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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심리학

김현준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행복 심리학

김현준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월 / 226쪽 / 12,000원



제1부 행복은 왜 우리를 떠났을까?



우리는 왜 늘 과거가 더 행복하다고 느낄까?


행복은 수학 문제처럼 정량화된 수치로 객관화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각국의 행복도를 정량화하는 데 사용하는 행복지수(HPI)나, 영국의 심리학자 캐럴 로스웰과 인생 상담사 피트 코언이 개인의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행복지수(HI)가 있지만, 그럼에도 각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항상 주관적인 것입니다. 누가 어떻든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요,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은 우리의 주관에 있는데 이러한 주관을 가늠하는 기준이 남에게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고 싶어도 남에 의한 기준에 의하여 행복의 무게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행복의 기준이 나에게 있기보다는 남에게 있기에,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것, 행복을 눈앞에 보지만, 마치 신기루와 같이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20년 전보다 행복하냐고? 물론 20년 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못 먹고 훨씬 더 못사는 시절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처럼 맞벌이하지 않아도 살기가 팍팍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한 집 당 3명 이상씩 되어도 사교육비 걱정하지 않았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그 집의 식구들은 누구인지 다 알았고, 이웃의 경조사에 모든 마을이 함께했습니다. 물론 그 시대도 잘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시대, 그때가 훨씬 더 행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기억할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기억이 미화되어 그때가 더욱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의 고단함을 과거의 좋은 기억으로 위로받기 원하는 것일까요?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까? 사람은 진화의 영향으로 공포, 비애,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어느 방송에서 긍정적 소문과 부정적 소문의 전파 속도를 비교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부정적인 소문의 전파 속도가 긍정적인 소문의 전파 속도보다 4배나 빨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일차적인 방어선으로서, 공포는 위험이 잠복해 있다는 신호이고, 비애는 과거의 무엇인가를 잃은 상실감에서 곧 무엇인가를 잃을 것 같다는 신호이며, 분노는 누군가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진화과정에서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부정적인 신호에 보다 민감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것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보면 줄무늬 애벌레가 애벌레 기둥을 오를 때, 옆에 있는 다른 애벌레들은 나를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오르기 위해서는 그들의 머리를 밟고 오르는 방법밖에 없듯이 세상은 오르는 자와 오르지 못하는 자로 구분되고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승패게임(Zero Sum-Game)으로 극대화됩니다. 승패게임은 부정적인 정서에서 시작되어 사람의 모든 정서에 영향을 미쳤는데, 즉 내가 생존하기 위한 대응으로 부정적인 정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긍정적인 정서도 부정적인 정서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도 승패게임에 영향을 받아, 남이 행복하면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즉 행복은 하늘에서 주어진 총량이 있어서 누가 행복을 많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가 가질 행복이 적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이지요. 즉 사촌이 땅을 사면 내가 받을 행복이 적어지기에 배가 아픈 것이고, 남의 연봉보다 내가 많이 받으면 행복 총량 중에서 내가 좀 더 많은 행복을 가지기에 내가 더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행복 총량은 정해져 있어서 남이 좀 더 행복하면 내가 불행하고, 내가 행복하면 남이 불행할까요? 그리고 내가 지금 행복하면 나중에 불행해질까요? 또 내가 받는 연봉의 절대치보다 상대방보다 많이 받는 것이 중요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행복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내가 지금 행복하면 미래에 불행해지고, 남이 행복하면 내가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기에 따라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고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첫걸음은 이러한 승패게임에서 행복을 분리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부정적인 정서의 영향을 나의 긍정적인 정서의 영향에서 밀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행복은 남과 비교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행복을 배우는 것입니다.

행복은 팔자소관일까? 긍정의 심리일까?

영어에서 행복은 Happiness입니다. 이 단어는 '행운, 기회'를 의미하는 아이슬란드어 'Happ'에서 왔고 Haphazard, Happenstance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Haphazard는 '우연히, 계획성이 없는'의 의미이고, Happenstance는 '생각지도 않은 일, 우연한 일'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행복도 한자어로 보면 행(幸)과 복(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幸은 다행 행으로 '다행, 요행'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福은 복 복으로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으로 하늘에서 주어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행복은 복을 빌다, 복을 받다, 복을 타고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말은 영어의 어원이나, 우리나라 말의 한자 뜻이나 '우연히 주어진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정말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팔자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행복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마틴 셀리그먼 박사의 '긍정 심리학'의 등장과 함께 더 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셀리그먼 박사는 행복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과거 50년간 심리학의 방향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괄목할 발전이 있기까지 막대한 희생이 있었는데,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심리 상태를 완화시키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삶의 긍정적인 가치를 부각시키는 노력이 소원해졌고 인간의 행복추구는 헌법상의 권리로 박제화되었습니다.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원죄론'이나, 일반 사회의 이러한 독단을 인정할지라도 개인의 강점과 타인에 대한 미덕이 부정적인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증거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은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이 모두 같이 진화해왔으며, 이러한 양면성 가운데 인간을 진정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강점을 파악하고 계발하여, 일ㆍ사랑ㆍ자녀양육ㆍ여가활동이라는 삶의 현장에 활용함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 심리학'입니다. 긍정 심리학에는 세 가지 기둥이 있는데, 첫째가 긍정적 정서에 대한 연구이며, 둘째가 긍정적 특성에 대한 연구이며, 여기에는 긍정 심리학의 핵심인 강점과 미덕은 물론 지능과 운동성 같은 개인의 '능력'까지 포함되며, 셋째가 긍정적인 제도에 대한 연구입니다.

경계해야 할 성취주의자의 오만 하버드대학에서 '행복학 강의'를 하고 있는 탈 벤 샤하르 교수는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행복 사분면'을 통해 행복을 설명합니다. 그가 구분하는 행복의 사분면은 '성취주의자', '쾌락주의자', '허무주의자' 그리고 '행복주의자'입니다. 먼저 '성취주의자'는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행복은 저당 잡힌 사람입니다. 그가 열여섯에 전 이스라엘 스쿼시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하여 먹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을 참고 체중감량과 힘든 훈련을 했던 것처럼, 미래를 보장받기 위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성공의 공식을 충분히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성공의 모범으로, 행복의 표본으로 삼지만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성취주의자입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힌 채 희생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희생당한 오늘만 기억할 뿐이고, 오지 않는 미래는 언제나 강아지 목 앞에 걸어 놓은 뼈다귀 같이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안도감이며,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입니다. 행복과 안도감, 성취감을 혼동하는 성취주의자는 달려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처럼 계속해서 목표를 좇아갑니다.

두 번째, '쾌락주의자'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며, 미래에 다가올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삶은 즐거운 경험의 연속이라고 믿으며, 당장 기분이 좋으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길 때까지 지금 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일과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지만 신선함과 즐거움이 사라지면, 곧바로 다음 관계로 옮겨갑니다. 쾌락주의자는 오로지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므로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으면 미래에 피해를 볼 수 있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노력과 고통, 쾌락과 행복을 동일하게 여깁니다.

세 번째, '허무주의자'는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행복해지기를 단념하고,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으며 체념한 사람입니다. 성취주의자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면, 쾌락주의자는 오늘을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사람이고,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혀 오늘도 미래도 없이 과거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마틴 셀리그먼 박사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허무주의자들은 과거에 어떠한 시도를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 경험으로 우리의 삶이나 어느 특정한 부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자포자기로 이어집니다.

네 번째, '행복주의자'는 현재와 미래가 모두 행복한 사람입니다. 현재와 미래는 쾌락주의자와 성취주의자와 같이 서로 충돌하기도 해서 어떤 상황에서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와 미래,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배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현재의 이익을 얻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에서 미래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기만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마다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원하는 목적지를 분명히 하고 목적지로 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은 등산과도 같다 샤하르 교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산 정상을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목표를 위하여 과정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도, 과정만을 위해서 목표를 등한시하는 것도, 과거에 얽매여 목표와 과정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라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행복은 동물적 감각이 순간적으로 왔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쾌락과는 달리 장기간에 걸친 내적 감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의미합니다. 행복은 푸근한 만족감 그 이상이며, 행복한 삶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라 비극, 도전, 불행, 실패, 그리고 후회까지도 모두 껴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긍정 심리학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 먼저 단점을 찾아 고치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강점을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강점을 강화한다는 것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실생활에 자꾸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장점을 강화하고, 보다 행복하고 충실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점이 강화될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주장한 '몰입의 즐거움' 때문입니다.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을 Flow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저서 『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Flow는 면담을 했던 사람들이 자주 사용했던 말로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사람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마치 흐름(Flow)에 몸을 맡긴 것 같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행복 치료사들의 행복 치유법 행복은 몰입과 함께합니다. 물결에 나를 맡기고 그 흐름에 나를 흘리듯 Flow라 표현되는 몰입은 시간도 잊고, 나도 잊고, 그 활동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밀려오는 잔잔한 여운은 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이러한 몰입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약간의 난이도와 기술이 필요한 과제를 할 때' 발생합니다. 이 몰입의 활동은 '운전하기', '방 치우기', '단순 제품 조립하기', '친구 만나기', '취미활동하기' 등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행복은 내가 나의 강점을 살리면서 내가 원하는 목표(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를 명확히 한 후,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과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배울 수 있으며, 행복을 배움으로 우리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행복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배워야 행복을 증진시키고, 행복해지는 데 가장 효과적일까요? 그 방법은 바로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입니다. NLP는 197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크루즈대학의 언어학 조교수였던 존 그린더John Grinder와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며, 정보전문가이며, 게슈탈트(Gestalt : 형태(形態)를 뜻하는 독일어) 치료자였던, '리차드 밴들러Richard Bandler와의 공동작업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NLP라는 용어는 Neuro Linguistic Programming의 앞머리 글자를 딴 약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NLP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Neuro는 신경이라는 의미로, 인간이 모든 정보를 신경조직 특히 보고(Visual), 듣고(Auditory), 느끼고(Kinesthetic), 맛보고(Gustatory), 냄새 맡고(Olfactory)의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여 자신의 기억으로 인식합니다. 그러기에 NLP에서는 이러한 인간 행동의 모든 시발점이 되는 오감에 대한 중요성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 발표된 사람의 두뇌에 대한 기능이론은 사람의 특정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이 뇌 속의 특정한 영역과 서로 감응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Linguistic은 언어의 의미입니다. 오감을 통하여 정보가 내적 프로세스를 거쳐서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 언어이며, 또한 오감과 함께 나의 내적 대화를 통하여 나의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정보 채널이 언어입니다. 그래서 NLP에서는 상대방의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한 내가 어떤 언어를 구사함으로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Programming입니다. 인간은 매분, 매초마다 막대한 양의 정보를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언어를 통한 내적 대화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재생산합니다. 이 모든 정보를 동시에 모두 처리하는 것은 불합리하기에 인간의 두뇌는 스스로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여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삭제하고, 중요한 정보만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프로그래밍이라고 합니다. NLP에서는 인간 내부의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이를 수정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성공하게 할 수 있기에 프로그래밍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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