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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유정열, 김정화, 김병희, 조선 지음 | 명진출판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유정열 외 지음

명진출판 / 2009년 7월 / 328쪽 / 13,500원



1장 서른이 되기 전에 황금빛 들판을 보아라



오름에서 '삶의 조건'을 생각하다 - 제주 다랑쉬오름


멀리서 다랑쉬오름을 보니 중절모자를 땅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도입부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생각난다. 다랑쉬오름에 오르면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다랑쉬'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월랑봉'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약 400km밖에 되지 않지만 분화구의 깊이는 115m에 이르며, 분화구를 따라 도는 길은 1500m에 이른다. 멀리서 보면 다소곳한 여인의 치마폭처럼 근사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흐트러짐 없는 균형미는 다른 오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곳만의 특징이다.

분화구를 두고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것은 다랑쉬오름에서 만나는 최고의 아름다움 중 하나다. 또한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일몰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절경이다. 다랑쉬오름에 오르는 등산로는 하나다. 이전에는 곧게 뻗어 있던 등산로를 최근에 오름 보호를 위해 지그재그로 오르게끔 만들었다. 오름의 경사가 심해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다 쉬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에야 겨우 오른다.

다랑쉬오름을 힘들게 오르면 세찬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때로는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을 이기고 돌아보면 멀리 성산일출봉부터, 우도 그리고 한라산까지 보이는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굴곡진 우리네 인생과 교감하려는 자연이다. 웃음 한 번, 눈물 한 번, 이 소박한 인생 자체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거창함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오름들이 단짝 친구처럼 모여 있다. 용눈이오름, 솔지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등이 제각각 개성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의 맵시를 뽐낸다. 제주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이 독특한 풍경은 이곳에서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단골 여행코스가 되었다. 오름 제일 높은 곳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배낭에 넣어온 녹차와 과자를 꺼내 먹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름에 있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동글동글한 수많은 오름을 찾아 오르는 것만으로도 하루해가 모자란다.

다랑쉬오름에 오르면 맞은편에 아끈다랑쉬오름이 있는데 다랑쉬오름에 비해 작고 아담해서 귀엽기까지 하다. '아끈'이란 '버금, 둘째'라는 뜻으로 '작은다랑쉬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예전 이 오름의 분화구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4 · 3 사건이 일어나 1948년에 군과 경찰의 토벌대 작전으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한다. 커다란 슬픔을 가지고 있는 오름이다.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아우성을 들으면서 이념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잠시 생각해본다.

다랑쉬오름에서 보낸 시간은 자연과의 장엄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귀를 기울이며 가까이 다가간다. 손을 뻗어 하늘을 잡고 다리를 뻗어 이 오름 저 오름으로 날아간다. 오래전 격렬하게 살아 있던 오름은 이제 여행자의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주변 여행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제주에 대한 사랑을 사진으로 표현했던 고 김영갑 작가의 갤러리다. 제주의 오름을 오르기 전 또는 오른 후에 두모악에서 그의 오름 사진을 보면 남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064-784-9907

·비자림: 단일 군락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199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숲에 있으면 하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자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그 푸른 숲길을 걸으면 말로는 형언 못할 청량감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문의: 제주시 관광지 관리사무소 064-783-3857

세 번의 이별을 경험해야 어른이 된다 - 완도 보길도

보길도에 고산 윤선도의 흔적보다 더 매력적인 게 있다. 작은 돌멩이에서 공룡알만 한 몽돌들의 유혹. 파도에 부딪혀 서로가 몸을 부대끼며 내는 소리, 동글동글하니 모나지 않은 귀여운 모양, 햇빛이 비추면 바닷물에 젖어 반짝거리는 돌들의 사랑스런 유혹은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한다.

완도 화흥 포항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가는 바닷길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하다. 청별항에 들어서자 따뜻한 방과 맛난 식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느낀다. 느긋한 식사를 마친 후 피곤이 몰려오는데도 머릿속은 보길도의 여행일정을 짜느라 부산하다. 날이 밝으면 보길도의 예쁜 몽돌들을 후회 없이 사랑해주마! 그것에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침 일찍 서둘러 맨 먼저 찾은 곳은 청별항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세연정이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의 많은 흔적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세연정은 윤선도가 삶을 마지막까지 경쾌하게 보낸 곳이다.

잘 꾸며진 인공정원인 세연정을 둘러보면 윤선도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세연정만이 아닌 보길도 구석구석을 훑어보면 그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 윤선도의 나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신의 놀이터이자 쉼터였던 세연정을 정성을 다해 꾸미는 것은 당시 상당한 재력가였던 윤선도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높은 학식과 연륜으로 쌓은 눈높이로 정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을 것이다.

세연정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동천석실이 있다. 인근의 낙서재 등이 복원공사 중이어서 그나마 '풍경이라도 볼까' 하는 생각에 가봤는데 이곳도 복원공사 중인 곳이 있다. 여행하다 마주하게 되는 난감한 경우다. 다행히 동천석실로 올라가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동천석실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풍경에서 한가함을 넘은 나른함이 느껴진다.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을 배경으로 한 오밀조밀한 마을길로 농부와 아낙은 경운기를 몰며 하루의 일과를 수행한다. 이제 슬슬 보길도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공룡알 해변으로 향할 때다. 공룡알 해변은 청별항에서 세연정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맨 끝에 있는 보죽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보죽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뾰족한 생김새 때문에 실제 높이보다 더 높아 보인다. 일명 '뾰죽산'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붙은 산이다.

그 아래로 그야말로 공룡알 같은 돌들을 모아놓은 몽돌해변이 나오며 뒤로는 동백나무를 이용해 방품림을 조성해놓았다. 보옥리 몽돌은 다른 곳의 몽돌과 크기가 다르다. 큰 것은 건장한 청년들도 들기 힘들 정도다. 큰 몽돌들은 걸터앉기도 좋고 맨발로 징검다리를 건너듯 여기저기 밟고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동백숲에서 쉬며 바다를 보고 있는데, 염소가족이 바닷가 절벽길을 따라 뒤뚱거리며 다가온다. 여행자는 염소가족을 쳐다보고 염소가족은 여행자를 쳐다본다. 염소보다 한가한 여행자는 염소를 계속 주시하고, 나름 바쁜 염소들은 풀을 뜯어 먹음으로써 싱거운 눈싸움은 끝이 난다.

몽돌해변에 편히 앉아 한가로운 어촌의 풍경을 즐긴다. 보옥리에서 주어진 3시간을 뒤로 하고 서둘러 예송리 해변으로 향한다. 보옥리 해변에 공룡알만 한 몽돌들이 우직하게 침묵하고 있다면, 예송리의 작은 조약돌들은 반짝반짝 수다를 떨고 있다.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작고 예쁜 조약돌에 그토록 보고팠던 보옥리의 몽돌은 잠시 잊혀진다. 예송리 조약돌 위에 앉아 이별을 잊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들리는 조약돌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사랑스럽다.

주변 여행지

·중리해수욕장: 청별항에서 예송리 가는 길에 있는 중리해수욕장은 보길도에서 해수욕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수심이 얕고 고운 모래가 펼쳐져 있으며, 뒤편의 송림숲은 햇살을 피하며 쉬기에 적당하다. 해변 바로 앞에는 목섬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물이 완전히 빠지면 걸어서 갔다 올 수도 있다. 문의: 와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24

·망끝전망대: 보옥리 가는 해안길에 있는 망원봉 끝자락의 망끝전망대는 시원한 전망과 더불어 서해로 지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멀리 추자도와 가도, 상도 등 다도해 사이로 지는 일몰은 보길도의 또다른 아름다움 중의 하나다. 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24

2장 서른이 되기 전에 매화향기를 맡아봐라



이십 대의 마지막 봄엔 향기가 있었다 - 광양 매화마을


겨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3월 초, 산 넘고 들 넘은 남쪽 마을로부터 봄소식이 들려온다. 혹산의 한파를 이긴 5만 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새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백운산 기슭에 자리한 전남 광양의 섬진 마을은 순백의 매화마을이다. 경칩을 보낸 3월 초면 마을에선 매화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끝난 어느 햇살 좋은 날, 느긋하게 매화향기에 취해볼 요량으로 섬진강변으로 떠난다.

섬진강 줄기 따라 이어지는 19번 국도변은 언제 와도 편안하고 정겹다. 지리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풍경도, 옥색 물빛에 은은히 햇살이 비낀 섬진강의 눈부신 아름다움도 나를 이곳으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길은 남도대교를 경계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간다. 도로도 자연스레 19번에서 861번으로 바뀐다. 개나리와 매화나무가 만개한 가로수 길을 지나자 어느덧 백운산 산허리에 매화구름 자욱한 섬진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얽히고설킨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다. 주차장으로 연이어 들어오는 관광버스에서 상기된 표정의 관광객들이 쏟아진다. 축제기간은 끝났지만 마을 곳곳은 여전히 축제 중이다.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뾰족한 천막에서는 음식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매화마을의 일상풍경을 기대했던 터라 부산스러운 광경이 낯설기만 하다.

번잡한 행사장을 뒤로하고 인적이 뜸한 언덕배기를 향해 걷는다. 언덕을 향해 조금씩 더 높이 올라갈수록 번잡한 소음과 음식냄새가 사라져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가는 길에 만난 매화나무들은 관광객들의 낯선 호흡과 손길, 발길에 치어 잔뜩 지쳐 보인다. 그럼에도 매화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다. 마지막 생명력을 다해 제 향기를 지키는 듯 말이다. 촘촘하게 들어찬 매화나무의 굽어 흐른 가지들은 이웃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듯 넝쿨을 이룬다. 낮은 키의 매화나무는 등을 굽어 지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렵사리 매화나무 숲을 헤쳐 마을을 바라본다.

안개꽃처럼 자욱한 순백의 매화구름 너머로 왁자한 축제장의 소음까지 넉넉하게 품어 안은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섬진강이 없는 매화마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겹겹이 흐르는 지리산 자락에 어우러진 섬진강의 고운 자태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언덕을 내려와 섬진마을 산기슭에 매화를 처음 심은 청매실 농원으로 향한다. 2500여 개의 옹기 독들이 나란한 장독 광장에는 매실된장, 고추장이 맛있게 익어가고, 장독대를 지나 오솔길에 들어서니 눈꽃 속에 자리한 예쁜 초가가 반긴다. 농원 곳곳에 매화가 지천이지만 결코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매화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음은 짧은 한 철, 단 몇 날밖에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풋풋한 지난날들이 더없이 애틋한 이유도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모른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 섬진교를 건너 하동 땅으로 들어선다. 강 너머 광양 땅 산자락 곳곳에 몽실몽실 매화구름이 자욱하다. 섬진강 뱃길 따라 이어지는 하동 녹차밭과 대숲 그리고 재첩잡이 아낙의 모습을 뒤로하며 여행길을 마무리한다. 강이 좋아 다시 찾게 될 매화향 가득한 섬진강 봄나들이다.

주변 여행지

·섬진강: 하동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섬진강은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 섬진강 백옥의 백사장은 유유히 흘러가는 강과 어우러져 느긋한 풍경을 만든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의 유혹이 가득한 곳이다. 문의: 광양시청 문화홍보 담당관실 061-797-2721

·구례 산수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수유를 재배하는 마을이다. 봄빛 물씬한 연둣빛 지리산자락에 노란 산수유로 수놓은 모습이 한 편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해마다 3월 중순이면 상위마을과 지리상 온천지구 내에서 구례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문의: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때론 수고로움을 사랑해 - 완주 대둔산

가을단풍이 무르익어가는 11월의 어느 주말, 만추의 서정이 아름다운 대둔산을 찾는다. 전북 완주군과 충남 논산, 금산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오르는 위치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한다. 그중에서도 케이블카를 타고 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을 오를 수 있는 완주군 코스가 가장 인기다. 산행시간이 넉넉하다면 논산 벌곡에서 군지골을 타고 금강폭포, 비선폭포를 두르는 코스도 좋다. 벌곡에서 오르는 코스를 이용하면 대둔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데다 극성수기에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아 여유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어느새 완주군에 다다른다. 대둔산 이정표를 따라간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빼곡하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케이블카 매표소로 향한다. 가는 길에 다닥다닥 이어진 식당에서 인삼튀김을 수북이 튀겨내고 있다. 방금 점심을 마쳤지만 인삼향이 어우러진 고소한 기름냄새에 자꾸 눈길이 간다.

케이블카를 띄우는 육각정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줄이 계단까지 빼곡하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가 대둔산 산등성이를 따라 미끄러지듯 하늘로 향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미처 창가 쪽에 서지 못한 사람들은 찬사가 터지는 곳을 향해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느라 분주하다. 대둔산은 골 깊은 바위산임에도 울창한 숲을 품고 있어 보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케이블카가 금강구름다리 인근 휴게소에 도착하자 산길이 수고스러운 일부 산행객들은 바로 내려가는 번호표로 교환받는다. 여기까지 와서 금강구름다리를 건너지 않고 내려갈 수는 없다.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금강구름다리는 높이 81m, 길이 50m의 철제 다리다. 양쪽 기암 봉우리에 걸쳐 있어 마치 공중그네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다리를 건너면 생각보다 튼튼해 그리 겁은 나지 않는다. 금강구름다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장군바위'라 불리는 기암괴석이다. 마치 롱코트를 휘감고 우수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듯하다.

금강구름다리를 지나 삼선계단으로 오르려면 험한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말이 계단이지 경사도 만만치 않거니와 돌의 크기와 모양새가 제각각이라 수월치 않다. 삼선계단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진다. 앞사람의 더딘 발걸음에 뒷사람은 제자리걸음이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커다란 렌즈를 맞춰가며 구도를 잡는 사진작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까지 올라와서 보니 대둔산의 백미는 삼선계단인 듯싶다. 철제 난간을 움켜쥔 손은 마치 생명줄을 맞잡은 양 힘이 더해진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보니, 앞만 보고 가기엔 못내 아쉽다. 앞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뒤를 돌아다본다.

겹겹이 쌓인 산등성이 사이사이로 마을이 들어서 있고, 붉고 푸른빛의 암봉들은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 있다.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러대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니, 정상인 마천대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마천대 위로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흰 개척탑이 대둔산의 자연미와는 다른 모습으로 서있다. 마음 같아선 정상까지 오르고 싶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눈앞의 마천대를 뒤로하고 휴게소를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간다. 벌써 휴게소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넘친다. 서울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각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서둘러 산길을 내려가니 30분 내에 매표소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등산화 끈을 질끈 매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산길을 내려간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를 땐 대둔산이 얼마나 거친 산인지 미처 몰랐다. 내리막 경사는 가파르기 이를 데 없고, 너덜지대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부지런히 걷다 뛰다 한 덕에 예상보다 빨리 매표소에 도착했다. 빙수로 더위를 달래고, 오르는 길에 눈여겨 두었던 인삼튀김으로 지친 몸을 다독인다. 케이블카만을 타고 오갔다면, 대둔산의 기억은 단풍 곱던 바위산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산이란 땀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수고가 있어야 그곳을 오르는 사람을 살찌운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산에서는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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