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 이야기
전현수 지음 | 불광출판사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 이야기
전현수 지음
불광출판사 / 2010년 5월 / 280쪽 / 13,800원
1장 마음 열기 - 공감, 전이, 초심
공감정신치료에는 많은 종류가 있어 각기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지만, 모든 정신치료에는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통되는 것은 환자에 대해서 공감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공감은 한마디로 자신을 멈추고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입니다. 공감은 동정과는 다릅니다. 동정은 나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안 좋은 처지에 대해 '안 됐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 느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감을 해 보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알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훈련이고, 모든 훈련이 그렇듯이 훈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신치료자는 공감을 통해 환자를 이해합니다. 치료자는 질문을 통해 환자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에 대한 이해가 쌓입니다. 또 환자도 치료자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경험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이론에 의하면 자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입니다. 밥을 먹으면 그것은 경험하는 자아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먹는 행위를 관찰하면 그때 관찰하는 자아가 작동하는 것인데, 관찰하는 자아가 작동하면 행위를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로 말을 할 때 관찰적 자아가 작용하면 말을 잘못 할 때 고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신치료는 관찰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과정인데, 명상을 해도 관찰적 자아가 발달합니다.
정신치료에서 공감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공감이 정신불건강과 정신적인 문제 그리고 정신장애의 발생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치료실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행불행과 성공, 실패는 인간관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렇게 중요한 인간관계의 열쇠가 되는 것이 공감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 잘 모르면 그 사람과 잘 통할 수 없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를 때, 특히 상대가 셀 때 두려움에서 방어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공감을 통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알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흔히 상대를 잘 모르고 두려움에서 나온 말이나 행동이 상대를 자극하여 위험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지 존중하고 자극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감을 통해 상대를 잘 파악하면 상대를 섣불리 자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람과 부딪칠 때 두려워서 피하거나 방어적이 되어 상대를 자극하기보다는, 비록 입장은 다르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자극하지 않고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상대와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세계는 이제 왕래가 잦아지고 서로 만날 일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 우리는 세계시민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문화까지 공감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나라와 공감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 못할 경우, 가족이나 이웃, 직장동료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이나 분쟁보다 그 영향이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공감이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21세기의 문맹은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이(轉移)
치료 시간에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는 일상적인 만남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와는 다른 특수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환자에게 치료자에 대해서 전이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이는 환자가 어렸을 때 부모나 주위 중요한 사람에게 가졌던 감정, 태도 등을 치료자에게 가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환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이가 일어났을 때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으로 하여금 그런 감정을 실제로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치료자는 환자를 치료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이는 긍정적 전이와 부정적 전이가 있습니다. 긍정적 전이는 치료자에 대해서 가지는 우호적인 감정입니다. 부정적이 전이는 치료자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전이든 부정적인 전이든 전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그것을 치료에 이용해야 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동료 정신과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선승인 경봉스님이 참선을 하는 스님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한 비단 장수기 비단을 짊어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비단을 팔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을 넘다가 용변이 마려웠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단을 풀숲에 풀어놓고 조그만 인기척이라도 바로 알 수 있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단이 없어진 것입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가를 찾아갔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던 원님이, 사람이 아니라도 그 광경을 본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비단 장수는 "원님, 그 자리에 돌부처가 서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원님은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돌부처가 관가 마당에 끌려 왔습니다. 원님은 돌부처에게 "네 눈앞에서 이 사람의 비단이 모두 없어졌다. 네가 말하면 이 불쌍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보아라"라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돌부처는 묵묵부답으로 서 있기만 했습니다. 계속 심문했지만 그래도 돌부처가 묵묵부답이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형틀에 묶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곤장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돌부처는 형틀에 묶인 채 곤장을 맞고 원님은 큰소리로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이 돌부처에게 계속 말하라고 하는 일이 관가 마당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졌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마침내 온 마을 사람이 관가 담에 붙어 광경을 지켜보고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원님이 이상해졌어. 실성한 모양이야." 그러자 원님이 엄숙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는 이 억울한 비단 장수의 잃어버린 비단을 찾아주기 위해 죄인인 돌부처를 심문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웃어서 신성한 공무를 방해하는 사람은 잡아서 옥에 가둘 것이니 웃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님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웃었습니다. 그러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명령해 웃은 사람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사람들은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원님이 이방에게 마을에 방을 붙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집에 있는 비단을 한 필 가져오면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풀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옥에 갇혀 있는 가족의 수만큼 비단을 가지고 관가로 왔고, 관졸들은 가져온 비단을 자세히 기록하고 해당되는 사람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옥에 있던 사람들이 다 풀려나가자 원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비단을 모두 관가 마당에 쌓아놓고 비단장수에게 비단을 찾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 비단에는 표시가 있어 자신의 비단을 알아볼 수 있었기에 비단 장수는 비단을 찾았습니다. 원님은 기록을 보고 그 비단을 가져온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비단을 훔친 경위를 자백 받았습니다.
앞에 있는 돌부처 이야기에서 원님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아서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한 이제는 더 해도 가능성이 없다는 정도까지는 노력하고, 그 시점에서 돌부처 이야기를 떠올려 조금 더 노력한다면 우리가 처음에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심(初心)
앞서 말한 돌부처 이야기처럼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자주 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심초심(禪心初心)'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사인 스즈끼 순류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봤더니, 어떤 제자는 깨닫고 어떤 제자는 깨닫지 못했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깨닫는 제자는 스즈끼 순류에게 처음 올 때 가진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못 깨닫는 제자는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스즈끼 순류는 처음 자기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단 하나다. 그것은 나에게 처음 올 때 가졌던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라고 늘 말했다고 합니다.
진료실에서 보면 환자도 처음 올 때는 환자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판단을 하고 옵니다. 즉 치료를 받으러 오는 동기는 다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이대로는 안 되고 변화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로 인해 직업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가족 간에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술을 끊고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술에게 지곤 했습니다. 이 환자에게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환자는 이 글귀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술을 끊겠다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를 보고 술에 대한 유혹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서 좋은 변화가 있는 경우에도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계속 그대로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중요한 변화는 계속 일어날 겁니다. 처음 가진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며 앞서 말한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 줍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처음에 낸 마음을 그것을 성취할 때까지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이 흔들릴 때 그것을 이겨내는 경험을 하면 처음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마음을 계속 가지는 것이 우리 속에 자리 잡을 때, 우리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살아가면서 놓치지 않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2장 마음 알기 - 명상을 통한 순간 집중과 효과
'세상의 이치'라고 부르는 것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고 하여 내가 '세상의 이치'라고 이름붙이고 환자 치료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불교로부터 온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인과보설(業因果報說) 또는 업설(業說)이라고 부릅니다. 불교 공부를 통해 업인과보설을 알았을 때 '아,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속성에 따라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과 생명을 가지고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든지 자연법칙(물리법칙)을 따릅니다. 이에 반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존재가 크든 작든, 복잡하든 단순하든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가해진 자극에 나름대로 반응하지만,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존재도 속성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따라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인 동시에 다른 '나'에게는 '남'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세상이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세상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와 나와 같이 생명은 가졌지만 내가 아닌 '남'과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자세히 보면 '나'와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 사이에 그리고 '나'와 '남' 사이에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나와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과의 상호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 법칙대로 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나와 남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는 법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에게만 이득이 되게끔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이 자연법칙을 따르듯이 나와 남 사이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적절하게 행동함으로써 억울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와 남과의 상호작용을 보겠습니다. 내가 남에게 하는 행동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도 위하고 상대도 위하는 행동이 있고, 나는 위하지만 상대에게는 해가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이때 상대를 위하는지 해하는지는 상대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위하고 상대도 위하는 행동은 순조롭습니다. 그러니까 즐겁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롭지만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저항을 불러옵니다. 그러니까 괴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진행됩니다. 이것이 바로 법칙입니다. 이것을 법칙화하기 위해 용어를 써서 정리하면, 나와 남 둘 다 이로운 것을 선(善), 나는 이롭지만 남에게는 해가 되는 것을 악(惡), 순조로운 것을 낙(樂)이라 하고, 저항이 있는 것을 고(苦)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입니다. 선한 원인에는 즐거운 결과가 있고 악한 원인에는 괴로운 결과가 있습니다. 이 법칙을 사회법칙 또는 윤리법칙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자연법칙과 사회(윤리) 법칙에 따라 법칙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 법에 맞지 않는 것을 바라면, 다시 말해 욕심을 일으키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세상의 이치로 돌아오는 계기로 삼아 세상의 법칙을 알고 법대로 살면, 괴로움이 없고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이치'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자들에게 적절한 때에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은연중에 자기를 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적절하게 잘하면 됩니다. 그렇게 안 될 때 우리는 괴롭게 되고 정신건강이 나빠집니다.
명상의 열한 가지 이득
명상은 여러 종교 단체나 집단에서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도 핵심으로 여겨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호흡에 집중합니다. 호흡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살아있는 한 항상 계속되기 때문에 흩어지기 쉬운 우리의 의식을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한곳에 모으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과거나 미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생깁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현재에 집중하면서 마음의 고요함과 안정을 얻고,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집착과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필요한 상상을 줄여 우리의 에너지를 현재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피곤하면 쉬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명상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둘째, 명상을 통하여 관찰적 자아가 강해집니다. 셋째, 명상은 과거를 놓는 훈련입니다. 그러나 모든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놓는 것이 아니라, 기억은 하지만 현재에 맞지 않고 고통을 초래하는 과거의 반응은 현재에 맞는 적절한 반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넷째, 명상은 부정적인 과거를 정화하는 작업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거에 가졌던 무지, 욕심, 미움을 보면서 그것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