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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사이족이다

안영상 지음 | 멘토프레스
나는 마사이족이다

안영상 지음

멘토프레스 / 2009년 11월 / 200쪽 / 14,000원



제1장 사람들



아프리카의 욕구 :
마타투(Matatu, 광범위한 사적 교통수단. 8~12인승 소형차로 최대 20명까지 탈 수 있게 개조했다)는 '제 멋대로 가다'라는 스와힐리어이다. 요금도 제멋대로여서 나 같은 무중구(스와힐리어로 '외국인'을 뜻한다)가 타면 다른 승객들 눈치를 봐가면서 차비를 더 받아낸다. 시내버스 노선을 따라 다니지만 때로는 엉뚱한 길로 종점을 가는 사설버스이다. 9인승 승합차에 운전석까지 포함해서 19개의 자리가 있는데 구부정하게 앉은 사람들 무릎 위로 빼곡히 채우면 25명까지 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살과 살이 닿는 것이 아니라 뼈와 뼈가 닿는 일체감까지 맛보게 된다. 오늘은 나이로비 역 앞에 있는 종점을 다른 길로 간다. 교차로에서 차가 밀리는 사이, 차장은 공사장 흙더미로 가서 오줌을 누고 겹겹이 서 있는 차 사이를 헤집고 돌아온다. 밀려 있는 차들은 아직 꼼짝 않는다. 창문 밖 신문을 파는 아이들, 핸드폰 주머니를 세 개 들고 차창 앞을 서성이는 사람, 종이봉지에 싼 땅콩을 파는 이들을 보면서 오늘도 햇빛이 참 눈부시게 곱다고 중얼거리는 사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아이들아, 길에서 구걸하거나 싸우지 말고 학교에 가자. 음식도 받고 교복도 입어보고 지식도 얻는다. 모두 줄 서서 학교로 가자. 졸업 때는 모자 쓰고 기념사진을 찍자. 어른 되면 아이들 끌어안을 넉넉한 품을 가지자. 그런데 누가 학교에 보내주지? 옷은 헤지고 맨발인데. 잠은 늘 푸른 공원 풀밭에서 실컷 자지만, 깨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야, 하늘을 보렴. 이 지구상에 흔치 않은 저 푸른 하늘 흰구름을……. 밥 대신 맑은 공기나 실컷 마시렴. 기계 선반에서 깎여 나온 쇳조각 같은 내 짧게 구부러진 머리카락이 머리껍질을 파고드는 게 싫어, 실을 꼬아 길게 매어보고 싶어, 매번 맬 적마다 300실링(17원)이 없어 두 달째 머리를 감지 못해 비올 때마다 염소젖 상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긴 머리를 찰랑이고 싶어. 가끔은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닭 뼈가 아니라 피가 흐르는 닭을 그냥 씹고도 싶어. 철물점에서 수도꼭지를 사다 벽에 달아놓고 따뜻한 물속에 잠기고도 싶고, 카세트 라디오를 쾅쾅 틀어 제치고도 싶어. 그런데 왜 이리 조용하지? 선교사 집에서 부대찌개 끓이는 냄새에 "아! 소주 한잔 생각나는구나" 했다가 "그런 사악한 소릴 하다니"라고 면박 당했는데, 나와 눈길이 마주친 차장 녀석이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나도 역 앞 담벼락에 보글거리는 찌개냄비에 두꺼비라도 그려놓아야지……. 그러면 아프리카의 욕구에 하나가 더해질까? 저 차장 녀석은 왜 운전석에 앉아 있고, 텅 빈 차 안에 혼자 졸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밀착, 마사이와 할례의식 - 할례 굿 : 21세기가 오기 전, 1999년 12월에 처음 케냐에 발을 들여놓은 후 사정이 허락되면 장비를 챙겨 아프리카로 떠나곤 했다. 몇 번 오가는 사이 현지에서 친구들도 생기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조엘이라는 나록의 마사이 청년이었다. 어느 날 조엘이 자기 아버지가 나이로비에 오셨는데 만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아버지 '카미오루' 씨가 아들을 통해 자기네 마을에 한번 오라고 초대했다. 그러곤 바쁘다며 자리를 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때의 나이로비행은 순전히 나를 '초대한다'는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먼 길을 오직 그 한마디 전하고자 가족 대표로 가장이 직접 온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전통이며 정신이다. 그들의 마을은 나이로비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세 시간 거리의 나쿠루에서 구석구석을 다니는 마타투로 두 시간, 그리고 걸어서 여덟 시간이 걸리는 마우산 중턱에 있었다. 이 마우산은 마사이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신화가 깃든 산이다. 그 산 중턱에 있는 올렘비트라, '산 위에 휘날리는 깃발'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조엘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4명의 어머니들과 약 30여 명의 형제자매, 조카들이 살고 있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미스터 안이 오면 그때 동생들의 '할례'를 하려 한다며 되도록 올해 안에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란다. 이미 나는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로뮤냑 카미오루(Olomunak Kamioru)'라는 이름을 받아놓고 있었다. 로뮤냑은 '행운'을 의미한다. 내가 그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비가 왔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내게 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사이의 소년들이 할례받기를 원할 때는 그 시기를 사전에 정해야 한다. 모든 이웃과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약간의 가축과 꿀을 가지고 주술사의 집을 찾아간다. 그들이 할례의식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을 때 그들은 몸에 물감을 칠하고 기뻐한다. 할례의식은 양이나 소를 잡은 후 소년의 머리를 면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두 번째 날, 소년은 전투현장에 가듯 숲으로 나아가 엘라팀(올리브)을 전리품처럼 베어온다. 소녀들은 그것을 마을로 가져와서 전리품을 나누듯이 움막 문 앞에 심어 놓는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마을 밖으로 나가 앉아 몸이 차가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펀(fern, 아스파라거스 혹은 목초)이 담긴 물로 몸을 씻는다. 가장 가까운 삼촌은 소가죽으로 소년의 발에 맞추어 샌들을 만들어준다. 해가 지평선 위로 올라오기 전 그의 어머니는 마을의 문을 열어 놓고 소가죽을 가져와서 오른손으로 문기둥을 잡고 땅 위에 펼쳐놓는다. 소년은 그 가죽 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이어서 시술자인 도로보가 소년을 잡아줄 남자와 함께 와서 소년을 앉혀놓고 할례를 시술한다. 대체로 이 시기 동안 거의 모든 마사이 소년들은 스스로가 완벽한 이완상태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소년이 움츠리거나 찡그리면 그의 어머니가 옆에서 막대기로 내리친다.

시술이 끝나자마자 피 묻은 소가죽은 소년이 가져가서 하루 전에 여성들이 올리브나무 가지를 잘라와 엮어 만든 간이침대 위에 둔다. 소년이 할례를 마치면 시폴리오(은둔자)라고 일컫는다. 4일간 집안에 머무는 동안 어른들은 그를 위해 활을 준비한다. 그런 다음 나가서 어린 소녀를 쏘게 한다. 화살은 벌집조각으로 싸여 있어 소녀의 몸을 파고들 수는 없다. 또 작은 새를 쏘게 하는데, 그것으로 타조 깃털과 함께 머리둘레를 장식한다. 시폴리오들은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수르트야 귀걸이를 하고 땅에 끌리는 망토를 입고 얼굴에는 물감을 칠한다. 그들이 모두 회복되었을 때 다시 면도를 하고 일-바놋(면도한 사람)이 된다. 그러고 나서 전사가 갖추어야 할 가죽과 장신구들을 착용한다. 이후에는 머리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머리를 땋을 만큼 충분히 자라게 되면, 그들은 일무란(전사)이라고 불려진다. 전사들은 '로잉곳(황소 같은)'그리고 '응가마니니(인심 좋은 사람)'라는 명칭을 얻게 되며, '일토롱겐'으로 불리는 방울과 팔찌를 착용할 수 있게 된다.

할례를 받는 시기에 따라 동년배 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은 선후배 집단과의 유대감을 갖는다. 이 씨족들의 동년배 집단은 더 큰 마사이 전체의 집단과 연결된다. 할례를 받은 후에야 소년 소녀들은 종횡으로 엮인 그 사회의 씨줄과 날줄 역할을 하며 어른으로서 후손들을 퍼뜨리고 그들의 전통 속에 담긴 정체성을 굳건히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할례'일부만 보고서 불쌍하다며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이 행하는 '할례'가 그렇게 잔인하고 몹쓸 짓이라면 그것을 시작의 끈으로 보는 '마사이 사회'는 무엇이란 말인가! 고통 또한 삶의 일부인 것을! 어찌 보면 이 세계의 모든 죄악과 부정은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데 있지 않을까. 고통과 죽음 그것이 삶의 일부 혹은 전부라는 의식에 도달해 보자. 우리의 진정한 삶은 그것 너머에 있다는 의식 말이다.

제2장 길 위에서



'라무'는 섬이다 :
"며칠 보이지 않던데, 나 몰래 사파리 갔다 온 거 아녀?" 하며 여전히 복사한 여행안내 팸플릿을 들이민다. 너무나 진지하게 보여주길래 받아들고 만지작거리며 늘 하던 농담을 시작한다. 이 친구들은 딱히 직업이 없으므로 나 같은 무중구(외국인)를 보면 필사적이다. 관심을 보이면 여행사로 데리고 가서 약간의 수수료를 얻어내거나 때론 바가지요금으로 한몫 단단히 챙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은 받아들고 만지작거리던 팸플릿에서 '라무 해상국립공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복사한 팸플릿이라 흐릿하지만 바닷가의 흰색 호텔 사진이 박혀 있다. 라무는 섬이다. 동아프리카의 해안에는 과거에 술탄이 통치하던 곳이 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Zanzibar)와 라무이다. 그중 라무는 소말리아와 케냐의 국경지대에 옹기종기 늘어선 섬 중 하나로 그 섬들의 중심지이다. 이제는 쇠락해 과거의 번영은 간 데 없고, 무장 강도들이 버스를 난사하고 승객들의 금품을 털어가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고 해안 곳곳에는 식민지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노예를 거래하던 장소들이 있다. 규모가 큰 데는 성채를 지어놓고 굳건한 방어시설까지 갖추었다. 그런 곳은 '노예의 성'으로도 불린다.

라무의 해안가 언덕 위에 허물어져 가는 성이 있고, 그 아래로 미로처럼 엉킨 무슬림 특유의 골목길들이 이어진다. 그 길 따라 내려가면 바닷가에 제법 멋을 낸 카페가 있다. 라무 패키지 3박 4일에 며칠을 더해 일주일째 섬을 즐기고 있다. 오늘도 삼각돛을 단 배들이 느릿느릿 오가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크리스티앙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이 카페의 종업원. 모두들 크리스라고 줄여 부르지만, 나는 그녀를 그리스라고 부른다. 그녀의 눈은 까맣다. 머리칼 또한 까맣다. 모두들 아랍식으로 부이부이(히잡을 여기서는 그렇게 부른다)를 착용하지만 그녀는 흰 블라우스에 천을 두른 치마를 입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 그리스가 떠오른다. 신화가 무너진 대리석 사이로 짓눌린 채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는 불길처럼 스물스물 새어나오는 연상을,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인도양을 건너는 햇빛이 역광으로 비칠 때 떠올린다.

그 노예의 성에는 콤플렉스가 없다. 자신들이 노예로 팔려간 치욕에 '저 건물 때려 부숴! 저 멋진 해안을 감상하는 데 방해되잖아. 풍수지리 어쩌고……'하는 집단 히스테리 없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그저 그 건물이 만드는 그늘에 앉아 하품만 늘어지게 할 뿐이다. 여기에는 무너진 대리석 신전 사이로 기어 나와 그리스를 괴롭히는 환상이 없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문득 깨어나 밖을 본다. 바닷가재를 잡으러 갔던 손바닥만 한 돛단배들이 들어오고 그것을 사려는 수집상들이 모여든다. 라무에서의 마지막 밤은 자스민 꽃향기와 소라 속 파도소리를 들으며, 내 꿈은 더 이상 엉키지 않았다.

여섯 시에 멈춘 시계 : 그동안 여러 차례 다녀온 투르카나의 동쪽 챠비 사막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 서쪽을 가보기로 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나이로비에서 차를 빌리지 않고 목적지 가까운 도시까지는 버스로 가고 거기서 렌터카를 섭외하기로 했다. 나이로비 야야센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므레프(Mrefu, 키 큰)라는 친구를 조수 겸 안내인 삼아 키탈레(Kitale)로 이동해 이틀을 머물고 있다. 두 개의 침대가 있는 방에서 므레프가 근처 고향마을에 간 사이, 창문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놓고 앉아 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주황색 꽃나무' 사이로 길 건너편 오래된 종탑에 박힌 시계를 본다. 바늘이 수직으로 여섯 시를 가리킨 채 멈춰 있다. 낮이 시작되고 밤이 시작되는 시각, 그 순간만큼은 수직이 된다. 마치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듯이. 저 종탑 시계 뒤편에는 아직도 종이 있을까?

시간을 소수의 성직자 계층이 독점하던 시기, 그 전에는 오직 신만이 시간을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그 시간마저 없었던 시기는 어땠을까. 왜 신은 인간을 시간 속에 던져놓았을까. 저 수직의 이미지, 아래를 가리키는 바늘과 위를 가리키는 바늘의 이미지는 우연일까? 여섯 시의 수직은 시간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영원의 시간, 하늘과 땅이, 낮과 밤이 연결되는 시간. 시간이 시작되었을 때, 하늘에는 환인이 있었고 그 아들 환웅이 허락을 받고 지상으로 올 때 수직으로 서 있는 신단수(神檀樹)를 통해 내려왔다. 그 신단수가 없었다면 하늘은 이 땅과 연결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땅의 세계를 다스리던 신의 아들 환웅이 곰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고, 단군은 인간세계의 왕이 되었다. 환웅과 단군이 이 세계에 있을 때나 하늘로 돌아갈 때 지표가 된 것이 바로 신단수였기에 그것을 중심으로 신시(神市)를 건국했던 것이다. 또 수직으로 뻗은 나무의 그림자를 나누어 신의 의도인 시간을 알아차리기도 했을 것이고.

여섯 시에 멈춰 선 종탑의 시계를 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사이 진짜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 어둑한 저녁으로 접어들고 흐릿하지만 가로등이 듬성듬성 켜진다. 내 방 창문 밑에 먼지가 잔뜩 앉은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지만 별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낮에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어둑해지자 그 빈 것 같은 박스에 작은 불 하나 켜져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오갈 데 없는 듯한 사내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내가 하루 종일 쳐다보던 교회 종탑과 길 건너로 마주본다. 꾀죄죄한 차림의 아이가 본드 담긴 물병을 입에 물고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제3장 하늘을 본다



마타투에서의 기도

인간과 동물이 동격인 '신화'를 만들다 :
스스로 문명화된 족속이라 내세우는 민족들이 그렇듯 한민족은 태양이 선택한 우수 종족이라거나, 유대인처럼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들을 선택했다며 히브리족의 신화라 할 수 있는 <구약성서>를 들고 하나님의 직계 후손임을 으스댈 때,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이 세상 동물을 자신들과 동격으로 여기며 그들의 신화를 구성했다.

이 땅이 시작되었을 때, 신은 세 가지를 준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네. 도로보(사냥꾼)와 코끼리와 뱀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도로보가 소 한 마리를 갖게 된 이후였지. 어느 날 도로보가 뱀에게 이야기했다네. "친구여, 왜 내 몸은 자네가 숨을 쉴 때마다 이렇게 가려운 거야?" 뱀이 대답했다. "아! 이런, 나는 그냥 숨을 쉬었을 뿐,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 후 도로보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날 저녁 몽둥이를 들고 뱀의 머리를 내리쳐 죽이고 말았지. 다음날 아침 코끼리가 한 친구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어. 도로보는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코끼리는 그가 한 짓을 알아차렸지. 밤 동안 많은 비가 내려 도로보는 그의 소에게 충분히 풀을 뜯어 먹이고 웅덩이에 물을 가둬놓을 수 있었지. 그들이 거기서 많은 날을 보내는 동안 마침내 코끼리는 어린 코끼리를 낳게 되었네. 시간이 지나 웅덩이는 말라갔고 오직 하나만 남게 되었으나 코끼리는 여느 때처럼 풀을 충분히 먹곤 했지. 그녀가 물을 마시기 위해 웅덩이로 돌아와 그 속에 드러누워 물을 휘젓고 있을 때, 소를 몰고 온 도로보는 웅덩이가 진흙탕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네. 그러던 어느 날 도로보는 활을 만들어 코끼리를 쏘아죽이고 말았지. 어린 코끼리는 떠나서 어느 곳에 당도했을 때, 한 마사이를 만났다네. 마사이는 어디서 왔냐고 물었지. 어린 코끼리는 "도로보의 마을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네. 마사이가 궁금해 하며 물었네. "네 어머니와 뱀을 죽였다는 도로보가 있다는 게 사실이야? 우리 거기로 가자. 그를 만나고 싶어."

그들이 도로보의 움막에 도달했을 때, 신이 아래와 위를 뒤집어 놓아 문은 하늘을 향해 있었지. 그들은 신이 도로보를 불러 말하는 것을 몰래 들었다네. "황소를 한 마리 데려오고 삼 일 내에 큰 울타리를 짓도록 하라." 우리가 마련되었을 때, 마사이는 숲에서 발견한 비쩍 마른 송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소우리에서 도축했다네. 마사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네. 송아지를 찾아와 그것을 잡아서 가죽 속에 살점을 매달아놓은 다음 장작에 불을 붙이고 살점을 태워 큰 소처럼 보이도록 불빛을 밝혔지. 그러고는 움막에 숨어서 바깥에서 불이 계속 타도록 내버려두었지. 그때 신은 송아지 가죽 위에 매달려 가죽 끈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네. 가축들은 울타리가 꽉 찰 때까지 가죽 끈을 통해 한 번에 한 마리씩 내려오기 시작했지. 동물들이 겹겹이 쌓이자 마사이가 있던 움막이 부서질 정도였다네. 그는 깜짝 놀라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지. 그리고 움막 밖으로 나가자 가죽 끈이 끊어진 것을 보았다네. 그 뒤 마사이는 그곳을 떠나 주어진 가축을 돌보는 데 열심이었지. 반면 도로보는 가축을 얻지 못했으며 음식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해야만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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