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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

롤프 하우블 지음 | 에코리브르
시기심

롤프 하우블 지음

에코리브르 / 2009년 9월 / 398쪽 / 16,500원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시기심




'아니! 난 시기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마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시기심이 많은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자들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여러분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한번 얘기해보겠다. 이 사례를 보면 당신도 한때 시기했던 적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지나가다가 기가 막히게 좋은 외제차를 몰고 가는 청년을 발견한다. 한 사람이 환희에 차서 말한다. "우와 멋진걸. 나도 언젠가는 저런 차를 몰 날이 있겠지?"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이 뇌까리듯 말한다. "저 인간도 걸어다닐 때가 있을걸?"

몇 년 전부터 한 사회 복지 시설이 사용하는 사무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이 자기만의 사무실을 가질 수 없어서 왠지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호전되어 새로운 사무실이 생겼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금방 실습을 마친 젊은 녀석이 이 사무실을 차지해버린다. 이때부터 실습생에게 그토록 친절하던 중년의 직원은 그를 냉정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장기간 입원해 있던 한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녀는 부자였기에 상속자들은 그녀가 입원해 있는 기간 내내 눈치만 살폈다. 이들은 누가 어떤 상속을 받게 될지 알아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유언장을 남겼으나 친척 가운데 누구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 얼마 후 유언장이 공개되고, 값비싼 골동품들이 한 조카에게 넘어가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조카라는 작자는 오래 전부터 외국에 살면서 이미 친척들과도 연락을 끊은 인물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상속을 받지 못한 여러 딸 중 한 명이 마침내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 그동안 내가 병문안을 얼마나 자주 갔는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타인을 시기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조금 지나치고, 또 어떤 경우는 그리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아마 시기심은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날에야 비로소 알려진 것도 아니다. 18세기 초 영국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 1670~1733)은 『꿀벌의 우화』(1714)에서 시기심을 자기애의 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한 번도 남을 시기하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성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이유는 온갖 형태의 자기애를 감추려는 태생적 위선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를 가르치기보다는 가능하면 각 학문을 통합하는 차원에서 시기심을 보여줄 예정이다. 즉 시기심이라는 주제를 논리가 아니라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루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예외 없이 언급할 계획이다. 어떻게 시기심이 발생하고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내 경험을 총동원할 것이다.

시기심과 원한



원한은 시기심에 차서 복수를 하려는 태도이다. 이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방법이 없어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니체는 저서 『도덕의 계보학』(1887)에서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원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들이 불행한 원인을 행복한 사람들 탓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면, 그들은 가장 세련되고 숭고한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의 이상적인 역할은 희생자의 역할이다. 바그너의 경우는 희생자라는 가면을 쓰고 시기심에 가득찬 채 복수심을 품은 가장 좋은 사례이다.

1850년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음악에서 유대인 문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때까지 유대인에게 적대감이라고는 보여주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유대인의 전통 음악에 대해 거칠게 비방한 것이다. 이 글에서 그는 유대인 음악은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감각과 정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양치질 소리, 요들 소리, 수다'로 들린다면서 '혐오감과 우둔함이 혼합된 역겨운 감정'이 일어난다고 표현했다.

바그너는 왜 이렇듯 상대를 비하했던 것일까? 심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그가 개인적으로 심한 상처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는 명예욕이 대단했지만 재정적으로 무능한 작곡가에 불과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들은 유럽의 관중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코모 마이어베어는 정반대였다. 유대인 출신의 이 작곡가는 바그너가 꿈꾸던 성공을 이루었다. 바그너는 먼저 이 사실에 경탄했다. 그는 작곡을 공부하면서 우상이었던 마이어베어에게 돈과 지원을 부탁했다. 편지에서 그는 마이어베어를 '흠모하는 후견인'이라 일컫고, 스스로를 '정신은 물론 몸까지 그의 노예'라고 쓰기도 했다. 실제로 마이어베어는 바그너의 작품을 추천해주었지만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얻지 못했다. 자기 비하가 도움이 되지 않자, 바그너는 실패를 참아내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리하여 마이어베어에게 향하던 무한한 존경심은 적대적인 시기심으로 바뀌었다.

심리적 부담을 덜 방법을 찾던 와중에 바그너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공모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유명한 음악 비평가는 모두 유대인이 아닌가! 그리고 마이어베어 역시 유대인! 그러니 마이어베어가 성공한 것은 음악적인 재능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유대인인 덕이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바그너는 제 능력을 의심할 필요 없이, 부당한 대우에 희생된 사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이어베어가 유대인이기에 성공했다면, 그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 음악 전체의 가치를 비하한 행동은 이 음악을 대표하는 자를 겨냥한 것이 틀림없다. '유대인의 음악은 무미건조하다' 이런 태도로 돌변함으로써 바그너는 한때 자신이 숭배했던 사람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평생 부인하게 되었다.

바그너의 시기심은 독일에서 성공한 유대인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느끼던 시기심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런 부류의 유대인들은 당시 독일의 정신적 ·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성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학문 · 예술 · 경제 · 정치 분야에서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루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1869년 이후 국가가 거대해지기를 꿈꾸었던 집단적인 소망이 흔들리자, 이를테면 1870년대 주식 시장의 파산도 한 예가 될 수 있는데, 실패에 대한 속죄양이 필요해졌다. 이로 인해 한때 집단적으로 유대인을 경탄했던 마음이 적대적인 시기심으로 탈바꿈해버렸다.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유대인을 속죄양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수세기 동안 독일인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유대인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독일인은 원래 유대인을 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유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시기를 했으나, 당시에는 문화적인 시기심이 더 팽배해 있었다. 이런 반유대주의적 분위기로 인해 대중을 선동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그너는 그 선동으로 이득을 얻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한 재능 있는 독일인 가운데 바그너가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광기이다. 이런 감정은 "예전에는 존경하고 이상형이라고까지 여겼던 사람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거나, 심지어 이들을 살해하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힌 미친 환자들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분석적인 사회심리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와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에는 시기심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고 본다. 이런 감정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를테면 유대인이나 외국인들이 부당하게 특혜를 받아서 자기들보다 더 잘되었다는 오해를 하고 자존심상해 한다. 나아가 유대인 또는 외국인들 때문에 자기들이 그런 재산 없이 살아야 한다고 보게 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분노하고, 그들과 그들이 가졌다고 상상하는 특권을 쟁취하려는 노력은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가치 방어: 극복 메커니즘으로서의 시기심



한 사람이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는 부족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실제의 자신이 이상적인 자신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를 결함 또는 치욕으로까지 생각하게 되며 수치심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를 진정시킬 수단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적대적인(피해를 주는) 시기심이 등장한다. 시기심은 자신에게 향하던 분노와 불쾌감을, 갈망하는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돌린다. "내 힘으로 원하는 재산을 결코 가지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그 인간도 가져서는 안 돼!"라고 하는 것이다. 시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적대시함으로써 우울한(무기력하게 하는) 시기심이 살아나며, 위협받던 자기 가치는 상대에게 실제로 해를 입히거나 그런 상상을 함으로써 안정을 찾게 된다.

이는 물론 단기간에만 그렇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는 오히려 제 능력을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가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 시기심은 시기하는 사람에게 휴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원인에 대해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ler, 1870~1937)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낮게 평가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시기하는 사람)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이 이뤄낸 성과를 통해 자신이 더 형편 없다고 느끼게 된다."

수치심이 적대적인(피해를 주는) 시기심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 드라마 가운데 하나는 서양 음악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가 저물 무렵 빈, 궁정 작곡가인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잘츠부르크에서 온 볼프강 아마데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천재 소년과의 만남은 살리에리의 삶을 극단적으로 변화시켰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피터 섀퍼의 희곡 <아마데우스, 1979>(밀로스 포먼이 이를 영화로 만든 덕분에 그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가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독살되었다는 소문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베토벤이 기록한 공책에 보면 살리에리 스스로가 그런 소문을 퍼트린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섀퍼는 희곡에서 바로 이런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일흔 한 살이 된 살리에리가 후세 사람들을 대표하는 관객 앞에 섰다. 그리고 벌써 30년 이상 지난 과거 빈의 궁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무대에 등장한 살리에리는, 자신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어 불멸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열여섯 살이 되자 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신이여, 저를 작곡가로 만들어주십시오! 제 이름을 떨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겸손하게 살 것이며,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당신을 찬양하고 음악으로 칭송하겠습니다." 다음날 놀랍게도 한 친척이 찾아와서 살리에리를 빈으로 데려가 음악수업을 듣게 해주었을 때, 그는 신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표시라고 믿는다. 바라는 대로 출세를 하자 그는 신에게 맹세한 내용을 충실히 지켜나간다. 정숙하게 살면서 한 여자와 결혼을 하지만 '부부 관계는 거의 가지지 않고' 함께 살기만 한다. 그는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는 여학생 중 한 명에게 연정을 품지만, 그녀를 기꺼히 포기한다. 가난한 음악가들을 보살펴주는 착한 일도 한다. 궁정 음악가로서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자, 그는 신이 계약을 잘 지키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여섯 살 어린 모차르트를 만날 때까지.

살리에리는 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의 집에서 처음으로 모차르트를 만난다. 물론 살리에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젊은이 둘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그는 거의 넘어질 뻔한다. 바로 20대 중반의 모차르트와 앞으로 그와 결혼할 콘스탄츠이다. 두 사람은 서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무한한 생동감과 거침없는 성욕을 보여준다. 이들은 살리에리가 자기들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이 첫 만남은 살리에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그를 불안하게 한다. 살리에리는 출세를 위해 성욕을 희생한 반면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성적인 충동을 마음껏 발산하기 때문이다. 시기할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남작의 손님들을 즐겁게 해준 젊은 야만인의 세레나데가 살리에리에게 고통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계시처럼 들렸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세레나데를 듣는 순간 마치 신의 음성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리에리는 감동하는 동시에 고통스러워한다. 모차르트와 비교해 자신은 재능이라고는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이 선택한 작곡가는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 즉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였다.

섀퍼가 무대 위에 등장시킨 모차르트는 정감 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모차르트는 모든 면에서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누가 봐도 건방졌다. 설령 해가 될지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충동적이고 가차 없이 무시했다. 그리하여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의 음악을 조롱했다. "이 음악은 발기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든 음악처럼 들리는군." 물론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신과 맺은 계약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정확하게 그의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그는 살리에리가 원했으나 정숙하게 살겠다고 신께 맹세했기에 감히 접근하지 못했던 여학생과 동침하기도 했다.

살리에리는 불멸의 음악가로 유명해지고 싶었고, 이로써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을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그의 창의력은 방해를 받고 만다. 결국 살리에리의 인생은 실패함 셈이다. 게다가 신이 그의 미덕에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기에, 살리에리는 이때부터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으려 한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들을 돌보지 않았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여학생을 첩으로 삼았으며, 모차르트의 부인에게 성적인 희롱까지 시도한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기만당한 느낌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는 그 대가로 신에게 복수하려 한다. 자신이 가진 힘을 총동원해서라도 모차르트의 존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적대적인(피해를 주는) 시기심에 사로잡힌 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간계에 빠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한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는 점점 사회적인 기반을 잃고 만다. 그는 쉬지 않고 작곡을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조차 힘들어지고, 마침내 술에 빠져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리고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난다. 비록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 성공하지만, 그는 이때에도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을 예전과 다름없이 높이 평가한다. 그는 여전히 감탄해 마지않았고, 자신의 시기심을 동정심으로 누그러뜨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살리에리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도 모차르트는 늘 자신의 천재성을 떠벌려 결국 살리에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는 <피가로의 결혼>을 '탁월한 오페라'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내가 생각하기에 … 정말 뛰어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이런 칭찬의 진가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잘난척했던 것이다. "이 오페라가 어떤지 말해볼까요? 지금까지 나온 오페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올시다. 아무렴요. 그리고 나만이 작곡할 수 있어요. 세상의 그 누구도 할 수 없고말고요." 이런 식으로 모차르트에게 모욕을 당하자 살리에리는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끝까지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를 죽이기 위해 살리에리는 심리적인 테러도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모차르트는 거의 미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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