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미군부대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할 때부터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얼굴 같은, 삶의 흔적들이 생생하게 묻어나는 사진이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남달랐던 편이다. 봉화의 어르신을 뵙는 순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있는데 봉화에서 연락이 왔다. 장남인 최영두 씨였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사실과 편견들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식구를 대표하여 전화를 했다면서 "아버지의 일상을 찍어서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어르신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기다림과의 싸움이었다. 옷 좀 바꿔 입고 찍자고 해도 한사코 당신이 좋아하는 옷만 고집하시던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Language of Silence
나의 포즈는 기묘하고 표정은 우스웠지만 비로소 편해진 나의 비스듬.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그래도 늘 아름답다, 눈물이 난다. 비스듬히 살아있음에...
오래도록 나를 바라본다. 조금은 낯설지만 나는 나다. 나의 이름은 아버지다.
Purity and Solitude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하여 편해지고 평화스러워지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잘 맞지 않는 일기예보처럼 화사한 날에도 마음이 아프다.
그 숨겨진 통증처럼 무시로 떠오르는 이름 하나.
부르기만 하여도 눈물이 나는 이름, 아...버...지.
쉼표 하나 없는 막막한 소설처럼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거야,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Family and Love
내 인생의 노트에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지치도록 반복된 일상의 희망과 잡초처럼 잘 자라준 아이들에 대한 희망,
이제 그냥 바람소리처럼 작은 휘파람으로 노래하고 싶다.
희망이 날 많이도 힘들게 했다고...
My Other Self
기다리지 마라, 누군가 내 삶의 빛이 되어줄 거라고.
어서 내 몸 태워 들불처럼 번져 누군가를 따듯하게 해줄 그런 온기가 되어라.
시계바늘처럼 되돌릴 수 없다면 모래시계처럼 아주 조금씩만 흘려보내줘, 내게 남은 시간들을...
Winter of Bonghwa
아무리 슬프고 우울한 날도 아무리 기쁘고 화사한 날도 잊지 않으리라.
내 희망은 땅이고 잘 영근 곡식 한 줌이라는 것을...
그런 약속을 했었던가?
내게 주어진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그렇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난 약속대로 살지 못한 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드라마처럼 아직도 진행 중인 우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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