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쇠퇴
오마에 겐이치 지음 | 말글빛냄
지식의 쇠퇴
오마에 겐이치 지음
말글빛냄 / 2009년 8월 / 368쪽 / 15,000원
'저IQ사회'의 출현 나는 최근 버블 경제 붕괴 후 일본인이 보인 행동을 논리적으로 분석, 고찰함으로써 일본인의 집단 IQ가 낮아졌다는 의견을 내놓게 되었다. 국가의 행동이라는 것이 그 나라 국민의 지적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본은 최근 십수년 동안 틀림없이 집단 IQ가 낮은 행동만 하고 있다. 집단 IQ가 높은 나라의 예를 들면 싱가포르이다. 이 나라는 개인 능력은 그다지 볼 것이 없다. 그렇지만 국가의 집단 IQ는 발군이다. 싱가포르는 소수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고, 거기에 국민들이 착실히 따라가는 형태로 지금까지 큰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경제적인 발전만이 집단 IQ의 척도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번영을 척도로 집단 IQ를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이버화가 진행된 세계경제에서는 승자가 패자로부터 계속 부를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그 구조가 고착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과 능력 없는 사람 두 종류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양자의 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져 있다. 이런 사실에 사람들이 공포를 느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오늘날 인터넷에는 비방과 중상도 많지만 가끔씩은 감탄할 정도의 탁월한 생각이나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또 그것이 웹 2.0 시대의 대표적인 집단 지능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집단 IQ가 저하되고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 여기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확실히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의견이 없느냐 하면, 확실히 의견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순된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일본 국기를 불태우는 반일 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면 일본에는 '한국은 건방지다.'라고 의견을 가진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의견이 아닌 단순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전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TV 가두 인터뷰 등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미디어들도 반응이 좋을 만한 코멘트를 골라서 방송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단순한 감정적인 반응을 모두의 의견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론이 형성된다. 그러나 그건 국민적 여론이 아니다. 고이즈미의 총리가 인기가 높았던 것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점에 있다. 중국과 한국에 대해 감정적인 발언을 하는 그의 행동을 보고 '고이즈미는 멋있는 것 같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처럼 아무생각 없이 감정적인 반응만 반복하다 보면 일본인의 집단 지능은 '한국에 얕보여서는 안된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미디어도 정치가도 국민 자신도 이것이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의 여론 형성에는 한 가지 좋지 않은 경향이 있다. 주요한 의견이 하나 부상하면 그 의견에 대한 깊은 토론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반대 의견을 내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가장 나쁜 것은 의견이라기보다는 국민적 정서라고 말해야만 할 것들이 여론으로 인정받고, 거기에 정치가들이 영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우민정치지 더 이상 민주정치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저IQ사회가 완성되는 것이다.
1억 명의 '경제 음치'생각이 없는 일본인의 특성으로 내가 계속 지적해 온 것이 있다. 바로 일본인이 경제 음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당신은 금리가 0.1%인 은행과 5%인 은행 중 어느 쪽에 예금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금리 0.1%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리 0.1%인 은행에 맡기는 사람이 지구상에는 있다. 바로 지금의 일본인이다. 왜 일본인은 대답과 모순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일까?
일본은 1999년 제로금리 정책이 도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래 제로 금리 정책의 목적은 경기회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목적과는 달리 불량채권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금융기관의 도산을 막고 수익을 개선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즉 예금자는 무시당하고 이익을 본 것은 은행뿐이었던 것이 제로금리 정책의 진실이다. 가계에서 빼앗은 이자소득을 통해 금융기관의 불량채권과 기업의 과다한 채무가 해결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금융기관에 돈을 맡긴다 해도 돈은 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총 개인 자산 1500억엔 중 1/3이 넘는 돈이 예금으로서 아직도 금융기관에 맡겨져 있다.
일본의 금융구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그러진 구조로 되어 있다. 국민의 돈은 금리를 무시하고 있는 금융기관에 모여 있고, 금융기관은 대부업체에 자금을 빌려주기도 하고 투신, 펀드를 운용하면서 일본 국채를 계속 매입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 국채가 현재 일본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리스크가 높은 금융상품이라는 것이다. 2007년 말 일본의 국가 부채 총액은 1,000조원을 훨씬 넘었다. 이는 일본의 연간 GDP의 두 배 이상으로 도무지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이 국채를 안전한 상품이라고 믿으며 금융기관이 사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마음대로 돈을 쓴다.
이래서는 일본의 가계, 즉 개인은 피폐해질 뿐이다. 그리고 국가도 부채로 피폐해진다.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구조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것이 경제대국이라 불리는 일본 국민의 진실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일본인의 집단지능이 쇠퇴한 모습이라 하면 그 뿐이지만, 무엇인가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왜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국민성을 발휘하는 것일까? 일본 전체가 버블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은 해외 부동산을 마구 사 모았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하면서 비싸게 산 물건을 싸게 파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투자자에게 단물을 실컷 빨린 다음 울면서 낮은 가격으로 팔았던 사례는 수없이 많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다. 버블 세대 이후 세대들이 버블 붕괴의 고통을 계속 반복해서 들음으로써 겁쟁이가 된 것이다.
지금 세대의 핵심층은 'OX식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이므로 유연성이 없다. 이 세대는 리스크를 안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보통의 국가라면 한 세대 전의 사람이 버블에 실패했다면 그 경험을 배워 새로운 성공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거꾸로 위의 세대로부터 '리스크를 피하라'는 것만 배웠다.
인터넷 사회와 두뇌내가 『인터넷 혁명』이라는 책을 낸 것은 1995년의 일이다. 당시 이 책을 읽은 경영자들은 "오마에 씨,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책에 쓰여 있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예상 이상의 속도로 일본 사회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내가 예측했던 것 이상의 임팩트를 현실 세계에 가져왔다. 그 중 하나가 인터넷의 악영향론이다.
인터넷 악영향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인터넷이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의존 상태에 빠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쇠퇴해 자기중심적인 인격이 형성되기 쉽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터넷이 지식의 쇠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 같은 검색엔진의 탄생에 의해 본래 지적인 작업의 하나인 '문장을 쓴다'라는 것조차 깊이 생각하는 일 없이 구글에서 카피로 끝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영향으로 생각하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며 지식이 단편적인 것이 된다.
인터넷의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폐해를 다음 세대가 지식을 쌓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인터넷의 세계는 웹 2.0이라고 불리는데 아직 혼돈 상태에 있어 그곳에서 무엇이 튀어나오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익명성이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끌어낸다"라고 하는 지적이 있지만, 플러스를 끌어내는 것도, 마이너스를 끌어내는 것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달렸다. 인터넷의 폐해는 무한하지만 인터넷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러나 그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간이 바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인터넷 사회는 종래의 리얼 세계에서의 검색과 비교하면 매우 빠르고 효율이 좋다. 인터넷에는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정보와 지식이 매우 많은 양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앉은 채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어프로치만 틀리지 않는다면 편리하다는 사실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인터넷을 이용함으로써 우리가 지금까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시간을 이번에는 전부 사고(생각하는 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은 점점 현명해진다는 전혀 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예를 들어 집단 지식의 중요한 툴인 위키피디아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금은 사전조차 인간이 혼자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다. 한 두 사람의 전문가가 일생을 들여 사전 한 권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 게다가 인터넷에는 큰 메리트가 있다. 틀린 것이 있으면 바로 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도적인 수정도 행해진다. 그러나 시대와 함께 그러한 문제도 개선되어 간다. 그것이 집단의 지혜이다. 이것이 위키피디아의 특징이며 인터넷에서 이것이 가능하다면 리얼사회에서도 가능하다. 나는 향후 회사 경영도 점점 위키피디아적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향후 모든 분야의 시스템 구축은 위키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역으로 집단지식을 믿지 않으면 오늘날 세계에서는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망 없는 젊은이들과 학력 저하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은 욕망이 없다. 현재의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는 생활이 가능하다. 그 덕분인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욕망을 나타내지 않고 상승지향적이지도 않다. 왜 젊은이들의 욕망이 없어져버린 것일까? 그 심층심리를 탐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밝은 뉴스가 전혀 없었다"라는 전제를 세우면 경제적인 요인 두 개를 들 수 있다.
첫째 일본인의 금융자산을 보면 부가 고령자층에 편재되어 있다. 반면 소비의 주체여야 할 젊은이들은 부채를 많이 안고 있다. 둘째 젊은이들은 고령자들이 쌓아온 자산을 계승하지 못한다. 일본인은 죽을 때가 가장 부자이고 일본인 한 사람이 사망할 때 보유한 총 자산은 평균 3천5백만 엔이다. 하지만 그 돈이 젊은이들에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상속세가 높아 정부에서 전부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연금이라는 형태의 세금이 20세부터 부과되는 것도 큰 원인이다. 젊은이들이 지불하는 돈이 그대로 고령자의 생활비로 돌아간다. 이처럼 세대 간의 불공평함이 일본에서는 극단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에 젊은이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환경이 현재의 일본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 집에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식비를 줄이면 충분히 보통으로 생활할 수 있다. 그들은 주택대출로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마이홈을 구입하려는 생각조차 없다. 많은 남성이 결혼조차 포기해 버리고 있다. '자동차나 마이홈은 필요없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 무리하게 돈을 모을 필요도 없다'는 젊은이들이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집단지식의 쇠퇴와 결부시켜 일본 사회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된다.
"현대의 일본인은 사고정지 상태다"라고 하면 깊이 수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고정지=지금의 사람=젊은이'라고 단정한다. 확실히 지금의 젊은이들은 욕심이 없고, 학력까지 저하되고 있다. 학력 저하는 유토리 교육이 원인이라고 한다. 유토리 교육은 간단히 말하면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는다'이다. 이 제도는 1999년 이후 초중고교 교육에서 실시되었고, 그 결과 10년이 지난 지금 최고학부인 대학에는 바보 학생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입식 교육만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적 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력 저하보다 더 큰 문제는 학습의욕 감퇴이다. 일본 아이들은 공부의 즐거움이나 공부에 대한 적극성이 없다. 원인은 편차치(개인의 능력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 교육에 있다. 일본에서 편차치에 의한 선별교육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개인의 능력을 수치로 나타내게 되자 학생들은 스스로를 평가해 '나는 이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의 편차치로는 이 학교는 무리다'라는 말을 반복해 들으면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에는 시험을 보지 못한다. 편차치는 공업화 사회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국가에는 좋은 정책이다. 길들여진 로봇 인간을 대량으로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책은 개인에게 의욕이라는 것을 빼앗아버렸다.
지금 40대가 중심인 편차치 세대는 매우 순종적이다. 그들은 아이 때부터 '편차치가 높다=머리가 좋다'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위기감 따위를 가질 리가 없다. 무슨 일에도 편차치가 높아 머리가 좋은 인간이 해결해 주기 때문에 자신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편차치가 높은 인간이 관공서에 가고 언론 분야에 간다. 그러므로 정부는 실수를 하지 않으며, 신문이나 TV가 말하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가 지금의 일본이라 한다면 집단 지식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
'집단 IQ'를 높이는 교육 개혁일본인의 집단 IQ를 높이려면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교육을 대개혁해야 한다. 모든 교과 내용을 재검토하는 것은 물론 교사 자신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교원 면허에 시효를 정하고 21세기에 적응하지 못한 선생님을 21세기적인 프로페셔널 교사로 탈바꿈시키는 힘든 작업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먼저 영어교육부터 살펴보자. 지금의 세계에서는 영어가 표준어이다. 표준어를 할 수 없으면 비즈니스도 학문도 정치도 외교도 없다. 세계의 표준어가 가능한 인재를 키우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할 수 없다. 세계 속에서 밥을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다음 세대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 두 가지만 즉시 실행하면 된다.
첫째, 일본의 대기업이 10개 정도 모여 "이제 영어로 해외공장 경영을 하지 못하면 전부 망한다"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우량기업이라는 기업 전부가 취직시험에 높은 레벨의 영어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영어 교원을 모두 교체하는 것이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회화를 가르치는 일은 민간 학원이라면 있을 수 없다. 법률을 개정해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교원면허를 취득한 사람을 정식 교사로 채용해야 한다. 그리고 초빙하는 외국인 영어교사의 수를 대폭 늘려 기본적으로 영어 수업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사에게 담당하게 해야 한다.
다음은 '각오하고 교사를 바꿔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해 보자. 현역교사의 면허를 엄정히 심사해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이다. 어찌되었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선생님이 현장에 오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진전되지 못한다. 이와 관련 나는 사회인 전원이 학교 교육에 참가하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의 사회인을 교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회인을 교육현장에 참여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채소가게 주인이 학교에 와서 상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팔리기 전에 무가 썩어버리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가를 말한다. 이런 이야기는 상거래 경험이 없는 교사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다. 또한 소방사가 담뱃불의 무서움을 이야기하거나 변호사가 대출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이야기하는 등 여러 직종의 사람들에게 현실사회에 걸맞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처럼 사회와 학교를 연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금 요구되는 것이며 학교가 목표로 해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