(University)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졸업시험을 치른다. 칼리지는 학부생 전원에게 최소한 1년, 여건이 좋은 칼리지의 경우에는 3년 또는 4년 동안 기숙사시설을 제공하며 자체 도서관, 식당과 스포츠 시설, 휴식공간, 파크 등 그밖의 모든 후생시설을 제공한다. 앞서 예를 든 크라이스트 처치의 경우 학부생 전원이 학부 기간 동안 숙식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책과 심지어 여행에 드는 비용도 보조해주고 각종 장학금을 통해서 학생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동일한 전공자들이 여러 칼리지에 걸쳐 분포하게 되므로 칼리지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비교된다. 여기서 칼리지 별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심한 경쟁이 일어나며 재정적으로 훌륭하고 시설이 좋은 칼리지와 그렇지 못한 칼리지로 구분된다. 학생 1인당 자산액을 비교해 보면 부유한 칼리지와 가난한 칼리지 사이에 100 배 이상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면 대학(University)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대학은 입학, 졸업, 시험 등 각 칼리지별로 할 수 없는 일반적인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대학은 또 칼리지 외부의 시설에 대한 관리도 담당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중앙도서관인 보들리안 도서관과 쉘도니언 극장, 애쉬몰리언 박물관 등에 대한 관리도 대학의 소관사항이다. 또 대학은 각 칼리지로부터 소정의 재정자금을 납부 받아 가난한 칼리지를 지원함으로써 칼리지간 격차가 너무 커지는 것을 완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에는 학생들이나 교수들 모두 정식 양복에 가운을 입어야 하는 전통이 있다. 졸업식은 물론이고 입학식과, 시험기간에도 가운을 입고 응시해야 한다. 해마다 5, 6월의 시험기간이면 가운을 입고 ‘이그재미네이션 스쿨’(Examination School ; 시험은 대학에서 주관하므로 칼리지와 상관없이 일정 장소에 따로 모여서 행해진다)로 걸어가는 학생들은 옥스퍼드의 또 하나의 볼거리다.
옥스퍼드 대학이 나름의 독특한 칼리지 시스템을 형성하게 된 것은 앞서 살펴 본 대로 대학의 형성이 자연발생적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칼리지 혹은 홀(Hall)을 중심으로 학문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연구에 몰두해온 초기 대학이 발전하여 각 칼리지들이 만들어졌으며, 이 칼리지들이 모여 하나의 옥스퍼드 대학(Univeristy of Oxford; 옥스퍼드에 있는 대학)을 형성했다. 올소울즈 칼리지처럼 학생 없이 교수들만으로 구성된 칼리지도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에 있다고 해서 모든 칼리지가 옥스퍼드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특수한 목적으로, 또는 부자를 만나서 대학소속으로 만들어진 칼리지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체적으로, 또는 어느 계기를 통해서 설립된 칼리지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자격 요건을 갖춘 다음에 기존 칼리지들의 심사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으로 편입되어 왔다. 가장 최근에 가입된 칼리지로는 1990년대 중반 옥스퍼드 대학에 정식으로 편입된 해리스 맨체스터, 맨스필드, 그리고 템플턴 칼리지가 있다. 앞서 대학도서관으로 소개된 보들리안 도서관의 경우에도 옥스퍼드 대학의 소속이 된 것은 17세기초에 이르러서다. 대학(University)은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칼리지(College)의 연합체로서 의미를 가질 뿐 칼리지보다 상위의 개념은 아니다.
학부와는 달리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소속 칼리지가 학부생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연구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칼리지 아닌 전공 또는 과별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칼리지 소속 교수에게 논문지도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 칼리지가 받지 않는 전공의 학생은 해당 칼리지에 입학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너필드 칼리지는 사회과학 중심의 칼리지이므로 공학도는 없다. 일단 어느 칼리지에 소속되고 나면 세부 전공을 정할 때 어느 칼리지 소속인가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칼리지는 기숙사와 자체 도서관을 제공하고 그밖의 연락업무를 하거나 후생시설을 지원해주는 기능만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대학원생에게 칼리지는 학문공동체의 기능보다는 생활공간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후생시설이 잘 되어 있는 칼리지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예컨대 기혼자라면 기혼자용 기숙사가 잘 되어 있는, 그러나 신생칼리지에 속하는 울프슨 칼리지가 좋을 수 있다. 경제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으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칼리지는 너필드 칼리지다. 이 칼리지는 미혼자에게 더 적합하며 각 학생에게 연구실 하나씩을 제공한다. 그밖에 전공별로 보면 지역 연구를 전담하는 대학원 칼리지는 세인트 앤토니 칼리지다. 키블, 리네커 칼리지에는 의학, 생화학, 생물학도가 많이 있다. 그밖에 머튼, 세인트 존스, 크라이스트 처치 등 학부 칼리지로서 명성이 있는 칼리지들은 대학원생을 위해서도 훌륭한 후생,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3. 학위 과정
학부생의 학위과정 또한 우리 나라와는 다르다. 먼저 보통의 학위과정이 3년이다. 현장 실습이 있는 과정에만 4년이다.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이미 교양과정을 다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 나라의 교양과정에 해당하는 기간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학부기간 동안 시험은 단지 두 번 있을 뿐이다. 1년이 지난 다음 1차 시험을 통과하면, 그 다음 2년 동안은 대학(University)에서 주관하는 아무런 시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1차 시험에서 실패하면 다른 대학으로 전학 가는 것이 보통이다. 2년이 지난 뒤 마지막 졸업시험에서 모든 성적이 결정된다. 따라서 졸업시험의 부담감은 엄청나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학제간 연구를 장려하는 과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에는 PPE라는 유명한 학위 과정이 있는데, PPE는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의 줄임말로서 이 세 전공을 학부 3년 동안 배우게 된다. 물론 그러다가 이 중에서 한가지 전공만을 하고 싶어지면 1년 지나 1차 시험 이후 다른 과목들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PPE 이외에도 AA(Archaeology and Anthropology), CE(Classics and English), CM(Classics and Modern Languages), EM(Economics and Management), EC(Engineering and Computing Science), EM(Engineering and Materials), EEM(Engineering, Economics and Management), MEM(Materials, Economics, and Management), MP(Mathematics and Philosophy), ME(Modern History and Economics), PT(Philosophy and Theology) 등 수많은 통합된 과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주며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하므로 매우 인기를 얻고 있다.
대학원의 경우에는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논문을 쓰는 과정과, 논문만을 쓰는 과정, 두 가지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1년 과정이 MSc 혹은 MSt, 2년 과정이 MPhil(철학의 경우에는 BPhil)이다. 후자의 경우 MLitt과 DPhil이 있다. 석사과정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MPhil이다. 이는 2년 과정으로서 졸업을 위해서는 (과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4과목의 시험과 30,000자 이내의 논문을 써야 한다. 박사논문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MPhil을 마친 후 DPhil로 진입한다. 이때 훌륭한 MPhil논문을 쓴 사람이라면 불과 1년 안에 DPhil을 마칠 수 있다. 실제로 MPhil 졸업자 중에는 1년에서 2년 사이에 DPhil 까지 마치는 사람이 다수이다. MLitt은 50,000자 이내의 석사논문만을 쓰는 연구 과정이다. DPhil은 100,000자 이내의 박사논문을 쓰는 연구 과정이다. MPhil과 DPhil을 마치는 것이 통상적으로 미국의 박사학위과정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규과정과 달리 쉬운 과정도 있다. 먼저 예비학생(Probational Research Student)으로 입학하여 일정시간이 경과하여 심사를 통과하면 DPhil논문을 쓸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MPhil 과정 중 자격시험에 탈락하여 중도 하차해야 하는 경우에도, 다시 예비학생과정을 거쳐서 DPhil과정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경제학과 등 일부 학과에서는 이런 쉬운 과정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예비학생으로의 진입을 점점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4. 옥스퍼드 대학의 학과별 경쟁력
다음의 표는 UCAS(Universities and Colleges Admissions Service)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매년 작성하는 영국 국내 대학의 학과별 연구 경쟁력을 나타낸 것이다. 연구 성과에 대한 성적이므로 주로 대학원학생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5*는 학과 대부분의 교수가 세계적인 수준의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그 학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우, 5는 일부 세부 과정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우, 4는 연구 성과가 국내 수준의 학술지 수준임을 나타낸다. 가장 낮은 등급은 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