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 알마
세계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알마 / 2010년 7월 / 328쪽 / 16,500원
1장. 세계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그리다
경험과 관념이 지도를 만든다세계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지구 전체를 뜻하는 '세계'에서 마음속 정신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세계라는 말은 엄청나게 폭넓게 쓰이는 말이다. '지도란 세계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그린 것'이라고 해도 세계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면 당연히 지도에는 "어떤 세계의 형태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그리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지도가 이야기하고 그리는 것을 지도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 기본은 '구도'와 '작도'에 있다. 여기서 구도란 지도의 골격을 설정하는 것이고, 작도란 지도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이라 정의해두기로 하자.
오관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세계를 경험 세계라고 한다면 세계는 경험 세계의 안과 밖으로 나뉜다. 경험 세계 바깥으로 펼쳐지는 세계는 오관으로 지각할 수 없으며 정보나 지식을 통해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오관을 통해 축적한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경험 세계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각각의 경험 세계에는 '흩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라고 할 만한 공유된 경험이 있다. 특히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의 핵심은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 세계의 안과 밖이라는 말은 개인을 넘어선 문화집단의 차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는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 세계뿐만 아니라 그 바깥까지 이야기하고 그려왔다. 그 바깥이란 경험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다. 알지 못하는 가상 세계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그려내는 데에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과는 다른 무언가에 의거해야 한다. 특히 전근대에 가상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리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세계에 대한 관념, 즉 세계관이나 우주관이었다. 지도의 네 가지 요소인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은 바로 '경험'과 '관념'이었다.
경험 세계의 안과 밖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그려왔는가
경험 세계의 안을 이야기하고 그린 닌나지 소장 일본도 :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은 집적된 개개인의 경험을 집단 전체의 경험으로 축적하여 그 경험의 다발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집단의 경험 세계를 확대해나간다. 확대된 경험 세계는 정치적으로 재편되고 통일되어 국가를 성립한다. 이때 국가 영역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그것을 지도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작성된 국가 영역을 표현하는 지도는 그것이 정치적 영역을 묘출하는 것이기는 해도 거기에 속한 인간들이 집단으로 공유하는 경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경험 세계의 내부를 이야기하고 그린 지도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 영역도의 예로 교토 닌나지仁和寺에 전래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일본도日本圖를 들 수 있다. 이 지도를 일본 지도사地圖史 연구자들은 교키식行基式이라 부른다. 그 명칭은 닌나지에 소장된 가장 오래된 일련의 일본도 가운데 제작자 교키의 이름이 몇 군데 적혀있는 데서 유래한다. 제작 연도를 살펴보면 왼쪽 여백 자락에 '가겐 3년嘉元 3'이라고 적혀 있다. 그것을 작성 연대로 보면 서기 1305년이 된다. 이 지도는 당시까지만 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에비스(가마쿠라 시대에 홋카이도를 부르던 호칭)'를 제외한 일본의 영역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부 형태에 주목하면 도읍 소재지인 야마시로노쿠니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다양한 형태의 구니國들을 나타내고 동시에 야마시로노쿠니를 기점으로 뻗어 있는 붉은색 도선道線으로 구니들을 연결하고 있다. 지도에는 혼슈 섬은 가운데 부분이 부푼, 동서로 긴 섬이 그려져 있고 동쪽 끝은 뾰족하다. 이러한 형태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문제다. 혼슈가 섬이라는 인식, 또는 그 형태에 대한 인식이 성립해가는 배후에는 혼슈에 사는 개개인의 경험이 축적되고 집적되어 그 경험의 다발을 집단 전체가 공유해가는 과정이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고지키古事記』에서 말하는 여덟 개의 섬으로 구성된 오야시마노쿠니大八州國 건국신화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보여진다. 요컨대 닌나지에 소장된 일본도는 관념이나 우주관이 아니라 집단적인 경험 세계의 내부를 이야기하고 그린 지도인 것이다.
경험 세계의 안과 밖을 이야기하고 그린 고대 바빌로니아 점토판 세계도 : 인간은 경험 세계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가상해왔다. 즉 경험 세계 저편의 가상 세계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차원에서도 존재한다고 여겨왔다. 경험 세계 안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온 지도가 어째서 그 저편의 가상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릴 수 있었을까?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바빌로니아 왕국 시대에 작성된 세계도를 살펴보자. 그 작성 연대는 기원전 6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세계도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들 가운데 하나다. 대략 가로 12.5cm, 세로 8cm의 작은 점토판에 음각된 것으로 점토판 상부에는 설형문자로 쓰인 텍스트가, 하부에는 지도가 새겨져 있다. 상당 부분이 파손되었고 매우 단순한 형태지만 그 지도는 세계도라고 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전해준다.
기본적인 구도를 살펴보면 중앙의 원반, 그 바깥을 둘러싸는 동심원의 띠 그리고 그 바깥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는 돌기 모양의 이등변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원반은 대지를, 동심원의 띠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환해環海를, 돌기 모양의 삼각형은 환해 저편의 가상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추상화된 기하학적인 구도지만 지도의 내용과 점토판에 새겨진 설형문자로 볼 때 방위는 북쪽을 위로 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평평하고 대지와 해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반 모양의 대지 바깥 둘레를 소금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세계관이었다. 이 세계관은 고대 그리스로도 유입되었는데, 그리스에서는 환해를 오케아노스Oceanos라고 불렀다. 대양을 의미하는 영어 오션Ocean의 어원이다.
환해의 바깥 둘레를 따라 그려져 있는 이등변삼각형은 환해 저편에 존재하는 가상의 지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몇 개 안 되고 나머지는 손상되거나 완전히 손실되었다. 원래 지도에 있었던 이등변삼각형의 수를 7개로 보는 설과 8개로 보는 설이 존재한다. 그 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포함한다. 사실 메소포타미아에서 7이라는 숫자는 성스러운 숫자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성술에서는 7혹성이라 불린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으로 이루어진 총 7개의 행성의 운행을 특히 중시했고, 또 월령Lunar Phase에 따라 달 모양이 7일 주기로 변하므로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에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아 7행성의 이름을 딴 요일명이 생겨나고 7일을 한 주로 하는 개념이 정착된다.
중앙의 원반은 대지이자 동시에 그곳을 지배하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영역을 나타내며, 그 원형 안에 군림하는 수도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물을 지배한다는 점도 보여준다. 지도에는 이집트와 그리스의 존재도 확실하게 있었다. 바빌로니아인의 경험 세계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영역을 넘어 먼 곳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점토판 지도는 대지를 이루는 원반이 모두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속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바꿔 말하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세계의 중심을 이룬다는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표현한 것이다. 지도에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표현하는 경향은 이 점토판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 여러 지역의 지도에 계승된다. 헤리퍼드 세계지도나 고금화이구역총요도도 그 예다.
2장. 중세 세계도를 비교하다
불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세계 인식에 천축이 등장하다 : 동아시아 해역 세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일본열도는 이 해역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한반도나 중국과 교류하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아스카飛鳥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상황은 급변한다. 일본열도가 동아시아 해역 세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중국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호류지法隆寺 소장 오천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불교의 전래다. 고대 일본에서 불교는 국가를 지키고 평안히 하는 종교의 역할만이 아니라 지리적인 지식을 크게 확대하는 역할까지 했다. 불교의 유입으로 중국 저편에 부처가 태어난 천축天竺이라는 또 하나의 문명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일본열도의 해외 인식은 단숨에 확대되었다.
불교적 세계관을 구도로 하다 : 호류지의 기타무로인에 소장된 오천축도는 일본에서 그려진 현존하는 세계도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로 177cm, 가로 167cm의 상당히 큰 지도다. 지도에는 "1364년에 승려 주카이重懷가 서사書寫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사'라는 말은 선행하는 지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천축이란 불전에 따라 고대 인도를 중 동 서 남 북이라는 다섯 지역으로 구분한 것이다. 인도가 다섯 개의 주州로 구성된다는 인식은 이미 고대 인도에서 성립되었다. 그 '주'를 산스크리트어로는 '데사'라 불렀다. 중심은 물론 중앙주(마가다 데사), 즉 중천축이다. 힌두교에서는 그곳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네 성의 구분이 명료하고 질서가 가장 잘 갖춰진 영역이라고 본다. 이 영역 구분이 오천축으로, 불전을 통해 일본까지 들어온 것이다.
삼국 세계관의 화상화 : 그렇다면 오천축도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 번째 주제는 일본의 독자적인 삼국 세계관을 섬부주(인간이 거주하는 세계라는 불교적 명칭) 안에 집어넣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천축을 동경하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생각을 품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였다. 불교적 세계관은 고대 인도의 북부, 즉 북천축 사람들이 공유한 경험 세계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그렇다면 불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섬부주와 삼국 세계관을 결부시키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천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그려낸 섬부주 안에 천축을 위치시키는 것과 삼국 세계관을 섬부주 안에 표현하는 것이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축에 대한 동경을 그려내다 : 오천축도의 두 번째 주제는 '천축에 대한 동경'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오천축도가 제작된 시기에는 일본 승려들 사이에서 천축에 대한 동경과 도항渡航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천축으로의 도항은 '입축入竺'이나 '도천渡天'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주카이가 베낀 오천축도를 다시 베낀 사람은 승려 젠세이다. 젠세이는 그 지도에 "노안老眼을 씻어 도천의 뜻을 이루고, 베껴 바친다"고 적었다. 그에게는 오천축도를 베끼는 행위 자체가 가상의 천축 도항이었던 셈이다.
성전 『대당서역기』의 숨겨진 주제 : 오천축도에 기입된 지명은 일본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불교적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구사론俱舍論』과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바탕을 둔다. 현장이 기재한 나라의 서쪽 끝은 인더스 강과 아무다리아 강을 잇는 선 가까이에 위치한다. 이 두 강은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무열뇌지에서 흘러나와 남서와 북서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하천에 해당한다. 또한 서방의 전문傳聞에 따라 기재한 나라는 낭게라국(파키스탄)에 이어 파사자국, 즉 페르시아(이란)다. 따라서 오천축도는 거의 고대 인도 세계의 서쪽 경계까지를 그린 것이다.
현존 최고의 헤리퍼드 세계지도'헤리퍼드 세계지도'라는 명칭은 이 지도가 잉글랜드 남서부에 있는 헤리퍼드 대성당에 전래되어온 데서 유래한다. 지도는 원래 대성당을 장식하는 세 폭의 제단화 가운데 중앙 부분으로, 지도의 제작 시기는 1285~1300년이라는 설, 1290~1310년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티오 지도와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세계관과 현실 세계 : 헤리퍼드 세계지도가 제작된 시기는 고딕 양식의 시대였다. 고딕 건축과 마찬가지로 헤리퍼드 세계지도도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과 들보에 해당하는 것이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티오(TO) 지도고, 스테인드글라스에 해당하는 것이 지도를 장식하는 화상과 문구다. 티오 지도를 살펴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세계를 지도로 표현할 때도 기독교의 신학적 설명, 특히 구약성서에 기재된 내용을 중시했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 창세기 9장에 기재된 내용을 기초로 대홍수 이후 인류의 조상이 되는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과 그 자손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퍼져나갔으며 세 대륙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 세 명이 영역을 분할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구약성서와 관련하여 지도 작성에서 중시한 것은 동쪽을 성스러운 방위로 여기는 방위관이다. 고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는 지도를 제작할 때 북쪽을 위쪽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동쪽을 성스러운 방위로 여기는 중세 세계도에서는 최상단에 에덴동산을 그리고, 그것에 접하는 원반 모양의 육지 상단부에는 아시아, 하반부에는 왼쪽(북)에 유럽, 오른쪽(남)에 아프리카를 배치한다. 헤리퍼드 세계지도도 이러한 생각을 따른다.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계는 나일 강 또는 홍해라 생각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계는 물론 지중해다.
지도의 여백에 담긴 독해의 실마리 : 헤리퍼드 세계지도는 정형화된 티오 지도의 구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13세기 말에 획득한 지식을 동원해 티오 지도를 현실에 가깝게 표현한 세계도이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을 명시하는 종교 지도로서의 목적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경험하고 지각하는 세계를 명시하고자 하는 지도 본연의 목적, 이 두 가지 목적을 조화시키면서 제단화로서의 통일성을 띠는 것이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기본 목적이었을 것이다.
지도는 바탕地과 그림圖으로 구성된다. 헤리퍼드 세계지도에서는 그림에 해당하는 것이 횡폭 가득히 그려진 원형 지도고, 바탕에 해당하는 것이 그 밖의 여백이다. 원형 지도와 여백은 각각 각론과 총론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양자가 어우러져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주제와 메시지를 전하며, 독해의 실마리는 여백이 말하는 총론 안에 있다.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독해 : 독해를 할 때 중시할 것은 이 지도의 여백이 말하는 총론이다. 세 여백에 표현하고 기입된 것은 각각의 개별적인 주제에 더해 그것들이 모여 말하는 '이야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이야기다. 세 여백은 정점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① 시간의 흐름(원시-과거-현재-미래의 종말)과 ② 지도 작성의 역사(천지창조-세 대륙의 최초 측량-헤리퍼드 세계지도의 제작)라는 서로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 즉 원형 지도의 각론을 독해하는 데 필요한 총론을 말한다.
세 여백이 말하는 이야기는 원형 지도가 그리는 공간을 '원시-과거-현재'라는 순환적인 세 가지 시간과 관련시켜 시공간적으로 독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원형 지도를 제1지대부터 제3지대까지 세 지대로 구분했다. 세계에 관한 공간적인 세 지대의 구성이다. 제1지대는 유럽과 아프리카(현실 세계), 제2지대는 아시아의 입구(지상의 성지), 제3지대는 내륙 아시아(아득히 먼 동방의 낙원)로 구분된다.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묘출 범위는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 북쪽 한계까지, 아시아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펀자브와 인더스 강까지다. 이 지도의 동쪽 한계는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의 서쪽 한계와 거의 대응한다. 양자는 동쪽과 서쪽에서 마주보는 거울처럼 공통된 상像을 맺고 있다. 신기한 부합이다. 유라시아의 동쪽에서 보면 이 선은 불교 전파의 서쪽 한계와 일치하고 또 현장의 천축 구법求法 여행의 서쪽 한계이기도 하다. 한편 유라시아의 서쪽에서 보면 이 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을 간 동쪽 한계, 바꿔 말하면 고대 그리스에서 계승한 동방 세계에 관한 지식의 동쪽 한계다.
세계 최초의 인쇄지도, 고금화이구역총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