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시아출판사 / 2009년 8월 / 284쪽 / 12,900원
난 개그 작가다
시청률에 울고 웃는 인생!"이번 주 시청률 어때?" "이번 주도 15프로 넘었어요! 우리가 동시간대 시청률 1등이에요." "웬일! 오늘 녹화 끝나고 술 한 잔 해야겠는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청률 덕분에 제작진, 연기자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시청률이 채 10프로를 넘지 못해 늘 죽상이던 우리들이었다. "셋째 주에는 녹화가 없으니, 휴가 계획들 세우세요!" 여름휴가, 명절휴가 없이 지난 1년간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천여 명의 관객들을 앞에 두고 웃찾사 녹화를 했다. 그런데 목마르게 기다리던 휴가가 드디어 1년 만에 찾아온 것이다. "이번 휴가 어떻게 보내지? 우리 해외여행 가자!"
서른이 되기 전,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의 문은 그렇게 열렸다. 여권을 부랴부랴 만들고, 여행지 선택에 돌입했다. 동남아와 남태평양 휴양지가 물망에 올랐지만, 우리는 과감하게 휴양지들을 포기하고 낭만의 상징이자 여자 여행자들의 로망! 프랑스 파리를 선택했다. 열흘 중 이틀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하긴 하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첫 휴가 아닌가! 국제선 비행기도 처음, 기내식도 처음, 여권 검사도 처음, 면세점 구경도 처음. 모든 게 처음인 내 해외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 서울이 아닌 낯선 도시의 풍광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파리 시내를 거닐며 많이 보고 많이 느끼기 위해 분투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오르세 투어를 전문적으로 가이드 해주시는 분을 만나기 위해 생미셸 광장으로 갔다. 윤가이드님의 인솔로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탁 트인 내부 공간, 그 안에 어수선한 듯 일사분란하게 펼쳐져 있는 조각상들과 회화들, 그리고 온화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자연 채광까지. 오르세 미술관의 첫인상은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윤가이드님은 재빨리 인원 파악을 하고, 미술관 주의 사항 등을 전해주고는 바로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하셨다. 오르세 미술관 역사부터 제대로 된 작품 관람법, 그리고 이 안에 소장되어 있는 인상주의 작품들의 숨은 이야기들까지! 작품들 하나하나에 윤가이드님의 설명까지 덧붙이니 작품들이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는 그동안 알고 있던 미치광이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쓰레기라고 치부해도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예술혼을 펼친 위대한 화가로 내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마지막 자화상 속 고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넌 글쓰기에 열정을 다 바치고 있는 거니? 네가 좋아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글쓰기 작업에 네 인생 모든 것을 걸 수 있니? 미치광이 소리를 듣고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니?' 그렇게 고흐는 내 이기적인 가슴에 순수한 열정이라는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고 놀다오면 된다고 생각하던 내가 예고 없이 다가온 두 시간 동안의 오르세 미술관 투어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깨닫는 여행'이 얼마나 값진 여행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윤가이드님 댁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맥주를 마실 시간이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 투어 후 윤가이드님께 하고 싶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드디어 꺼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이드란 직업 너무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외에 다른 직업은 눈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었는데, 가이드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윤가이드님은 내 말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뜻밖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그럼 나연 씨도 파리에서 가이드 한번 해볼래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프랑스어도, 아니 영어도 거의 안 되고 그 넘치고 넘치는 미술사나 파리 역사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는 나한테 '가이드 한번 해볼래요?'라니! 그때 옆에 있던 개그맨 김숙 언니와 작가 언니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 손님을 웃기는 가이드! 컨셉도 좋잖아!" 작가란 직업을 선택하고 한 번도 다른 직업에 끌린 적이 없던 나였다.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한 가이드라는 직업! 왠지 이 끌림은 꽤 오래도록 내 가슴을 울릴 것만 같았다.
서른 살 생일, 죽음을 만나다퍽!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고는 바로 내 입을 거칠게 막는 차가운 손바닥, 뒤이어 내 귀속을 파고드는 소름끼치게 거친 남자의 목소리……. "소리치면 죽는다, 조용히 따라와." 서른 살 생일날, 웃찾사 제작진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술자리든, 일로든 늦게 귀가할 때면 택시에서 내려 늘 걷곤 했던 우리 집 앞 익숙한 그 길! 하지만 지금은 익숙한 길이 아니라 가장 낯설고 무서운 길이 되어버렸다. "살려주세요, 살려……." 그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범벅된 상태에서 희미하게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불이 켜 있는 집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조금만 더 맞으면 그대로 쓰려져 버릴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거기 누구 있어요?"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 경비 아저씨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방금 전까지 죽일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도망간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경비 아저씨가 어느덧 내 앞에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있고 난 후, 한동안 난 밤거리를 제대로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낯선 남자의 옷깃이라도 스치면 '으악!' 소리를 지르곤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곤 했다. 그렇게 1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내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슴에서 원하는 게 뭐야? 웃찾사에 계속 남아 있는 거야? 넌 언제 죽을지 몰라. 빨리 선택해.' 그때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한 단어가 떠올랐다. '파리 가이드!'
첫 파리의 여행 이후 작가 말고 내 가슴을 떨리게 했던 단 하나의 일. 파리 갔다온 지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파리 가이드라는 일은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삶 아래에 머물고 싶은 내 의지가 그 떨림을 외면했다. 그런데 집 앞에서 죽음을 만난 그날 이후! 더 이상 안정 지향적인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 인생을 어제와 비슷비슷한 삶 속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루가 더 가기 전에 내가 간절히 원하는,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8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방송 작가가 아닌 새로운 삶을 말이다. 그래서 그날 밤 파리에 계신 윤가이드님께 내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남겼다. '파리 가이드 너무도 하고 싶습니다. 꼭 시켜주십시오!' 그리고 며칠 뒤 고대하던 윤가이드의 답변이 도착했다. '나연 씨의 진심이 느껴지네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오세요! 함께 일해요. 우리!'
난 파리의 가이드다
파리에서 살아남는 법! / 무조건 발로 뛴다2년 전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의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줬던 그 파리에 다시 오게 되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2년 전의 여행객 양나연은 아니어야 했다. 이젠 가슴속에 책임감을 가득 품은 파리 가이드 양나연이어야 했다. 숙소 내 방에 무거운 짐가방을 풀고 정리를 싹 다 마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파리 시내로 빨리 나가 이것저것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한국에서야 서울 외곽 어디에 있든, 아니 먼 지방 어디에 있든 말이 통하니 물어물어 내가 원하는 곳 어디라도 갈 수 있겠지만, 이곳 파리에서 난 그저 옹알이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윤실장님은 바로 숙제를 내주셨다. "가장 먼저 파리 시내 주요 건물들 위치, 주요 지하철역, 버스노선 이동법을 달달 외워요! 특히 우리 투어에 들어가 있는 곳들은 버스나 지하철이 파업을 해도 갈 수 있는 방법들을 머릿속에 그려놔야 해요!"
아침 식사 후 파리 가이드북과 자료집을 챙겨 넣은 배낭을 들쳐 메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먼저 파리의 중심으로 갔다. 시테 섬의 노트르담 성당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파리 시내 탐방을 시작했다. 작은 지도를 손에 들고 하루 동안 정해놓은 코스의 위치를 파악하며 무작정 걸었다. 버스나 지하철도 좋지만, 직접 걸어봐야 보다 빨리 파리 시내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전과는 다르게 내가 있는 위치와 내가 가고 있는 동선이 하나둘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파리라는 도시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에는 윤실장님이 루브르 박물관 내부를 철저히 외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루브르 박물관은 가장 길을 많이 잃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손님에게 하는 작품 설명도 중요하지만 그곳 내부 지리를 달달 외우는 게 가장 중요해요!" 사실 며칠 전 그곳에 혼자 갔다가 길을 잃어 출구를 찾느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물론 내 손에는 루브르 박물관 지도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실제 그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박물관에서 설문을 했다고 한다. 질문은 바로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라는 것이었는데, 1위는 '모나리자 어디 있나요?'였고, 2위는 '출구는 어디 있나요?' 3위는 바로 '내가 지금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이제부터 <모나리자>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 위치, <밀로의 비너스> 상에서 가장 가까운 출구, 이집트 관에서 함무라비 법전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등을 달달 외워야 했다.
도전! 루브르 박물관 집중 투어!"나연 씨한테 이번 겨울 성수기 때 루브르 집중 투어를 맡길 생각이에요." 루브르 집중 투어는 방학 성수기가 다가오면 파리 팀에서 가장 공 드리는 투어였다. 투어 가격도 다른 투어들에 비해 높은 데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만 진행되는 것이다 보니 손님들의 만족 지수를 높이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집중 투어를 준비하던 중, 내게 루브르 박물관과 시내 투어 일정이 배정되었다. 나에게 다가온 첫 투어라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쉴 새 없이 뛰었다. 실제 투어가 시작되니 내 안에 꽁꽁 숨어 있던 유머러스한 본능이 슬슬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불안하기만 했던 내 표정도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소수 인원 투어였지만 투어는 만족스럽게 잘 마무리되었다.
"오늘 루브르 집중 투어는 손님이 스물 다섯 명이래요!" 선배 H의 말을 듣고 긴장감과 부담감에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 하나만 믿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루를 보낼 스물다섯 명의 손님들! "아, 아. 여러분! 잘 들리시나요?" 곧바로 본격적인 투어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켰다. 그러자 손님들은 각자의 수신기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가 반가운 건지 놀라운 건지 '와~' 하며 탄성을 쏟아냈다. 먼저 전달사항을 정리한 작은 메모지를 슬쩍슬쩍 보며 티켓 구매, 박물관 입장 전 루브르의 경고사항, 현지 오피셜 가이드와 입장해야 하는 상황 등을 손님들에게 전달했다. 박물관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손님들을 소매치기 당한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길을 잃어 고생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밤새 공부했던 모든 내용의 투어를 마무리 지었다. 야유만 흘러나올 줄 알았던 손님들에게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파리가 내 손안에 있다
가이드도 전략이 필요하다!겨울방학이 끝나자 몰려왔던 관광객들도 썰물처럼 확 빠졌다. 그러면서 여름, 겨울 성수기 시즌에만 생기는 나의 전담 투어, 루브르 박물관 집중 투어도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 이는 파리 시내나 베르사유 궁전 같은 야외에서 손님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곳을 걸어야 하고, 더 넓은 공간에서 손님들을 챙겨야 함을 의미했다. 수년간 가이드를 해온 선배들처럼 해박한 지식을 맘껏 손님들에게 전할 수 있을 만큼 파리에 대한 내 지식창고는 그리 풍요롭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의 지적수준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나만의 전략적인 투어로 손님들께 감동을 주자고 결심을 했다.
전직 작가의 경력을 활용해 바로 나만의 파리 시내 투어 대본을 쓴 것이다. 어떤 순서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손님들이 흥미로워할까를 꼼꼼히 생각하며 나의 투어 코스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생미셸 광장을 시작으로 노트르담 성당, 법원, 콩시에르주리(과거감옥), 시청사, 퐁피두센터, 몽마르트르 언덕,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에펠탑이라…….' 파리 곳곳엔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넘치고 넘쳤다. 노트르담 성당만 해도 '노트르담의 꼽추, 나폴레옹 대관식 이야기, 철가면 이야기'까지. 그날그날 손님들에 따라 달라질 환경도 고려해 어린이들이 많이 오면 아이들 위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면 최대한 어르신들 편하신 동선을 이용하자며 다양한 경우의 수도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색다른 무엇이 없다는 그런 느낌?
그러던 중 파리에 오기 전에 구입한 mp3가 내 눈에 들어왔다. 당시 그 어떤 가이드들도 투어를 하면서 음악을 틀거나 한 적이 없었다. 수신기와 송신기에 연결하면 왠지 음악도 손님들에게 들려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악과 함께하는 투어' 파리의 곳곳의 명소를 음악과 함께 만난다면 모든 것이 색다르고 아름답게 가슴에 채워질 거란 생각에 괜히 내가 더 설렜다. 난 바로 음악 선별에 들어갔다. 내가 손님이라면,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면 감동적일까? 내가 손님이라면, 파리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을까? 내가 손님이라면, 어느 시점에 음악이 흘러나와야 좋아할까?
첫 번째 곡은 바로 클레멘타인의 <시즌 인 더 선>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뒷 광장인 '요한 23세 광장'으로 가는 동안 트는 음악이다. 센 강을 따라 길을 걸으면 노트르담 성당 우측 장미창과 날개 모양의 부벽 등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한 노트르담 성당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 곡은 이베트 지로의 <파파 에 마망>이다. 이 곡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시청사로 이동할 때 듣는 곡이다. 특히 주변에 늘어선 가게들 때문에 북적이는 손님들로 정신 없을 때 어린 아이가 부른 이 달콤한 샹송을 들려주면, 손님들 표정이 금세 환해진다. 세 번째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란 교향곡이다. 이 곡은 퐁피두센터 옆에 위치한 특별한 전시물을 설명할 때 들려주는 곡이다. 네 번째 곡은 '웨스트라이프의 <유 레이즈 미 업>이다. 이 곡은 파리의 유일한 산 몽마르트르 정상에서 들려준다. 130m의 낮은 구릉이지만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올라가 내 시야 아래로 펼쳐진 파리 시내를 볼 때의 그 희열이란. 정말 수십 번 몽마르트르를 올라간 나에게도 이 순간은 매번 감동 그 자체였다. 약 5분간 이 음악을 들으며 어떤 손님은 환히 웃고 또 어떤 손님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섯 번째 곡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이 곡은 몽마르트르에서 슬프게 사라진 비운의 음악가 에릭 사티의 음악이다. 사실 에릭 사티뿐 아니라 몽마르트르에는 고흐, 툴루즈 로트렉, 모네, 마네, 모리스 위트릴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혼을 펼친 흔적이 남아있다. 그런 몽마르트르와 참 많이 닮은 곡이다. 여섯 번째 음악은 다니엘 비알의 <샹젤리제>다. 바로 샹젤리제 거리에서 듣는 곡이다. 하루 종일 걸어 피곤이 쌓여갈 때 밝고 경쾌한 이 곡을 들으면 손님들의 발걸음도 들뜨게 마련이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걸은 적도 있다. 일곱 번째 곡은 스티브 바라캇의 <플라잉>이다. 에펠탑을 만나는 순간! 딱 이 음악을 들어야 그 극한 감정의 끝을 만나볼 수 있다.
양가이드의 추천! 파리 명소방송국과 집 사이만 왔다 갔다 했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파리 시내를 내 집처럼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누구나 가는 파리 명소들부터 단 2~3일 가지고는 만나기 어려운 파리의 특별한 곳까지. 발길이 닿는 곳이면 욱신대는 발바닥을 문질러가며 어디든 그렇게 쏘다녔다. 그럴수록 파리는 카멜레온 같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은 비가 올 때, 안개가 낄 때, 햇볕이 작열할 때, 어둠이 다가올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샹젤리제의 화려한 불빛은 내 기분을 미친 듯이 들뜨게도, 때론 너무나 초라하게도 만들어주었다. 계절이 변하고, 하루 일과가 변하듯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무감을 가진 듯 다양한 모습의 파리. 그곳에서 1여 년을 지내며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파리 명소들을 추천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