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 물푸레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물푸레 / 2010년 4월 / 281쪽 / 12,000원
1부 때를 놓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마지막 말(축복, 키스, 화해, 가족애, 작별인사)
단 한 마디의 말이 인생을 바꾼다고통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시험하고, 두려움은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킨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시련과 비극이 잇달아 일어날 때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가 오히려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주변에서 이러한 인간의 잠재력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경우를 나는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흔히 치유의 도구로 쓰이는 말의 힘을 얕잡아본다. 하지만 나는 무기력과 절망의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말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특히 용서와 감사, 사랑과 작별 인사의 뜻을 담은 말들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새로운 믿음을 싹틔우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희망의 불꽃을 지펴 주었다.
이처럼 사려 깊은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우리는 공동체 정신, 인간다움, 저마다 타고난 개성을 고양할 수 있다. 더욱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 감사, 축복의 말을 들은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죽은 뒤로도 먼 훗날까지 혜택을 누린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당신 자신의 정신과 영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했던 '그때'를 떠올려라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끝날 수는 있지만 끝난다고 해서 반드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성으로 가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불발로 끝난 미완성일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완성된 관계 속에서 화목함과 평온함을 느낀다.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완전함을 느끼는 것은 못한 일도, 못 다한 말도 없어서 아무 미련이 없을 때일 것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 말을 하는 일은 삶의 완전함을 느끼게 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마침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이스라엘인 폴란스키 부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호스피스 일을 하는 린에게서 60대 중반에 쓰라린 고통을 당한 그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금이 간 부부관계 때문에 괴로워할 때 서로의 마음을 말로 주고받는 일이 강력한 치유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입증해준 부부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인은 자궁암 말기여서 심한 통증으로 상담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주로 폴란스키 씨와 상담했는데, 린이 마지막 말을 나누는 것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아내가 죽기 전에 용서와 감사, 사랑과 작별의 말을 전하도록 권했을 때, 폴란스키 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요, 나를 용서하라는 말은 할 수 있어요.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 마당이니, 용서하겠다는 말인들 못할 게 없겠죠. 고맙다는 말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나 이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못합니다."
린이 자세한 내막을 듣고 싶다고 청하자 어렵게 운을 뗀 폴란스키 씨는 거실 벽에 걸린 아내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이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야말로 아내에게 홀딱 반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뒤로 끊임없이 나를 배신하고 다른 사내를 만나더군요. 은밀히 만나는 것도 모자라 공공연하게 불륜을 일삼았어요. 한 남자와 관계가 끝나면 또 다른 남자와 만나기를 몇 해 동안 거듭했죠. 오래전 일이고 하니, 이제는 그냥저냥 용서는 되는데 도저히 사랑만은 줄 수 없군요. 아내 때문에 내 사랑이 말라붙었으니까요. 믿음을 끊임없이 저버린 여자에게 어떻게 사랑한단 말을 하겠습니까?"
린이 요즘 잠을 잘 땐 한 침대에서 자느냐고 묻자, 폴란스키 씨는 무척 못마땅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물론 등 돌리고 잡니다." 린은 그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옆에서 잠자는 아내를 보면서 당신이 예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 여자를 떠올려보세요. 머릿속에서 아내와 재결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가능하면 마음으로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내의 등에 대고 속삭이듯 아주 작은 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해 보세요.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아마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한 번쯤 해봄직한 방법이죠."
폴란스키 씨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린은 살날이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아내의 마음이 말 한마디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도, 폴란스키 씨에게는 지난 결혼 생활을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얻을 게 많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폴란스키 부인은 사망했고, 린은 폴란스키 씨에게 전화를 걸어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폴란스키 씨가 린의 상담실을 찾아왔다.
"일러주신 대로 했지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어요. 눈을 감고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본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요. 그러고는 아내의 등에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였습니다. 등 돌리고 자는 아내에게 한 말이었지만, 내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에게서 오래 전 젊은 신부가 보였어요. 조금 지나니까 내가 한때 아내에게 품었던 사랑을 정말로 느끼기 시작했지요. 서른 이후로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잠시 후 나는 아내를 깨워서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놀라운 말을 하더군요. '당신은 정말로 멋진 남자예요. 바위처럼 든든한 내 남편!'이라고요. 아내는 내 뺨을 어루만졌어요.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당신이 나를 구원해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키스를 하면서 깨달았죠. 아내가 속으로는 항상 나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내와의 마지막 몇 주가 우리 결혼 생활 20년 중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상처와 슬픔으로 얼룩져 있던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완전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오래 전에 사그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자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내를 향한 사랑을 새로이 깨달은 탓이다. 이들 부부에게 완성은 곧 끊어진 원을 다시 이어 끝매듭을 잘 짓는 것이었다. 불화가 깊어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에게 완성이란 벌어진 틈을 인정하고, 서로가 위기상태임을 깨달아 화해를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2부 관계의 문제를 푸는 열쇠, 용서 Forgiving(기억, 반성, 포용, 참회, 자기애, 의지)의학계에서 말하는 치유란 병이나 상처가 전혀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사람을 되돌려놓는 것이다. 몸에 난 상처는 사고나 상해를 당했을 때 살갗과 피하 조직의 완전함이 깨지면서 생긴다. 오물이 묻고 감염된 조직을 이 상처에서 말끔히 없애면 몸은 자연의 지혜로 파열된 조직을 완전하게 되살린다. 이때 우리는 상처가 나았다고 한다. 마음에 난 상처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두 사람이 갈라선 틈에 끼어 있는 독성물질을 깨끗이 제거하고 친밀감을 되살릴 때 마음의 상처가 낫는다. 용서는 이런 독성물질을 깨끗이 씻어내 줌으로써 한때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과 다시 하나가 되도록 도와준다.
아름다운 죽음은 완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심한 자괴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예전에 담배를 피우다가 지금은 폐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들이 스스로 병을 자초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더더욱 애가 탄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자학한다면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진심 또한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불완전함은 곧 사람이라는 징표이고 어쩔 도리 없는 인간의 한 특성일 뿐이다.
사람은 날 때부터 존엄하다.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존엄성이나 품위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필요한 고통을 끊임없이 겪어야 한다. 병자로서 몸을 의탁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을 내게 알려준 장본인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건강과 자립을 절대적 미덕으로 꼽는 문화적 환경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질병과 신체적 의존을 개인의 실패, 심지어 죄악으로까지 여겼다.
1980년, 아버지는 췌장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다. 치료가 끝난 뒤 나는 아버지를 내 옆 조수석에 앉혀드리고, 뉴저지 주의 경치 좋은 해안을 따라 내가 자란 고향집으로 달렸다.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우고 옆에 있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때, 아버지의 모습은 완전히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오그라들어 얼굴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버지는 체구가 몹시 건장했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빵 굽기였고, 먹는 것을 몹시 즐기셨다. 그런 아버지가 식욕도 기력도, 삶에 대한 의욕도 전혀 없어 보였다.
치료해도 나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와의 시간을 벌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으므로 아버지와 함께하는 일 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를 세우고 아버지 친구 분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커피나 핫도그를 먹자고 했다. 그곳은 간단히 점심을 때우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절대 싫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다 죽어가는 몰골에다 병자 냄새도 날 거야."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내 가슴에도 못을 박았다.
아플 때 다른 사람들이 베푸는 도움과 배려를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육체의 병에 걸렸든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에 걸렸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유는 자기 때문에 가족과 친지들까지 수렁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 있다가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당신을 볼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혼자 고통스럽게 죽어간 당신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보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미 가족과 친지에게 짐이다. 그 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니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도리어 문제이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은 엄청난 대가를 감내해야 하는 짐일 수 있으나, 서로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싶은 타고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병에 걸렸거나 중상을 입었다면 가족이나 친구들 가운데 당신 자신이 '아픈 사람' 역을 맡도록 지명되었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그들이 당신을 보살펴야 하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보살핌을 받는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당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 자신을 용서하라.
3부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고리, 감사 Thank You(기쁨, 기적, 변화)아무리 남아돌아도 결코 해가 되지 않는 것이 고맙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으니 그것은 고마워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상대의 고마움을 받아들이게 되면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놀라운 일이 생길 수 있다. 상대방을 너그럽게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 완벽한 정신적 교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기쁨은 최고의 영양분이다
"평생 동안 당신이 할 유일한 기도는 '고맙습니다'이다.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14세기 기독교 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말했다. 융 학파 정신의학자인 베레나 카스트는 자신이 쓴 『기쁨, 영감, 그리고 희망』이라는 책에서 기쁨의 일대기를 쓰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녀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면서 이 요법을 썼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기쁘면 소외감을 느낄래야 느낄 수가 없다. 기쁘면 마음을 활짝 열게 되며, 황홀경에 젖어 있는 순간에는 자격지심에 빠져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기쁠 때는 자신감이 솟고 자기라는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으레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 나아가 영적 존재를 친밀하게 느낀다."
흥미로운 사실은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과거에 기뻤던 일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얼굴 표정부터 달라져서 미소를 짓거나 심지어 큰 소리로 웃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처구니없게 비칠지라도 기쁨은 경이로운 선물이 된다. 이러한 기쁨과 감사는 마치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엮여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에는 어김없이 기쁨이 뒤따른다.
생애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따금 자신이 살아온 삶과 그 속에서 알았던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깊은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이들은 삶이 덧없이 스러지고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친절과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라고 느낀다. 죽음을 앞두고 새록새록 감사가 우러나올 때 일으키는 변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내면의 평화를 느끼며 임종하게 되는 것은 가족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환자들만의 공통점이다.
스티븐 레빈은 『생애 마지막 일 년』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감사는 인간이 이해하고 존재하는 방식이다. 켜켜이 쌓인 혼란을 풀어가는 타고난 지혜이기도 하다. 아울러 감사는 우리가 잠시 발을 딛고 서 있는 깨달음의 땅이다."
사람은 매순간 성장할 수 있다
'문제 가정'이라는 표현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 가정이란 없다. '가정'이라는 것의 동력은 그야말로 가족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가족 구성원이 성장하고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관계도 변한다. 내 대학동기 알린이 이러한 교훈을 터득한 것은 죽음을 앞둔 의붓아버지를 보살피면서였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의붓아버지에게 가족이라는 애틋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남편일 뿐이었다. "나로서는 참 견디기 힘들었어. 내가 여덟 살 때 친아버지와 이혼하고 8년 동안 내가 엄마를 독차지하고 살았으니 오죽했겠어?"
유부남이었던 의붓아버지는 아내의 심한 우울증으로 마침내 이혼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미술관에서 만난 알린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알린은 두 분의 결혼 동기를 의심했고 그를 믿지 못했노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외과의사였던 그는 알린과 친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이따금씩 알린을 병원에 데리고 가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충고도 해주었고, 그것은 알린이 생물학 분야를 공부하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별안간 앓아눕게 되었다. 알린이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오랫동안 바이러스성 심근염을 앓던 그의 뇌에서 작은 종양덩어리가 발견되었다. "주치의가 호스피스 병원을 넌지시 권유하자 엄마는 펄쩍 뛰셨지. 그도 그럴 것이 엄마에게는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이 들렸던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의붓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셨는데, 엄마가 그날 밤 내게 전활 하셔서 이제는 도저히 혼자서는 못 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해." 그날 밤 알린의 어머니는 의붓아버지의 자식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상태를 자세히 설명한 뒤 의사의 제안을 신중하게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들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듣기만 했다.
"나는 의붓아버지의 전처소생들에 대해서 잘 몰랐어. 두 아들과 막내딸이 있었는데, 서로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거야. 엄마는 남편 자식들이 자신을 몹쓸 사람 취급한다고 억울해 하셨어. 병원에 와서도 우리 엄마와 나는 외면한 채 자기 아버지하고만 얘기 했거든. 그런데 마침 의붓아버지 동생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말했지. '사실은 그애들은 아주 많이 이 집에 오고 싶어 했단다. 하지만 네 어머니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더라. 애들 아버지와 25년을 살면서 네 어머니는 정말 단 한 번도 애들을 불러 식사 한 끼 해준 적이 없었잖니.' 그때 가슴이 철렁 하더군. 정말 그랬거든! 우리 엄마는 대인공포증도 있고, 요리에도 자신이 없어서, 혹시라도 남편의 아이들이 자신에게 실망할까 두려워했어. 게다가 남편이란 사람이 도자기처럼 섬약한 아내의 마음이 상할세라 묵묵히 견딘 거야." 알린은 그 자리에서 결심하고, 자신의 의붓형제들에게 오늘 당장 저녁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