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 문학동네
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문학동네 / 2009년 6월 / 235쪽 / 11,000원
프롤로그_ 서른셋, 삶이 내게 쉬어가라 말했을 때1979년 12월 30일, 맑고 쾌청했던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나는 서른세 살의 심리학자로 중독 증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아내와 이제 막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두 딸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 나는 사랑스런 가족들에게 차례로 키스하고, 살짝 언 잔디 마당을 지나 낡고 정든 내 차 도지 다트에 올랐다. 지금 이 순간도 그때 내 발밑에서 사각사각 부서지던 얼음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나의 두 발로 땅을 밟은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후 나는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거대한 검은색 물체가 내 차창을 덮쳤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내가 에프러타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것,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이 전신마비가 되어 있더라는 것뿐.
그렇다. 나는 끔찍한 비극을 겪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체험했다. 충격, 슬픔, 분노, 공포……. 이 모든 것이 나를 성난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 내 마음을 폐허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것은 세상, 그리고 사람과의 괴리감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몇 주 동안 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신념을 꺾어야 하는데도 진정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내게 보통 남자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아내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가 간호사와 약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해도, 만약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내야 한다 해도 내가 여전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뼛속까지 사무치는 소외감과 괴리감을 떨쳐내려는 심정으로,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행동하고 교감하는지, 이성과 감정이 부딪칠 땐 어떻게 대처하는지, 나는 아무런 판단도, 분석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내 상태가 아무리 이 지경이 되었더라도 여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증명하고 확신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 가운데 속해 있을지라도 앞으로는 분명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 내 주치의마저도 내 곁에 있으면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나를 대할 때 일부러 명랑한 척 목소리 톤을 높인다거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고, 서둘러 용건만 내뱉기도 했다. 그들은 전신마비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너무 좌절하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썼고, 그러다 보니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인간은 어딘가 정상이 아닌 사물이나 사람을 접할 때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불편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는 이들도 있다. 내 상태가 생각만큼 끔찍하진 않다고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절친한 친구들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속으로는 안쓰러워하고 속상해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내가 이렇게 긴장하고 염려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닫혀 있었다. 모두의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괴롭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괴로움을 줄이고 싶어 한다. 나는 내 마음속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근심과 불안은 전염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 옆에서 불안해할 때면 내 마음 또한 굳게 닫혔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반박하거나 딴생각을 하면서도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들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려 노력하면 할수록 슬프고 외로워졌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고가 난 지 6주쯤 됐을 무렵, 물리치료실에 앉아 국방색 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너무 괴로워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데서 죽게 될 줄이야."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물리치료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에요, 댄 선생님. 여기 죽으러 오신 거 아니에요. 살기 위해 오신 거예요."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옳다. 하지만 내 말도 틀리진 않았다. 내가 다시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란 문제를 다루고 지나가야만 했다. 물리치료사의 형식적인 위로 때문에 나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나와 함께 있을 때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는 세상사를 꼬치꼬치 캐물을 힘도 없었으니까. 나는 단지 관찰할 뿐이었다.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 상태에 대해 묻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이 사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들은 그저 나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도 어느새 희미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 곁에 있으면 분명 불안해하지만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게 그 점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걱정할 때조차 스스로 편안해지는 법을 안다. 나는 이들과 함께할 때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차원의 교감과 소통이 존재했다. 그들이 내 사고로 인해 겪은 불안과 고통을 이야기하면 도리어 내가 그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동정을 느꼈다. 그들은 내 사고를 안타까워하며 흐느꼈고 나는 그들을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우리의 인생에 닥친 이런 예기치 못한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 반응에 따라 나의 반응도 달라진다.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나도 불안했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나를 보살펴주면 나는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지쳤을 때 내가 그들을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치유했다. 사고 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감정은 전염된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느끼지 못한 감정까지도 옮겨진다.
서로의 등 뒤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희망 없는 날의 선택사고가 난 후 아내 샌디가 응급실로 달려왔을 때, 난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지금 너무 많이 다쳤어. 아무래도 다시는 좋아지지 않을 것 같소."
이후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주 슬피 아주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깊은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도 나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필요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런 상태로 딱 2년간만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더 살지 안 살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노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나의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인생이었지만.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침대로 가서 깊이 숨을 들이쉬며 사색에 잠긴 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구와의 대화일까? 하나님? 나의 수호신? 내 신념? 어쨌건 그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래요. 약속한 대로 여기까지 살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만 준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아니야. 희망은 없어. 살거나 죽거나 오직 그뿐이네. 알아서 선택해!"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러면 제가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희망만이라도 주십시오." 그때 내 몸 상태는 거의 바닥이어서 조금만 더 튼튼해져 온갖 병원균의 침입을 이겨낼 수 있기만을 바랄 때였다. 그러나 그런데도 나는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계속 살거나 그게 안 되면 죽어야지. 아마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걸세." 내 모든 요구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그 순간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웠고 어떻게든 맞서고 싶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이런 젠장, 난 이제 어떻게 살지?"
약속된 2년은 끝났다. 나는 협상을 해보려고 했다. 비상구를 찾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나아질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약속도 없었다.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내가 대단한 영웅이라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용기만 있다면 목숨을 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삶을 택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인간은 원래 그런 상황에서 삶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삶을 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나의 위대한 통찰이다. 그리고 그 시절 내가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희망 없음'이라는 선물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기약 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택했다. 사실 이러한 지혜는 '이런 젠장'의 순간이 아니었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하염없는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그러나 나중에야,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우리는 과거와 같은 삶을 다시 찾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그 이후의 날들이 우리 인생의 진실임을 알게 된다.
몇 년 전 나는 골전이암 진단을 받은 캐롤라인이라는 여성을 치료한 적이 있다. 캐롤라인은 진단을 받은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테러 당한 기분이었어요." 즉, '이런 젠장'의 순간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보이더군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일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러나 사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후 6개월 동안은 "내가 이걸 안고 이떻게 살아가지?"라는 질문과 씨름하며 보냈다고 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암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사들의 소견을 들었다.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한 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그녀의 암세포는 퍼지게 될 거란 사실을 전했고 그제야 그녀는 비로소 희망을 접었다. 나처럼, 캐롤라인은 지난날 자신이 누렸던 인생을 되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놀라운 통찰을 얻었다. 이제 그녀는 오늘의 삶을 살아간다. 일을 그만두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동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희망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희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내 인생을 바꿔 주리라는 기대 속에 나를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희망 없음이 꼭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 없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며 다음과 같은 삶의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의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
내 안의 다이아몬드를 키워라누나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삶이 버겁던 시절, 나는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나 호랑나비를 만드는 꿈을 꾸었다. 그들이 말했다. "이것은 당신의 영혼입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이 나비를 삼켜야 합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대꾸했다. "못 하겠어요. 살아 움직이는 나비를 어떻게 삼킨단 말입니까?" "해야 돼요. 그래야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나는 나비를 입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비가 입 속에서 계속 팔락거리자 얼른 다시 뱉어버렸다. "못 하겠어요! 숨 막힌다고요! 이러다 죽으면 어떡합니까?" "상관없어요. 이것을 삼켜야 당신은 완전체가 됩니다." 그들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고 나비가 목구멍으로 거의 넘어가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 꿈은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세 명의 남자가 내게 호랑나비를 삼키라고 했을 때 나는 안 된다고 거부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것을 입에 넣고 꿀꺽 삼키려 했다. 왜 그랬을까? 맹목적인 신념으로? 그들의 말이 그럴듯해서?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 것이었을까?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 나는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려고 했던 것 같다. 나비를 삼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내 목숨이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처음에는 반항했지만 결국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고 결과가 어찌 되든 나비를 받아들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신성함을 인간성과 결합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종의 신념의 도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신념의 도약 안에서 우리의 에고는 죽게 된다. 그 나비는 내가 아는 모든 이론, 내가 믿는 모든 것, 때로는 나의 정체성보다도 중요하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신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갓난아기와 어린아이를 떠올려보자.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고 보호해 주리라는 견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물론 그 믿음은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퇴색하고 바로 그때부터 그들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떤 사상이 될 수도 있고 종교 혹은 사회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불안과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준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마음 편히 쉴 곳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해답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나 나만의 답을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믿지 않을 때, 우리는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불안이라는 악마를 저지하기 위해 나를 떠나 바깥에서 기댈 곳을 찾는다.
내 둘째 딸 데비는 대학교 2학년이었던 스무 살 때 나에게 내면의 믿음에 관해서, 또 딸아이 자신과 나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데비는 그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살면서 이제까지 겪었던 트라우마들이 한꺼번에 딸아이를 덮쳤다. 사실 나는 데비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길까봐 조마조마했다. 데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암 투병을 지켜보아야 했고 아빠의 전신마비에 적응해야 했으며 우리 가정에 닥친 여러 불행과 혼란을 참아내야 했다. 아이 엄마와 내가 이혼한 다음에는 엄마의 변덕과 무신경함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겪으면서도 데비는 적어도 겉으로는 언제나 '완벽한 아이'의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데비의 룸메이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데비가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데비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학교를 잠시 휴학한 후 집에서 쉬다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회사의 인턴사원이 되었다. 데비는 직장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렸고 내게는 그런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데비에게 내가 많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데비도 처음에는 언짢아하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주변에서 더 난리라며 내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어느 날 데비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는 다이아몬드인데 내 안에 자꾸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