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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망친 10권의 책

벤저민 와이커 지음 | 눈과마음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

벤저민 와이커 지음

눈과마음 / 2009년 11월 / 323쪽 / 12,000원



1장 혼란의 서막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Principe)』(1513)은 모든 윤리적, 종교적 양심의 가책을 일찌감치 저버린 군주들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진정으로 선하고자 노력하기보다 그저 선하게 보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비, 신뢰, 인도주의, 정직, 그리고 신앙심과 같은 덕목들이 군주에게는 해가 된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러한 덕목들을 단지 보여주기 위해 갖추는 것은 군주에게 유용하다"고 했다. 특히 제일 마지막 덕목인 신앙심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는데, 절실한 신앙심의 표출은 나머지 네 가지 덕목들에 대해 저절로 긍정적 평가를 얻게 하고, 특히나 신앙심을 중시하는 이들에게서 더욱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그런 위선과 속임수의 통치 기술을 담은 책이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가 비윤리적인 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해두는 것이 아마도 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공평할 듯 싶다. 그가 태어날 무렵 이탈리아는 다섯 지방(플로렌스, 베니스, 밀라노, 나폴리 그리고 교황령)으로 나뉘어 음모와 부패, 분쟁으로 얽혀 있었다.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추기경과 교황을 포함한 종교의 타락상을 직접 목격했고, 그들이 행한 냉혹하고 잔인무도한 면모를 고스란히 겪기까지 했다. 그는 한때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감금되기도 했는데 이때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형벌을 받았다. 이 형벌은 양 팔목을 뒤로 결박하고 그 밧줄을 천장의 도르래에 연결해 공중에서 몇 번이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경험에서 진정으로 악을 이해했고, 심지어 악을 향해 미소 지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친근한 미소를 보내는 악의 근원, 『군주론』의 실체이다.

『군주론』 본문 17장에 언급되어 있는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의 사례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보르자는 사악하고 야비한 추기경으로 무자비한 탄압 정책을 펼쳐 피지배층의 불만을 샀다. 따라서 반란과 폭동이 이어졌는데 특히 로마냐라는 지역이 가장 주목되었다. 보르자는 이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 자신의 충복 레미로를 그곳으로 보냈다. 그로자 레미로는 자신의 악명이 높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상관 보르자를 위해 온갖 폭정을 다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레미로가 보르자의 하수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레미로뿐만 아니라 보르자에 대한 증오 또한 더욱 커져갔다.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던 보르자는 어느 날 레미로를 두 동강 내어 그 시신을 광장 한가운데에 놓아두었다. 그동안 행해진 모든 잔인무도한 정책은 자신이 아닌 그의 측근들이 벌인 만행이었다는 이벤트였다. 광장의 섬뜩한 광경을 본 로마냐 주민들은 희열과 동시에 큰 충격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보르자는 주민들의 복수를 대신해줌으로써 순조롭게 그들의 복종을 얻어냈다. 이러한 보르자의 악행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그를 어떻게 비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보르자의 사례가 운으로 권력을 쟁취한 모든 군주들에게 교본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넌지시 전했다.

마키아벨리는 '결과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는 모든 악은 허락된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발상이다. 만일 '선을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이 필요한 선택'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신과 영혼, 그리고 사후 영생을 부정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 어떤 당위와 이득도 사후의 영생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점을 겨냥하고 기독교적 천국의 개념을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가 '천국과 지옥'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윤리적 규율로 인간의 두 손을 꽁꽁 묶어버리고 필요악을 행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군주들에게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를 통치의 기준으로 삼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20세기의 각종 혼돈의 경험에서 분명히 얻은 교훈이 있다. 바로 불확실한 선을 좇기 위해 시작한 악이 점차 더욱 불확실한 선을 위해 더 악한 행위도 서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은 30년 전쟁(1618~1648) 직후, 그리고 영국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집필되었다. 홉스는 이 책에서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참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표현이며 평화야말로 가장 인위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에덴동산'을 반박하면서 선악의 구분조차 없는 자연 상태야말로 '진정한' 에덴동산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란 본래 권리와 욕망을 향해 매진하는 존재이므로, 선(善)은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악(惡)이 되는 것이다. 즉 자연 상태에서 '선(善)'과 '악(惡)'이란 말들은 오로지 그 목적의 성질에 따라 정의될 뿐이었다. 그런데 홉스의 상상대로라면 태초의 세상은 완전한 혼란 상태였어야 한다. 그래서 홉스는 인간 세상을 전쟁 상태로 몰고 가면서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 즉 '사회'라는 탈출구를 제시했다.

홉스는 태초의 인간들이 권력과 욕망의 쟁취로 인해 야기되는 바로 그 혼란 때문에 마지못해 서로간의 동의하에 사회라는 공조 체제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서로의 동의'란, 바로 개개인이 흡족할 만큼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외한 나머지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계약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의(正義)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했다. "만약 나에게 X를 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에게 X를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선악에 대한 이해는 개인적인 좋고 나쁨에 대한 선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윤리성을 사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인간에게 가족 혹은 이웃에 대한 의무감이란 없다. 더군다나 타인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 자란 이 땅에 대한 숭고한 감정 따위는 더더욱 없다. 바로 이러한 개념에서 홉스는 인간의 권리와 욕망의 충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각자가 누리는 권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근대 자유 정치의 이론과 실행에 근간이 되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는 불운했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독학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하여 서른여덟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는데, 디종(Dijon)학술원에서 주최한 논문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비로소 명성을 얻게 되었다. 논문의 주제는 「과학과 예술의 복구가 윤리를 순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가」였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한마디로 "그럴 수 없다. 인간은 문명화될수록 점점 부패한다"는 것이었다. 루소는 이 답변을 「과학과 예술에 관한 서설」을 통해 제시했다. 먼저 《첫 번째 서설》에서 그는 "과학과 예술 등의 발달로 인한 문명화가 인간을 청렴함이나 행복과 멀어지게 하는 동시에 더욱 연약하고 사악한 존재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정부나 법은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하지만, 그런 동시에 '본연의 자유'를 앗아감으로써 우리를 나약하고 도회적 관습에 익숙한 '행복한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는 이론을 《두 번째 서설》에 실었는데, 이것이 바로 나중에 제목이 바뀌어 발표된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이다. 이 책은 1754년 디종 아카데미에서 제시한 또 다른 문제, 즉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는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의거하는가>에 대한 응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일으킨 혼란을 다룰 것이지만 루소의 가르침은 많은 근대 철학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므로 그 심오함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루소의 《두 번째 서설》은 한마디로 '혼란의 풍요로움'이라고 하겠다. 루소는 '불평등'에 관한 디종 학술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태초에 존재한 '자연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토마스 홉스의 주장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홉스가 '권리와 욕망을 향해 치닫는 인간의 본능'을 묘사했다면 루소는 '근심 따위는 없고, 전쟁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며, 조상 대대로의 원형을 지닌 새로운 아담의 모습'을 그려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태고의 남성과 여성은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필요와 욕구가 만족되면 쉽게 떠났다. 부모 자식 간에도 어머니는 그저 아이가 생기면 출산을 하고 자식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 어머니의 곁을 떠났다. 그런데 첫 번째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그 혁명은 바로 '움막'이었다. 루소는 몇몇 어리석은 이들이 '움막'을 지으면서부터 바로 '가족의 성립과 소유'의 개념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은 '자유 상태에서 인위적인 노예 신세'로 추락하는 비극적인 삶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태초의 인간은 그 어떤 '소유'에 대한 개념도 없었기에 감정 하나에만 사로잡힌 '순수한 인간'이었으나, 사회가 발생함으로써 동물적 본능을 억제하게 되었고 윤리적 제약에 얽매이게 되었다. 또한 농업과 건축의 발명으로 인한 분업화는 결국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낳았다. 이런 논리에서 루소는 예술과 기술의 발달을 포함한 문명의 진보가 인류의 퇴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루소의 논리는 마치 소유(사유재산)가 인간의 모든 불행과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같이 기존의 사회체제를 철저하게 뒤엎는 쿠데타 정신을 부추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같은 자들은 루소의 암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명사회에 대한 그의 이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주장이 왜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루소의 움막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소유는 불평등을 초래했고 이로 인해 불만이 야기되었다. 그런데 소수의 더 가진 자들이 다수의 빈민이 쉽게 단합하고 그 단결을 토대로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러한 단합을 막고자 매번 기막힌 책략을 들고 나오는데, 그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개개인의 모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오직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한 법과 이를 집행하는 권력을 창조하는 것이다. 루소는 멍청한 가난뱅이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며 애석해했다.

2장 10대(大) 혼란



공산당선언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저술한 『공산당선언』(1848)은 현존하는 단행본 가운데 가장 사악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로 희생된 억 만구 이상의 시체들을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이미 공산주의는 온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교훈을 주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야심찬 설계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공산주의가 그토록 엄청난 파급력을 미칠 수 있었을까? 『공산당선언』은 행동을 요구하는 외침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서른 살 생일을 몇 달 앞둔 1848년 1월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공산당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지적이고, 자기중심적 혁명론자인 그는 다른 비난자들, 특히 동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겸손한 태도로 대했지만 자신과 견해가 다른 상대에게는 아낌없이 비난과 경멸을 퍼부었다. 마르크스의 성격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그러한 난폭함에 힘입어 공산주의가 그토록 빨리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 시대를 이끄는 학설은 반대하는 세력이 제거되었을 때 그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한마디로 극도로 단순화된 무신론적 유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이 물질적 풍요로움을 위해서 행동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선천적인 도구, 즉 위협적인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털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과 더불어 진보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사회가 생겨났다. 게다가 인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 복잡한 사회나 다양한 생산품들이 생겨났고 그때마다 끊임없이 세분화되는 노동의 분업화를 가져왔다. 분업화는 곧 군주, 기사, 영주, 상인, 농부, 숙련공 등과 같은 계급을 양산했고, 더불어 소유의 차이를 가져왔다. 결국 소유의 차이는 불평등과 계급 간의 적대 관계를 형성시켰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마르크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이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철학자들이 심오한 철학적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심오함과 거리를 두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가져와 대입시켰다. 예컨대 어느 사회를 들여다보든지 흔히 볼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가지고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결론, 다시 말해 가족의 해체라는 결론을 불러왔다. 그리고 '계급의 해체'라는 유토피아 건설을 최종 목표로 배치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이제 그들을 옭아맨 족쇄 외에는 더 잃을 것이 없다면서 족쇄를 풀고 부르주아들을 제거하고 나면, 그들이 무(無)계급 사회에 존재하는 유일한 계급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역사에 내재한 복잡성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인간은 사고, 관점 그리고 개념과 같은 개인의 모든 의식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물질적 존재 안에서 숨쉬고 있다. 또한 과거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간의 적대적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가운데 존재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무계급사회라는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노동자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가져다놓았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이나 옛 소련과 같이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여지는 모순은 그들 스스로 밀쳐낸 자본주의자들보다 더 사악하게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의 모든 이권을 모두 움켜쥔 채 민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다수 국민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만약 마르크스 이론을 진정으로 시험하고 싶다면, 원죄와 신을 부정하며 유토피아를 내세우는 이들의 손에 권력을 쥐여보라. 그러면 금방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유래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으로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이미 진화론으로 충분히 논란이 된 상황에서 인간에게 적자생존을 적용하면 큰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종의 기원』의 명백한 결론을 잡지 《맥밀런》에 2부에 걸쳐 기고했고 자신의 책 『유전적인 천재』(1869)를 통해 더욱 상세하게 소개했다. 그러자 다윈은 재빠르게 『인류의 유래』(1871)를 펴내 그 뒤를 이었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다윈의 진정한 목적은 침팬지나 고릴라에게서 인간의 선조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종의 기원』의 '명백한 결론', 즉 바로 적자생존을 적용한 '우생학'이었다. 우생학은 한마디로 최고의 품종만 번식시키고 부적합한 종은 도태시킨다는 발상의 응용과학이다. 이를 적용하면 강한 존재(적자)만 살아남고 약한 자(부적격자)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고군분투 속에서도 강한 자들과 더불어 (병약한)반사회적인 자들도 함께 공존한다. 그래서 다윈은 '동정'이라는 애매한 윤리적 개념을 빌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슬픔 또는 불편함을 느끼는 본성을 갖고 있다. 더욱이 사회적 진화에 의해 점차 악습과 미신들을 버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얻게 되었고 윤리적 의식 또한 점점 높아졌다. 그래서 자신의 복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까지 고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세상에서는 강자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들까지 공존하게 되었다."

다윈의 말에서 '동정'은 마치 싱그러운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는 '진화'가 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로 '동정'과 같은 윤리의 도입으로 필요 없는 존재들까지 공존하게 되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언제나 반대자들과 맞서는 걸 꺼려했다. 그는 "약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더욱 약하거나 열등한 사회 구성원들(정신지체장애인 등)'이 자유롭게 결혼하는 것만큼은 규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우생학을 백인종과 흑인, 호주 원주민 등에 대입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 문명화된 인종으로 초(超)백인화를 내세웠다. 문제는 이러한 우생학이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타락한 무신론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정치적 급진파들과 연관 지어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나치와 같은 자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모든 과학적 이론이 그것을 너무도 쉽게 숙명으로 몰아간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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