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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에덴을 발견하다

알렉스 홀 지음 | 눈과마음
세상의 끝에서 에덴을 발견하다

알렉스 홀 지음

눈과마음 / 2010년 7월 / 319쪽 / 11,000원



젊은 시절



여행


1974년 가을, 나는 북극 카누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최초로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직업적인 카누 가이드를 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1975년에 카누 여행 고객은 겨우 한 명이었고, 197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집이 있는 나는 반드시 내 꿈이 실현될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광고를 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여름에는 주로 혼자서 길고 힘든 카누 여행을 했다. 서스캐처원 숲에서 시작해 북극 해안의 허드슨 만 근처 베이커 강과 배서스트 인렛까지 이동하는 경로였는데, 5월 말에 시작한 여행은 9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노를 많이 저어본 적은 처음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1975년 8주간의 나 홀로 여행은 내 카누 여행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정말 수백 킬로미터를 노를 저어 다녔다.

1977년, 인내심도 거의 바닥이 났을 무렵 갑자기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1979년에는 드디어 백 퍼센트 예약률을 기록했다! 이로써 혹시나 사무실에 틀어박혀야 하는 동물학자 신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던 걱정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노스웨스트 준주의 포트 스미스로 완전히 이사했다. 1979년에 그레이트슬레이브 호 북쪽에서 지하자원 탐사가 시작되어 옐로나이프를 벗어나 일하는 것은 더 이상 이득이 없을 것 같았고, 포트 스미스에 집을 장만할 여유도 생겼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그곳을 사업의 중심 기지로 삼고, 시즌의 첫 4주는 포트 스미스에서 보내고 6주는 옐로나이프에서 여행,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다시 포트 스미스로 돌아와 4~6주를 보내는 식으로 생활했다. 지금도 나는 포트 스미스를 북극 카누 주식회사의 거점으로 삼고 혼자서 운영한다.

1981년에 리아 루탄이라는 고객이 카누 여행을 왔다. 리아는 시애틀에서 온 젊은 사회사업가였다. 미네소타 출신으로 카누 여행경험도 많았던 리아는 배런 랜드에서 카누를 타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했다. 다음 해에 그녀는 다시 배런 랜드로 돌아왔고, 우리는 사랑에 빠져 1984년에 결혼했다. 리아는 포트 스미스 시내에 있는 지방 대학에서 사회사업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름에는 그녀도 시간이 있어서 1990년대에 아들 그레이엄이 태어날 때까지는 언제나 카누 여행을 함께하며 나를 도와주었다. 1992년에는 둘째 아들 에반이 태어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결혼생활은 1998년에 끝이 났다. 수십 년 동안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미국인을 포함해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몇몇 고객은 여름이면 만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1년 중 가장 괴로운 날은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아무튼 해가 갈수록 배런 랜드에 대한 나의 사랑은 깊어만 간다. 내가 보기에는 내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인 것만 같다.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북극 카누 주식회사



여행 떠날 준비를 하자!


"겨울 내내 뭐 하고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내가 1년 중 한 철만 일을 하고 한 해 고객도 54명을 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이 사업이 별 준비 없어도 잘 돌아가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음 해 6월에 첫 고객이 비행기에서 내려 발을 내딛는 그 순간까지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추스르고 도약할 채비를 해야 한다. 마치 봄을 기다리며 겨우내 웅크리고 있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겨울은 여름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카누 여행을 시작할 때까지 실무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놓아야 비로소 제때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무렵이면 마지막 고객이 카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당분간은 되도록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9월은 나만의 휴가 기간으로, 예닐곱 살 때부터 즐겨온 취미 생활을 하며 보낸다. 이렇게 카누를 잊고 지내는 시간이 있기에 오히려 계속해서 카누를 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에 아홉 명씩, 3개월간 쉬지 않고 카누 여행을 하고 나면 나는 어느새 녹초가 되고 만다. 여름이 지나면 살이 좀 빠져서 보기에는 좋지만, 체중을 다시 불려놓아야 한다. 일정한 수준으로 몸을 유지해야 시즌에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9월은 다음 해 광고 캠페인을 계획하고 미국 잡지에 광고를 싣기 위해 수표를 쓰는 달이기도 하다. 매년 고객의 40퍼센트 정도는 고정 고객이다. 하지만 절대로 이 고정 고객 수만 믿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내 사업이 해가 거듭되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광고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마케팅 없이는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사업 방침 중 하나이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10월 말이 되면, 나는 다가올 여름 동안의 전세 비행기 운임 시세를 입수해 여행 설명서를 업데이트한다. 팸플릿을 수정하고 다음 2년 동안의 카누 여행 계획도 세워야 한다. 비품 목록을 만들어 쓸 만한 것은 정비해놓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문한다. 그런데 어떤 장비들은 맞춤 주문식이라 물건을 받기까지 장장 1년이 걸릴 때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비품들은 수요를 예상하고 한 1,2년 전에 미리 주문해 놓아야 실수가 없다. 그래서 평생 쓸 양을 다 갖추어놓고 있는 물건들도 있다. 덜루스 배낭은 2백 개 가까이 있고, 휴대하기 편하게 손잡이가 달린 냄비도 다양한 크기로 80~90개 정도 준비해두고 있다.

카누 여행 가이드로 생계를 꾸려나가려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매일 아침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60개씩 하고 날씨에 상관없이 하루 5킬로미터씩 걷기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날씨만 괜찮으면 10~15킬로미터 정도 스키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3년 전까지만 해도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했다. 4월 초가 되면 여름 동안 먹을 식료품들을 사놓고,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정리하며 짐을 싸는 데 시간을 보낸다. 5월이 오면 눈이 거의 다 녹는다. 그때쯤이면 여름이 3~4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6월에 있을 첫 여행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내야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카누 패들에 니스 칠하기, 삭구 정리하기, 텐트 손질하기 등 본격적인 카누 정비에 돌입한다. 6월 첫 고객이 비행기에서 내려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1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여야 한다.

여름 몇 달 동안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쁘다. 그래서 겨울은 여름을 대비해서 철저히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하지만 겨울이 길다고 해서 허투루 보내는 달은 한 달도 없다. 사실상 각각의 달이 정해진 사이클 안에서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 동안은 배런 랜드에서 지내고, 그곳을 벗어나 있을 때는 다시 거기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고 보면 된다. 배런 랜드로 돌아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자유인의 느낌을 만끽한다. 매년 자연이 어서 돌아오라고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강인한 곳, 강인한 사람들

배런 랜드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일교차가 매우 크고 몸을 숨길 만한 은신처도 거의 없다. 지구상에서 겨울이 가장 길고, 춥고, 어두운 곳이 바로 배런 랜드이다. 큰 강은 얼음이 2.5미터 두께로 얼어서 8월까지 녹지 않기도 한다. 여름은 짧은 대신 매우 강렬하고,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다른 어느 곳보다 물이 풍부한 곳인데도 연 강수량은 2백 밀리미터 정도 수준이어서 우리는 이곳을 차가운 사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년 중 가장 쾌적하다는 7월이라도 낮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다가 밤에는 10도까지 급격하게 떨어진다. 여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몇 주 동안이나 이어질 때도 있다. 배런 랜드의 여름은 뜨거운 열기, 작열하는 태양, 성가신 벌레, 이따금 찾아오는 폭풍우, 순식간에 주변을 써늘하게 만드는 강풍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것들만 보면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섬이지만 신기하게도 직접 경험해보면 에덴으로 변한다. 이보다 아름다운 곳이 없고, 이만큼 가고 싶은 곳이 없을 정도로.

혹자는 배런 랜드를 젊은이의 땅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많다. 배런 랜드는 그 어느 곳보다 짧은 시간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진정으로 고민거리가 있으면 툰드라로 여행을 떠나보라.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파트너와 함께 떠나보라. 우정이나 부부 관계, 무엇이든 배런 랜드가 시험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 단둘이서 야생으로 여행을 떠나면 다투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기가 정말 쉽지 않다. 진정한 파트너십이 없으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1973년에 나는 데니스 보이트와 11주간 배런 랜드를 지나는 카누 여행을 했다. 당시 우리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기로 미리 합의했다. 어떤 경우든 더 신중한 의견을 따르고 그것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언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카누를 타고 급류를 지나가고 싶어 하고 또 한 사람은 육로로 가자고 한다면, 더 논쟁할 것도 없이 육로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휴식하기로 한 약속도 꽤 유익했다. 고된 여행 중의 달콤한 휴식은 체력 보충에도 꼭 필요하다. 배런 랜드에서 카누 여행을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고객들과 함께 첨단 기술로 만든 카누와 텐트를 가지고 배런 랜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다. 위성 전화기와 플라스틱, 호일, 캔 음식도 가져간다. 가스난로, 안감이 고어텍스로 된 우비와 장화, 방충 셔츠, 방충 텐트, 머리에 쓰는 방충망, 방충제까지 다 챙겨 간다. 이런 것들을 모두 챙기면 짐 무게만 백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다. 마치 우주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운반해줄 카누도 가지고 가야 한다. 적어도 한두 달쯤 배런 랜드에서 생활해보면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토착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됐을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겨울에는 북부 삼림에서 지내다가 봄이 오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삼림순록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지표면의 30퍼센트 정도가 물로 덮여 있고 건너야 하는 강도 한둘이 아니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성, 어린아이, 노인을 막론하고 날씨나 곤충으로부터 몸을 숨길 곳도 없는 이 땅을 오로지 두 발로만 걸어서 오갔다. 게다가 음식이나 옷, 은신처를 만드는 도구와 무기도 석기시대 수준의 것들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유목 토착문화가 전해내려 왔지만 매년 삼림순록의 뒤를 쫓아 툰드라를 지나가는 길고 고된 여행은 8천 년 동안 이어졌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 여행을 했는지, 그들의 수완이 얼마나 비상했는지 요즘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토착민들의 생존을 건 유목 생활과 비교하면 우리 여행은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휴가나 재충전의 목적으로 배런 랜드를 많이 찾는다. 일단 배런 랜드에 들어가는 것은 비행 몇 시간으로 해결되지만, 사람이란 워낙 연약한 존재여서 생명 유지 장치(각종 준비물)가 없으면 대부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달 이상 배런 랜드에서 카누 여행을 하고 나면 누구든 남부럽지 않은 건강한 체력을 얻게 된다. 처음 2,3주 동안에는 하루에 0.5킬로그램 정도씩 살이 빠지고, 피부색은 진해지고, 살갗도 두꺼워진다. 모두 원기 왕성하게 살아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구든지 말이다!

그러나 야생 카누 여행에는 물론 신체적인 강인함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강인함이 훨씬 중요하다. 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실제로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북아메리카에서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체력이 정말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덩치도 크고 건장한 사람들이 마치 아흔 살 먹은 노인들처럼 노를 젓고, 36킬로그램짜리 카누 대신 13킬로그램 나가는 가방을 들려고 하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 가보면 조그맣고 마른 사람들이 자기 덩치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것들을 얼마나 잘 들고 다니는지 모른다. 하지만 평균 90킬로그램 나가는 북미 젊은이들에게 똑같은 짐을 들어보라고 하면 아마 몇 초도 못 버티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오히려 연세가 좀 있는 고객들이 젊은이들보다 훨씬 강인하고 능력도 있다. 어찌된 것이 젊은 세대일수록 더 유약해지는 것 같다.

카누 노 젓기

야생의 땅, 특히 캐나나 순상지를 여행할 때 카누처럼 효과적이고 만족스러운 여행 방법은 없다. 카누를 타고 가지 못할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카누는 소음이 없어서 평화로운 자연의 리듬과 호흡할 수 있고, 야생동물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다가갈 수도 있다. 카누 여행은 또한 자기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다 보면 음식이나 날씨 따위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단 시간에 최상의 건강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나는 늘 카누와 스키를 비교한다. 초보자들은 둘 다 쉽고 간단한 운동일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상당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스키를 신고 걷거나 완만한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카누를 타고 잔잔한 호수를 지나가거나 부드럽게 흐르는 시내를 내려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능숙해지려면 수년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게 둘의 공통점이다. 스키도 마찬가지이지만 뛰어난 카누이스트가 되려면 끊임없이 독학이 필요하다.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나는 8년 동안 매년 여름 카누 연습을 하고 나서야 물 흐름이 없는 정수에서 카누를 탈 수 있었다. 정말 제대로 타기까지는 몇 년 더 연습이 필요했다.

정수에서 노 젓는 기술을 터득한 것과는 별개로 급류에서 타는 법을 익히기 위해 노스웨스트 준주의 여러 강에서 연습했다. 정수에서는 기본만 잘 지키면 되지만 급류에서는 물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카누를 타는 것이 내 직업이 되었고 1년에 서너 달은 온종일 카누에서 보낸다. 그건 아마도 카누를 철저하게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단지 노 젓는 즐거움 때문에 카누를 타는 일은 없다. 카누는 원래 운송 수단이고, 사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카누의 또 다른 장점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기계적인 장비의 도움 없이 간소한 여행을 할 수 있다. 1천 6백 킬로미터나 되는 캐나다 북부를 횡단하는 동안 다른 누구, 그 어떤 것에도 도움받지 않고 카누에 실은 음식과 장비에만 의존해서 여행하는 것이 카누 여행의 참맛이다. 나에게 카누는 완벽한 자유이자 궁극의 비상구이다.

배런 랜드의 야생동물



툰드라의 흰 늑대


'울버린이나 회색곰이 사는 곳이 바로 야생'이라고 정의를 내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늑대가 사는 곳도 야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사람들에게 울버린이나 회색곰보다 훨씬 친숙한 동물이다. 수천 년에 걸쳐 사람 손에 길들여진 늑대가 바로 인간에게 최고의 친구인 개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나는 늑대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늑대는 인간 다음으로 똑똑하고 사회성이 가장 발달한 동물이다. 게다가 사람처럼 성격도 각자 다르고 감정을 표현할 줄도 안다. 늑대 사회는 매우 조직적이다. 자신들보다 빠르고 크고 힘센 먹잇감을 손에 넣으려면 서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몇 마리씩 모여서 생활하는데, 그 기본 구성단위가 바로 '팩'이다. 팩은 가족이 확대된 것으로, 수컷이 우두머리인 철저한 계급사회이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한 번에 한 배의 새끼들만 낳는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을 보살피고 먹이고 사냥을 하는 일은 모두 팩이 공동으로 책임진다. 늑대들은 음식이나 공간에 따라 스스로 개체 수를 규제할 줄도 안다. 임신한 암컷의 수, 새끼들의 수를 제한하기도 하고 이미 태어난 새끼들의 생존까지 통제함으로써 철저하게 팩의 멤버 수를 지킨다. 그러다 보니 야생 늑대 개체 수는 항상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새끼들은 대부분 어릴 때 죽는다. 다른 늑대 종류와 달리 툰드라 늑대는 유목 생활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인 순록 무리를 따라 배런 랜드에서 북극 근처 숲까지 갔다가 겨울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굴에서 생활하는 5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는 굴 부근에서만 머무르며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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