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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이역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한국의 간이역

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09년 6월 / 368쪽 / 17,000원



춘포역



'추억의 간이역' 대 '일제강점기 표준설계'


기차역은 1910년 한일병합 이전부터 지어졌으며 병합 이후에는 다양한 규모와 건축양식의 역사(驛舍)가 가속도를 내며 들어서기 시작했다. 병합 이전의 기차역 건설은 겉으로는 건설권을 불하받거나 공동사업 형식을 띠었다. 이미 이때부터 일제는 한반도의 철도산업을 수탈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간이역'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기차역도 수탈에서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간이역에는 '표준설계'라고 부르는 일정한 공통 형식이 있었다. 건축 공사를 쉽게 하고 사용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표준 내용을 정해서 반복 건축한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 전역의 시골에 지었던 수백 채의 간이역은 모두 이 표준설계를 따랐다. 해방이 되어 1960년대가 될 때까지 이 양식은 변하지 않았다.

표준설계는 제일 기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그 설명부터 간단히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구조는 겉에서 보면 콘크리트 같지만 목조가 대부분이다. 나무로 골조를 세운 뒤 그 위에 철망을 치고 다시 기름종이를 바른 다음 흙으로 1차 마감을 하고 마지막으로 도장(塗裝)을 하는 형식이다. 그 속에 맞이방(대합실), 매표소, 역무실, 숙직실, 차양 등을 기본 기능으로 갖추었다. 건물 본체는 직사각형을 기본 형태로 갖는 단순한 형태이며, 차로 쪽은 돌출부 없이 평평하게 가는 것이 보통이고 역무실이 철로 쪽으로 몇 미터 정도 돌출하는 경우가 많다. 지붕은 박공경사지붕(지붕 끝을 삼각형 모양으로 정리한 경사진 지붕)인데 맞이방과 역무실은 주 지붕과 직각 방향으로 박공을 따로 냈다. 하늘에서 지붕을 내려다보면 십자가 형태이다. 따로 낸 박공에는 역명이 들어간 간판을 걸었고, 맞이방 앞 대기공간에는 긴 차양을 냈다. 맞이방 출입문과 역무실 돌출부 창에는 일자 차양이 났다. 이 정도면 간이역에 대한 건축학적인 설명은 아쉬운 대로 다한 셈이다.

1914년 춘포, 수직 비례와 식민성의 시작

1910년대 중후반 익산ㆍ군산 일대는 간이역의 탄생지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간이역의 표준설계는 익산의 춘포역과 군산의 임피역 두 곳에서 완성되었다. 먼저 춘포역의 건축적 구성부터 살펴보자. 춘포역의 전체 구성은 앞뒤 면이 다르다. 어디를 앞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기 때문에 앞뒤라는 말 대신 차로 쪽 면과 철로 쪽 면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차로 쪽은 들고남 없이 평평하다. 큰 육면체의 본체에 박공지붕을 얹은 것이 전부로 매우 단순한 구성이다. 최초의 역이라 분화가 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데 수직 비례이다. 수직 비례, 혹은 그 짝과 함께 생각하는 수직ㆍ수평 비례 문제는 해방 이후까지 계속된 40여 개의 간이역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건축적 주제인데, 이곳 춘포역에서 수직 비례가 먼저 나타난 것이다. 간이역에서 수직ㆍ수평 비례는 중요한 조형적 기준이다. 다분히 건축적인 내용일 수 있으나 좀 더 일반적인 감성으로 치환할 수도 있다. 수직 비례는 일본답거나 서양다운 조형성인 반면 수평선은 한국답다. 물론 이런 이분법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수직 비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수직성 반대편에 있는 수평성이 한국다운 조형미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간이역에 나타나는 수직성은 단독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는 조형 요소이다. 그 짝인 수평성과 함께 생각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수평성이 상징하는 한국다움을 개입시킬 수 있다. 수직성을 추구한 것이 단순히 서양식 건물을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 이상의 목적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한국다움을 누르거나 죽이려는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농촌 지역을 제압하려는 목적'도 크게 보면 이것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춘포역에 나타난 것과 같은 수직 비례는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는 흔하지 않은 낯섦이다. 당시 이런 시골구석에서는 분명 처음 보는 이질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역사성이 아니다. 향후 전개될 식민지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예견하는 역사성을 갖는다. 그렇다고 지금 150층 광풍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일제의 수직선 인식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수평선이 수직선에 당했다는 패배의식을 만회하기 위해 우리도 가일층 수직선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의도는 '애국심'이다. 우리도 빨리 근대화를 이루어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애국심이다. 수직선 자체가 나쁘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인간의 조형 환경, 특히 근대사회에서는 수직선이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문제는 방향과 정도이다.

어울림과 변화무쌍, 한국다운 건축미

자체의 어울림이 뛰어난 춘포역. 하물며 그 위에 이렇게 예쁜 차양을 내고 구조미학을 뽐내며 어울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장면이 다른 역에는 없다. 가히 춘포역만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만한데, 근대 간이역에 한국다운 건축미가 스며들어간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래쪽 출입문이 어울리다 보니 그 위의 차양도 함께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구조미학 자체도 아름다울뿐더러 차양 두 장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은 한옥의 채 구성이나 창 배치 등에서 관찰되는 한국다운 어울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춘포역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 지점의 매력은 결국 두 개의 문과 그 위 두 장의 차양, 즉 네 개의 요소가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다.

차양의 어울림은 아래쪽 출입문의 어울림을 보강해준다. 서로 직각으로 마주하다 보니 마치 동기 간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지지부재는 지지부재끼리, 상판은 또 상판끼리 좋은 짝을 이룬다. 망치머리 같은 지지부재의 끄트머리가 어울리는 장면이 특히 재미있다.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먹끼리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상판이 어울리는 장면은 모자챙을 들어 보이며 서로 웃는 것 같다. 의인화가 넘쳐나며 모두 어울림을 지향하는 관계이다. 그 출처는 '정(情)'이다. 정 문화는 한국다운 정서의 으뜸으로 부모, 형제, 친구, 사제, 상사와 부하 등 모든 인간관계에 대입할 수 있다. 건축, 미술, 요리 등 장르와 분야를 뛰어넘어 제일 밑바탕에 깔린 사람에 관한 기본 인식이라는 뜻이다. 정이 제일 잘 드러날 수 있는 건물 종류는 주택인데, 그중에서도 한옥은 특히 그렇다. 곳곳에 의인화를 통해 사람 사이의 정을 건축으로 표현한다. 그 흔적이 시간을 뛰어넘어 이곳 춘포역의 철로 쪽 역무실 돌출부의 출입구와 차양에까지 남아있다.

생각 고르기 - 근대 간이역의 역사적 의미



서정성 대 식민 역사


해방 이후에도 간이역은 1960년대까지 수십 채가 지어졌다. 표준설계를 잘 따른 역들도 많으나 지역에 따라 특징들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등록문화재 간이역을 기준으로 분류한 한국형, 산간형, 도심형, 바닷가형은 대표적 예이다. 아픈 역사를 많이 담고 있어서 역사성이 심각한 건물이지만, 이제는 서정성의 대상이 되었다. 간이역은 언뜻 보면 일본식 주택 같기도 하고 서양식 교외 주택 같기도 하며, 꼼꼼히 뜯어보면 한옥 같은 한국다움이 스며있다. 이렇게 여러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보니 간이역이 온전히 지켜지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다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식 주택과 서양식 교외 주택과 같은 외국 양식과 섞여서 나타난 한국다움은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지기가 힘들었다. 한국적인 것만 추출해내자니 한옥 같은 원형 문화재가 있고, 그렇다고 혼혈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민족적 감정이나 자부심과 맞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 일제의 표준설계에 따라 기차역을 세운 것은 미처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기차역은 '새마을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경제성에 모든 것이 맞추어진 단조로운 콘크리트 박스형 건물이었다. 이후 근대 간이역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갔다.

현재 간이역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들이 덧씌워져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간이역에 담긴 아픈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 일제강점기 자체에 대해 무딘 우리의 국민성일 수도 있고, 건물 규모가 작고 파급효과가 작은 시골 역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아무도 나서서 정확하게 지적을 하지 않아서 생긴 무지의 소치이거나 서정성이 너무 강해 아픈 역사를 가린 것일 수도 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농담 아닌 진담이 통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간이역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간이역에 대한 태도는 양면적이다. 간이역에 서린 아픈 역사를 지우고 순수 조형적 관점에서 보면 서정성이 강한 건물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범상치 않은 역사성을 갖는 건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순수 조형적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재 지정 및 수리, 보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지금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간이역에 담긴 서정성을 감상하자는 것도 아니고 문화재 지정에 대해 토론하자는 것도 아니다. 간이역의 역사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이것을 건축적 관점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원창역, 율촌역



표준설계의 확산과 분화, 근대 간이역의 4가지 유형


일제는 한일병합 이전부터 '일본 한반도 중국과 러시아 대륙'을 하나로 이어주는 간선 노선들을 건설했다. 병합이 되자 일제는 '한반도 경영'이라는 명분 아래 각 지역까지 파고드는 여러 지선 노선들을 차례로 부설했다. 21개 등록문화재 간이역을 기준으로 보면 경부선에 심천역, 경의선에 일산역과 신촌역, 중앙선에 팔당역, 구둔역, 반곡역, 동해남부선에 송정역과 남창역, 전라선에 춘포역과 율촌역, 곡성역, 경전선에 남평역과 원창역, 철암선(영동선)에 도경리역, 경춘선에 화랑대역, 대구선에 동촌역, 진해선에 진해역, 군산선에 임피역, 가은선에 가은역, 장항선에 청소역, 문경선에 불정역이 각각 위치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이름의 노선들이 건설되었는데 주요 목적은 물자 수탈과 한반도 식민경영이었으며 여기에 관광주의가 가세했다. 물자 수탈은 당연히 곡물과 지하자원이 중심이었으며 대동아전쟁이 일어나자 여러 군수물자도 중요 품목이 되었다. 제일 먼저 일제는 호남의 곡창지대와 서해안의 항구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을 건설했고, 강원도와 충북 일대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산간 철도를 건설했다. 한반도 전역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확장했는데, 한반도 전역을 수탈 대상으로 삼으면서 각 지역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식민통치를 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으로 확장된 노선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의 목적도 함께 가졌다. 근대 간이역은 이런 일제 철도건설의 주요 거점들이었다.

이런 역들에서는 '춘포 임피' 양식에서 완성된 표준설계가 말 그대로 표준적으로 반복, 사용되었다. 표준설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형이 함께 일어났다. 변형 내용에 따라 몇 가지 경향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각 경향의 기본 특징들은 노선별로 나타나기보다는 지역별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지역이란 특정 도시나 읍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도심, 농촌, 바닷가, 산간 등 지리적 상황을 말한다. 이에 따라 1920년대 이후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간이역을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국형으로 원창역, 율촌역, 가은역, 일산역, 팔당역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형이라 함은 말 그대로 표준설계에 한국다운 특징을 크게 가미했다는 뜻이다. 둘째, 산간형으로 도경리역, 심천역, 반곡역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 역은 강원도와 충청북도 산간 지역에 위치한다. 건축적으로 보면 수직선이 두드러진다. 표준설계의 기본 내용이 제일 잘 지켜진 점도 공통점이다. 셋째, 도심형으로 신촌역, 화랑대역, 동촌역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역들의 위치는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도심 외곽이었으나 건축적으로 보면 큰 머리 하나를 갖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큰 머리형 혹은 일두형(一頭形)이라 부를 수 있는데, 머리가 유난히 큰 이런 형태는 도심에서 눈길을 끌기에 적합하다. 넷째, 바닷가형으로 진해역, 남창역, 송정역이 여기에 속한다. 바닷가에 위치해서인지 흥겨운 분위기로 변형된 점이 공통적 특징이다. 이 유형 역시 한국다움이나 도심형 등 다른 특징이 섞여 나타난다. 표준설계에 대한 의무감이 상대적으로 약한 탓으로 볼 수 있다.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한국형 간이역

원창역과 율촌역은 전라도 남해안 역을 대표한다.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하자면 두 역에서는 한국적 특징이 많이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한국형의 원천이다. 일본다움이 약하다고 해도 표준설계를 기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지붕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붕 형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답다. 실제로 이어 붙인 형상이나 아래쪽 몸통을 보면 지붕도 상당히 한국답다. 원창역과 율촌역에서는 일단 전체 구성이 매우 느슨해졌다. 춘포역과 임피역은 짜임새가 있고 본체의 중심이 확실하며 들고남이 적다. 육면체의 기하학적 윤곽을 정형적으로 확실하게 잡았다는 뜻이다. 원창역과 율촌역에 오면 이것이 거의 깨진다. 제일 먼저 비례가 수평적으로 바뀐다. 춘포역과 임피역의 꼿꼿하던 자세 대신 옆으로 퍼져 나가는 구성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팔다리가 따로 놀거나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다. 혹은 유기적이라 할 수도 있다. '유기적'이라는 말 속에는 두 역의 구성이 타이트하거나 가지런하지 않다는 뜻도 들어있지만, 동시에 이런 구성이 제멋대로 생겨서 엉성하고 미완성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이유와 목적 아래 생겨난 것이라는 뜻도 들어있다. 한마디로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한국 농가를 닮아서 상대적이고 편안한 '원창 율촌'양식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유추적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기능 유형에 대한 유추인데 원창역과 율촌역은 한국의 농가를 닮았다. 춘포역과 임피역이 기차역다운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춘포역과 임피역의 짜임새 있고 정리된 모습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되는 공공건물에 요구되는 객관적 특징의 산물이다. 기차역을 처음부터 기차역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창역과 율촌역은 많이 다르다. 간판 떼고 차양 떼고 보면 영락없는 시골 농가이다. 앞서 말한 '옆으로 퍼져나가는 구성'과 '유기적 특징' 등이 이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너무 농가처럼 생겨서 처음에 두 역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반쯤 덤불 속에 묻혀있는 원창역을 보고 그냥 농가려니 하고 지나쳤을 정도였다. 차마 이 건물이 기차역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둘째, 민족적 분위기로 볼 때 춘포역과 임피역이 일본답다면 원창역과 율촌역은 한국답다. 춘포역과 임피역은 들고남의 정도를 잘 조절했으며 부재들의 맞물림도 명확해서 기합이 잘 들어간 군인을 보는 것 같다. 반면 원창역과 율촌역은 한국답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한 게 제일 좋다는 한국다운 철학이 묻어난다. 소박하고 재래적이지만 정이 간다. 일면 무질서해 보이고 사전계획 없이 현장에서 끌리는 대로 지은 것 같아 보이지만, 각자 원하는 바를 존중하고 그에 따라 취하고 싶은 자세를 취하도록 놔둔다. 한국다운 주관주의 혹은 상대주의이다.

한국다움 대 일본다움, 가깝지만 너무 다른 두 나라

셋째, 춘포역과 임피역은 일본식 근대 간이역의 표준 유형인 반면, 원창역과 율촌역은 한국식 농가를 모티브로 차용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로써 1910년대 '춘포 임피 양식'은 기능주의적 서구 기차역 유형, 1930년대 '원창 율촌 양식'은 한국다운 농가 유형으로 대비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문화의 흐름이란 항시 양면적인 것이어서 이 과정에서 크진 않지만 일본이 한반도에 동화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원창역과 율촌역에 나타난 한국다움은 일본식 표준설계인 춘포역과 임피역이 한반도의 시골 분위기에 동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형 상태에 대해서는 양면적 해석이 가능하다. 원형 양식의 순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성도가 훼손당하는 변질 단계에 해당된다. 표준설계가 처음 완성될 때에는 규범과 형식이 잘 지켜지는데 이것이 다음 단계에서 응용될 때에는 자유로운 재해석과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양식사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반면 표준설계가 다양성을 포괄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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