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코 코지 지음 | 한스미디어
샐러리맨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코 코지 지음
한스미디어 / 2009년 9월 / 219쪽 / 12,000원
1.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라고? 이런 내가 아버지라고?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세상의 아버지를 보노라면 다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멋지게 아버지 역할을 해 내는 것 같아 내심 감탄하고 만다. 어머니는 아예 뻔뻔스러울 정도다. 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일까. 나는 '아버지'로서는 실격이다. 어쩌면 합격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바람직한 '아버지'는 아니다. 따옴표 속에 '아버지'를 가둔 것은 미련 때문이다. 사회적 규범에 맞는 이상적인 아버지 상에 비추어보면 어김없이 실격이지만 현실적인 한 아버지로서는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은 있다.
젊은 시절 여자를 사귀지 못해 독신으로 살아가야 할 모양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내가 가족을 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조차 무리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애당초 어린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미래 따위 거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그런 남자가 너희 두 아들을 얻었다. 이 무슨 하늘의 배려인가. 하지만 나는 자식이 생겼을 때 갓 태어난 아기를 끌어안고 싱글벙글 웃는 판에 박힌 행동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어릴 때는 몇 번 여행을 갔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가지 못했다. 공부와 스포츠를 가르친 적도 없었다. 수업참관이나 운동회 참석도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간 적이 없다. 물론 너희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겉으로는 방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방임하지 않았다. 늘 마음에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너희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객관적'으로.
아버지의 욕심으로 바라보아서가 아니다. 자식이 생겼다고 남자건 여자건 무조건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법적으로는 부모이지만 인격적으로는 부모가 아니다. 그래서 남자건 여자건 자신이 선 위치를 자각한 이후에 부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난 뭐가 뭔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했고, 또 그것이 나에게는 큰 문제였다. 사람이란 바라는대로 되는 건 아니다. 겉으로만 아무리 포장을 해도 소용이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족론』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품는다. 아버지는 자식을 밀쳐낸다. 어머니는 애정을 가르친다. 아버지는 사회를 가르친다. 하야시 도기씨는 말한다. "아버지는 먼저 가족 안에서 엘리트이면서 리더여야 한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버지는 좋은 의미에서 골목대장이어야 한다. 골목대장이란 조금 위험한 일을 시도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 즐겁게 놀기도 하고 강한 개성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매력을 가져야 한다. 아버지는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으로 자식들에게 꿈을 주어야 한다. 그런 아버지가 되기 위해 남자는 가족을 사랑하고, 자식에게 기술, 취미, 사람 사귀는 법, 예의범절 등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의와 도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자신이 공평하고 공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도 그런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런 멋진 아버지에 걸맞은 존재인가를 스스로 반문해 볼 때 나는 분명 실격이다. 그러나 실격이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멋진 아버지를 흉내 낼 뜻도 없고 그런 아버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멋진 아버지는 분명 존재하긴 하겠지만 그리 흔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멋들어진 이상형이다.
나에게는 묘한 감정이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이런 남자의 아들로 태어난 너희들이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있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멋진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너희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반드시 나여야 한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이 그러하건 않건 무조건 나여야 한다. 그리고 나의 자식도 반드시 너희들이어야 한다.
논픽션 작가 사와기 고다로의 『무명』이 떠오른다. 사와기 씨의 아버지는 그의 행동에 대해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명령도 하지 않고 금지도 하지 않았다. 사와기 씨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를 위엄마저 느낄 정도의 철저한 불간섭이었다고 말한다. 대화는 늘 이성적이었고 감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말이 없고 조용한 아버지도 있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본래의 아버지상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멋지다는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2. 샐러리맨이라는 것내가 회사원이 되기를 싫어했던 것은 막연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회사원이라는 말 자체가 평범의 대명사인 것 같았다. 어떤 얼간이라도 할 수 있는 일. 꿈을 잃은 자들의 무덤. 출근 첫날의 일이 기억난다. 각 부서를 돌며 인사를 한 다음 그날 하루는 타자 연습으로 끝났다. 정시에 퇴근하자마자 나는 해방감에 젖어들었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입사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 전무가 앞으로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젊은 사원들끼리 대화를 나누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회사의 시책 같은 건 아무 관심도 없고 전 사원의 월급 1만 엔 인상이라는 제안을 하여 참석자 전원의 찬성을 얻어냈다. 그 결과를 전무에게 보고하자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런 걸 의논하라고 회의를 열라고 한 줄 알아!"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월급 올리자는 데 좋아할 경영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나는 조그만 일에도 얼굴을 붉히는 타입이다. 그런 사내가 왜 임금인상에 앞장섰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내성적 성격은 자신만의 이익을 내세우는 일에 대해 과묵했을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타인을 위해서나 전체를 위해 싸우는 것은 좋아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넘어 행동할 수 있는 성격,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닥치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대들었던 것은 아니다. 대립하는 사람은 늘 윗사람이었고 그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뿐이었다.
회사라는 곳은 인간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선량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극단적으로 보신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 상사의 권위를 방패막이 삼아 사원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술만 들어가면 인격이 바뀌는 사람도 있다. 높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태도가 180도 바뀌는 사람이 있다. 이런 나의 말을 듣고 '그러는 너는 뭐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 역시 칭찬받을 만한 인간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좀 건방졌을 것이다. 멍청이 주제에 똑똑한 척했으니 원한을 살 만도 했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무작정 사랑받을 수야 없지 않는가.
세상에는 노력 면에서나 엄밀성과 철저함에서 빈틈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진지하고 성실하다. 상상도 못할 거액을 움직이는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건 그 기본은 그리 다르지 않다. 어떤 일이건 담당자를 특정할 수 없는 틈새가 생긴다. 어렵고 귀찮아서 아무도 관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일을 스스로 떠맡는 버릇이 생겼다. 남이 무슨 일을 부탁하면 무조건 맡았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라는 유기체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계니 뭐니 그딴 건 아예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다음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한계는 점점 더 넓어진다. 젊은 사원 가운데 미련할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은 반드시 발전했다. 거기까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적당히 조절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시키는 일 말고는 하지 않는 사람은 회사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둘째,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감이란 '뭐든 한다', '내가 한다', '성과를 낸다'라는 의지를 통해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을 최소한 10년은 지속해야 한다. 나는 25년간을 그렇게 한 이후에야 회사가 무엇인지, 남과 같이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셋째,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바쁠 때 반드시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 정말 고마웠다. 반대로 당신이 뭐든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일도 좀 해봐라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내가 배운 교훈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역시 한계는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 100미터를 9초대에 주파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5천만 건의 미처리된 국민 연금을 1년 안에 처리하는 것은 가능성을 가진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인데 뭐. 그렇지만 일의 절대량이 어떤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 마침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것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직장에서 보낸 마지막 10년이었다.
좋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무사무욕의 아마추어 정신을 가졌다. 회사에서는 무사무욕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도 정신만은 무사무욕의 인간이 아니고서는 신뢰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시켜도 괜찮다. 그런 사람은 신뢰를 얻는다. 만일 너희들이 어느 집단에서 리더가 된다면 선두에 서서 일해야 한다. 방침을 내리고 다른 사람을 고무해야 한다. 늘 사원의 대우나 노동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어떤 조직이건 멍청이가 있다. 멍청이는 모든 면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다. 이런 멍청이의 파문은 자기-자기 가족-자신의 부서-자신의 회사-자신의 고향-자신의 나라로 확대된다. 불행히도 모든 공적을 자신에게 돌리고 실패하면 뭐든 남 탓으로 돌리는 인간들이 리더일 때가 많다. 왜 그런 인간이 그런 자리에 있는지 신기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많다. 멍청한 리더도 입으로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사원, 고객,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말들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완벽하게 확보한 후 2차적인 목표일 뿐이다.
그런 인간들이 리더로 앉아있을 때 유능한 사람은 늘 좌절한다. 그들의 판단기준은 자신에게 복종하느냐 않느냐이다. 하지만 복종은 미덕이 아니다. 못도 너무 많이 튀어나오면 박아 넣지 못한다. 그렇다. 그렇게 확실히 튀어나올 일이다. 실력이 월등하면 그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뽑아낼 만한 근성을 가진 멍청이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들은 손실 계산에 능란하다. 뽑아낼 때 자신에게 다가올지 모를 이해득실을 계산한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를 뽑아내고 말았다.
너희들은 좋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능력 있는 인간도 좋다. 그렇지만 일만 잘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일은 잘하지만 인간적으로 부실한 존재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좋은 사람은 일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나 사고방식에서도 모두 뛰어나다. 회사란 필경 인간이다. 회사의 크고 작은 지명도 따위 아무래도 좋다. 월급만이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인간이다.
3. 사랑한 사람은 사랑한 사람남녀의 만남과 사랑은 일반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늘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연애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처음'이라는 노래 가사는 진실이다. 어느 누구든 사랑은 늘 초보이며 서툴다.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남자답게 사귀라는 것이다. 남자답게라는 게 무엇을 뜻할까. 간단하다.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당연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남자는 남자 축에 낄 수 없다. 그리고 사랑받는다고 해서 응석을 부리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여자라면 당장 그만두라.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네는 전형적인 일본인이 아냐"라고. 골프를 하지 않고 여자를 밝히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요컨대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말인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남자란 여자와 많이 놀면 놀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래서 늘 여자의 눈길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애정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기분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그런 것을 숫자로 충족시키려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인기를 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의 상대는 하나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하나의 상대조차 없었다는 것이 젊은 날의 고민거리였다. 그렇지만 안 생기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외국여행을 갔을 때 꽤 여자들의 눈길을 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아무래도 외국이 어울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인기 많은 남자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한 여자와 한평생을 지내는 편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애정이란 소멸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무리 소중히 가꾸어도 실연은 있다. 이혼도 있다. 희귀한 일도 아니다. 생이별도 있고 사별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사랑은 사랑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관계를 완성할 수도 지탱할 수도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연애기준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연애는 연애, 결혼은 결혼, 이렇게 분리하는 공리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그러나 세상이 뭐라 하든 신경쓸건 없다. 너의 사랑은 너의 것이다. 세상의 것이 아니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을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정리하는 현실주의자가 있다. 그들은 너무 달콤한 생각이라며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인간은 그런 용어에 맞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연애라는 것이 딱히 학문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까. 어떤 만남도 언젠가는 식는다. 그게 감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만남이 끝나는 시점에서 사랑이 싹튼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라면 지속될 수 있다. 의지가 있으므로.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사랑조차 무너진다. 애정은 무르다. 간단한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 그러기에 찾아나서는 것이다. 애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
4. 돈과 마음살려면 공기가 필요하듯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을 뜻한다. 돈은 음식은 아니지만 공기(생활, 먹는 일)를 사는 수단이다. 입는 것은 2차적인 것이라 그렇다 치고 살려면 반드시 집이나 음식을 확보해야 한다.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다. 정치와 행동 또한 돈이다. 교육도 복지도 군비도 그 기초는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도시행정도 파산한다. 돈이 없으면 개인이건 회사건 국가건 성립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나는 돈을 가벼이 여겼다. 덧붙여서 이 세상과 삶 자체를 가벼이 여겼다. 취직이 되지 않아 헤매고 있을 때 아버지는 당신이 다니는 보험회사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업계 톱 레벨의 회사였고 월급도 괜찮았다. 그러나 전근이 잦았다. 어린 시절 자주 전학을 다닌 기억 때문에 거절했다. 아버지의 힘으로 취직하는 데 저항감도 있었다. 나는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씁쓸한 표정이었다. 만일 그때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갔다면 그 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좋고 나쁘고도 없다. 나는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돈을 가벼이 여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을 가벼이 여긴다는 말이 있는데,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