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끌어당기는 절대법칙
월러스 D. 와틀즈 지음 | 북허브
건강을 끌어당기는 절대법칙
월러스 D. 와틀즈 지음
북허브 / 2010년 4월 / 211쪽 / 12,000원
건강을 지키는 데는 원칙이 있다건강을 끌어당기는 절대법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근본적인 진리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원활한 기능과 활동은 생명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작용한 결과이다. 우주에는 모든 사물의 기초가 되는 살아있는 근원물질이 존재한다. 이 근원물질은 생명의 원칙이 바탕이 되며, 원형의 상태에서 우주의 모든 공간으로 스며들어 그 공간을 채운다. 고도로 정제되어 공기 사이로 퍼져나가는 에테르처럼 이 물질은 모든 사물에 파고들어 투과된다. 바로 이 물질이 모든 생명의 뿌리가 되는 생명의 원형이다. 사람 역시 이 근원물질의 한 형태이며, 따라서 사람 안에 건강의 원칙이 있다. 건강의 원칙이 활발하게 작용할 때 우리 몸의 모든 수의적 기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
건강의 원칙이 우리 몸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체계"나 "치료법"을 사용하느냐와 상관없이 우리가 특정방식으로 생각할 때 이 건강의 원칙은 활발하게 작용한다. 생각으로 어떻게 건강의 원칙을 작용시킬 수 있는지 증명해보면 각기 다른 방식, 혹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치료했음에도 환자의 병이 치료될 때가 종종 있다. 대증요법으로 몸 속 독성물질의 작용을 없애는 해독제를 다량 투여하여 병을 치료하는 경우도 있고, 동종요법으로 질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독을 극소량 투여하여 병을 이겨내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대증요법이 해당 질병에 적합한 치료방식이라면, 정반대의 치료방식인 동종요법으로는 결코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어야 이치에 맞다. 만약 동종요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면, 대증요법으로 해당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 위의 두 가지 치료방식 모두 실제로 많은 질병을 '치료'한다. 또한 동일한 의학학파 내에서도 의사들을 각기 다른 치료법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의사에게 소회불량 증세에 대해 진찰을 받아보자. 각각의 의사는 아마 전혀 다른 성분의 약을 처방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사람의 병이 각기 다른 성분의 '치료약'이 아닌, 사람 안에 잠재한 건강의 원칙에 의해 치료된다는 것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
건강에는 건강한 생각이 최고다
질병과의 정신적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건강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대상을 거부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대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질병을 거부하고 부인하기보다는 건강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질병을 부인하는 행동은 건강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이 질병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건강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을 부인하는 행동은 더 심각한 질병을 초래할 뿐이다. 질병과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면 건강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아가야만 한다. 건강을 끌어당기는 절대법칙의 첫 단계는 이처럼 건강과 정신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튼튼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건강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습관화시켜라.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 이상적인 체력조건을 가진 건장한 자신의 모습을 선명한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부를 끌어당기는 절대법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상상하면 이 과정이 훨씬 쉬워진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지,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지 우리는 기억 속에서 쉽게 특정 형상을 끄집어 낼 수 있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완벽한 건강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머릿속에 명확한 이미지를 그리기가 쉽지 않다.
이상적인 건강을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 이미지로 선명하게 그려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완전한 건강의 개념을 이해하고, 완전한 건강을 자신과 연관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건강의 개념은 특정 상황에 대한 머릿속 그림이라기보다는, 건강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며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의 완벽한 기능에 대한 생각이다.
완벽한 체격조건을 갖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이 역시 도움이 된다. 이때 상상 속 자신이 단순히 완벽한 체격조건만 갖춘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처럼 모든 일을 해내고 있어야 한다. 등을 곧게 펴고 힘찬 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고,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하루 일과를 거뜬히 해치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볼 수도 있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상상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해볼 수도 있다.
병약하고 아픈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절대 생각하지 마라. 강인한 체력을 갖춘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생각하라. 건강의 개념이 확실히 잡힐 때까지 여가시간마다 건강한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을 생각하라. 항상 건강하게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과 자신을 연관 지어 생각하라.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건강의 개념이다.
몸의 각 기관이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부학이나 생리학을 공부하고 구체적으로 각 기관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려볼 필요는 없다. 간, 심장, 위를 각각 별도로 '치료'할 필요도 없다. 사람 안에는 건강의 원칙이 내재하고 있으며, 바로 이 건강의 원칙이 우리 몸의 비수의적 기능을 조절한다. 건강에 대한 생각은 이 원칙을 통해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전해진다. 간을 다스리는 원칙이 따로 있고 위를 다스리는 원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의 원칙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생리학에 대한 지식은 얕으면 얕을수록 오히려 득이 된다. 학문적 지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학문적 지식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불완전한 생각을 하게 된다. 불완전한 생각은 불완전한 생명기능, 즉 질병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까지도 생리학에서는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기간을 열흘이라고 주장했으며 오직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보다 오랜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생리학적 이해에 기초하여 우리는 사람이 약 닷새에서 열흘 정도만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었다. 실제로 조난사고, 기근 및 기타 재난으로 닷새에서 열흘 정도 음식을 먹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다. 하지만 테너박사의 40일 금식수행, 듀이박사 및 기타 연구가들의 금식 치료에 대한 연구, 그리고 40일에서 60일 정도 금식을 시도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상당히 오랜 기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 안에서 음식이 어떻게 소화되는지, 음식이 어떻게 작용하여 몸의 원기를 회복시켜주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간, 비장, 췌장의 정확한 기능이 무엇이며 이들 장기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몸에 영양분이 흡수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모른다. 신체장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이론을 제시할 뿐, 정확하게 알진 못한다. 생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이론과 논쟁의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된다. 서로 다른 주장들을 받아들이다보면 우리는 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런 그릇된 판단은 건강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굳어지며 신체기능을 왜곡시키고 질병을 야기한다.
가장 완벽한 수준의 생리학적 지식도 사람이 건강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지극히 건강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고, 숨쉬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학 외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점차 깨닫게 되겠지만 사실 이런 동기부여는 굳이 생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위생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몇 가지 근본명제가 분명 존재하고 그 명제에 대해서는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이 명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리학과 위생학에 대해서 별도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학문적 지식은 불완전한 신체기능, 즉 질병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고, 이런 생각은 우리 몸의 건강한 신체기능을 저해할 뿐이다. 완전한 건강을 추구하고 싶다면 질병을 인정하는 어떤 '학문'도 공부하면 안 된다.
당신 몸의 현재 상태에 대한 분석, 그 원인과 예후에 대한 분석을 그만두고 건강의 개념을 정립하는 일에 몰두하라. 건강의 가능성, 그리고 건강 그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하라.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일과 그 충만한 기쁨을 생각하라. 확실한 건강의 개념을 가지고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라.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머릿속에 질병이나 불완전한 신체기능에 대한 생각이 드는 순간 재빨리 건강의 개념과 어울리는 생각으로 이를 대체하라.
자신이 건강의 개념을 분명히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라.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하며 이와 반대되는 생각은 하지 마라. 근원물질은 당신이 건강의 개념과 합일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나간다. 우리의 신체조직으로 스며들고 그 안을 채워 나가는 이 지적물질은 건강한 세포로 온몸을 다시 채운 것처럼 신체기능이 완벽하게 작용하도록 돕는다. 이 지적물질은 모든 공간으로 파고들고 투과하여 이 세상 모든 사물의 기초가 된다. 이 물질은 당신의 몸 안에도 스며들어 있으며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당신이 지극히 건강한 신체기능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지극히 건강한 신체기능을 구현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끈기 있게 상상하고 다른 모습을 떠올리려는 유혹을 물리쳐라. 완전한 건강을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라. 정신체에 관한 한 그건 분명 진실이다.
사람은 정신체 육체를 가지고 있다. 정신체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람이 의식적으로 동일한 이미지를 꾸준히 생각하게 되면 종국에는 육체의 형상도 생각대로 변하게 된다. 정신체 안에서 계속해서 건강한 신체기능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육체의 신체기능도 건강해진다. 정신체의 생각이 바로 육체의 변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사람은 순식간에 우리 몸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형체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듭하면 근원물질은 일정한 성장패턴을 밟는다. 자신이 생각한 건강한 모습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근원물질은 한 세포 한 세포를 새로이 소생시킨다. 완전한 건강에 대한 생각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신체기능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완전한 신체기능은 머지않아 당신에게 완벽한 건강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번 장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당신의 육체는 정신체를 형성하는 지적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정신체는 육체의 기능을 통제한다. 따라서 질병이나 불완전한 신체기능에 대한 생각이 정신체에 스며들면 육체가 병이 들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 만약 당신이 병을 앓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 근원물질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당신이, 혹은 당신의 부모님이 질병에 대한 생각을 고착화시킨 까닭이다. 옳건 그르건 사람은 잠재의식적 이미지를 가지고 태어나고 당신 부모님의 생각이 당신의 건강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은 자연스럽게 건강을 추구하며, 의식적으로 건강에 해가 되는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모든 신체기능은 완벽히 건강하게 작용한다.
당신 속에 내재한 자연의 힘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았을지 모르는 질병의 그림자를 극복할 수도 있다. 생각을 조절하는 법을 익혀 완전한 건강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그리고 지극히 건강한 방식으로 수의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건강은 곧 찾아온다.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감히 건강이라 부르고 싶다
이번 장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신이 내려준 건강을 누리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여기서 신은 만물의 기초이며 모든 생명의 뿌리인 근원물질을 지칭한다. 이 근원물질은 더욱 안전한 생명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기를 희망한다. 이 지적물질은 어떤 형태로든 구체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원형의 상태에서 모든 사물에 파고들어 투과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과 소통하는 근원물질은 모든 힘과 에너지 원천이며, 스베덴보리의 이론처럼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기운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입된다. 근원물질은 사람의 생명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그 가운데 자신이 더욱 완전하게 표현되기를 원한다. 당신이 이 근원물질과 조화를 이루며 소통할 때 근원물질은 당신에게 건강과 지혜를 선물한다. 당신이 보다 충만한 삶을 추구할 때 이 절대지성, 즉 근원물질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된다.
절대지성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보다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절대지성의 목표는 당신이 보다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충만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절대지성과 소통하며 협력하고 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절대지성은 모든 사람 속에 내재하여 있기 때문에 절대지성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만한 삶을 기원해야 한다. 이렇게 절대지성과 소통하고 협력하게 되면 당신은 다음의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된다.
첫째, 지혜를 얻게 된다. 내가 말하는 지혜는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생명의 진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에 기반을 둔 바른 판단력과 실행능력이다. 즉, 진리를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한 진리를 최대한 실천하는 능력이다. 지혜는 가장 숭고한 목표를 추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상의 수단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침착하고 분별 있게 행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조절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줄 알고, 그릇된 판단으로 어려움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에 따라 적절한 행동노선을 선택하고 자신을 다스려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지혜로운 사람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꿰뚫고 있는 존재는 분명 지혜로울 것이라는 명제로 미루어 볼 때 지혜는 반드시 절대지성의 근본적 속성이다. 이 절대지성과 조화를 이루고 한마음이 될 때 당신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절대지성은 모든 사람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절대지성이 이 세상의 전부이다. 따라서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때 절대지성의 지혜를 얻게 된다. 타인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빼앗으려고 하거나 타인에게 불의를 행하려고 마음먹으면 절대지성의 지혜는 당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더불어 자신을 위한 목표도 지고한 것이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절대지성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육체, 정신, 영혼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간다. 육체는 욕구를 먹고, 마시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고 우리 몸에 여러 가지 기분 좋은 육체적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충족된다. 정신의 욕구는 더 좋은 옷, 명예, 권력과 지식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영혼의 허기는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본능을 충족시키면 달랠 수 있다. 육체, 정신, 영혼의 욕구 어느 것 하나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완전하게 채워질 때 사람은 가장 지혜롭고 완전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동물처럼 육체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신과 멀어지고 지혜도 얻지 못한다. 정신이 메마른 욕구만을 충족시키며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신과 멀어지고 지혜도 얻지 못한다. 영혼의 충만함을 위해 이타적인 사랑만 추구하며 남을 위해서만 헌신하며 사는 사람 역시 신과 멀어지고 지혜도 얻지 못한다. 절대지성, 즉 신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완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육체, 정신, 영혼의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이 넘치면 다른 한 부분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건강에 대한 욕구의 이면에는 보다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있다. 충만한 삶에 대한 욕구의 이면에는 당신 안에서 보다 완전한 삶을 구현하고자 하는 무형의 지적물질의 욕구가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