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최창남 지음 | 애플북스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최창남 지음

애플북스 / 2009년 12월 / 600쪽 / 39,000원



천왕봉에서 정령치까지



천왕봉 그 문으로 들어가다


높이 1915m인 천왕봉은 남쪽으로 내려 뻗은 백두대간의 줄기 중 가장 높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이다. 그래서인가, 천왕봉에 이르는 동쪽 문은 '하늘을 여는 문'인 개천문開天門이고 남서쪽 문이 '하늘을 오르는 문'인 통천문通天門인 것이다. 그렇게 개천문을 지나고 통천문으로 들어서야만 천왕봉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려와 이룬 산이라 해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부르는 지리산은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의 본래 이름은 지리산智利山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현신한 문수보살의 지혜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가 계승되고 재해석되어 지리산智異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지리산智理山이라고 불리기도 한 것이다.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지는 산'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행이 시작되었다. 백두대간을 향해, 지리산을 향해, 천왕봉을 향해, 첫발을 내딛었다. 길은 끊어질 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람은 숲 사이로 난 길들을 열어주었고 우리는 그 길을 통해 산으로 들어갔다. 바튼 숨을 내뱉으며 산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하늘로 들어가고 있었다. 개천문을 지나자 길이 더욱 가팔라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눈앞에 작은 샘이 나타났다.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이다. 구원이었다. 나는 몸을 바닥에 닿을 듯이 뉘여 물을 받아 마셨다. 맑은 물줄기가 온몸으로 흘러들었다. 천왕샘물로 목을 축이고 나니 천왕봉이 지척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 가슴은 쏟아질 것 같은 숨결만큼이나 벅차올랐다. 이 땅에 태어나 처음으로 천왕봉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백두대간의 남쪽 문인 천왕봉에 들어선 것이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

세석고원을 타고 넘어온 서늘한 바람은 지난밤 더위에 들뜬 몸을 식혀주었고 신새벽의 차디찬 공기는 밤새 남아 있던 땀을 닦아주었다. 싱그러운 아침 숲을 느낄 사이도 없이 20분 만에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해발 1691.9m의 영신봉에 도착했다. "이 영신봉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바로 삼파수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물길이 세 갈래로 나뉘지요. 낙동강, 섬진강, 금강으로 나뉘어 흘러듭니다. 삼파수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백두대간 전체가 모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백두대간의 산줄기와 마루금은 모든 강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빗물이 떨어져 나뉘는 첫 지점이 바로 마루금이라는 말씀입니다."한 대장의 설명이었다.

뉘엿뉘엿 해 저무는 저녁 하늘의 붉은 노을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랜 세월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지켜본 붉은 철쭉보다 더 붉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한동안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깊어진 어둠 속으로 한참을 들어갔을 때 한 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노고단이었다. 천신의 딸인 산신성모의 이야기가 옛날 신라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노고단이었다. "다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그래요? 정말 다 왔어요?" 나는 배낭을 넘겨주며 고맙다고 말했던 것 같다. 끝나지 않은 길

노고단 대피소의 아침은 탁 트인 시야 탓인지 시원하고 산뜻했다. 지난 저녁 힘들게 내려왔던 돌길을 바라보니 빛바랜 옛날사진을 보는 듯 아득하기만 했다. 산행 준비를 마치자 한 대장이 여느 때처럼 산행에 대해 말했다. "오늘 산행은 만복대구간입니다. 종석대, 성삼재, 작은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에 올랐다가 정령치와 큰고리봉을 거쳐 고기리까지 갈 예정입니다. 오늘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복대로 오르는 길은 솟아오른 젖무덤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웠다. 길은 키 작은 관목들과 억새풀 사이로 나 있었다. 햇빛을 받아서인지 풀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내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의 서부를 이루는 높이 1238.4m의 만복대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멀리 천왕봉에서부터 서쪽으로 흐르고 흘러 노고단에 다다른 산줄기가 급하게 북으로 방향을 틀어 내 앞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곁에 두고 있던 마한의 역사도 잃어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도 잃어버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오랜 세월 백두대간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백두대간은 곳곳이 끊어져 있다. 석회석광산이 들어선 자병산에도, 채석장이 들어선 금산에서도, 군사시설과 정부시설이 들어선 설악산이나 지리산 성삼재 지역에서도 마루금은 없어졌거나 끊어져 있었다. 그뿐인가. 하나로 흐르던 백두대간은 남과 북으로 허리가 잘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이 땅 한반도의 등줄기이자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 생명들의 통로인 백두대간은 더 이상 오고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자 가야 할 길이 보였다. 백두대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길이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육십령에서 소사고개까지



덕유산에 머물다


남에서부터 오르는 백두대간 덕유산 종주는 육십령에서부터 시작한다. 덕유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은 신라 때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래서였는지 옛날에는 산적이 많아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이 모여 올라가야 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 고개는 육십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 한 대장은 산행에 대해 설명했다. "오늘은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할미봉, 장수덕유산, 남덕유산, 월성치, 삿갓봉을 지나 삿갓골대피소까지 갈 예정입니다. 이 덕유산 구간은 산세가 거칠고 바위가 많습니다. 백두대간에는 난이도 A코스 구간이 다섯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 산행에 있습니다. 모두 유의하시고 안전산행하시길 바랍니다."

덕유산은 동서로 영호남을 나누는 큰 산이다. 주봉인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에 이르기까지 장장 100리에 걸친 산줄기는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여럿 품고 있다. 이렇게 크고 넉넉한 산이다 보니 이름도 여럿으로 나뉘어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인 향적봉(1614m) 일대는 북덕유산, 육십령에서 올라서는 남쪽 봉우리는 남덕유산(1507m) 그리고 남덕유산의 서봉(1510m)은 장수덕유산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광려산廣廬山 또는 여산廬山으로 불렸던 이 산은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와 같은 산이라고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성계 장군이 이 산에서 수도할 때 맹수들에게 한 번도 해를 입은 적이 없다고 하여 덕이 넘치는 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1026m의 할미봉 정상 일대는 온통 바위였다. 절벽처럼 깎아내린 듯 매끄러운 바위들이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백두대간의 난이도 A코스라는 가파른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내려갔다. 절벽에 홀아비바람꽃 무리가 피어 있었다. 바람에 쓰러질 듯 여린 꽃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부질없는 짓이다. 바람꽃은 바람과 친한 꽃이다. 바람꽃 종류를 통칭하는 속명 '아네모네Anemone'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꽃은 바람에 쓰러질 듯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춤추며 즐겁게 한때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산은 걸은 만큼 다가오고

동엽령을 지나고 백암봉에 이르렀다. 백암봉은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벗어나는 곳이다. 백암봉에서부터 백두대간은 동으로 방향을 돌려 삼봉산을 향해 뻗어 나간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었다. 길은 걸은 만큼 다가오고 산은 걸은 만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새 횡경재를 지나고 지봉을 넘어 대봉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연리지連理枝와 연리목連理木을 만났다. 서로 다른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다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었다. 가지들이 맞닿은 채 살아가면 연리지이고 뿌리도 몸도 하나가 되면 연리목이다. 그 모습 때문에 사랑과 그리움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나무들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무를 보며 사랑을 연상하고 그리움을 떠올리는 것이다. 못 다한 사랑이 많은 탓이리라.

소사마을을 떠나다

"미끄럼 주의하세요. 나무뿌리 밟지 마세요. 비에 젖은 나무뿌리는 미끄러워요."김 대장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삼봉산三峰山이 눈앞에 있다.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은 멀리서 보면 흡사 피어나는 연꽃 같은 형상이라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산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가운데 하나를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해서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다. 삼봉산까지가 덕유산 줄기이다. 덕유산을 벗어났다. 힘든 산행이었다. 덕을 지닌 산이라서 덕유산이 된 것이 아니라 산을 지나는 이들이 고된 산행을 견디고 인내함으로써 덕을 품게 되는 산이라서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괘방령에서 신의터재까지



하늘길을 걷다


괘방령에서 출발하여 가성산, 장군봉, 눌의산을 넘고 추풍령을 지나 금산에 오른 뒤 사기점 고개를 거쳐 작점고개까지 가는 짧지 않은 길이었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하늘길은 눌의산 해발 200m의 낮은 고원에서 추풍령으로 이어졌다. 고속도로가 백두대간 길을 가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아래로 난 지하통로로 들어섰다. 길목에 '백두대간의 기가 흐르는 000모텔'이라는 광고판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백두대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국적 이름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되고 난 이후 '추풍령'이란 노래가 다른 높은 고개들보다 주목받는 고개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백두대간을 지나는 유일한 곳이 추풍령이다. 고개라고 하기엔 좀 멋쩍은 느낌이 들 정도로 평지에 가깝다. 그대로 사람 사는 분주함이 있는 곳, 그런 마을이다.

우리는 금산으로 들어간다. 정상에 올라서니 반대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산의 북사면을 날려버렸다. 돌산의 작은 상처가 이토록 깊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석재를 얻기 위한 그들과 해방 후 중단되었던 그 사업이 1968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 김천시와 영동군이 맞댄 추풍령 자락 금산에 채석장을 낸 것이다. 그 회사는 폭약으로 산의 절반을 날린 후 철도용 자갈과 경부선 철도의 자갈로 썼으며 나중에는 고속전철철도의 자갈로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마음이 아팠다. 산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윗왕실재로 가다

길을 이어 간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다 비 내리는 아름다운 숲을 느낄 새도 없이 용문산에 올랐다. 비 내리는 숲길을 걸으며 한가로워 보이던,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산길에 나를 맡기고 싶었다. 국수봉에 올랐다.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산이므로 물을 움켜쥐었다는 뜻을 담아 '움켜질 국 에 물 수水를 써서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은 웅산熊山, 용문산龍文山, 웅이산熊耳山 등의 다른 이름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휴식을 위해 학교로 들어갔다. 백두대간 상의 유일한 학교인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다. 1949년 3월 폐교되었다는 내용이 적힌 교적비만 있었다. 교문 바깥쪽에는 '부산녹색연합 생태학교 백두대간교육센터'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달려있었다.

이화령에서 하늘재까지



조령산은 길을 열고


조령산鳥嶺山은 충청북도 괴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다. 산림이 울창하고 암벽지대가 많은 조령산은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절묘한 봉우리 그리고 노송 등이 어울려 눈길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인 천하절경의 명산이다. 주위의 신선봉과 주홀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월악산, 문수봉, 소백산 등으로 이어지고 남쪽은 속리산으로 이어진다.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 조령산이라고 쓴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바위에 앉으면 나뭇가지 사이로 첩첩한 산줄기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산줄기와 산줄기들을 품은 골에는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상 한편에 나무로 만든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산에 마음을 빼앗겨 산악인이 된 후 1999년 4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불꽃같은 짧은 인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 지현옥의 추모비이다. 그녀는 에베레스트 등정과 가셔브룸 2봉 무산소 단독등반 등 여성으로서는 믿지 목할 기록을 남기었다. 전문 산악인으로서의 그녀의 삶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여성 산악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기울여야 했다. 슬픈 현실이다.

하늘재에 서다

하늘길인 백두대간을 걷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백두대간 길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몸은 조금씩 산행에 적응하고 있고 산길을 지나는 마음은 즐거웠지만 때로 이 길을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산 지나고 숲 지나며 마음을 씻다 보면 어리석은 스스로의 뜻에 매몰되어 없어져버리는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길을 따라 가는,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돌아보니 불이 밝혀진다. 모두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 외에는 거의 행인이 없는 옛 고개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사이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해서 하늘재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525m의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신라 제8대 왕 아달라가 재위 3년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겨릅산', '계릅령'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에는 '대원령'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골점', '마골산'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하늘재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이름은 많은 함축된 의미를 안고 있다. 이 고갯길은 민초들의 소망길이요 백두대간과는 또 다른 하늘길이었다. 고단한 현실 너머에 있는 관음의 세계와 미륵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요 들어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을 지나갔다. 흔들리는 빗줄기만큼이나 마음이 흔들린 산행이었다. 하늘재를 마음에 품어 애뜻한 산행이었다.

화방재에서 댓재까지



산줄기 저 홀로 흐르고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지나 함백산, 은대봉, 두문동,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해발 1400m가 넘는 하늘 가까이 나있는 하늘길이었다. 야생화 가득하여 야생화 천국이라고 불리는 산길이었고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을 품어 흐르게 한 산줄기였다. 함백산은 오대산, 설악산, 태백산 등과 함께 태백산령에 속하는 고봉이다. '함백咸白'은 '태백太白'과 마찬가지로 '크게 밝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함백산도 태백산과 같이 신령한 산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산이었고 함백산은 하늘의 은총을 입는 산이 아니었을까.'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는 만수산의 서두문동에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을 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이들을 출사시키려고 회유하던 이성계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불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그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했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과 믿음과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고귀한 정신이 살아있는 땅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