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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
좋은 사진

진동선 지음

북스코프/ 2009년 9월 / 440쪽 / 22,000원



카메라 이야기



카메라의 역사가 사진의 역사다


사진의 시작 사진은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지각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사진의 출현은 세상에 대한 '보는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사진은 정교한 기록성으로 이전의 역사와 확연히 구별되는, 인류 발전과 진보에 기여한 시각매체가 되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카메라의 광학 기술이다. 사진을 카메라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카메라의 발달사가 곧 사진 표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원리 사진의 원리는 카메라의 원리이다. 최초의 카메라 원리는 10세기경 아라비아 학자 알하젠Alhazen의 이론에서 출발한다. 그 이론은 아주 간단하다. 사물에 빛이 비치면 빛의 반대편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과, 그림자의 선명도는 주변이 어두울수록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이 원리를 응용하고 발전시켜 카메라의 원형을 탄생시킨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15세기경 다빈치가 고안한 카메라의 원형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둠의 방'이라는 뜻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캄캄한 어둠의 방에 작은 구멍을 낸 다음 구멍의 정반대편에 흰 종이를 세운다. 그리고 흰 종이와 구멍 사이에 물체를 놓으면 빛이 입사하여 흰 종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렇게 생긴 물체의 그림자가 영상이고 이미지이고 훗날 사진이 되는 '빛 그림'이다.

기술과 표현 역사 속에 등장한 카메라들은 모두 일관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바로 최적의 용도와 최적의 효과다. '표현'은 카메라의 용도와 효과의 결과이다. 따라서 카메라를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용도'와 '효과'와 '표현'이다. 그동안 카메라는 수요층이 요구하는 용도와 활용, 효용적 측면을 수용하여 진보해왔다. 동시에 역사적인 카메라들은 단 한 번도 인간의 눈과 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모든 카메라는 동시대 인간의 눈과 마음을 헤아린 결과물이었다. 카메라는 분명 기술의 대명사이고 도구적, 기능적 표현을 위한 기계이지만, 카메라와 인간 사이, 혹은 기술과 표현 사이에서 동시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배제한 적은 없다. 기술이 인간의 눈을 위한 것이라면, 표현은 인간의 마음을 위한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모든 카메라는 기술과 표현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그 점에서 카메라의 발달사는 근대 기술과 표현의 발달사라고 할 수 있다.

다게레오타입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어둠과 속도의 문제 사진은 먼저 인간의 눈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 카메라 렌즈를 거치고, 마음을 거쳐 세상을 노출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도구 이미지', 즉 기계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기계 영상은 빛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의 원리는 빛의 원리이고, 사진의 원리 또한 빛의 원리를 따른다. 사진을 '빛 그림'이라고 하는 것도, 카메라의 구조를 '암상자'라고 하는 것도 모두 빛의 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빛의 구조를 분석하여 생성되기 때문이다. 사진의 공식 발명가로 알려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발명한 다게레오타입도, 그보다 먼저 최초의 사진을 찍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의 엘리오그래피도, 다게르에게 간발의 차이로 발명권을 잃은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의 탈보타입도 모두 진보된 기술의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기술의 진보를 두고 경쟁했다. 누구의 사진술이 더 선명하고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 누구의 사진술이 보다 간편하고 편리하고 빠르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속도의 문제였다. 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도의 기술과 거대 자본이 신속하게 사진 기술에 참여한 것도 사회의 동력인 '속도'와 연동되었기 때문이다.

실재와 사실성의 문제 사진이 발명된 직후에 등장한 첫 번째 명기는 다게레오타입 카메라였다. 다게레오타입 카메라가 최초의 명기가 된 이유는 전적으로 실재감과 사실성 때문이다. 명기의 조건은 생생한 현실감과 실재감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마치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실제로 만지는 것처럼 생생한 현실감이 사실성이다. 사실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렌즈였다.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는 최고급 빈센트 슈발리에Vincent Chevalier렌즈에, 감광성이 뛰어난 할로겐화은 감광물질과 투명도가 높은 은판이 결합되어 놀라운 실재감과 사실감을 제공했다. 사실성의 핵심은 '닮음Likeness'에 있었다. 19세기까지 나타난 수많은 명기들은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닮은 이미지로 현실감을 주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지금도 이런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화질과 해상력의 문제 사실성의 문제가 '닮음'과 같은 지각의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인 화질의 문제로 발전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오늘날 사실성은 선명도(순도 및 채도), 선예도(경계가 뚜렷한 정도), 입상성(입자의 분포도)의 총합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렌즈와 조리개, 필름 입자에 의해 달라진다. 그 다음 인화 과정에서 발색이 따라 달라지고, 디지털의 경우는 입력한 데이터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명기를 결정지은 절대적 요소는 렌즈의 해상력이었다. 롤라이플렉스, 하셀블라드, 라이카, 콘탁스 등 20세기 최고 명기들의 공통점은 해상력이다. 해상력은 피사체를 실제와 똑같이 표현하는 이미지 재현 능력이다. 역사적인 명기들을 복제한 카메라들이 수없이 등장한 것도 이 명기들이 표현해낸 이미지 퀄리티, 즉 화질로서 이미지 재현 능력 때문이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



좋은 카메라는 어떤 카메라인가


좋은 카메라란 어떤 카메라일까? 우선 다음 네 가지 기준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기에게 잘 맞는 카메라이다. 자신이 익숙하게 다룰 수 있고, 잔 고장도 없고, 카메라의 성능을 잘 알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이다. 두 번째는 사진가의 표현 혹은 표현 의도에 가장 잘 맞는 카메라이다. 카메라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보다 사용 목적 또는 활용도이다. 세 번째는 즐겨 이용하는 단골 카메라이다.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카메라도 여러 대, 렌즈도 여러 종류를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보유한 카메라들 가운데서도 유독 즐겨 쓰게 되는 카메라가 있다. 그 카메라가 비싸서도 아니고 희귀해서도 아니다. 즐겨 쓰면서 애정을 갖게 되고 그 결과물에 대해 더욱 신뢰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역경과 고락을 함께한 오래된 카메라이다. 대부분 사진가들에게는 녹슬고 작동조차 안 되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카메라가 있다. 사선을 함께 넘은 전우처럼 오랜 시간 함께 역사를 쌓아온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이다.

좋은 눈은 어떤 눈인가

사진은 사진가가 눈으로 본 것을, 사진가의 눈으로 찍은 것이다. 렌즈는 눈의 확장이고 필름은 마음의 확장이다. 좋은 눈을 가져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좋은 눈은 감동의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좋은 눈은 물리적 특성, 감성적 특성, 이성적 특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좋은 육체에 좋은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 것처럼 물리적으로 좋은 눈은 좋은 사진을 이끈다. 이성과 감성이 뒷받침되어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더욱 필요한 눈은 올바른 이성과 풍부한 감성으로 소통하는 눈이다. 이때 올바른 이성이란 '앎(혹은 정보)'이라는 지적, 학습적 영역이며, 풍부한 감성이란 눈이 알아채는 지각적, 감각적 영역을 말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좋은 눈이면 충분하지만, 그로부터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앎知'을 향한 좋은 눈과 '형形'을 향한 좋은 눈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사진도 그렇다.

관찰의 눈 좋은 눈의 첫 번째 요건은 '관찰의 눈', 즉 조망의 눈이다. 사진은 기록이고 증거이다. 카메라가 객관적으로 찍은 현실 이미지이다. 사진은 '목격'이고 '실제'이고 '사실'이다. 좋은 눈의 첫 번째 요건인 관찰의 눈은 '앎'을 향한 눈(시선)을 말한다. 사진은 카메라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그 대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침묵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가가 대상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볼 수 없고 찍을 수도 없다.

존재의 눈 좋은 눈의 두 번째 요건은 '존재의 눈', 즉 삶의 눈이다. 사진은 누군가의 삶을 투영한다. 또 그것들의 생과 사를 투영한다. 좋은 눈은 삶의 순간성을 바라본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진들은 누군가의, 어떤 존재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념사진과 증명사진이다. 이때 좋은 눈이란 곧 존재를 자각하는 눈이다. 존재란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 '있음'은 영원히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존재감이다.

시간의 눈 좋은 눈의 세 번째 요건은 '시간의 눈', 즉 순간의 눈이다. 사진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물리적 순간과 정신적 순간이다. 먼저 물리적 시간의 눈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y Cartier Bresson이 말한 '결정적인 순간'과 같은 개념이다. 사진은 순간에 찍힌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셔터 속도에 의해 물리적인 특성을 갖게 되고, 기계의 힘에 의해 순간의 자동성으로 기록된다. 또 다른 시간의 눈은 정신적인 시간의 눈이다. 사진은 '시간의 초상'이다. 사진의 운명은 곧 시간의 운명이다. 사진에서 물리적인 시간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영원성의 눈'이다. 사진은 물리적인 순간과 더불어 정신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순간의 예술'이라 말하며, '순간에서 영원으로'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소통의 눈 좋은 눈의 마지막 요건은 '소통의 눈', 즉 언어의 눈이다. 사진은 시각언어이다. 일반적으로 사진을 만국 공통어라고 말한다. 인종과 언어는 달라도 사진을 보고 이해하는 바는 같다. 사진은 현실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낸다. 사물을 찍은 사진은 사물의 구체적인 상태나 상황을 재현한다. 대상이 무엇인지를 바로 인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진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사진은 '무無의 형상'이 아니라 '유有의 형상'이다. 회화, 문학, 음악이 캔버스나 원고지, 오선지와 같은 빈 공간에 점, 선, 면, 가나다라, 음표를 나열해 내용을 구성해간다면,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로부터 나타난다. 즉, 사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거듭하는 '재현 예술'이다. 사진을 '복제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를 '마음의 눈'에 양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음의 눈도 육체의 눈처럼 눈이다. 눈과 마음은 하나다.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 마음은 어떻게 좋은 사진으로 연결될까? 좋은 마음만 가지면 저절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좋은 사진의 기준은 무엇이며, 좋은 마음으로 찍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예컨대 "당신이 보지 못하면 카메라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때 '보지 못한다'의 주체는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보는 눈'이란 육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의 눈을 포함한다. 즉 마음이 보지 못하거나 마음에 넣지 않으면 보아도 진정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디테일을 향한 눈 좋은 마음의 첫 번째 요건은 '작은 것을 내치지 않은 마음', 즉 디테일(삶의 세부)을 향한 마음의 눈이다. 이에 대해 사진교육자 필립 퍼키스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포크>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접시 가장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는 포크를 찍은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이 있다. 테이블에는 포크의 그림자가 늘어져 있다. 사진 속에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다. 그러나 이 사진은 변형의 힘을 지니고 있다. (중략) 포크든 사과든, 작품의 대상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 예술가의 독창적인 감수성으로 어떻게 바뀌었느냐, 바로 이 점이 예술의 핵심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본성 때문에 이를 사진에서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으로 볼 수 있을 때 작은 것을 헤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필립 퍼키스의 관점이다.

시선과 마음의 눈 좋은 마음의 두 번째 요건은 '나를 향한 마음', 즉 자아를 드러내는 마음의 눈이다.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좋은 사진은 결국 나의 이야기, 나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이 마음을 따르고, 그 마음이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비로소 자기만의 개성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주변의 칭찬보다는 나만 찍을 수 있는 사진, 자아가 드러나는 나다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때가 좋은 마음이 좋은 사진과 만나는 순간이며, 이때 좋은 마음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자아가 드러나는 사진이란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찍은 사진이다. 나를 향한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노출, 앵글, 초점을 무시할 수 있다. 또 나를 향한 마음으로 담는 사진이기에 사진의 모든 형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마음으로 담은 사진은 훗날 시간이 말해준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시간, 공간, 이야기들을 돌아보게 하는 '되돌려진 시선'이 된다. 세상의 모든 사진은 곧 누군가의 마음이다. 바로 누군가를 향했던 마음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

깊이와 성찰 좋은 마음의 세 번째 요건은 '소소한 시간의 의미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즉 삶의 포즈와 그 시간의 의미를 헤아리는 깊이의 눈이다. 사진은 시간 안으로 와서 시간 밖으로 향한다. 사진가의 눈은 훗날 감상자의 눈이 된다. 시간의 안과 밖을 바라보는 것 사이에 눈과 마음이 있다. 사진은 좋은 눈으로 받아들여서 좋은 마음으로 읽는 세상이고, 그 세상이 품은 시간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좋은 사진은 눈(형식)과 마음(내용)이 분리되지 않는다. 좋은 사진은 형식과 내용이 동시성을 갖는다. 존 버거는 인간의 시선 속에는 항상 육체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두 가지 시간 사이에 눈이 보는 것과 눈에 의해 보이는 존재가 있고, 그리고 그것들이 관계하고 이루어내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사진이고, 사진을 탄생시키는 눈이고 마음이다. 인간은 처음에는 육안으로 바라보지만 점차 내면의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생각'이라는 것도 마음이 키우는 상상력의 시간적 의미이고 성찰이다. 이 시간적 성찰 중에서 '소소한 성찰, 소소한 의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좋은 사진의 요건이다.

운명, 단 한 번의 순간 좋은 마음의 마지막 요건은 '대상과의 운명적 만남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즉 단 한 번의 마주침을 소중히 하는 마음의 눈이다. 사진은 '우연성'과 단 한 번 찾아오는 '운명성'이 강한 예술이다. 모든 사진은 그때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다. 단 한 번의 포즈로 나타났다. 소멸해버린 지난 시간의 그림자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도도한 흐름 가운데 한순간을 포착하고 훗날 되살려보는 '시간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운명이 있고, 숙명적인 만남이 있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단 한 번 마주친 순간으로부터 사진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흘러가는 시간과 그 흐름의 의미를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

좋은 사진을 위한 세 가지 기초



좋은 사진을 위한 구도


사진은 형상미학이다. 사진을 시각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형상을 통해 언어와 미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의 기초는 '구도Composition'이다. 형상과 형태를 축으로 하는 사진미학에서 구도는 중요하다. '구성Modeling'의 하위 개념으로서 구도의 중요성은 형상과 의미를 결정짓는 조형미학의 근간이다. 그러나 '좋은 구도'의 정의는 없다. 어디에도 좋은 구도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역사상 한 가지 구도가 좋은 구도로 인정받은 일도 없다. 좋은 구도는 상황에 따라, 환경과 변화에 따라 달랐고, 늘 사진가의 눈과 마음을 따랐다. 사진의 구도에는 두 가지 본질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구도로서 '보기 좋은 그림', '보기 좋은 배치'를 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레임으로서 세계의 모습을 재인식하는 형상이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찍는 것이다. 사진가는 세상 속에 이미 짜여 있는 구도를 인식할 뿐 구도를 무너트릴 수도, 재배치할 수도 없다. 기존 구성을 무너트리고 재배치하는 것은 구성 사진이나 연출 사진 혹은 설치 사진에서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사진에서는 '구도'라는 말 대신 '프레임'이라는 말을 쓴다. 프레임은 이미 존재한 너른 세상을 파인더 안에 제한적으로 담는다는 개념의 '마이너스 구도'를 뜻한다. '사진은 뺄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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