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사
김형광 지음 | 시아출판사
한국의 야사
김형광 편저
시아출판사 / 2009년 5월 / 1070쪽 / 28,000원
망국의 한이 서린 가야금우륵은 대가야 사람으로서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국인 대가야를 버리고 신라에 귀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라의 입장에서 그렇게 적은 것이지 우륵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진흥왕의 부탁으로 신라의 청년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가야금을 비롯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야금은 신라의 악기가 아니라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가실왕이 중국에서 들여온 '쟁이'라는 악기를 응용하여 만든 것이다. 후세의 사가들이 적은 것처럼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은 신라에 귀화하지도 않았고 예술가로서의 생애 또한 그렇게 편안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았다.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들도록 했을 때 왕을 도운 수많은 예술가와 장인들 중에서 공로가 가장 컸던 사람이 바로 우륵이다. 또한 우륵은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며 수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날로 기울어 가는 국운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그 음률이 하나같이 슬프고도 애잔했다.
우륵이 고향 근처 국원이란 마을에 자리를 잡고 가야금을 연주하고 곡을 만드는 데 혼신의 정열을 쏟고 있을 때였다. 진흥왕이 지방을 순시하며 돌아다니다가 우륵이 살고 있는 국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성이라는 마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남성의 수령은 진흥왕을 즐겁게 해줄 요량으로 우륵을 데려다 가야금 연주를 부탁했다. 진흥왕이 비록 적국의 왕이긴 해도 익히 그 현명하고 용맹스러운 명성을 듣고 있었기에 우륵은 제자를 데리고 순순히 진흥왕 앞에 나아가 가야금을 연주했다. 우륵의 가야금 연주에 진흥왕은 깊은 감동을 받아 후일 신라에 돌아가 청년 셋을 뽑아 우륵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보냈다.
신라 청년들을 맞이한 우륵은 우선 가야금을 앞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가야금이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느냐?" 신라 청년들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생전 처음 보는 악기를 그저 신기하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우선 가야금의 머리 쪽은 둥글게 만들어졌으니 이는 하늘을 뜻하는 것이요, 밑 부분은 평평하니 이는 땅을 이르는 것이다. 줄은 열두 줄이니 그것은 일년 열두 달을 이르는 것이다." 신라 청년들은 우륵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가야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륵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줄을 고정하는 기둥의 높이가 세 촌인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여야 그 소리가 완벽하다는 뜻이니,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가 이 가야금 속에 담겨 있느니라." 말을 마친 우륵은 고요히 신라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신라의 청년들은 일어나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 늘 명심하며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륵의 제자가 된 신라 청년들은 만덕과 법지, 계고로서 만덕은 우륵에게서 춤을 배웠고, 법지는 성악을, 계고는 기악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신라 청년들은 한자리에 모여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승 우륵이 만든 가야금 곡들이 너무 처량하고 애절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어 셋은 스승 우륵이 만든 가야금 열두 곡조 중 다섯 곡조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편곡을 하여 우륵 앞에서 연주했다. 우륵은 눈을 감고 그 연주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깊은 회한과 절망을 느꼈다. '너희의 조국 신라는 바야흐로 새 기운이 솟는 나라이니 곡조가 그렇게 신명나고 흥겨울 테지만 내 조국 대가야는 그 운명이 지는 해와도 같으니 당연히 그 곡조가 슬프고도 비통할 수밖에…….' 제자들의 연주가 모두 끝나자 우륵은 한마디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흥에 겹고 힘찬 곡조라 듣기에도 좋구나."
우륵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별이 떨어지기 직전의 꽃송이처럼 가느다랗게 떨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치 서서히 기울어가는 조국의 운명 같았다. 우륵은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으로 예전 가야금 열두 곡조를 만들 때의 광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마을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던 들판, 눈이 내린 밤이면 눈 쌓인 오두막 위로 청아한 빛을 발하며 떠오르던 달빛, 봄이면 산야를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와 철쭉, 여름날 하루 종일 강물에서 멱을 감던 벌거숭이 아이들……. 우륵은 대가야의 아름다운 사계를 떠올리며 가야금 열두 곡조를 완성했다. 그것이 비록 애잔하고 슬픈 곡조일망정 조국을 생각하는 우륵의 분신과도 같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우륵의 뒷모습은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망국의 한을 지닌 무기력하고 작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처연한 모습이었다.
득래의 예언고구려 동천왕은 혈기가 왕성하고 기상이 높고 진취적이라 30대 젊은 나이에 위나라를 침략하여 서안평을 함락시켰다. 이에 기세등등해진 동천왕은 위나라의 군사력이 별것 아니라고 여겨 전쟁을 그만둘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전쟁 준비에 전념했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대장 득래는 동천왕의 욕심이 과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왕을 알현하고 아뢰었다. "폐하! 이만하면 위나라에서도 우리 고구려의 위력을 알았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이제 전쟁을 그만두시고 백성들의 안위에 힘쓰옵소서!" 득래의 말을 들은 동천왕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겨우 서안평을 함락한 것뿐인데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오!" 득래는 다시 한 번 충심으로 아뢰었다. "폐하! 저들의 힘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저들이 서안평을 내어주었다고는 하나 언제 군사를 정비하여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하오니……." "듣기 싫소! 이제 보았더니 공은 일개 겁쟁이에 불과하구려! 물러가시오!"
동천왕은 화를 버럭 내며 큰소리로 득래를 책망했다. 득래는 더 이상 자신의 말이 왕의 욕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 즉시 관직을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를 어쩔 것인가? 왕의 지나친 욕심으로 장차 이곳 환도성에는 풀과 나무만 무성하여 이름 없는 새들만이 예전의 영화榮華를 구슬피 애도하겠구나!' 득래는 속으로 그렇게 탄식했다. 그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칩거한 채 식음을 전폐하며 오로지 나랏일을 걱정하다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그러나 동천왕은 그런 득래의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날마다 전쟁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득래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쳐들어왔다.
동천왕은 친히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관구검과 대적하러 나갔다. 동천왕은 비록 2만의 군사였지만 지형을 이용한 공격과 뛰어난 용병술로 위나라 군사들을 두 차례에 걸쳐 대파했다. 동천왕은 위나라 장수 관구검도 별것 아니라는 자만심과 두 차례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세 번째 싸움에서는 앞서 썼던 지형을 이용한 공격이나 용병술을 쓰지 않고 정공법을 써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한마디로 고구려의 대패였다. 위나라 장수 관구검은 두 차례나 패전당한 모멸감을 일시에 씻으려는 듯 파죽지세로 몰려왔고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파악한 고구려군은 동분서주하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동천왕은 도성인 환도성을 버리고 압록강 남쪽으로 달아났다. 환도성을 함락한 위나라 장수 관구검은 군사를 풀어 동천왕을 뒤쫓았다. 위나라 군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며 쫓기던 동천왕은 점차 지쳐 갔다. 위나라 군은 바로 등 뒤에까지 칼을 들이대며 쫓아온 상황이었다.
그때 동천왕을 따르던 장수 밀우가 앞에 나서 왕에게 아뢰었다. "폐하! 이대로는 적군에게 잡힐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니 제가 결사대를 만들어 적들과 교전을 벌일 터이니 그사이 어서 몸을 숨기시어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동천왕은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밀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밀우는 곧 결사대를 조직하여 말을 돌려 쫓아오는 위나라 군을 향해 돌진해 갔다. 그러나 말 그대로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밀우를 비롯한 결사대는 동천왕이 안전한 곳으로 피할 때까지 모든 있는 힘을 다해 위나라 군을 맞아 혈투를 벌였으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결사대의 목숨을 건 항전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동천왕은 밀우의 충정을 생각하여 그를 그대로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여겼다. 이에 장수 유옥구가 자처하고 나서 밀우를 구해 왔는데 유옥구의 등에 업혀 온 밀우는 피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처참한 모습이었다. 동천왕은 친히 밀우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노고를 치하했다. 다행이 밀우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 아니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위나라 군에게 쫓겨 동천왕은 다시 남옥저까지 내려갔지만 더는 갈 곳이 없었다. 동천왕은 득래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부주의함을 탓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런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동천왕이 고심하고 있을 때 장수 유유가 왕을 찾아와 말했다. "폐하!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사옵니다." 계책이라는 말에 동천왕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계책이라니……? 어서 말해 보오!" 유유는 침착한 어조로 차분하게 자신의 계책을 이야기했다. "다름 아니라 내일 날이 밝으면 소장이 적장을 찾아가 폐하께서 항복하시겠다고 거짓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마련하여 항복의 뜻으로 폐하께서 친히 보내셨다고 적장에게 전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동천왕이 눈을 빛내며 유유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저는 그 음식 속에 단도를 숨겨 두었다가 적장이 방심한 틈을 타 그 자의 목을 치겠습니다. 그러면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니 그때를 놓치지 말고 적을 치소서." 유유의 계책을 들은 동천왕은 기쁘면서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유유의 계책대로 만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적지에서 적장의 목을 벤 유유의 목숨 또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동천왕의 근심스러운 표정에서 그의 마음을 읽은 유유는 일어나 큰 절을 올린 다음 말했다."폐하! 소장의 죽음을 심려치 마옵소서. 오로지 옥체를 보존하시어 이 나라의 장래를 기약하옵소서. 소장은 그것 외에는 아무 바람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유유는 단도를 숨긴 음식을 마련하여 위나라 장수를 만났다. "우리 대왕께옵서 귀국에 항복하시겠다고 하오니 부디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나라 장수는 크게 기뻐하며 안심하고 유유를 자신의 군막으로 맞아들였다. 위나라 장수와 마주앉은 유유는 들고 온 음식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 음식은 우리 대왕께서 장군께 보내는 선물이오니 부디 맛있게 드시기를 바랍니다."위나라 장수가 항복을 받아들이며 유유가 가져온 기름진 음식을 받으려 할 때였다. 유유는 순식간에 음식에 숨겨 둔 단도를 꺼내 적장의 목을 베었다. 유유가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고구려군 진영에도 퍼졌고 이어서 유유가 죽었다는 비보도 전해졌다. 유유의 죽음으로 비분강개한 고구려 군사들은 적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위나라 군사들을 향해 창과 칼을 들었다.
동천왕은 고구려군을 선두에서 지휘하며 고군분투한 끝에 가까스로 위나라 군사들을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러나 환도성으로 돌아가기에는 남아 있는 군사 수가 너무 적어 동천왕은 눈물을 삼키며 환도성을 버리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환도성을 함락한 위나라 군사들은 마음껏 노략질을 하다가 동천왕이 환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이를 크게 비웃으며 되돌아갔다. 득래의 예언대로 결국 고구려 환도성에는 풀과 나무만이 무성하게 자랐고 가끔 이름 모를 새들만이 그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듯 구슬프게 울 뿐이었다. 결국 동천왕은 그 이듬해에 평양성으로 천도하여 환도성은 역사 속에 옛 영화를 묻고 말았다.
추남 장군 강감찬강감찬이 한성 판관으로 있던 때였다. 부경이라는 곳에 호랑이가 많아 백성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부윤이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 강감찬을 찾아왔다. "호랑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를 막지 못하니 큰일입니다." 그런데 강감찬은 그의 말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깟 호랑이를 가지고 그렇게 염려하십니까? 별 문제 아닙니다." 부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강감찬의 말에 약이 올랐다. "아니 호랑이 정도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호랑이는 워낙 사나워 잡지도 못하는 데다 한두 마리 잡아 보았자 어디 표시가 납니까? 백성들이 호랑이 때문에 일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강감찬은 다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면 되는 것 아니겠소? 내가 사흘 안으로 그 호랑이를 쫓아버릴 테니 사흘 뒤 다시 찾아오시지요." 부윤은 강감찬의 말에 혀를 끌끌 찼다. '실없는 사람 같으니……. 실컷 말한 내 입만 아프게 되었구나.' 부윤은 강감찬을 허풍이나 떠는 사람으로 여기며 돌아갔다.
다음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강감찬의 명을 받은 관리가 투덜거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밤 부윤이 돌아간 후 강감찬은 관리를 불러 서찰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 서찰을 가지고……." 강감찬의 명령은 내일 이른 새벽 바위산에 오르면 늙은 중이 바위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니 서찰을 그 노승에게 전하라는 것이었다. 날은 꽤나 쌀쌀해 그 기운이 볼에 닿기만 하여도 볼이 싸늘하게 얼었다. 밤새 내린 서리는 산과 들의 흰 들국화처럼 하얗게 피어 있었다. 관리는 계속 투덜거리며 바위산을 올라갔다. '도대체 이 새벽에 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관리가 바위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무렵 주위의 다른 암석들보다 훨씬 크고 높은 바위 위에 누더기를 걸치고 흰 수건을 둘러쓴 한 노승이 앉아 있었다. 노승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관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도 천천히 노승에게 다가가 강감찬이 써준 서찰을 내밀었다. 노승은 말없이 서찰을 읽어내려 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관리의 뒤를 따라 바위산을 내려왔다. 그나마 조금씩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동쪽 하늘에 퍼지기 시작할 즈음 관가에 도착한 관리는 노승을 강감찬의 방으로 인도했다. 그 자리에는 어제 혀를 차며 돌아갔던 부윤도 함께 있었다.
늙은 중은 강감찬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고, 절이 끝나자마자 강감찬은 호되게 노승을 꾸짖었다. "너는 짐승 중에서도 영특한 짐승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영특함을 올바로 쓰지 못하고 왜 사람을 해치느냐? 당장 무리를 이끌고 이곳에서 멀리 떠나도록 하라. 만일 그렇지 않을 시에는 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닷새의 시간을 주겠다. 알겠느냐?" 그 말을 듣고 있던 부윤은 기가 찼다. "판관이 말씀하시는 말투는 마치 호랑이에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호랑이가 아니고 늙은 중이잖습니까? 자꾸 이상한 말씀만 하시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자 강감찬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늙은 중을 향해 이렇게 호령했다. "네 본색을 드러내거라. 어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늙은 중은 어흥, 소리를 내며 큰 호랑이로 변했다. 호랑이는 마루로 뛰어나가 계속 울어댔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둥소리와 맞먹을 정도였다. 부윤은 그만 정신이 나가 방바닥에 얼굴을 쳐박고 와들와들 떨었다. "이제 그만하거라." 강감찬이 점잖게 타이르자 호랑이는 이내 늙은 중의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강감찬에게 큰절을 하더니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날로부터 닷새가 채 되지 않아 사람들은 한 마리의 늙은 호랑이가 수십 마리의 작은 호랑이들을 이끌고 한성의 동쪽 산길에 잇는 냇가를 건너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았다.
강감찬이 행영 도통사로 있을 때였다. 거란족의 소손녕이 수십만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강감찬은 부원수 강민첨과 더불어 군사 20만 8천여 명을 앞세워 맞서 싸우게 되었다. 강감찬은 홍화진에 군대가 당도했을 때 행군을 멈추고 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군사들 중에서 말을 잘 타는 자들만 선출해 보아라." 그리하여 각 부대에서 뽑힌 군사는 1만 2천여 명이 되었다. 강감찬은 그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건너편 숲에 숨어 있어라. 단 말 울음소리 하나라도 새어 나와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그런 다음 강감찬은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진지에 있는 쇠가죽을 몽땅 한 곳에 모아라!" 군사들은 그 명령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쇠가죽은 전쟁에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군사들은 영문을 몰라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쇠가죽을 모아들였는데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강감찬은 다시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이 쇠가죽을 단단한 밧줄로 길게 엮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