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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비행기 타는 법

전미애 외 지음 | 달
그녀의 비행기 타는 법

전미애, 김소운, 최보윤 지음

달 / 2010년 3월 / 356쪽 / 13,000원



당신은 왜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까?


"여행이 취미라서요.", "어렸을 적부터 오직 승무원이 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 이 일이 제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아서요…." 면접장에 가보면 입사지원 동기는 대부분 이 대답 중 하나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수년 전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호텔리어를 꿈꾸다가 인터넷 취업 카페를 통해 우연히 승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고, 합격했다. 입사하고 나서는 새로운 경험을 참 많이 했다. 남의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 일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사람 대하는 일에 관한 끊임없는 고민이었다.

신입 때는 손님이 내게 화만 내도 집에 울면서 돌아왔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고, 일 처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다보니 마음과 다르게 자꾸 실수만 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미워졌다. 무서운 선배들 틈에서 서툴게 일하며 손님이나 선배에게 혼나 우는 것으로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엄마한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혼자 서러워서 또 울고… 돌이켜보면 나도 그렇게 마음 약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인 만큼 어떤 상황에 정답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하는 사람으로서의 '융통성'은 어디까지 발휘되어야 좋은 것일까? 매번 다른 상황에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겪는 일이니 그때그때 순간의 판단력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내면 되는 막내를 지나, 클래스의 리더가 되고, 선배가 되어 뭔가를 결정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릴 적부터 동경해왔던 직업이니까, 무작정 승무원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혹은 공항에서 예쁜 유니폼을 입고 모자 쓰고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게 멋있어 보여서 승무원이 되고 싶은 거라면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승객들의 짐 정리를 도와주고 식음료를 제공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상황… 기내 난동, 각종 사고, 환자 발생, 화재 등등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고, 외국어와 국제적인 매너는 기본이다. 7년 넘게 이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며, 좋은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에도 트렌드가 있기에, 회사의 빠른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

솔직히 나에게 '승무원 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어설픈 실력이지만 외국어 전공에, 건강한 체력을 타고난 게 내가 가진 유리한 점이었다면, 부족했던 서비스 마인드는 마음가짐을 바꾸려는 노력과 공부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도 멀고 그 길이 쉽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희생정신이 강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예비 승무원! 무엇이든 처음부터 타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뭐든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으니, 그러다보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첫 여행, 아직 기억해

사실 산토리니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일단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테네까지 환승, 또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 가는 비행기는 줄줄이 연착에 취소에, 공항 대기만 몇 시간을 한 거냐고. 게다가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아테네 공항 맥도날드에서 노숙도 했다. 아침에 공항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궁상이지만 따로 방도가 없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간 것도 아니고 시내로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첫 비행기는 탈 수 있을 거란 희망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겨우 산토리니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온 산토리니 섬인가. 그런데 아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하얗고 파란 집과 지붕들은! 저 뒤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올라간 언덕 너머로 마침내 우리가 그렇게 고대하던 산토리니의 풍경이 펼쳐졌다. 전설로만 존재하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일부라고 전해지기도 하는 신비한 섬. 적갈색의 까마득한 절벽 낭떠러지 아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집들과 푸른 돔을 얹은 교회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이국적인 풍차가 시원스럽게 돌아가는 곳. 길게 뻗은 좁은 골목에는 예쁜 카페와 선물 가게가 늘어서 있고, 당나귀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는, 아기자기하게 번호가 매겨진 가파른 돌계단과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벽과 벽돌 바닥 등 하늘부터 골목길까지 한없이 이국적이다. 이 공간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곳곳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들.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그들을 보며 이 도시의 한가로움과 여유를 함께 만끽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양이들처럼 단둘이 남으면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 이곳의 풍경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것들뿐이었다.

이아(Oia) 마을에 가면 석양을 꼭 봐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제일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4월의 그리스는 낮에 해가 내리쬘 때는 따듯하고 덥기까지 하지만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추위에 약한 나는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에 몸이 노곤 노곤 녹아내리는 가운데, 직접 보기 전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지중해의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감상에 빠진 우리들은 다들 말을 잃었다. 친구들과는 어디를 가든, 고생을 해도 마냥 좋기 마련, 힘들게 신청한 연차 휴가… 비행기 일정을 알아보고, 티켓팅을 하고, 부지런하고 똘똘한 녀석들에게 은근슬쩍 묻어서 잘 다녀온 이 여행을 그때는 단지 쉬러 간다고만 생각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용기를 얻어 앞으로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게 되는 발판이라는 걸 그땐 몰랐었다.

아무리 열심히 계획해도 도착하면 상황에 따라 일정은 수정되기 마련인데 처음에는 그런 것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계획이 바뀌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나.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우린 꼭 여기를 가야 하는데… 발을 동동거리던 내가 이제는 무뎌져서 가면 가고, 못 가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고, 비가 오면 맞고, 추우면 옷 사 입고, 다리 아프면 근처 카페에서 쉬고 못 본 것은 다음에 또 와서 보지 뭐… 이렇게 변했다. 아무래도 함께하는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마음 편하게 다니는 방법을, 마음의 여유를 배웠다고나 할까. 미애의 명언 "NO plan is the plan", 그래, 그게 우리 콘셉트야. 나이 들어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 여행 스타일!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다. 오기까지 공항에서 고생한 건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

따사로운 지중해의 봄 햇살을 받은 즐거웠던 오늘을 기억하자. 나에게도 산토리니는 푸른색 그 자체였었지. 푸른 지중해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하얀색 집과 교회, 새하얀 담벼락들로 이루어진 한적한 마을,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곳. 이 사랑스러운 마을의 석양 아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곳의 공기와 풍경,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느끼고 돌아가자. 그리고 평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동기들과 함께한 첫 여행의 기억. 얘들아, 다음엔 일정을 길게 잡아서 미코노스(그리스어로 '하얀 섬'이라는 뜻.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 가운데 동쪽에 있는 작은 섬)에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그리스의 맑은 하늘과 푸른 지중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감동적이었던 비행, 평양

승무원이 되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가본 곳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아?"라는 질문이다. 매우 간단한 질문 같지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어디는 쉬기 좋고, 어디는 쇼핑하기 좋고, 어디는 놀기 좋고, 좋은 이유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 너무 좋아서 이민 가서 살고 싶은 곳도 있었고, 이 좋은 걸 혼자 보다니 하고 안타까워서 가족과 남자친구가 생각나는 곳도 있고. 물론 질문한 사람이 그렇게 세세한 의미를 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어디 한군데라고 대답하기에는 좋아하는 곳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질문이 "가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어?"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고 앞으로도 그 대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가장 두근두근했던 곳은 바로 '평양'이니까.

혹자가 들으면 불쾌할 일일지 모르지만 입사 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외국에 나가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가서 뭘 할까, 하는 계획만 있을 뿐. 집 앞에 나가는 사람처럼 두근거림은 하나도 없어진다. 인엔아웃 햄버거를 먹으며 걷다가 저 멀리 L.A의 할리우드 사인을 처음 봤을 때 '어머, 저거 진짜야?' 하거나 시드니 서큘러키 앞을 손잡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로맨틱함에 가슴이 찡해지고, 베트남에서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길을 건너지 못해 계속 길가에 서 있던 일 등,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런 것들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혹시 내 마음속에서 '두근거림'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그러던 나의 비행 인생에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실어다준 비행이 있었으니… 스케줄에 찍혀 나온 FNJ. 뭐야, 여긴 어디야? 스케줄 팀에 물어보니 평양이란다. 평양? 북한의 수도?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E-mail이 와 있다. 신장, 체중을 비롯한 이것저것 개인 신상 설문지를 작성해서 내란다. 내가 정말 북한에 가게 되다니. 그곳이야말로 아무나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내가 승무원이 아니었다면 절대 가볼 일이 없는 곳이었으니까. 탑승하는 손님들은 다들 상기된 얼굴이고, 우리들도 처음 가는 곳이라 잔뜩 긴장했지만 들뜨고 설레는 마음만은 같았으리라. 랜딩을 앞두고 보이는 창 아래 풍경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모두들 밖을 내다본다. 창밖 풍경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은 일어나려고까지 하면서 애써 내다본다. 뭐가 다를까. 분명 다르지 않을 텐데. 그냥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일 텐데.

메마른 땅, 무채색 시골, 미역 감는 어린이들과 일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나라의 시골풍경과는 많이 다른 흑백사진 같은 곳. 사진 속에서만 봐온, 같은 세상이지만 다른 세상인 것 같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의 비행. 평양 순안 공항의 인상은 그랬다. 활주로가 정돈되지 않고 거칠어 마치 자갈밭을 달리는 것 같았고, 활주로 바로 옆으로 주변이 마치 기찻길마냥 나무가 가까이 있었다. 고르지 않은 길 위로 비행기가 덜컹덜컹 흔들리며 스텝카가 있는 곳까지 달린다. 잎이 무성하다 만 녹색 이파리의 나무는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손님들도 우리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리, 기차 타고 가는 것 같아."

이윽고 비행기가 멈추고 문을 열었더니 낯선 제복의 공항 직원이 들어왔다. 서류를 건네는 길고 지루한 절차가 이뤄진 뒤 손님들의 하기가 이어졌다. 북한 땅을 밟는 감격적인 순간. 여기저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손님들의 하기가 끝나고 우리도 평양 순안 공항 건물로 들어갔다. 규모는 작았는데, 출발 도착 안내 전광판을 보니 의외로 다른 곳에서 출발 도착하는 비행기가 잇는 모양이었다. 음식점과 대기실, 면세점도 갖추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면 '동무', '~합네다' 같은 말투도 너무 신기했다. 두리번두리번, 도착해서의 주의사항에 대해 미리 일러 받은 터라 말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김일성, 김정일 이렇게 호칭 없이 이름만 불러서는 안 되고, 사진에 손가락질해서도 안 되며, 정치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은 금지사항이었다.

그나마 공항에서 사진 찍는 것만은 자유로워서 사진만 줄기차게 찍었다. 줄지어 선 고려 항공 비행기를 제일 먼저 찍고 제복 입은 공항 경찰대처럼 보이는 분과도 사진을 찍었는데, 디지털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에서 조금 놀랐다. 북한 억양으로 "다음에 또 만납시다"라고 하며 카메라를 돌려주는 그 사람의 말투와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없을 줄 뻔히 알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또 만나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한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뒤로 세 번이나 더 가게 되긴 했지만 갈 때마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이 함께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비행을 다녔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평양에서의 두근두근했던 하루.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승무원이란 직업에 다시금 감사하게 되었던 잊지 못할 비행. 말도 한 번 더 생각해서 해야 하고, 그들의 강한 억양과 낯선 단어 사용 때문에 아직은 너무나 멀고 낯설게 느껴지는 북한이지만, 언젠가 서울-평양 노선이 정기편이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모두들, 다음에 또 만나자구요. 정말로.

내가 만난 최악의 승객

비빔밥이 될 수도 있고 스테이크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영양 쌈밥이나 생선요리가 될 수도 있겠지. 두 가지 식사 중 선택이 있다면 탑승객 수 대비 200% 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손님이 다 원하는 식사를 고를 수는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 줄 손님이 불이익을 겪게 되는데 양해해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가끔 왜 나는 항상 비행기를 타면 원하는 식사를 못 받느냐며 화내시는 분들도 있다.

"스테이크와 비빔밥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테이크가 다 떨어져서 비빔밥으로 준비해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뭐야, 지금은 없는 걸 왜 얘기해, 누구 놀려요?"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무작정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저렇게 화를 내시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뭐가 떨어졌는지 말씀을 안 드리면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남아 있는 것을 주냐고 역정을 내시니 참 곤란한 노릇이다. 식사 서비스가 두 번 있는 구간이라면 두 번째 식사는, 맨 마지막 줄을 시작으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서비스하여 공정한 기회를 드리려 하지만, 타자마자 첫 번째 식사에서 원하는 걸 못 받으시면 대개의 경우 기분 나빠한다.

그날은 내가 시카고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의 일반석 책임자였다. 식사 서비스 중에 막내 승무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31K 손님께서 비빔밥을 못 받으셔서 화가 나셨다고 했다. 다른 카트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알아본 상황이었고, 방법이 없어서, 편법이지만 매니저 허락 하에 대신 승무원 식사로 실린 비빔밥을 준비해드린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날은 비빔밥을 찾으시는 분이 너무너무 많아서 나는 다른 데도 불려다닐 데가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처음 후배에게 보고받은 그 손님은 쉽게 넘어가주지 않았다. 후배가 다시 나를 찾아와서 손님이 화를 낸다며 같이 가서 상황을 좀 봐달라고 했다. "손님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상황을 얘기해주세요.", "승무원 식사라도 드시겠냐고 했더니, 안 드신다고 화만 내세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후배에게 화가 치밀었다. 말하는 것도 기술이거늘, 그렇게 말하면 승무원 식사 뺏는 것처럼 들리는데 누가 먹고 싶겠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한가하지 않았기에 우선 직접 손님에게 가서 대화를 시도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창 식사중인데 혼자 팔짱 끼고 창문만 바라보고 있다. 인상을 가득 쓴 것이 폭발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손님, 약간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승무원 식사가…" 여기까지 말하는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니, 내가 무슨!" 부들부들 떨며 말을 못 잇는다. 우와, 굉장한 다혈질. 김을 내뿜기 직전의 압력밥솥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승무원 식사라도…라고 말하면 누가 먹어요? 누가?" 날이 가득 선 목소리다.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 화난 손님에게 변명은 더 화를 돋울 뿐이다. 죄송하다며 듣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약간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승무원 식사라도 드린다는 게 아니었고, 비빔밥이 다 떨어져서 다른 클래스에까지 알아봤는데 모두 없다고 하고, 마침 승무원 식사로 비빔밥이 실려 있어 잘되었다 싶어서 준비해드릴까 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승무원 식사임을 말씀드린 것은 아까는 다 떨어져서 못 드린다고 했는데, 이건 어디서 가져왔냐고 의아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린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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