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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런던을 속삭여줄게

정혜윤 지음

푸른숲 / 2009년 9월 / 300쪽 / 12,000원



런던이 궁금하니? 런던 대신 파란색을 들려줄게 -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중세 기사들의 로망을 생각나게 하는 첨탑으로 가득한 고딕 양식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역대 영국 왕들의 대관식장 겸 장례식장 겸 무덤으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이 사원은 헨델 같은 음악가, 뉴턴이나 다윈 같은 과학자, 리빙스턴 같은 탐험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셰익스피어,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 『올리버 트위스트』와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의 찰스 디킨스, 바이런, 키츠, 셸리, 브라우닝, 워즈워스 같은 시인, 그리고 『실낙원』의 밀턴, 『아이반호』의 월터 스콧 같은 이의 묘역 때문에도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곳이다.

이 많은 무덤들을 돌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수세기를 넘나드는 정신적인 여행이 될 수 있는데,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거의 절대적인 자기만의 열정 속에서 인생을 살아갔다는 공통점이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그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자들 가운데서도 관광객들에게 유달리 인기를 끄는 인물은 뉴턴인데, 그의 무덤 주위엔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처럼 행성이 돌고 있다. 어린 시절 우울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아이였던 뉴턴은, 벽과 땅에 나무못을 박아 시간을 15분 단위의 근사치까지 측정했고, 해시계를 돌에 새기고, 해시계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 길이를 매일 도표로 기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농가 뒤의 과수원 그늘에 앉아 있다가 하늘에 달린 2인치 크기의 사과들이 땅으로부터 20피트 거리에서 똑같이 0.5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과가 천구는 아니지만 뉴턴은 매일 2만 5천 마일을 도는 지구상의 다른 사물들과 함께 사과 역시 우주를 날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사과는 줄에 매달아 돌리는 돌멩이처럼 밖으로 날아가지 않고 왜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걸까? 그리고 그는 그런 질문을 달에다 대고 해봤을지도 모른다. "달아, 왜 너는 사과처럼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거니?"

뉴턴은 혼자만의 고독한 연구에 미쳐 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삼십대를 보내면서, 핼리(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그 핼리다)의 설득으로 『프린키피아』란 역작을 냈다. 그리고 수학 천재로 알려진 그는 해군 병기청의 지원을 받았고, 조폐국장이 되었으며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뉴턴 이후 세계의 비밀은 수, 무게, 척도에 있었고, 이것은 인구, 기대 수명, 국민소득, 화폐 이론, 국제 통화량 같은 기술 시대의 실용적인 산술에 힌트를 줬다.

한편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는 시인들 가운데 무지개의 시인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워즈워스가 있다. 그는 1770년 북부 호수 지방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코커머스란 도시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그래스미어에서 살았는데, 잠깐 런던에 사는 동안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의 이름도 모를까?"라고 썼다. 그래서 그나마 우리가 험한 말이나 조롱, 친절이 깃들지 않은 인사, 일상생활의 황량한 교제를 견뎌내며 살 수 있는 것은 자연 때문이라는, 즉 우리 모두는 자연에 알든 모르든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을 품은 시들을 연달아 썼다.

나는 런던 여행 중 이틀을 떼어내어 워즈워스의 고향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다녀왔다. 호수 선착장 안내소에는 전 세계 도보 여행객을 위한 도보 코스가 붙어 있었다. 원더미어 호수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 마지막 빙하기 말엽 빙하가 침식한 깊은 계곡 속에 있는 길쭉하고 폭이 좁은 호수이다. 워즈워스의 시는 워즈워스가 살아 있을 당시에 이미 호수 지방에 관광산업을 발달시켰다. 호수 이외에도 워즈워스가 딸이 죽고 난 후 수선화를 심으며 슬픔을 달랬다는 곳, 그가 살면서 런던에서 온 손님들을 맞았다는 도브 코티지, 그가 가꾼 원더미어 호수가 바라보이는 정원, 튜더 시대에 흑연석이 발견되어서 연필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케스웍의 연필 박물관, 오래된 동네인 켄달 읍내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 모두 누구에게나 가보고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에는 런던 혹은 런던의 뒷골목의 애환을 가장 잘 묘사한 사람,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이미 웨스트민스터 사원 외에 다른 곳에 묻히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사람, 찰스 디킨스를 만나보자. 찰스 디킨스는 1812년 영국 포트 시에서 태어났는데 나중에 그의 가족은 런던 근교의 캠던 타운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열다섯 살에 변호사 사무실의 사환이 되었고 속기술을 배워 스무 살 때는 하원 의원들의 토론을 보도하는 의회 담당 기자가 되었다. 기자 시절 신문에 짧게 실었던 런던을 스케치한 글로 주목받기 시작해 『올리버 트위스트』 이후 그는 줄곧 작가로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게 된다. 사람들을 뒹굴뒹굴 나자빠지게 할 정도로 웃겼다는 낭독의 대가 디킨스는 1870년 세인트 제임스 홀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낭독회를 마치고 나서 건강이 악화되어 6월 9일 숨을 거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러고 보니,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끈으로 연결되고, 산 자는 죽은 자의 좋은 모습을 모방하여 도시의 모습 자체를 바꾸는 곳! 이것이 많은 무덤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량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도시에도 완벽한 행복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늘 삶에 감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내려다보는 사원의 첨탑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우리는 신에게서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서 사랑받고 있다.

런던에서 '행복'에 대해 묻다 -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세인트 폴 대성당은 거대한 돔이 눈길을 끄는 곳인데,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돔을 갖고 있다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오늘날의 모습을 알려면 런던의 재난 시대로 날아가야 한다. 때는 바야흐로 찰스 1세를 처형시킨 호국 경 크롬웰의 공화정도 끝나고, 왕정은 복고되어 찰스 1세의 아들인 방탕한 왕 찰스 2세가 영문도 모르는 채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파리에서 돌아온 바로 그때였다. 그때 런던은 인구가 흘러넘쳐 좁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배수로와 하수구들은 낡았고, 구정물과 쓰레기로 길바닥은 늘 질척거렸다. 그런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었는지, 얼마 뒤에 무서운 병인 흑사병이 돌게 되었다. 그때 런던에서는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이 하도 많아서 시체를 묻을 땅이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뒤 흑사병이 겨우 진정세를 보인 지 얼마 안 되어 아홉 달 뒤에 다시 큰 비극이 발생했다. 1966년 9월 2일, 제빵업자의 부엌에서 시작돼 닷새 동안 계속된 런던 대화재는 1만 3천여 채의 집과 여든일곱 개의 교회를 삼켜버렸고 런던의 3분의 2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당황해 돌로 만들어진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세인트 폴 대성당의 육중한 포틀랜드 석재로 만들어진 기념비와 기둥, 기둥머리 역시 생석회처럼 녹아버리고 납 지붕들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대화재 이후 세인트 폴 대성당의 재건축을 맡게 된 사람은 하늘을 볼 줄 알았던 옥스퍼드 출신의 건축가, 왕립학회 회원 크리스토퍼 랜 경이었다(대화재 이후 쉰한 개의 교회를 지은 그의 이름은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수차례 마주치게 된다). 한편 세인트 폴 대성당이 완공된 후 대략 한 세기 이내, 그러니까 기계화가 되기 전 시대를 영국의 새로운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바로 그 시절에 명언을 쏟아내기로 유명했던 새뮤얼 존슨 박사는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곳에서 10마일 이내에 있는 학문과 과학이 왕국의 나머지 전 지역에 있는 것보다 더 많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명언 "런던이 지겨워진 사람은 사는 게 지겨워진 거야. 런던에는 삶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게 있으니까 말이야"란 말도 바로 그 시절에 남겼다. 그렇다고 그 시대가 밝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부정한 사업가들은 엉터리 회사를 설립해 개미 투자자들의 돈을 등쳐먹었는데, 금융 사기꾼과 일확천금, 불로소득에 대한 동경은 그때도 뚜렷이 존재했다.

세인트 폴 대성당 지하에 묻혀 있는 화가 중 한 명인 조슈아 레이놀즈는 바로 그 시대 사람이었는데, 그는 영국왕립미술원의 초대 원장이었고 애덤 스미스, 에드워드 기번 등이 속한 새뮤얼 존슨 박사 그룹의 친구이자 지식인으로, 상류층 사람들의 초상화를 우아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조슈아 레이놀즈와 달리 윌리엄 호가스는 당시의 시티 오브 런던적인 삶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 혹은 그 시대 뒷골목 사람들의 인간적인 절망을 그리곤 했다. 그의 그림 중에는 〈베들럼의 탕아〉란 작품이 있는데, 빈털터리가 된 탕아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은 미친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그들이 미쳐간 다양한 사연들이 그 시절 런던 뒷골목의 한 모습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런던이란 대도시의 한쪽에선 진보가 쑥쑥 뻗어 나가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선 타락이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넓게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런던 대화재처럼 잔인한 또 다른 시대에, 세인트 폴 대성당은 다시 한 번 영국 역사에 등장한다. 1940년 12월 29일에서 30일 사이에 찍힌 사진 속에서다. 밤마다 평균 160대의 독일 폭격기가 고성능 폭탄인 소이탄을 쏟아 부으며 런던 상공을 공격하던 그 밤의 사진 속에서 돔은 연기와 불꽃 속에서도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진은 전 세계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읽혔다고 한다. "런던은 침착하고 꿋꿋하게 계속되는 폭격을 견뎌내고 있다. 런던은 결코 나치즘에 굴복하거나 나치와 동맹을 맺지 않을 것임을 당당하게 알리는 바이다."

한편 세인트 폴 대성당을 들어가는 사람은 단체 입장 시간을 기다려 스톤 갤러리와 골든 갤러리에 꼭 올라가보길 권한다. 259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 '속삭임의 회랑'(whispering gallery)에 가서 잠시 앉으면, 그곳에선 소리의 공명 현상 때문에 아래쪽의 아주 조그만 소리도 위쪽까지 들린다. 1981년 다이애나 비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공명 현상 때문에 뉴질랜드 출신 성악가 키리 테 카나와가 불렀던 헨델의 빛나는 세라핌을 황홀하게 들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진정으로 위대한 점은 돔이 아니라 바로 그 위치라고 말한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위치가 바로 시티 오브 런던이었으니 세인트 폴 대성당의 자존심은 시티 오브 런던의 자존심과 서로 뒤섞였다고 할 수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이 완공될 무렵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향후 3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돔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보이는 것, 그건 바로 한도 끝도 없는 과밀 런던이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고요하고 엄숙했지만 그 아래 거리는 소음으로 요란하고 분주했다. 런던에는 분명히 묘한 분리와 이중성이 있다. 무거운 듯하지만 가볍고, 차가운 듯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차분한 듯하지만 떠들썩하고, 오래된 듯하나 새로운……. 그러나 런던은 분명히 멋진 도시다.

모든 생명체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갖는다 -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18세기 이후의 그 많은 발견과 발명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던 것은 박물학이었는데, 당시 박물학의 지배적인 이론은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 자연은 수많은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에 모두 특정한 목적이 있다. 새의 기름샘은 깃털이 물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거미의 거미줄은 거미가 먹이를 찾아 날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시계공이자 설계자인 하느님의 존재를 강력하게 증명해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1826년에 발족된 런던 동물학회 이름은 '노아의 방주 학회'였다.

그때는 코페르니쿠스 덕택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건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인간만큼은 변함없이 모든 생명체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감히 진화론을 연구해낸 찰스 다윈이 세계 3대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이며 7천만 종의 표본이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인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지금 온갖 관람객들과 생물ㆍ무생물 표본을 지켜보고 있다.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 젊은 날 딱정벌레 수집가이자 식물 채집자였던 다윈에게 운명의 해는 1831년이었다. 영국 해군은 파타고니아, 칠레, 페루, 태평양을 도는 남반구 탐사 길에 나설 비글호에 탑승할 박물학자를 구하고 있었는데 그때 다윈의 스승이 다윈을 추천했다. 그때 다윈이 가져간 책이 한 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지질학 원리』라는 라이엘의 책이다. 라이엘은 대규모의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에 의해 수천 년 전에 지구 지각이 형성되었다는 통설을 거부하고 지구의 생성 연대는 수백만 년 전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다윈은 항해하면서 라이엘을 신봉하게 되었고 종의 불변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왜 갈라파고스 군도의 새와 거북이들은 섬에 따라 조금씩 변이를 보일까? 다윈은 변화의 원인이 선택과 유전적 변이에 있다고 확신했다.

다윈이 이렇게 지내고 있는 동안 다윈보다 열네 살 아래였던 1823년생 알프레드 월리스도 바빴다. 토지 측량 기사였던 그는 거의 야외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물과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그는 전업 박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로 갔다. 거기서 그는 리오네그로 강과 합쳐지는 아마존 강의 마누스 섬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갔는데 50마일이나 백 마일쯤 걷다 보면 먼젓번 구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종류의 곤충과 새들이 발견되는 것에 놀랐다. 그는 필시 각 종의 활동 영역을 결정하는 어떤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존 강에서 4년을 보낸 월리스는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서 1845년 극동 지방으로 향했고, 그 후 8년 동안 말레이 반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야생 식물의 표본을 채집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그 역시 어느 날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왜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은 살아남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1858년 6월 18일 다윈은 말레이 반도의 박물학자 월리스에게서 논문을 받게 된다. 논문의 제목은 「변종이 원종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져가는 경향에 대하여」였다. 두 사람은 1858년 7월 1일 공동 논문을 발표했고, 얼마 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한다. 박물학의 인기에 힘입어 1859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초판 1250부가 당일 매진되었고, 발행 직후 3판을 발행하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진화론자들이 고정 관념과 전통 세력에 도전한 그 당당한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놀랍다. 진화론의 역사에서 새로운 도전자들은 언제나 엄격하게 제한된 한계에 도전해왔다.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1층 주 전시장 공룡 모형들은 영화 〈쥬라기 공원〉 이전에도 이미 대단히 인기였다는데, 주 전시실 1층에 있는 수많은 공룡 중에서 디플로도쿠스 모형을 찾아 눈여겨보기 바란다. 오늘날까지 공룡에 관해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제일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자연사 박물관의 디플로도쿠스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긴 부리로 바닷속 물고기를 낚아채는 프테라노돈, 날아오르면 하늘이 어두컴컴해졌을 정도로 큰 날개를 지닌 익룡, 알을 훔치는 오비랍토르, 그리고 공룡 최후의 날 불타오르는 거대한 남양 삼나무 사이에 끼어 살덩이가 녹아내리는 채 붉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죽어갔을 어미 티라노사우루스를 상상해보는 동안 우리는 비극적으로 사라진 동물들의 과거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동물들에 대해 전에 없는 애도의 마음을 품게 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이렇게 끝냈다. "정해진 중력의 법칙을 따라 이 행성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생물 종들이 진화해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 갈 것이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자연사 박물관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이, 살아 있었다는 것이 그 자체로 기념비이고, 육체는 사랑이 쓰여 있는 시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변화는 계속될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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