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김현철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김현철 외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09년 5월 / 284쪽 / 12,000원
<잃어버린 사춘기> 청소년은 누구인가만들어진 사춘기
근대인들이 청소년에 대해 '질풍노도'를 떠올리는 것은 거의 조건반사적이다. 근대인들은 마치 과학의 주술에라도 걸린 듯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광적으로 신뢰하는 습속이 있다. 근대사회과학은 청소년에 대해 심리학을 넘어서 생물학적인 증거를 찾는 데 이르렀다.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징들은 전두엽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최근의 설법도 등장했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적 기질은 생물학적인 보편적 특징이라기보다 문화적 산물, 혹은 역사적 산물이다. 청소년기적인 기질의 탄생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근대과학도 크게 공헌했다. 청소년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요인은 더욱 강화되었고, 과학은 그들의 기질을 입증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냈다. 청소년기의 탄생은 청소년기의 근대적 '기질' 발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기질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청소년을 다루는 장치와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엄격한 규율은 반항적이거나 미숙아적인 기질을 더욱 강화하고, 결국 그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진다.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여성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기대 역시 '청소년'의 기질을 더욱 강화한다.
청소년기는 언제를 말하는가
성장 세대를 일컫는 '청년'이라든가 '아동'이라는 말들은 근대 초기에 생겨났다. 청소년이란 말이 일제 강점기 동안 신문 잡지에 간간히 나타났지만 대중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말에 법령이나 행정문서에 나타난 '청소년'은 훈육되고 규율되어야 할 존재로서 '소년'과 '청년'을 통칭하는 의미로 등장했다. 서구 사회는 18세가 되면 법적인 권리 부여는 물론이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고 아직 고등학생이라면 본인의 동의 없이 부모에게 학교 성적을 알릴 수도 없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에게 이런 권리를 부여하는 데 무척 취약하다. 문화적으로도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서구나 일본에 비해 현저하게 늦다.
성장과 발달에 대한 개념은 근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학교교육 제도의 탄생, 인구 변화, 도시화, 공장노동의 탄생 등과 같은 사회변화이다. 또 하나는 근대사회과학, 특히 심리학의 등장이다. 심리학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대해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했으며 그중 상당수는 상식이 되었다. 근대가 되면서 아이들의 발달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근대 이전의 사회가 연령 발달의 개념을 하나의 규범으로 생각했다면, 근대사회는 그런 생각을 과학의 이름으로 가다듬었다.
청소년기의 생각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심리학이다. 미국 심리학의 선구자인 스탠리 홀(1844~1924)은 20세기 과학적인 청소년 이론의 서장을 열었다. 그는 저서 『청소년』(Ⅰ,Ⅱ)에 '질풍노도'의 유산을 남겨 놓았다. 스탠리 홀 이후 청소년 연구에서는 '자아정체감'이나 '심리적 유예'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에릭 에릭슨(1902~1994)과 인지심리학의 거장 장 피아제(1896~1980)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오늘날에는 청소년기가 자아정체성 혼란의 시기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자아정체성 개념의 '정체성'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청소년기의 기질은 언젠가 변할 수 있다. 사춘기(puberty)의 라틴어 어원 pubertas는 '성인'을 뜻하는데, 어원으로 보자면 사춘기는 청소년기의 시작이 아니라 성인기의 관문인 것이다.
사춘기의 수수게끼를 풀다
20세기 초는 논쟁의 시대였다. '청소년기가 인류 보편적인 특성인가'도 논쟁거리였으며 이 논쟁에서 생물학적 결정론이 가장 먼저 우위를 점했다. 생물학적 결정론이 지배적인 당시 분위기에 반기를 든 것은 문화상대주의 입장에 있던 문화인류학자들이었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자의 대부로 불리는 보아스(1858~1942)와 같은 문화결정론자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자들과 달리 어떤 결정적인 증거를 갖지 못했다. 이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류학자로 칭송받는 마가렛 미드가 폴리네시아의 사모아 섬으로 가게 된 배경이다. 그녀는 사모아 청소년들의 행동이 생리학적으로 결정되는지 문화적으로 결정되는지를 연구했으며, 연구결과를 『사모아의 성년』(1928)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미드의 연구는 보아스류의 문화결정론이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생물학적 결정론을 반박할 '부정의 사례'를 발견해낸 것이다. 미드의 연구는 문화인류학 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이자 신화가 되었다. 그녀의 청소년기 테제는 기존의 '질풍노도 테제'의 허구를 들춰냈다. 미드의 눈에 비친 사모아는 그야말로 낙원이었으며, 그곳의 청소년들은 '질풍노도'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았다. 미드는 『사모아의 성년』에서 "청소년기는 위기와 스트레스의 시기가 아니었다. 순차적으로 서서히 관심과 활동이 성장, 발달해가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안정되고 균질한 사모아 사회와 비균질의 분열된 서구 사회의 차이가 각각 다른 청소년기의 특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모아와 같은 연속적인 사회에서는 아동에게도 출생, 성, 죽음이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었다. 사모아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주역으로서 사회참여를 경험하며 다양한 어른들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사모아의 아동들은 4~5세부터 노동에 참여한다. 이제 갓 아동기에 접어든 6~7세의 여자 아이들은 이유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돌본다. 좀 더 자라면 보육의 의무에서 벗어나 사춘기 전까지 생산물을 마을로 옮기거나 음식준비 등을 익힌다. 소년들도 7~8세쯤 보육의 의무에서 벗어나 어른들과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협력의 습관을 익히고 문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이는 젊은 남자들이 성인이 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물론 호주의 문화인류학자 데릭 프리만(1916~2001)은 미드의 연구는 한마디로 신화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사모아에 가서 연구를 했는데, 그가 사모아에서 본 것은 미드가 본 것과 전혀 다른 서구와 같은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이었다. 프리만의 도전은 미국의 문화인류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세상이 바뀌면 아이를 보는 관점도 바뀐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역사적 인물 분석을 통해서 심리학의 보편성을 찾으려한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기를 모라토리엄, 즉 심리적 유예기로 표현했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전통사회에서는 5세나 7세를 넘기면 바로 성인의 세계로 들어갔지만 17, 18세기부터 아동기가 연장되기 시작하고 청소년기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상류계급을 시작으로 점차 중하위 계급으로 번져 나갔다. 전통사회에서는 집단과 그 이익에 대한 관심이 전부였지만 17세기에는 개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에서 먼저 새로운 종류의 가족생활이 발견되는데, 이 새로운 계급의 부상과 아동 및 아동기에 대한 관심의 증대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동관의 변화를 부추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교육의 발달이었다.
성인이 아동을 보는 관점은 확실히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가족이 경제적 생산의 단위였던 봉건시대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소년 소녀들은 대부분 농업과 제조업에 종사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공장제 임금이 확립되고, 더욱 숙련된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아동 노동이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에 위협이 되자 아동의 사회화 기간이 연장되었다. 사회화를 위한 아동기 연장은 국가 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근대적인 아동과 청소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청소년, '주변인'과 '국민 만들기'를 넘어
독일의 심리학자 레빈(1890~1947)은 청소년기를 '주변인'으로 불렀다. 주변인 역시 질풍노도의 아류적 개념 중 하나다. 레빈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변인의 속성은 근본적으로는 심리학의 영역을 기본으로 하며, 청소년은 '주변인'이라기보다는 '주변인이 되었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적어도 고대사회에서 청소년은 주변인으로 살아가지 않았다. 고대사회의 청소년은 엄밀히 말해서 '청년'이었다. 근대 이전의 청년은 일찌감치 성인의 역할을 수행했고 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대우받았다.
반면 근대사회는 청소년들을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하도록 프로그램화 된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근대사회의 올가미가 바로 이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주변인화 되는 과정은 키무라 나오에의 『청년의 탄생』이 잘 보여준다. 19세기 말 엘리트 청년은 성찰적인 존재로서 등장하지만, 점차 미숙한 존재인 소년의 이미지로 변해간다. 이런 과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신지식인으로서 소년과 청년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점차 오늘날의 청소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오늘날에는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진작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근대 초기 소년과 청년들의 사회 참여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청소년들은 점점 더 관리되고 통제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일제 강점 말기로 접어들어 법률과 문서상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청소년이란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년과 청년 모두를 훈육과 훈련, 규율의 대상으로 보면서부터다. 동아시아에서 청소년이란 말의 탄생은 청소년의 주변인화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후 청소년은 점차 경계선에 놓인 존재가 되었고 근대적인 규율이 이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미디어와 일련의 제도는 청소년에게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덧씌웠고 서서히 주변인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이기 시작했다.
청소년의 모습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변화가능하다. 청소년들은 더 사회참여적이고 자신들의 삶을 더 책임감 있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소년은 옛날처럼 작은 성인이 될 수 있으며, 작은 정치인이 될 수 있고, 작은 시인이 될 수 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물론이고 자기의 삶 안에서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닌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기는 심리적 유예기가 너무 길다. 미래에는 청소년이 사회참여적이고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근대계몽기1895~1910> 이팔청춘 꽃띠들은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청춘 남녀의 재탄생
『동의보감』「내경편」에서 제시하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생체주기는 여자의 일생은 7년 단위로, 남자의 일생은 8년 단위로 바뀌어져간다. 이 주기에 따르면 남녀 모두 성적 욕망이 왕성해지는 때는 10대 후반이다. 여자는 14세 이후 '월경이 때맞춰 나오므로 자식을 둘 수 있고', 남자는 16세 이후 '정기가 흘러넘쳐 음양이 조화되므로 자식을 낳을 수 있다.' 14세에서 16세 이름하여 이팔청춘! 춘향이가 이몽룡과 눈이 맞아서 합방을 했던 나이로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비슷한 나이에 사랑에 빠져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다.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대문호도 이팔청춘에 혼인을 했다. 만약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누군가와 열렬히 사랑에 빠지고 화끈한 섹스를 누린다는 것이 밝혀지면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정신이 나갔구나!', '대학은 포기했나보지?', '분명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을 거야!' 등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팔청춘과 청소년. 두 낱말은 같은 연령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둘을 에워싸고 있는 아우라와 표상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전자가 자연생체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후자는 근대 문명이 부과한 아주 '특별한 호명체계'다. 쉽게 말해 10대의 어떤 인간을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수많은 그물망 속에 갇힌다. 일단 그들은 결혼이나 동거 따위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숫제 청소년의 성욕 따위는 없거나 없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청소년기에는 욕망의 부글거림으로 몸부림을 치다가도 막상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청소년은 순수할 거라는, 아니 순수해야 정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 이게 바로 표상 혹은 호명체계의 위력이다.
또 하나 청소년이란 표상 속에는 경제적 무능의 의미도 함께 들어있다. 근대 이전 사회에는 예닐곱 살만 되면 나무를 하고 밥을 짓고 밭을 매는 등 집안 안팎의 노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근대의 청소년들에겐 노동이나 경제활동의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청소년은 노동에서 면제된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무능함을 강요받는 것인가? 오늘날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 청소년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학교에서 공교육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 나가는 세대이며 부모의 적극적(경제적) 보호와 배려 속에서 대학입시를 향해 분투해야 하는 존재이다. 이팔청춘이란 말에 음양, 천지의 운행, 정기 따위의 의미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이란 말속에는 가족, 학교, 국가라는 개념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을 '청소년'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는 이팔청춘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밟아가도록 운명지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 권력의 인구 통제와 성생활 통제
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은 다름 아닌 성(性)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성적 주체가 되는 것, 성욕을 합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생애를 여러 단계로 분화한다는 건 성적 욕망을 어떻게 관리,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국가가 인구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의 토대가 되는 성생활을 적극 통제해야 한다. 여기에는 남녀 간의 결연방식 및 결혼제도를 포함하여 성 윤리 전반이 모두 포함된다.
근대계몽기(1895~1910)에 이르러 전통적인 사랑과 성 풍속은 배척되었다. 강력한 근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10대들은 이팔청춘이 아니라 소년이나 청년으로 존재해야 했고, 성적 욕망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열정으로 치환해야 했다. 또 학교에서 신지식을 연마하는 한편 체력을 단련하고 절제, 침묵, 근면, 성실, 겸손 등과 같은 자기규율적인 덕목을 내면화해야 했다. 결혼이 가능한 나이는 22~23살쯤 되어야 했다. 이팔청춘이면 사랑과 성, 결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것이 20대로 훌쩍 넘어갔다. 단지 교육제도 때문이다. 공교육 과정이란 다름아닌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데 필요한 내용을 마스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금의 결혼 적령기가 30대가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교육과정과 관련이 있다. 사회에 나가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긴 교육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과 직업. 이 두 기준 말고는 어떤 기준도 없다. 다양한 방식의 학습체제가 있었던 중세와는 달리 근대국가는 학교만을 유일한 교육과정으로 인정한다. 학교가 모든 공부를 독점해, 학교가 아니면 무언가를 배운다는 발상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학교와 지식이 일치되고, 그 지식과 애국심이 바로 등가화된다는 점이다. 즉 학교에 가면 누구나 신지식을 터득하게 되고 일단 신지식으로 무장하면 곧바로 애국심에 불타 신민족 신국가 건설에 앞장서리라고 보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라진 이팔청춘
아리에스는 "근대사회에서 승리한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이다"라고 말했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자리는 없다. 오직 가족단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소년이나 청년도 마찬가지다. 소년이 개별 주체로서 존재할 통로는 없다. 어떤 가정의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근대이전에도 가정은 있었지만 가문이나 마을 단위가 더 일차적이었기 때문에 가정과 외부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소년기나 유년기가 특별한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도 그런 사회적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골목이나 거리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 놀았을 뿐만 아니라 논밭이나 목장, 대장간, 기타 일터에서도 연령별 구별이 엄격하지 않았다. 자녀를 열 명씩 낳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연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