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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강창래 지음 | 알마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 강창래 지음

알마 / 2009년 8월 / 270쪽 / 17,500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박웅현과 CD라는 직책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박웅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꽤 많은 자료가 찾아졌다. 박웅현을 만났을 때 CD라는 직책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은 광고회사에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PD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지요. 그런데 프로듀서라는 이름에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뜻을 좀 넓혀보면 CEO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요즘 CEO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지 않으면 망합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모든 리더들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야 할 겁니다.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광고회사에서만 그 이름을 쓰는 것이 좀 미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좋은 이름이니까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영문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에 대해서 찾아봐도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은 광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 쓰이는 직책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웹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도 쓸 만한 직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설명은 해놓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글은 주로 광고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웅현의 말대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다. 창의적으로 디렉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CD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감독도 그렇고, CEO도 그렇고, 출판사 편집장도 그렇다. 그런데 직책의 역할 가운데 무엇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창의성'에 방점을 찍어서 그것을 직책 이름으로 쓴 업계는 광고회사뿐인 모양이다.

며칠 뒤 박웅현은 한 기업체에서 '창의성'에 대해 강의를 했다. "광고라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요."그는 두 가지를 기가 차게 보여주었다. 하나는 CD란 뭘 하는 사람인가, 다른 하나는 그것을 설명하는 솜씨, 소통의 기술을 뽐내고 있었다. 박웅현은 소통(communication)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통은 '발신자 메시지 수신자'라는 경로를 거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신자 메시지 발신자'라는 경로가 옳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수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다. 소통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귀가 열리는 법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수신자에게 다녀와야 한다. 그런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유머다. 오길비(David M Ogilvy)도 『데이비드 오길비 광고 불변의 법칙(Ogilvy on advertising)』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훌륭한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소양 가운데 하나가 '유머 감각'이다. 카피라이터는 메시지를 글로 쓰는 사람이고, CD는 메시지를 결정하고 구체화하는 사람이다."

박웅현은 CD가 하는 일에 대해 짧게 간추려주었다. "CD가 하는 일은 광고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광고주를 만나는 일에서부터 광고를 따고, 제작하고, 만들어진 광고를 가지고 광고주를 설득하는 일까지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PD와 비슷한데 그 역할에서 광고주와 소통하는 일이 더해진다고 보면 되겠네요. 당연히 제작한 광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요."

광고, 잘 말해진 진실



리모컨과 인터넷이 만든 현대적인 광고


박웅현은 2007년에 EBS의 〈시대의 초상〉에 출연한 적이 있다. 〈15초의 시대, 광고인 박웅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박웅현을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자료다. 이 시리즈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시인 고은, 판화가 이철수, 사물놀이패 김덕수 같은 사람들이었다. 프로그램 편집자는 아마도 맨 먼저 '광고란 이런 것이다'라는 자리매김으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광고인' 박웅현을 말하는 것이니 먼저 광고를 짚어야 했을 것이다. 마치 광고 카피처럼 광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근히 노골적으로, 광고의 사회적인 위치를 말하고 있었다. 도입부에서는 세 개의 이미지를 썼는데, 모두가 중앙일간지 1면 톱과 광고를 대비시키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그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뉴스가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전면을 차지하고 있고 한 귀퉁이에는 장학적금 광고가 말 잘 듣는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은 "전쟁, 빈곤, 강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두 번째 그림. "노태우 후보 당선 확실"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선거 개표 사진이 실려 있다. 맨 아래에는 노골적으로 "자신 있게 찍으세요"라는 광고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레믹스 니콘 사진기 광고다. 세 번째 그림. 성수대교 붕괴 뉴스가 1면 톱으로 실렸던 신문이다. 한 귀퉁이에는 원비에프 광고가 실려 있다. "무너진 다리와 피로회복제"였던 것이다. 이 세 개의 그림으로 광고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 박웅현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광고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리모컨이에요. 돌려버리거든요." 앞에서 보여준 광고들은 '오래된 신문광고'들이었다. 신문광고와 리모컨 사이에는 꽤 먼 거리가 있다. 그 먼 거리에는 대중이 '수많은 채널과 리모컨'을 가지게 된 세월로 채워져 있다.

박웅현은 이렇게 말했다. "한 여자가 말해요. 오빠 배고파. 남자가 이렇게 말해요. 기다려 내가 폼 나게 먹여줄게. 왜 이런 식의 광고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애들이 저런 걸 보면 따라 할까 겁나고요. 그래서 얼른 돌리게 됩니다. 물론 그 광고의 목적은 물건을 파는 것이지만, 팔기 위해 말하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을 텐데 왜 하필 저런 방법을 선택했나 싶은 거지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광고는 보지 않으면 된다. 박웅현의 말대로 '얼른 돌리면'된다. 그럴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리모컨이고 그것이 대중의 손에 들려 있다. 리모컨이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인터넷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적인 광고는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2007년에 나온 『광고, 욕망의 연금술』에서도 볼 수 있다. 강준만은 베네통 광고 사진 작가로 유명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의 말을 인용하면서 광고가 문화의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 토스카니는 광고가 단순히 마케팅 종속변수의 개념을 넘어 사회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광고는 영화, 문학, 회화, 음악과 같다. 나는 광고에서 베네통을 사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다만 대중과 이야기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광고를 통해 상품의 개념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철학을 판다. 베네통의 반인종주의, 세계주의, 금기 반대 정신 등…. 광고는 마케팅을 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참여 커뮤니케이션이다."-

광고는 한 기업이 그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서 가끔은 직설적으로 가끔은 아름다운 은유와 상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은유와 상징 또한 시공간의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 만큼 역사를 읽는 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런 것이 리모컨과 능동적인 미디어 인터넷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적인 광고의 콘텐츠다. 박웅현의 광고가 그런 것이다.

《토지》는 히까닥하지 않았다

박웅현은 언젠가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한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적인 소양입니다." 박웅현은 처음 만난 날에도 이 말을 했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합니다." 공감이 된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화된 결과물이고,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박웅현은 2004년까지 삼성의 제일기획에서 일했다. 그곳 사보에서 박웅현이 쓴 글, 〈토지는 히까닥하지 않았다〉라는 '히까닥'한 제목을 단 글을 보았다.- 광고는 시대 읽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껌 광고에서부터 기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광고에 필수적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광고는 공감대가 없고, 공감대가 없는 광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준다는 측면에서 전혀 히까닥하지 않은 광고를 하는 나에게 영양제가 되어준다.(중략)……. 사회와 시대,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읽어 내기 위한 매우 고단하고도 진지한 작업, 광고라는 전혀 히까닥하지 않은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나는 지난 넉 달 간, 한 첩의 보약을 먹듯《토지》를 읽었다.-

광고는 팀의 작업이다. 박웅현은 그래서 '내가 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했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말로만 '우리'라고 하면 금방 알아챈다. 알아채는 순간 '말로만 우리'가 남을 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만나본 박웅현의 팀에는 수많은 내가 톡톡 튀며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카피 누가 썼어?" "몰라, 네가 쓴 것 같아." "아니야. 네가 이 줄 이야기를 했잖아." "그러면 앞줄은?" 이런 식이었다. SK브로드밴드 광고의 밑그림 분위기는 누군가가 '앙리 루소'그림 이야기를 했고, 디자인팀에서 "이런 거?" 하면서 만들기 시작했고, 생각들을 뒤섞었다고 했다. 나는 박웅현의 광고에 공감했기 때문에 자주 떠벌리고 다녔다. 그리고 박웅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했다. 우리는 비슷한 데가 많았다. 사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냥 '다르다'라는 말과 다른 점은 온도 차이일 뿐이다. 다르기 때문에 할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생기는 것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냉장고다

현대적인 광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광고인들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광고는 시대 읽기와 사람 읽기에서 출발해서 얻은 통찰력으로 멋지게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좀 느껴보려면 어떤 것이 있을지 물어보았다. 박웅현은 잠깐 생각하더니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라고 답했다. "베네통의 기가 찬 사진들 기억하세요? 수녀와 신부가 키스하는 장면이나, 천사와 악마로 분장한 백인과 흑인 아이의 포옹 장면, 흑인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백인 아기와 같은 사진들 말입니다.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on)이라는 슬로건도 기가 차잖아요. 심장 세 개를 놓고 각각 백인, 흑인, 황색인으로 표시한 광고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만든 이런 식의 광고는 18년간 이어오다가 2000년에 막을 내렸다. 그 발단은 2000년 3월에 미국에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긴 사진을 미국의 주요 출판물 지면에 게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진은 실제 사형수 6명을 찍은 것이었다. 이것으로 베네통 광고에 대한 사회적인 반향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18년간의 베네통 광고는 끝났다.

박웅현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홍사종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썼던 칼럼이 하나 있습니다. 〈대통령은 냉장고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홍사종의 논지는 이런 겁니다. -요즘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보면 더 이상 '성에가 끼지 않는다'거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장고'라는 '기능'을 알리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장고는 사람입니다'라거나 '여자라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상품 광고 경향이 대통령 선거를 위한 광고에도 나타난다. 한 후보가 '눈물'과 '기타 치는 대통령' 모습을 보이며 감성 광고를 하는데, 이래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냉장고와 다르다.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국정과제가 곧 국민 모두에게 닥칠 현실인데 냉장고식의 행복예감 광고'로 유권자의 감성만 자극해서 되겠느냐고 꾸짖는 것이다.-

그런데 제가 이 칼럼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다. 대통령은 냉장고가 맞다. 생각해봅시다. 냉장고나 의류 광고에서 기능에 대한 내용이 빠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능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요즘 어떤 냉장고가 성에가 끼고 전기 효율이 낮습니까? 어떤 옷의 바느질이 문제가 됩니까? 이미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대통령 후보 노무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 알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철학이 무엇인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것인지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상대방 후보와의 비교 평가도 끝나 있던 상태입니다. 냉장고라면 이미 '성능'검증은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은 냉장고가 맞다고 한 겁니다."

진실의 재구성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이었다. '성공한 광고'라는 평가는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다짐에 박수를 보냈다는 뜻이다. 1994년에 삼성은 세계일류 광고 1차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광고는 삼성이 세계일류가 되겠다는 의지를 온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박웅현의 말이다. "이 시리즈 광고의 성공은 시대를 제대로 읽었다는 점과 적절한 타이밍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달 착륙 25주년 기념일에 맞춰 암스트롱을 내보냈고, 광복절에는 손기정의 모습이 나갔습니다. 이 광고는 다른 기업의 기업광고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청년정신을 강조하며 백남준을 등장시키는 광고도 그 이후에 나왔습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기업들은 나름대로 세계경영을 외치며 분명한 목표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심각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여성 작가가 메이저 신문에서 이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고 포문을 연 겁니다. 세계일류 캠페인 광고는 패륜아를 양산한다는 것이었어요. 1등은 중요하고, 2등부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 광고는 사회적인 병폐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계일류 캠페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가진 논리에 공감하지만 그 논리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말 제대로 읽어보면 이 광고는 한 기업이 세계일류가 되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 광고가 '나쁘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의 중심'은 광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겁니다. 이런 '사회적인 진실'인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광고만을 공격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겁니다. 어떤 광고가 성공한다면 그 사회가 그 광고의 메시지에 공감한 겁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에 문제가 있고 그것을 고치고 싶다면 광고가 아니라 사회를 고쳐야 합니다. 저는 시대의 흐름을 읽었고, 그 흐름 속에서 한 기업의 다짐을 표현했던 겁니다."

아무튼 이런 사회적인 반향에 반응해서 1995년부터 시작한 세계일류 2차 캠페인은 질적인 세계일류가 되기 위한 질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일류가 되자'는 메시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류의 개념'을 말하기 시작했다. 세계일류란 루즈벨트가 장애인으로 기억되지 않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 에디슨이 초등학교 중퇴자가 아니라 발명왕으로 기억되는 사회, 오드리 헵번을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만나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그 메시지에 대한 대답을 듣고, 다시 대답하면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대적인 광고는 알림이나 설득이 아니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결과물이다. 박웅현은 광고의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 광고는 잘 말해진 진실입니다. 진실이 아니면 그처럼 사회적인 호응을 크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고, 통찰력이 필요한 겁니다." 또 하나 새겨야 하는 것은 광고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에게도 독이 되기 때문이다. 소설이 있음직한 이야기로 진실을 말하듯, 광고도 가장 그럴듯한 방법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대중은 거의 완전히 개방된 정보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광고는 콘텍스트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불변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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