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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집과 꽃담

이종근 지음 | 생각의나무
한국의 옛집과 꽃담

이종근 지음

생각의나무 / 2010년 4월 / 336쪽 / 20,000원



서울 경기도



창덕궁 대조전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 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사와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 침전 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했다. 하루의 바쁜 일과를 끝낸 임금이 사사롭게 편히 쉬는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을 침전, 또는 내전이라고 부른다. 침전은 잠을 자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경복궁의 강령전(왕)과 교태전(왕비), 창덕궁 희정당(왕)과 대조전(왕비), 창경궁 경춘전(왕)과 통명전(왕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왕비의 침전은 지붕의 제일 높은 곳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임금이 왕비를 찾아가 밤을 함께 지낼 때 하늘과 땅의 정기가 막힘없이 통하게 하여 훌륭한 왕손을 얻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희정당은 앞으로 남행각의 협양문과 선양문을 통해 들어오고, 뒤로는 대조전 행각과 연결되어 선평문을 통해 대조전으로 들어간다. 경복궁의 강녕전을 헐고 희정당을 지을 때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함께 옮겨 대조전을 지었는데, 이때 창덕궁에 적합하도록 그 구조를 새롭게 했다.

이곳의 굴뚝은 경사진 언덕을 장대석으로 쌓아 네 단의 화단을 마련하여 괴석과 나무를 심었다. 맨 위의 화단에는 꽃담을 쌓았으며, 중앙과 동쪽에 협문을 갖고 있다. 화단은 굴뚝을 전돌로 쌓았다. 벽체에 학 용 코끼리 등 길상적인 문양이 조각되었고, 상부는 목조 건축물의 지붕처럼 꾸미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도록 했다. 굴뚝의 기린도 보인다. 용이 땅에서 암말과 결합하여 낳았다는 동물로, 수컷이 기麒, 암컷이 린麟.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다. 사슴 몸에 소의 꼬리, 말과 같은 발굽과 네 개의 다리 앞쪽에 화염 모양의 갈기를 달고 있으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궁궐 왕릉 유적 내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나무는 창경궁 경복궁 어구의 매화 살구꽃, 창덕궁 낙선재의 매화, 덕수궁의 대한문에서 중화문에 이르는 산벚꽃, 조선 세종대왕 영릉과 사도세자 융릉 산책길의 진달래, 조선 태조 건원릉 동구릉과 단종왕비(추존 인종 부) 조선 성종 선릉의 산벚꽃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2005년 7월 20일 인천 국제공항. 도쿄발 비행기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내려졌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리던 이구는 불과 나흘 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영결식은 7월 24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치러졌다. 1907년 그의 아버지 영친왕 이은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면서 시작된 대한제국 황실의 비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희정당의 철쭉, 가는 봄이 서러워 그렇게 붉게 피었나, 가슴에 북소리를 내며 그렇게 하얗게 지금도 울고만 있는가.

종묘

담은 구분이다. 때론 나와 너를 나누며, 때론 인간과 자연을 가른다. 궁극적으로는 '자타自他'란 담을 사정없이 허물고 서로 하나 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담의 다른 말인 '울'은 곧 우주를 뜻하니 담은 또 다른 우주의 경계선이다. 스쳐 지나가면 그저 벽일 뿐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 문화의 멋과 흥이 숨어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담이 있다. 꽃담, 말부터 참 예쁘다. 꽃담은 소통이다. 집주인의 성품을 드러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꺼이 초청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소망한다. '여기는 내 땅이야','타인 출입금지'식의 엄포가 없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를 빼닮았다. 속도와 경쟁에 정신을 빼앗긴 우리가 청맹과니처럼 스쳐 보냈을 뿐이다.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경계의 담장. 하지만 옛 조상들에게 담장은 안과 밖을 구분 짓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있는 무한 경계의 환경예술이었다.

꽃담은 꽃 한 송이가 예쁘게 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담 자체가 한 편의 서정시요, 설치미술이다. 그래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조용함과 단아함 속에 젖어보는 고택 명상의 시간은 오매불망, 그대 반짝이는 별빛이 되고, 이에 내 소망은 교교한 달빛이 된다. 꽃담은 주인의 지혜와 마을 목수와 장안 목수의 기원과 상징이 피어나는 글자꼴, 문자난장과 꽃 그림, 색채 모자이크로 장식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설치 미술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다. 특히 꽃담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흙으로 남은 마지막 작품이며, 일반 백성, 사찰, 궁궐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삼국사기』의 「옥사조」를 보면 "담은 6두품은 8척, 5두품은 7척, 4두품 이하와 일반인들은 6척 이하로 쌓았고, 진골 이하에서는 담에 양동梁棟을 만들지 못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양동이란 기와지붕 아래 수평으로 가로지른 둥근 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이미 삼국시대에 담이 일반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담은 이후로 신분의 상징이 된 만큼 높이 이외에도 재료나 지붕 등도 다르게 표현됐다. 서민들의 담은 개나리, 가시나무 등을 심어 자연스럽게 울을 이룬 생울이나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바자울 혹은 흙담이었으며, 양반집 담은 네모반듯한 돌들을 바르게 쌓은 사고담(四塊石, 사괴석, 사고석담)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먹히는 것이 사고석담과 꽃담이다. 돌각담 중 사고석으로 쌓으면 사고석담이 되고 전돌로 여러 가지 상징 문양을 새겨놓으면 각각 꽃담花墻, 영롱장玲瓏墻 등이 된다. 이 가운데 꽃담은, 화초담花草墻, 화문담花文墻으로도 불리며 색전돌과 흰 화장줄 눈, 색전돌과 삼화토, 무늬 새겨 구운 도판, 암키와, 수키와 등으로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만들어 아름답게 치레한 장식담으로 우리나라 담장미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영롱장은 벽돌이나 기와로 쌓되 중간 중간에 구멍을 내어 장식한 담으로 주로 십자무늬 또는 반달무늬로 구멍을 낸다.

궁궐의 담은 사고담이다. 양반집보다 높았으며, 담 위에 올린 지붕도 양반집과는 달리 양동을 넣어 그 격을 한층 높였다. 세계문화유산 종묘(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사적 제125호)는 엄숙한 분위기가 시선을 압도하는 가운데 여러 형태의 사고석담의 물결로, 궁궐마냥 강한 파동을 불러온다. 높다란 담장 저편으로 종묘의 중심 건물 정전이 보인다. 장엄하기만 한 정전. 아니 장엄이란 말로 표현하기엔 뭔가 한참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종묘 정전이 아닌가 싶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다. 조선시대의 전통건물로서 일반건축이 아닌 신전건축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많은 건축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칭하여지고 있을 만큼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제227호), 영녕전(보물 제821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가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전등사

전등사(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는 주요 문화재들을 여러 점 보유하고 있다. 대웅보전은 보물 제178호, 약서전은 보물 제179호, 법종은 보물 제393호다. 전등사는 특히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과 꽃은 피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는 은행나무에 관한 전설이 유명하다. 나부상은 마치 벌을 받다가 잠시 딴청을 피우는 모습을 연상케 하니 나부상을 만든 목수의 재치와 익살을 느끼게 한다.

훤칠한 키의 큰 굴뚝이 시선을 압도한다. 기와로 꾸민 멋진 높은 굴뚝, 바로 그 끝에 매달린 능소화는 여름 무더위를 식히는 청량제이지만 넝쿨 하나가 연기처럼 굴뚝을 감싸며 올라가고 있다. 이곳의 굴뚝은 기왓장으로 쌓아 만들어져 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담장의 문양도 아름답다. 전등사라는 편액이 연등과 어우러져 있다. 옛날 관음보살이 현신해서 전등사를 관의 핍박으로부터 구했다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다. 풍수가들은 '마니산이 할아버지 산이라면 정족산은 할머니 산으로,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어 전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복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등이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믿음으로 절을 잘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충청 강원도



개심사

개심사 가는 길은 황홀 그 자체. 드넓은 초원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볼 수 있고, 개심사로 오르면 가지런한 송림이 마치 동양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미소를 지어본다. 단풍나무, 풀 한 포기, 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예전 같으면 개심사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게 사찰 입구의 좌우에 '세심동洗心洞'과 '개심사 입구開心寺 入口'라는 글자가 제멋대로 쓰인 작은 두 개의 돌기둥이었다. 최근에는 주차장과 가까운 곳에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 일주문을 세웠다.

개심사開心寺.'마음이 열리는 절(또는 마음을 열게 만드는 절)'이란 이름처럼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가 백미다. 입구의 소나무 숲부터 흐르는 물은 세속의 욕망을 정화하는 안심습지다. 느슨하면서도 여유로운 멋, 특히 심검당은 단청도 하지 않아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작고 소박한 요사채다. 일주문을 지나면 세심동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야 하리라. 돌계단은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게 적당히 낮은데다가 솔밭 사이의 굽잇길은 절묘하게도 태극선을 닮았구나. 돌계단은 울창한 솔숲 사이로 나 있어 한낮에도 그늘이 짙다. 장방형의 연못 가운데 외나무다리가 놓였는데, 현세와 피안을 잇는 다리인 셈이다. 잔잔함이 느껴지는 푸근한 외나무다리에서'마음'을 시험해보며 다시 한 번 '무욕의 나'를 닦는다.

굴뚝을 통해 '개심(開心, 마음을 열다)'은 곧 '개심(改心, 마음을 고쳐먹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열 개開'자는 '열다, 피다, 펴다, 개척하다, 시작하다, 깨우치다'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 부와 음을 나타내는 부수를 제외한 글자 '견'의 전음轉音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마음心'은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을 나타내는 글자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으며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으니 '마음이 곧 심장'이다. '심장은 이내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상제님'도 된다. 그렇다면 '개심開心'의 진정한 의미는. 문 가운데 가장 열기 힘든 게 마음의 문이다. 그러나 불법의 세계에선 문이란 애당초 없다. 일주문이 늘 열려있는 연유다.

고성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중요민속자료 제235호)은 다양한 굴뚝을 만날 수 있어 굴뚝마을로도 불린다. 여러 개의 옹기를 이어 연통 노릇을 하게 만든 옹기굴뚝. 멋스런 옹기굴뚝 하나가 보인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암키와 위로 3개의 옹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제, 굴뚝에 항아리를 얹는 일은 왕곡마을의 전통이 됐다. 장작불을 때면서 난방을 하던 시절 굴뚝 가장 꼭대기에 세워서 비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굴뚝에서 배기되는 연기의 배출을 방해하는 바람을 막아주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 옹기연가다. 온돌의 구들 고래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뽑아내는 굴뚝은 속이 뚫린 통나무굴뚝, 옹기굴뚝, 오지굴뚝, 기와굴뚝, 흙벽굴뚝 등이 있고, 그 높이와 크기 역시 다양하다.

옹기굴뚝을 통해 효녀 심청, 충신 이충무공도 나왔으며, 성춘향과 이도령 같은 계급을 초월한 사랑도 싹틀 만했다. 옹기굴뚝에는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사해동포주의,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남에게 이득을 주라는 박애주의도 있었다. 한 자가 채 안되는 고기는 제가 살던 물가로 보내주는 용서가 있었으며, 한적한 시골의 장날에는 상인들이 그냥 끼워주는 눈깔사탕도 있었다. 왕곡마을 사람들이 언제나 실망치 않고 웃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굴뚝이 일러준 낙천적 사고방식 때문에서 비롯된다.

송지호 호반을 끼고 울창한 송림에 쌓여 있는 등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전통 한옥마을엔 50여 채의 기와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부분 마을 안길과 연결되는 앞마당은 개방적이고 공동의 작업 공간인 반면, 뒷마당은 뒷담길에서 내려다보더라도 지붕만 보여 개인의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게끔 되어 있다. 노릇한 초가지붕과 사립문, 정겨운 돌담과 고샅, 그리고 동틀녘 닭이 울고 저녁 해거름에는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붉은 노을 속으로 피어오르는 마을 풍경은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포근함을 선사한다.

전라도



김정회 고가

선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고창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유적을 포함, 기암괴석과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선운산, 고창읍성, 신재효 고택과 동리국악당, 고창판소리박물관,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름이 넘실대는 청보라밭, 메밀밭, 석청온천, 해안선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서예가 김정회(1903~1970) 고가(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51번지, 전북 민속자료 제29호)에 활짝 핀 꽃담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 넉넉한 농촌, 들녘 풍경, 찬란한 문화유적 등 체험체류형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창사람들의 여유를 노래하듯, 그 조형성이 더욱 탁월하다. 김정회 고가 입구의 연정교육문화연구소(소장 김경식, 김정회 선생의 장손)를 향해 진행하면서 눈을 돌리니, 좌우측의 담장에 꽃담장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이한다. 자잘한 기와 조각을 세운 후 빗금을 엇매기면서도 자못 규칙적이다. 상당히 곰살궂은 후손들이 열심히, 아주 정성스럽게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맞담의 매력은 바로 이 같은 정성으로 빚어지는 것이다.

〈묵죽도〉병풍과도 같은 꽃담 앞에서 보정선생의 예술혼을 아련하게 느껴본다. 대나무의 다양한 생태를 능숙한 필체로 표현하듯, 대문 좌우로 정갈하면서도 기다랗게 맞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가의 안쪽 좌측 담장 역시 이 같은 형태의 꽃담이 존재하며, 안채의 옆과 뒤편 역시 같은 류의 꽃담장이며, 안채엔 익숙한 합각이 보인다. 김정회 선생의 난초와 대나무 같은 기상이 한눈에 펼쳐지는 대상에 다름 아니다. 이 가운데 용마루를 가진 팔각지붕, 홑처마, 그리고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가옥 양식이 보통 다른 집에 비해 아주 색다른 맛을 풍긴다.

바로 옆 도산서당(고창읍 도산리 136번지,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에도 꽃담이 자리하고 있다. 도산서당은 17세기경에 세워진 전북의 대표적인 서당으로, 김기서 강학당(고창군 고수면 상평리, 전북 유형문화재 제100호), 스무재(입재)서당(상하면 검산리), 관서당(설립 연대 확인 불가), 현곡정사(고창읍 주곡리, 전북 유형문화재 제57호)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바 있다. 현재 만수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인가와 약 50m 떨어진 곳에 존재, 주위가 논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섬뜸'으로 불리우면서 명칭이 섬뜸서당이 됐다. 깨진 기왓장을 이용,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 꽃담장이 사방으로 빙 둘러 있다.

전주 한옥마을 최 부자댁

크고 작은 기와집 8백여 채가 빼곡히 들어찬 전주 한옥마을은 비록 낡고 오래되긴 했지만 제대로 지키고 가꾼 우리 삶의 흔적들이 귀중한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기와지붕 용마루에 간결하고 단아한 내부 구조와 낮고 소박한 토담의 따뜻한 옛날 집들이 각기 다른 삶과 사연을 품고 있는 한옥마을 주변에는 유서 깊은 유적들도 많다. 전북 전주시 풍남동 3가 최 부자댁(전주 코아리베라 호텔 뒤) 토담집도 이 가운데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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