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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부르는 그림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
키스를 부르는 그림

안현신 지음

눈과마음 / 2010년 1월 / 237쪽 / 13,000원



Chapter 1. 빛과 환희, 즐거운 입맞춤



1. 연인들만의 세상


사랑, 세상을 물들이는 즐거운 힘 / 마르크 샤갈의 연인들: 다른 그 무엇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연인들만이 있을 뿐, 남자와 여자가 입을 맞추고 있다. 남자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붉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여자의 키스를 기다린다. 지금 이 순간, 입 맞추고 있는 남자와 여자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푸른빛이 있을 뿐. 푸른 빛깔의 공기가 그들을 푸르게 물들인다.

샤갈은 사랑의 절대성과 그 힘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 사랑의 뿌리에 첫 번째 부인이자 오랜 연인 벨라가 있었다. 샤갈의 그림에는 연인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내면의 풍경들을 뒤죽박죽 뒤섞어 천연덕스럽게 배열해놓기를 좋아했던 샤갈의 그림 속에서 연인들은 꽃이나 마을 풍경, 동물들의 이미지와 결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샤갈과 벨라의 신혼 무렵인 1914~1917년 사이에 그려진 몇몇 작품들에서는, 다른 모든 요소들이 생략된 채 오로지 연인들만이 주제로 부각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이 그림들에서 샤갈은 벨라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듬뿍 드러내고 있다. 〈파란색의 연인들〉은 그 대표적인 그림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또 다른 그림 〈녹색의 연인들〉에서는 더욱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연인들은 원 안에 갇혀 있어 외부와의 단절감이 도드라진다. 또한 여자의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게 해 화면을 열어줬던 〈파란색의 연인들〉과 달리 두 눈을 꼭 감은 채 서로를 향하고 있어,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강조된다. 샤갈 특유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색채는 아득하고 아련한 사랑의 기억을 되부르는 듯하다.

흑백으로 표현된 조금 색다른 모습의 연인들도 있다. 1926년에 그려진 〈연인들〉은 가늘고 굵은 선만으로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을 일기 쓰듯이 그려낸 작품이다. 소박한 사랑의 감정과 편안한 분위기가 그 거친 선들을 통해 오롯이 전달된다. 역시 종이에 잉크로 그려진 또 다른 〈연인들〉은 괴기스러울 만큼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유머러스한 작품. 연인들 사이엔 저렇게 둘만이 알고 있는 우스운 표정과 엉뚱한 몸짓이 있게 마련 아닌가. 서로를 핥듯이 서로에게 덤벼드는, 한 쌍의 짐승과도 같은 연인들의 모습이 흑과 백만의 선명한 대조로 더욱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도 색채도 사랑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샤갈은 말했었다. 사랑이 그에게 말을 걸어 세상에 흩뿌리게 만들었던 그 색채들의 힘인지, 혹은 평생 사랑을 하고 꿈을 꾸는 소박한 소년 같았던 그의 삶의 에너지 탓인지,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의 전염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그림을 보는 일은 그와 더불어 우리도 함께 천진난만해지는 일이다. 세상 그 어느 틈바구니 속에서 오직 연인의 숨결만을 느끼며 입을 맞추고 있는 저 그림 속 연인들처럼 즐거워지는 일이다.

낭만적인 사랑의 초상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그린 사랑의 낭만성: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와 갑옷을 입은 용맹해 보이는 남자가 굳게 포옹하고 있다. 여자는 한쪽 손에 가위를 들고 남자의 투구에 걸린 자신의 머리 한 타래를 자르려 하고,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한 남자의 표정은 어쩐지 비감하다. 어슴푸레한 색채와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분위기. 무언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일까? 〈성 조지와 사브라 공주의 결혼〉은 1857년에 그려진 것으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비교적 초기 작품에 속한다. 이 그림은 아마도 로세티가 이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 믿었을 사랑 그 자체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과, 특히 중세의 사랑에 대한 그의 심취를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우선, 수채화로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황금색의 풍요로움이 눈에 띈다. 방 안은 이런 저런 소품들과 문양들로 꽉 찬 느낌이 드는데, 장식적인 형체들이나 문장(紋章)의 패턴들에 심취해 있던 로세티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림 곳곳에서는 중세시대를 상기시키는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로세티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꼭 끌어안은 두 연인,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사브라 공주는 성 조지에게 선사하기 위해 머리카락 한 타래를 자르려 하지만, 이미 그 머리카락들은 성 조지의 투구에 얽혀 있어 깊이 얽힌 그들의 영원한 관계를 암시한다. 여기에 그려진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도 아니거니와 그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사랑도 아니다. 이미 성취된 사랑, 모두의 축복을 받고도 남을 법한 완성된 사랑. 다른 숨겨진 동기 없이 오로지 그리고 온전히, 두 연인들 사이의 낭만적인 사랑의 관계에 초점을 둔 그림이다. 성 조지의 비감한 표정만큼이나 그의 내면세계도 복잡했을까? 사랑했던 여인들을 그리고 또 그리며 반복해서 작품에 등장시켰던 로세티는, 작품 세계도 모두 그 사랑에 밀착되어 있다. 평생 여인과 사랑을 갈구했던 로세티의 '낭만적 사랑의 화가'로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 그림이다.

2. 그래도 지속되는 삶에 관하여

쾌락을 관찰하다 /〈쾌락의 여왕〉 툴루즈 로트레크: 검은 양복을 입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남자. 그리고 요염하게 꼬인 자세로 교태를 부리며 남자를 안고 있는 여자. 이들은 누구일까? 연인이라기엔 어쩐지 석연찮고 특별히 열정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 혹은 즐거움을 나누는 사이로 보일 뿐. 그리고 화면 아래쪽, 손으로 아무렇게나 쓴 듯한 장난스런 글씨체로 말한다. 'Reine de Joie', 그녀는 쾌락의 여왕이란다.

세기 말 파리의 밤과 향락의 세계. 그곳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즐겨 그린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레크는 그 무엇도 미화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환상이나 희망으로 얼버무리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간파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가 즐겨 그린 사람들은 파리의 무용수와 여광대, 매춘부 등 대부분 당시 파리 사회의 하층민에 속하는 여성들이었다. 로트레크는 '쾌락의 세계'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삶이 담길 수 있는지를, 쾌락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얼마나 다른 가치와 의미와 느낌이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로트레크가 1892년에 포스터로 제작한 〈쾌락의 여왕〉은 파리 매춘부들의 생활을 묘사한 빅토르 조즈의 동명 소설 『쾌락의 여왕』의 광고를 의뢰받고 제작된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붉은색과 검은색의 덩어리들로 환원된 뚜렷한 색면의 대비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이 여자의 붉은 드레스에 가 닿아 있다. 여자의 오므린 입술 위에 발린 붉은 립스틱과 붉은 드레스의 밝고 균일한 색깔이 그녀의 몸과 행위 양쪽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그녀의 직업을 넌지시 암시한다. 부유한 고객의 코에 대담하게 가해진 키스는 입술의 붉은 색조에 의해 강조되고, 여자의 몸을 표현하기 위한 구불구불한 곡선들은 드레스의 선명한 빨간색으로 강조된다. 테이블 위, 와인이 담긴 아르테코 풍의 주전자는 여인의 몸매와 꼭 닮은 구불구불한 주둥이로 남자의 것임에 틀림없는, 접시 위의 배지 같은 장식품을 가리키고 있다. 세부 묘사를 교묘히 생략한 간결한 실루엣과 뚜렷한 색면의 대비는 단호함과 고도의 장식성을 함께 보여주고, 문자 크기가 고르지 않아 불안정하면서도 장난스런 글씨체는 그림의 시니컬한 분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삶에서 쾌락은 유쾌함과 즐거움 이상으로 고통이나 비애의 감정과도 깊이 얽혀 있었다. 그가 그린 쾌락의 세계에 우수와 비애감. 때로는 비극적 냉소주의가 함께 묻어 있었던 것은 로트레크 그 자신의 삶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리라. 매일 저녁 술집으로 작업을 하러 가던 화가. 몽마르트 주변 어는 카바레나 바의 한쪽 테이블에 앉아 파리의 쾌락을 관찰하며 데생을 하던 화가. 때로는 몇 달씩이나 유곽에 틀어박혀 그곳의 매춘부들과 속내를 털어놓는 다정한 친구가 되고, 결코 달콤할 수만은 없는 현실의 비감함과 아이러니를 관찰하고 표현했던 화가. 명예보다는 축제와 쾌락을 좇고,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그림일지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화가. 짧은 생애 동안 쾌락과 고통을 만끽하다가 간 그는, 트리스탕 베르나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공원에서 노는 어린아이처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누렸던" 것이리라.

Chapter 2. 어둠의 세계, 비극의 입맞춤



1. 배신과 불안, 고통의 몸짓들


불안과 두려움으로 엉키다 / 〈키스〉 에드바르트 뭉크: "나의 그림들은 곧 나의 일기이다"라고 뭉크는 말했었다. 그만큼 뭉크의 그림은 그의 인생 항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자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죽음과 질병, 광기의 세계에 유난히 노출되어 있었던 어린 시절은 평생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생의 프리즈' 중에서 '사랑' 연작으로 제작된 이 그림 〈키스〉에는 뭉크의 성장 배경과 예술적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서로에게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로 일체화된 두 몸뚱이는 마치 하나의 짐승 같은 모습이다. 홀로 버티기 버거운 존재들이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침투해보지만 그 몸짓은 오히려 불안하고, 채워질 길 없는 사랑의 갈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붉은색 계열의 색감으로 칠해진 얼굴의 느낌이 어두운 배경이나 푸른 색조와 대비되면서 남녀의 묘한 흥분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어쩌면 강하게 포옹하고 있는 남녀는 서로에게서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이다. 상대방의 강한 침투가 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두려움은 또 있다. 나 혹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두려움. 두 남녀가 속해 있는 어두운 실내는 창밖의 강한 빛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성은 그림 전체에 긴장감을 가져온다. 두터운 윤곽으로 처리된 벽에 의해 두 사람은 보호받고 있는 셈이다. 바깥 세계로부터의 끊임없는 위협이 언제 닥쳐올지 모를 파국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예술가, 뭉크. 하지만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이며 생명의 에너지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바탕에 깔려 있는 불안과 고통의 정서를 한 겹만 들춰보면 사랑의 에너지, 생명에 대한 갈구가 요동치고 있다. 그래서 뭉크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기쁨과 고통의 동시성, 삶과 사랑과 죽음의 불가분성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불안을 잉태하고, 불안은 고통을 가져 오며, 고통은 죽음을 야기한다. 그래서 뭉크는 '사랑'을 그릴 때조차도 그저 어떤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하고 불안한 존재자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사랑, 뭉크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2. 비극적 사랑, 죽음의 그림자

지옥을 떠도는 연인들 /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이야기: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아홉 개의 지옥 가운데 육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모여 있는 두 번째 지옥.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영혼이 여기에 등장한다. 이 주제에 매혹되어 있었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단테의 『신곡』을 면밀히 읽으며 여러 번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앵그르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 관한 주제로 일곱 점의 유화와 열한 점의 드로잉 작품을 남겼는데, 그 모든 그림에서 초점은 두 연인의 사랑의 순간에 맞춰져 있다. 그 대신, 앵그르는 긴 내러티브를 축소하여 한 장면 안에 담을 수 있는 서술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1819년에 그려진 이 유화버전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는 사랑에 눈뜨는 순간과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 극적으로 결합되어 공존한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자신들에게 다가올 운명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에게 흠뻑 몰입해 있으나, 뒤편에선 곧 그들의 목숨을 빼앗고야 말 비극의 칼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 우리는 프란체스카의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순간과 파올로가 저돌적으로 프란체스카에게 다가와 키스하는 순간,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다가온 프란체스카의 남편 잔초토가 커튼 뒤에서 그들을 죽이려 칼을 꺼내는 순간을 모두 함께 본다. 주인공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들의 위기를 관람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데서 긴장감이 발생하며, 그 모든 결정적인 순간이 순식간에 한 상황에서 포착되었다는 데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러나 그 모든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듯 그림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정적(靜的)이다. 그것은 고전주의적인 초연함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앵그르의 회화 스타일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색채와 빛의 효과보다는 기본 데생과 드로잉을 중시하고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보다는 우아한 형식미와 조형적 질서를 추구했던 앵그르의 그림에서는, 무엇보다도 선명하고 명확한 윤곽선과 형식에 대한 통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앵그르는 스스로를 전통을 보존하는 자, 아카데믹한 정통파적 신념의 수호자로 정의했는데, 이 그림에서 그는 의식적으로 르네상스 초기 회화 스타일의 고대성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앵그르는 사실주의적 표현의 신봉자는 아니었다. 그는 고전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의 주관에 따라 때로는 대상을 고의적으로 변형하거나 왜곡시켜 표현해 당대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령 이 그림에서 프란체스카에게 다가가는 파올로의 목은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길게 그려져 프란체스카를 향해 정열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또 프란체스카의 팔을 유난히 길게 느껴지지 않는가? 덕분에 '돌진하는 파올로와 받아들이는 프란체스카'라는 구도가 선명하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인물들의 자세는 어딘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앵그르에게 절제와 균형의 이상(理想)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가시적인 붓놀림도, 화면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빛과 색채의 효과도 좋아하지 않았던 앵그르는 해서는 안 될 그 격정적인 사랑의 순간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이렇듯 고결하고 점잖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잘 정돈되어 혼란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그의 고전주의적 이상이 그렇게 초연함을 만들어낸다.

Chapter 3. 황홀의 순간, 유혹과 관능의 입맞춤



1. 부재에 대한 사랑, 불가능을 향한 욕망


이룰 수 없는 욕망을 향한 복수의 몸짓 / 〈살로메〉, 〈살로메 - 클라이맥스〉 오브리 비어즐리: 검은 머리를 길게 흩날리는 날카로운 표정의 여자. 그 손에 들린 창백한 표정의 남자, 팔도 다리도 없이 머리만이 여자의 손에 붙들린 채 허공에 떠 있다. 그 머리에서 흘러나온 유동적인 선들은 허공을 가로질러 저 아래쪽 어딘가로 향하고, 바닥에 닿을 때쯤 그것은 한 떨기 백합을 적시는 정체 모를 액체가 되어 있다. 빗물일까, 핏물일까, 혹은 누군가의 눈물일까? 백합꽃 아래 흥건히 고인 물줄기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굽이굽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여자의 등 너머 왼쪽 상단의 여백에는 활짝 펼친 공작새의 날개처럼 화려한 문양이 메아리치듯 퍼져 있다. 그리고 선언하듯 반복되는 섬뜩한 한마디. "내가 너의 입술에 입 맞췄노라, 요카난. 내가 너의 입술에 입 맞췄노라."

살로메는 우리에게 팜므파탈의 한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 뿌리를 이루는 성경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했고 그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로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이다. 오브리 비어즐리는 1893년 처음 출판된 프랑스어 판 『살로메』를 읽고 〈내가 너의 입술에 입 맞췄노라〉를 그렸고, 이 작품은 순수·응용미술 잡지인 〈스튜디오〉 창간호에 특집으로 실렸다. 그리고 이듬해에 출판된 『살로메』 영어 번역본에는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레이션이 함께 실려 그 탐미적이고도 퇴폐적인 주제를 한껏 부각시켰다. 영어판에 실린 비어즐리의 그림들은 모두 흑백의 강렬한 대조로 이루어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다. 차갑고 분명하고 날카로운 비어즐리의 선들은 때로는 관능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너무나 불경스럽게 이 방자하고도 불온한 세기말의 끔찍한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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