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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안병길 지음 | 동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안병길 지음

동녘 / 2010년 3월 / 352쪽 / 14,000원



제1장 엉터리 자유민주주의



'엉터리' 자유민주주의 교육


우리나라 윤리, 도덕 교과서는 공동체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와 어울리지 않으며, 자칫 잘못하면 권위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면,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 자유와 권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이다. 이때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권리는 남용된 권리가 아닌 정당한 권리이다. 헌법에 명시된 바로 그 자유와 권리이다. 역사상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한국전쟁, 우리 민주화 투쟁 등이다. 이런 기초를 먼저 설명하고, 방종과 적절치 않은 권리 주장을 설명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는 마치 자유와 권리 주장이 사회불안 요인이 되는 것처럼 설명한다.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언급도 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악법도 지키라고 강변한다. 이는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법이 자신에게 이롭고, 또 그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헌법에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한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을 베풀면서, 전체를 위해 살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사회집단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공동체는 흔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종교나 가족은 공동체라고 볼 수 있지만 조그만 시나 읍 정도만 되어도 그것을 공동체로 보기 어렵다. 그러데 교과서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교과서가 주장한 윤리적 내용은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자유민주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자유와 방종은 저항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자유와 자유가 맞부딪치면 권리에 대한 제한이 생긴다는 식으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애매모호한 가상의 공동체는 필요 없는 개념이다. 오히려 권위주의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이 되려면 대국민 교육 내용을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교육으로, 시민이 자율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좀 더 성숙시키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제2장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방종은 자유일까?


자유는 방종인지 아닌지 따지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 보자. 가장 간단한 것은 로빈슨 크루소 모형이라고, 한 명만 존재하는 절대자유의 세상이다. 이 경우에는 '자유=방종'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혼자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데 자유와 방종의 구분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주 단순한 인터넷 동호회를 가상해 보자. 이 동호회에는 우석과 도준, 단 두 명의 회원과 인터넷 게시판만 있다. 다른 회원은 없고 공권력도 전혀 없는 자유 또는 방종 세상이다. 만약 도준과 우석이 착한 누리꾼이라면 방종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자신이 올린 글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것을 걱정해서 조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둘 중 하나는 이타주의자, 다른 한 명은 이기주의자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상황도 분석 대상으로 재미가 없다. 이타주의자가 매사에 '오냐'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자가 어떤 글을 올려도 말썽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기주의자 두 명이 동호회를 꾸렸을 때 어떤 인간관계가 형성되느냐는 문제이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주의자로 누리꾼을 가정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 인터넷에 들어와서 야동을 보든, 남에게 욕을 퍼부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든, 여하튼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이런 속성을 갖는 이기주의자를 합리적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사람이 여러 종류가 있으니 합리적이라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여러 유형이 가능하다. 게시판에 올리는 글마다 욕을 써야 행복해지는 욕쟁이 타입이 있고, 천성이 욕을 싫어하는 범생이 타입이 있다.

자유에도 두 가지 타입이 있다. 글에 욕설을 사용하는 자유도 있지만, 욕설이 포함된 글을 읽지 않을 자유도 있다. 전자를 적극적 자유, 후자를 소극적 자유라고 한다. 적극적 자유란 뭔가를 이루려고 할 때 행사하는 자유이며, 소극적 자유란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뜻한다. 소극적 자유라는 측면에서 욕설 사용에 대한 반응을 분류해 보면 욕설이 포함된 글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무덤덤한 긍정형이 있고, 기분이 나빠지는 부정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표와 같이 도준과 우석의 만남을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위의 표에서 동그라미 표시를 한 칸들은 별 문제가 없는 경우이다. 문제는 검은색 별로 표시한 칸들이다. 다음 각 유형은 욕을 할 자유와 욕을 읽지 않을 자유가 박치기하는 경우이다. 첫째, 부정형 욕쟁이와 긍정형 욕쟁이의 박치기: 긍정형 욕쟁이가 욕설 글을 올리고 부정형 욕쟁이가 그 글을 읽고 기분이 나빠진다.(별 하나) 둘째, 부정형 범생이와 욕쟁이의 박치기: 욕쟁이가 욕설 글을 올리고 부정형 범생이가 그 글을 읽고 기분이 나빠진다.(별 두 개) 셋째, 부정형 욕쟁이와 부정형 욕쟁이의 박치기: 각자 욕설 글을 올리고, 상대방의 글을 읽으면 각자 기분이 나빠진다.(별 세개)

이렇게 자유와 자유가 부딪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가정한 것은 합리적인 회원 둘과 인터넷 게시판의 존재뿐인 자유세상이다. 따라서 우석이 욕설 글을 올리고, 도준이 아무 항의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석의 자유로 인정된다. 그러나 도준이 욕설 글을 올리고 우석이 항의한다면, 이야기는 갑자기 달라진다. 도준이 방종을 저질렀다고 꾸짖는 글을 우석이 올리는 순간, 도준의 자유는 일단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와 방종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저항이 없는 경우 자유는 방종이 되지 않는다. 자유가 저항에 부딪치면 방종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상의 모형 분석에서 우리는 저항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자유주의 세상에서 상대방의 행위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저항을 해야 상대방 자유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청 앞 광장의 집회를 공권력으로 막았다면, 이것은 국가의 적극적 자유인가, 아니면 방종인가? 저항을 하지 않으면 국가의 자유로 시민이 인정하는 셈이고, 저항을 하면 국가가 방종을 했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지만, 방종은 적절한 제재를 강해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국가의 방종이든 시민의 방종이든 마찬가지다.

제3장 민주주의 바로 알기



민주주의 기본 원리: 평등


국가의 역할 중에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참조해야 한다. 홉스는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면서 통치기구도 없고 아무 질서도 없는 단순한 자연 상태를 가정했다. 인간도 아주 단순하게 보았다. 그는 인간을 두려움과 쌍둥이 관계로 보았다. 자연 상태에서는 경찰도 없고, 어떤 형태로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자기 자신만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경우 틈만 나면 남을 제거해야 안전이 더 많이 확보되는 불편한 인간관계가 성립한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이 같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을 시작한다. 홉스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물리적 폭력을 포기할 것을 서로 약속하게 된다. 사회계약을 이루어서 국가라는 괴물(성서의 리바이어던)에게 남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는 각서를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가는 관리자가 되고, 사회계약 속의 인간들은 남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속박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평등을 이룩한다. 약자나 강자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은 누구나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된다는 당위성이 생긴다.

홉스 이후의 루소나 사르토리(Giovanni Sartori) 같은 정치 사상가들의 주장을 같이 참조하면, 우리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듯이 장애인,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더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제시된다. 그런데 루소는 불평등을 자연적 불평등과 정신적 불평등으로 나누었다. 루소는 특히 정신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인간들에게 강제적으로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측면을 강조한다. 루소가 정치사상사에서 권위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주춧돌을 놓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사르토리는 평등 개념을 더 체계화해서 정치적 평등, 사회적 평등, 기회균등을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으로 제시한다. 완전한 정치적 평등(1인 1표의 보통 선거권), 사회적 평등(계급이나 재산과 상관없는 동등한 지위와 배려), 기회의 균등(동등한 출발점과 진입)을 주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정치 사상가들의 주장을 참조하면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도출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 평등 개념의 핵심이다. 우리는 평등이 똑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는 해석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자와 장애인을 더 보호해야 평등이 되는 것이다. 이 평등 개념은 사회적 합의에 따르지 않는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인터넷에 적용하면 아무리 운영자라도 동호회 회원들이 합의하지 않는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운영자가 다수 회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게시판을 운영하려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특권을 행사하려는 시도이며, 비민주적 운영이다.

제4장 우리 정치 이야기: 자유민주주의 정치 발전의 모색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오른쪽부터 보수당, 중도당, 진보당을 분류해보면 진보당은 평등을 더 중시하는 정당이다. 자유에 대해서는 평가 기준에 따라서 다르다. 일반적인 기준은 국가가 시장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인데, 그 잣대로는 보수당이 자유를 가장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 소외를 기준으로 삼으면 진보당이 가장 자유를 중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는 다양한 이념 정당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의 특징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경제 이념으로 현재 북한이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공당의 정강으로 채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예컨대 진보신당이 "자본주의를 극복한다"고 할 때, 그것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지향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는 상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정치적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는 인식론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더 좋은 이념이나 체제가 있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한다. 현재 자유민주주의보다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대안이 있을까? 계속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도 존중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존이다. 국가 생존과 관련된 특수 상황은 어느 국가에나 있다. 우리나라처럼 안보 논리가 늘 생존이라는 이슈를 건드리는 곳에서는 진보정당을 기성 권력층이 견제하기 쉬운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시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반드시 특정 이념 정당이 우월해야 한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물론 시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법이 있을 수도 있다. 정당한 명분 없이 가로막아서 특정 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기성 정치권이 안보 논리로 진보 정당을 가로막는 측면과, 정치인들 사이의 권력 투쟁, 진보 정당 활성화를 바라마지 않는 시민 선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진보 정당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음에도,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발전 양상을 보면 앞으로 더 자유민주주의적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며, 이미 그런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전체주의적 요소, 봉건적 요소, 근대적 요소, 전통적 요소, 현대적 요소, 자유민주주의적 요소 등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자유민주주의적 요소가 점차 우월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 사회 제도뿐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도 그렇게 변해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미 급한 사람은 "이건 말도 안 돼. 모두 없애거나 싹 바꿔 버려야 해!"라고 하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부터 개혁해서 바꾸는 것이 좋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작은 곳에서, 가능성이 큰 것부터 시작해서 더 큰 부문으로 옮겨 가는 방식도 괜찮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세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조그마한 자유 민주 성냥불들이 모여서 자유민주주의를 더 밝게 비추는 큰일을 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제5장 자유민주주의 정치학 이야기



링컨에 대한 평가와 마키아벨리


링컨이라고 하면 김동길 씨가 쓴 『링컨의 일생』이 생각난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노예해방을 이룬 훌륭한 대통령으로 칭송해 놓은 이미지는 흐릿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저자는 옛날에 읽었던 링컨 대통령 전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언변을 근래 보여 주었다. 특정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던데, 이거 참, 무슨 신념이 그렇게 강하신지…. 자유주의자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존재할 자유는 있고 남이 존재할 자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주의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있으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경제학을 미시, 거시로 나누는 것처럼 링컨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나눠 보면 거시적으로는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그런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나라가 쪼개질 위기에서 전쟁을 잘 치렀고, 그 이후 통합도 잘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도덕적 노예 해방론자는 아니었다. 그 당시 노예 해방론은 두 부류로 나누는데 더 해방하자는 쪽과 해방은 하되 백인과의 차별은 존속시키자는 쪽이 있었다. 링컨은 전자에 속하지 않았고 명시적으로 흑백간의 결혼도 반대했다. 우리가 아는 그의 노예해방의 도덕성은 부풀려졌다고 보면 된다. 대통령이 되기 전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도덕군자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을 도덕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와 도덕은 마키아벨리 이후로 딱 갈린다. 그를 이해하려면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군사적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야말로 춘추 전국시대이다. 이에 머리 좋은 마키아벨리는 양다리를 걸쳤다. 하나는 군주 쪽에 다른 하나는 공화국 쪽에 걸쳤다. 그는 국가들을 분류해 보니 군주국 아니면 공화국이란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책을 두 가지로 써서 군주국에는 『군주론』을 갖다 바치고, 공화국에는 『공화국론』을 갖다 바치는 용의주도함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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