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샘에 비가 내리고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군 고한읍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를 사이에 두고, 금대봉(1418m)과 함백산(1573m) 사이의 천의봉 너덜샘에서 낙동강이 발원한다. 물은 너덜샘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이긍익이 편찬한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서는 낙동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경상도의 낙동강은 근원이 태백산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경상도의 한 도는 모두 한 수구水口를 이루니, 낙동강은 상주 동쪽을 말함이다. 고려 때에는 이 강과 호남의 섬진강ㆍ영산강 두 강을 '배류背流 3대강'이라고 했다.-
내린 비 탓인지 북적물(물결이 세어 거품이 이는 정도의 물)이 흐르는 냇물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택시기사에게 태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장성 일대가 광산촌이 된 건 1933년부터라고 해요. 석탄을 많이 캐던 그 시절에는 황지천 물이 온통 새카맸지만, 지금 황지천 물은 괜찮아요. 고기도 얼마나 많이 사는데…. 그리고 태백은 아무리 한여름이라도 모기 한 마리 구경하기 힘들어요. 특히 전국에서 소비하는 고랭지 채소의 60%가 여기에서 나와요." 태백의 어제와 오늘을 듣는 순간에도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나는 지금 태백의 황지로 가고 있다.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되다 황지 어귀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고 쓰여 있다. 태백산은 오랫동안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조상을 숭배해온 고대신앙의 성지였다. 『삼국사기』에는 139년 신라 7대 임금인 일성왕 때 10월 상달을 맞아 임금이 북쪽으로 나가 '태백'에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태백이 바로 태백산이다. 이 산은 토함산ㆍ계룡산ㆍ지리산ㆍ팔공산과 함께 신라 오악에 들었던 서라벌의 북쪽 산이다.
여울져 흐르는 강물이 석포에 접어들고 강물은 동점역을 지나면서 여울져 흐르고, 나는 그 흐르는 강물을 따라 35번 국도를 걷는다. 동점역을 지나자 철교가 나오고, 돌이 많은 고개라 이름이 붙여진 돌고개에서부터 낙동강은 강원도를 떠나 경상북도로 접어든다. 석포면 소재지 길 아래로 1946년에 만들어진 석포역이 있고, 강 건너에는 연화광업소의 거대한 아연공장이 하얀 연기를 뿜어낸다. 낙동강 본류의 이쪽저쪽에 아연공장이 자리 잡은 뒤, 상류에서는 강물을 마신 소가 죽고, 하류에서는 기형 물고기들이 발견되자 '안동댐 상류의 물은 소도 못 먹는다'는 말이 떠돌았고, 결국 마을마다 지하수를 파게 되었다. 그 뒤부터 환경사고가 줄었지만 아연공장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낯선 곳에서는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모든 나무의 으뜸인 춘양목 봉화군은 예로부터 춘양목의 산지로 유명하다. 봉화군 춘양면에서 나거나 모여드는 소나무 재목을 '춘양목'이라고 하며 한옥을 짓는 데 쓰이는 목재로는 으뜸으로 쳤다. 봉화읍의 청암정과 석천정 같은 조선 중기의 건물들은 모두 춘양목으로 지은 것이다. 안동의 세도가나 서울의 반듯한 양반집들도 대부분 이 춘양목으로 지어졌다.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에서 강은 크게 휘감아 돌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현동3리에서는 아래로 깔린 채 흐른다. 길이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강을 따라가는 길이 쭉 나 있단다. 고개를 넘어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헤어졌다 싶었던 철도가 다시 나타났다.
낯선 곳에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임기수력발전소의 직원이 말했다. "얼마 전에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은 보았지만, 길도 없는데 걸어간다니 걱정스럽네요." 그렇다. 나는 걱정스럽게도 지금 길 없는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길도 길이라고 우기면서 가자. 바위와 가시덤불, 잡풀들이 빼곡히 들어찬 길,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길을 헤치며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는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아름 마을을 떠나며 바라본 낙동강은 더없이 아름답다. 바지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가시가 찔린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람의 발자취는 없고 오직 모래사장과 물오리들의 발자국뿐이다.
청량산 자락을 흘러가는 낙동강
아침 낙동강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허리에는 구름이 띠를 두르고 있다. 이곳 명호면 일대가 안동댐 건설 이후 육봉화(정착화)한 은어들의 고향이다. 낙동강에 댐이 건설된 뒤, 바다로 나가지 못한 은어들이 안동호를 바다 삼아 번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단천면 토계리에서 이곳 명호까지 수십만 마리의 은어들이 회유하며 장관을 이루었으나 요즘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환경오염과 남획 때문으로 여긴 봉화군은 1999년부터 명호면 일대를 은어 보호 수역으로 정한 뒤, 은어 치어를 해마다 15만 마리씩 방류하고 있다.
청량산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자리 잡은 청량산은 지난 1982년에 경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마이산과 같은 수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일봉, 문수봉, 연화봉, 축융봉, 반야봉, 탁필봉 등 여러 개의 암봉들이 어우러져 마치 한 송이 연화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산세는 그리 크거나 높지 않지만, 아름답게 솟아있는 그 기이한 경관 덕분에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청량교에서 바라 본 낙동강은 1년 열두 달 저마다 다르게 불렀던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실린 글을 보자. - 정월의 물은 얼었던 물을 풀리게 한다는 해동수解凍水, 2월 물은 흰 개구리밥을 피어나게 한다는 백빈수白 水, 3월 물은 복숭아꽃이 피게 한다는 도화수桃花水, 4월 물은 오이덩굴을 뻗어가게 한다는 과만수瓜滿水, 5월 물은 보리를 누렇게 익게 한다는 맥황수麥黃水, 6월 물은 산을 울창하고 푸르게 한다는 산번수山樊水, 7월 물은 콩 꽃이 피게 한다는 두화수豆花水, 8월 물은 물억새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자라게 한다는 적묘수荻苗水, 9월 물은 서리가 내려앉는 상강수霜降水, 10월 물은 다시 거룻배를 띄울 수 있다는 부조수傅漕水, 11월 물은 큰 물결을 이루며 빠르게 흘러간다는 주릉수紬綾水, 12월 물은 모든 것을 넘어선다는 의미로 축릉수蹙凌水라고 했다. -
선비의 고장 안동에 접어들다 드디어 태백, 봉화를 내려온 낙동강 물길과 내 발길이 안동시에 접어든다. 낙동강은 휘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뒤돌아보면 청량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넓은 돌이 있어 나분돌이라고 부르는 광석 마을에는 청량산 관광단지를 만드느라 거의 사라져버렸고, '어서 오십시오. 선비의 고장 안동입니다'라고 쓴 표지판을 지나자 '차와 식사, 들꽃 피는 언덕'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렇다. 들꽃 피는 언덕에서 따순 밥 한 그릇에 쑥국을 먹는다거나 정갈한 차 한 잔을 마신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것이다.
도도한 저 강물 천 리를 흐르는데 - 단천리에서 삼강 나루까지
안동댐을 지나 병산서원으로 가는 물길
백운지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강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단사 마을이다. 논밭의 흙이 유난히 붉고, 붉은색 안료나 약재로 쓰는 광물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퇴계 이황이 단사협이라 이름 지은 병풍바위는 단사 마을 동쪽에 있는 벼랑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벼랑 밑을 낙동강이 활처럼 휘어지며 흘러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단사팔경은 '붉은 흙'과 함께 공민왕의 어머니가 피신했다는 왕모산성, 마을 앞의 병풍바위 한쪽에 칼처럼 생긴 칼산대, 용이 승천했다는 용연, 병풍바위 아래 있는 너럭바위 추레암, 과실이 많이 열린다는 목실골, 개목 마을, 그리고 낙동강의 '굵은 모래' 등이다. 이 단사팔경에 도산 10경을 더해 도산 18경으로도 불린다.
도산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숲이 무성한 도산서원에 이른다. 도산서원의 전신은 도산서당이었다. 퇴계는 그 옆에 암서헌, 완락재, 농령정사, 관란헌, 역락서재, 박약재, 홍의재, 광명실, 진도문 등의 건물을 지은 뒤 모두 자필로 편액을 썼으며, 또한 자기의 호를 도옹이라 한 뒤 후진들을 교육시켰다.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도 각기 화공에게 명하여 도산서당의 그림을 그려오게 한 후 보고 즐겼다 한다. 도산서당에는 퇴계가 만든 선기옥형, 청려장, 화준, 서안, 연갑, 단경, 백자, 타기, 투호, 점석 등과 『퇴계집』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오고
안동호를 건너갈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사무실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댐 만들기 전에는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은빛으로 빛나며 잡혀 올라왔어요. 댐이 만들어진 후에는 은어는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베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 어종들만 판을 치고 있어요. 그때 살던 사람들은 거의 다 외지로 나갔지요. 그때 안 나가고 지금 서부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소득이라곤 없이 힘들게 살았지요. 대통령 말 한마디에 더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았지요. 나도 잠시 나가 살아봤는데 아파트는 왜 그렇게 올라가기가 힘드는지…. 집사람 재작년에 좋은 데로 가버렸지. 그러니 뭐하러 거길 가겠어요? 그냥저냥 여기 살다 가는 거지, 뭐." 예안면 천전리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김영선 옹의 말을 들으며 내 마음은 아침부터 어둡기만 하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안동댐을 지나며 비는 그치고 바람이 분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 제목을 딴 음식점을 바라보며, 문득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렇다. 먼 곳에 있을 때면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그리운 얼굴, 그리운 그들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오른다. 이곳 성곡동은 본래 안동부 동부 지역으로, 기산성 아래에 있어서 잿골, 또는 성곡이라 불리었다. 성곡동에는 안동민속촌과 민속박물관, 그리고 얼음을 저장해두는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는 겨울철에 낙동강에서 얼음을 떠다가 이곳 석빙고에 저장해두고 여름철에 썼을 뿐만 아니라, 이 고장의 특산물인 낙동강의 은어를 잡아 저장했다가 임금님께 진상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천등산 봉정사를 돌아보다 멀리 태백, 소백의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흐르고, 낙동강의 물줄기가 어슴푸레 보이는 천등산은 안동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산에 가면 봉정사, 개목사와 같은 고색창연한 옛 절을 만날 수 있다. 봉정사에는 고려 때 지은 극락전(국보 15호), 조선 초기 건물인 대웅전, 조선 후기 건물인 고금당과 화엄강단이 있다. 이 건물들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의 계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축 박물관 같은 존재이다.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1972년 9월 봉정사 극락전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13년이나 앞선 1363년에 중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13년이란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봉정사 극락전이 고구려식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하회 앞에서 물은 휘돌아간다
만대루에 올라서서 낙동강을 굽어보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병산서원은 1613년에 정경세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면서 설립되었다. 이 서원의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는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이었는데, 1572년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겼다. 1863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나라 안의 건축 중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 중 하나라는 평을 받고 있는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팔각 기와집으로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도처에 서원을 건립했던 영남학파의 거봉, 퇴계 이황은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라서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있어 환경의 유독을 벗어날 수 있고, 그만큼 교육적 성과가 크다'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서원은 경치가 좋거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았는데, 병산서원만큼 그 말에 합당한 서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연화부수형인 하회 마을 안동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지정 민속마을이다. 하회 마을은 중요민속자료 12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선 전기 이후 전통적 가옥군의 존재와 영남의 명기(이름난 터)라는 풍수적 경관, 고려시대의 맥을 이은 별신굿과 같은 민간전승이 현재까지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보존ㆍ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회 마을은 근간에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기 전부터 상업화 바람에 밀려 예스러움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불이 나도 두루마기는 입고서야 밖으로 나갔다는 하회 양반도, 그리고 한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아랫사람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이 있거든 강물을 보고 배우시게 - 삼강 나루에서 고령교까지
한 배 타고 세 물 건너던 삼강 나루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지는 곳 삼강리는 본래 용궁군 남산면 지역으로 낙동강, 내성천, 금천의 세 강이 마을 앞에서 몸을 섞기 때문에 삼강이라 했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예천에서는 안동댐에서 흘러내린 낙동강의 큰 흐름이 태백산 자락에서 발원한 내성천, 충청북도 죽월산에서 시작하는 금천과 이곳 풍양면 삼강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한 배 타고 세 물 건넌다'는 말이 있는 삼강리는 낙동강을 타고 올라온 길손이 북행하는 길에 상주 쪽으로 건너던 큰 길목이었다. 또 삼강리는 낙동강 하류에서 거두어들인 온갖 공물과 화물이 배에 실려올라와 바리짐으로 바뀌어 노새의 등이나 수레에 실려 문경새재를 넘어갔던 물길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면 안동지방과 강원도 내륙으로 연결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성천의 지류 중 하나인 낙화암천 끄트머리인 영주시 부석면 소백산 자락에 부석사가 있다. 어느 때, 어느 계절에 가든지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절 중의 절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산을 올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대석단이나 무량수전, 조사당, 아미타불 등 문화유산들도 그렇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부석사의 건물들을 바라보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체감할 수 있다. 그래서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에서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비경 중의 비경 의성포 물도리동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 본류로 합해지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성포가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느닷없이 굽이를 돌면서 거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도리동으로 이름난 곳으로 안동의 하회 마을과 정여립이 의문사한 전북 진안의 죽도가 있다. 그러나 그 두 곳에 못지않은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 예천군 의성포 물도리동이다. 의성포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성천이 감돌아 섬처럼 되어서 조선시대에 귀양지가 되었던 곳이다. 육지 속에 고립된 섬처럼 떠 있는 의성포 물도리동은 『정감록』에서 꼽은 '십승지지'의 하나이고, 외진 곳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인심이 후해서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낙동강 제일 절경 경천대 경천대는 낙동강 천삼백 리 가운데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자천대로도 불렸다. 이곳에 터를 닦은 채득기가 바위에 '대명천지 숭정일월' 여덟 자를 새겼는데, 그 뒤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으로 경천대라 불렀으며,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강 건너 중동면 회상리는 석회석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며, 횟골 북쪽의 가지박골에서는 철이 많이 나온다. 회상리는 노란빛으로 눈이 부시고 강 건너 회상 나루에는 나룻배 한 척 없고, 강가의 흰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강물은 산 아래로 검푸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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