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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초상

장 폴 사르트르 지음 | 생각의나무
시대의 초상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생각의나무 / 2009년 6월 / 519쪽 / 28,000원



미지인의 초상: <나탈리 사로트의 『미지인의 초상』(갈리마르, 1957)에 붙인 서문>


우리 시대 문학의 가장 독특한 면모 중 하나는 누보로망(반(反)소설)의 작품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책들이 소설 장르에 반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보로망은 소설의 외양과 윤곽을 간직하고 있으나 소설이 세워지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우리의 눈앞에서 소설을 파괴한다. 이는 우리가 사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소설이 소설 자체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나탈리 사로트(1900~1999)의 『미지인의 초상』은 이렇듯 소설 자체를 반성하는 소설, 즉 앙티로망(anti-roman)의 기치에 곧바로 연결되는 소설로, 탐정소설처럼 읽히는 반소설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풋내기 형사 같은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 형사는 늙은 아버지와 과년한 딸이라는 평범한 한 쌍의 인물들의 뒤를 밟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 부녀가 어떤 사람들인지 결코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탐색을 포기하게 된다.

나탈리 사로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인간심리의 미세한 움직임을 그려내는 새로운 인간묘사법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딱정벌레'의 딱딱한 껍질에 부딪쳐가며 그 '속'을 어렴풋이 예감할 뿐 결코 만지지는 못한 채 영혼을 조사해가는 형사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꾼의 성실성을 지켜내려고 애를 쓴다. 그녀는 인물들을 안으로부터도 바깥으로부터도 포착하려 들지 않는데,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나 타인들에 대해서나 전적으로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현존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개별성을 벗겨내고 보편적인 것의 불분명함 속에서 사회적인 동조에 가담한다. 사람들의 내부에 시선을 한번 던져 보면 수많은 도피들이 우글거리는 걸 엿보게 된다. 보편적인 것으로의 도피, 일상적인 관심사들 속으로의 도피, 치사스러운 것으로의 도피가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객설'이고 '사람들'이며, 단적으로 말해서 비진성성이 지배하는 곳이다. 아마도 수많은 작가들이 비진정성의 벽을 스쳐지나갔을 테지만, 고의적으로 그것을 책의 주제로 삼았던 작가는 없었다. 하지만 사로트는 우리에게 비진정성의 벽을 보여준다.

나탈리 사로트는 우리들 내면세계에 대한 원형질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책에서 외연을 구성하고 있는 상투성의 돌멩이를 치워내면 머뭇거리며 꿈틀거리는 아메바의 운동들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어휘는 이 끈적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엘릭시르(시럽)의 느릿한 꿈틀거림을 암시한다. 즉 그녀의 작품에서 의례적으로 상투어들을 주고받는 대화는 '물밑대화'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두려운 공포들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 말하고, 무엇인가 폭발하고, 갑자기 영혼의 암울한 바닥이 비추어지고 각자는 자기 영혼의 꿈틀거리는 진창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위협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시 평온하게 상투적인 말들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따금 상투어들이 무너져 내리면 다시 원형질의 끔찍한 알몸이 드러난다. 나탈리 사로트는 이렇듯 인간이 지닌 속성, 즉 개별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물컹한 왕복을 그려낸다. 그녀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문체는, 심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인간적 현실에, 그 실존 자체에 다다르게 해주는 기법이다.

쥐와 인간:<앙드레 고르(Andr Gorz, 1923~2007)의 『배반자』(1958, 쇠이유 출판사)에 붙인 서문>문학에서의 즐거움은 예술가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일이다. 주인공은 우리의 삶을 살고, 그를 둘러싼 위험들은 우리의 것이다. 오만한 최종 마무리인 그 위대한 문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죽음이다. 문체는 우리의 저항을 짓누르는 망치이며 우리의 추론을 분열시키는 검이다. 거기에서 수사(修辭)는 공포를 자행한다. 분노한 광인(작가)은 언어를 복종시키고, 사슬에 묶어 학대한다.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고르의 『배반자』는 이러한 문학적 기획의 바로 밑에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곳에 위치하려 한다. 그러니까 수사는 전혀 없다. 다만 목소리가 있고, 그것이 전부이다.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어떤 의미를 주기 위한 목소리, 혹은 아마도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그런 목소리이다. 거기서 말의 대상이 되는 그 사람은 말하는 그 사람이다. 요컨대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잠자고 일하는 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자신의 눈에 타자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자기가 있다.

『배반자』는 앙드레 고르의 자전적 에세이 형식의 글로, 자신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지식인의 근본적 시도를 보여준다. 고르는 자기 안에서 더 이상 다중성을 견딜 수 없었던 그 배반자를 발견하고, 자기 대신 '나'라고 말하는 그 틈입자의 행위를 더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는 프랑크 로빈슨의 공상과학소설 『미로』가 주는 암시와 통한다. 『미로』에는 금성에 착륙한 사람들이 나온다. 이 미래의 식민통치자들은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금성인들을 쫓아낸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보이지 않은 금성인들의 지력테스트에 굴복하고 만다. 즉 그들은 실험자들의 시선 아래서 모르모트가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조건이다.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의 금성인들이며 우리 자신의 모르모트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시선 아래서 너무나 큰 미로의 복도를 통해 달아나는 모르모트와 같다. 이 서문을 쓰고 있는 저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역시 타자이다. 타자는 내 말과 생각들을 빨아들여 그로부터 조금은 낡아빠진 은총들을 나의 땅딸막한 손끝으로 끌어낸다. 내가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그는 계속 남아 있으며, 나는 그의 희생자이고 공모자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배반자는 머리에 말들이 가득한 사람, 모든 것을 분석하고 언제나 '왜'와 '어떻게'를 알고자 하는 비판적이고 파괴적인 정신을 가진 자, 요컨대 더러운 지식인이다. 나는 이런 그를 부정할 생각이 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내 맘에 든다. 나 역시 그런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고르의 지성은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철학서를 쓰려고 기획했을 때 모델도 없는 어떤 초상화에 새로운 터치를 가하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 초상화는 다름 아닌 자기의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고르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킨 '콤플렉스들'의 출현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머니가 체험했던 고립, 그녀와 결혼했던 그 유태인에 대한 고립, 말할 줄 알던 때부터 복종해야 했던 엄격한 훈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에 의해서 '그'라고 불리는 타자가 된다. 그리고 역할을 부여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유태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자본지주가 된다. 고르는 어머니에 의해 타자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지독한 '콤플렉스들'이 영속하게 되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콤플렉스들을 부양하고 애지중지했다는 것, 그것들을 보살피고 살찌웠다는 것, 청년기와 성인이 되어 그것을 다시 취하고 풍요롭게 해왔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다면 그가 이 모든 것의 책임자일 것이다. 그는 벌거숭이 왕을 보았던 안데르센 동화의 아이처럼, 배반자가 된다. 그는 우리의 철학적 유산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다가 텅 빈 상자들을 발견해버린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도, 즉 자신의 경우를 성찰함으로써 방법론을 고안해 가는 이 노력이 오늘날 우리에게 급진적인 한 권의 책을 읽을 기회를 부여한다.

카뮈에게 보내는 답장

알버트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알제리 태생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빈곤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여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고, 점차 인간과 사상에 대한 여러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사르트르와의 친교관계로도 주목받았는데, 두 사람은 20세기 프랑스 문학, 나아가 실존주의로 대변되는 세계 문학사의 한자리를 점유하게 된다. 두 사람은 카뮈가 지하잡지 《콩바》를 창간하고 레지스탕스 공동전선을 향하면서 의기투합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 한동안 두 사람은 든든한 동반자 관계를 지속했으나 공산주의와 소련의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서게 된다. 1951년에 간행된 『반항적 인간』에서 카뮈는 소련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언급하면서 공산주의혁명을 일종의 도덕적 반항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듯 기존의 혁명적 운동세력과의 분명한 노선차이를 드러낸 카뮈의 논지에 《현대》편집인은 대응을 고려했고 거센 비난조의 서평을 싣게 된다. 이에 카뮈는 정작 서평을 쓴 장송에게가 아니라, 그때까지 동지로 지내던 사르트르를 향한 격렬한 비난의 반문을 발표하게 된다. 「카뮈에게 보내는 답장」은 바로 이 반박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쓰여 진 글이다.

《현대》82호. (1952년 8월)

친애하는 카뮈에게. …당신은 십년을 알고 지낸 나를 '편집주간님'이라고 호칭하면서 논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장송을 혼동하는 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비난은 《현대》가 포로수용소의 실존을 프랑스 전체에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당신처럼 수용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부르주아 언론'이 연일 그것을 이용하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반공주의자들에게 촉발했던 유일한 감정은 희열입니다. 그들은 '좌파'로 남아 있던 모든 평범한 자들을 위협하고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몇몇 비리에 대해 항의한다면, "그러면 수용소는?"이라고 되물으며 그 당장에 우리의 입을 닫아버릴 것입니다. 카뮈 씨, 진정으로 당신이 어떤 민중운동이 폭도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대책 없이 그 운동을 단죄하는 일부터 해서는 안 됩니다.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권리를 얻어내려면 우선 그들의 싸움에 가담해야 합니다. 기투(企投, 사르트의 인간존재론의 핵심적 용어로,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실존적 삶의 방식)는 우리를 밝혀주며 우리의 기투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1945년이었지요. 우리는 『이방인』의 작가 카뮈를 발견했듯이 저항운동가 카뮈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시대의 갈등을 요약하고 그것을 겪어내는 열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전진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당신을 좋아했는지요. 하지만 역사의 풋내기였던 우리는 1940년의 전쟁이 앞서 일어났던 전쟁보다 더도 덜도 아닌 역사성의 한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역사를 감내했습니다. 연합국 승리의 의미에서 '우리들 중 몇몇이 잘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줄 쓸모만 가진 두세 가지의 획득'을 보았지요. 그런데도 당신의 저항이 중요성을 가지게 된 것은 단지 모호한 군중이 그러한 진실을 당신에게서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독일인에 대한 공동투쟁, 즉 그 흔치 않은 일체감이 전쟁을 낡고 가치 없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투쟁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사실을 감추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천만 프랑스인에 대한 한 사람의 특권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루 종일 자신의 몸을 도둑맞은 후에 자신의 몸을 되찾을 때 느끼는 것은 엄청난 비참함일 뿐입니다. 당신은 억압받은 계급들이 투쟁을 재개했을 때도 단결을 고집스레 시위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동안 모범적 현실이었던 것이 이상에 대한 완벽하게 헛된 긍정이 되었지요.

당신에게 가장 불쾌한 불의로 보였던 것은 이 모든 것이 당신은 변화하지 않은 채 당신의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최후의 모히칸처럼 인간 곁에 있긴 하지만 줄 밖에 서 있습니다. 1944년에는 미래였던 그 개성이 1952년에는 과거가 되고, 당신에게는 추억들과 점점 더 추상적인 언어가 남아 있습니다. 발가락을 물에 담가보면서 '물 뜨거워?'라고 물어보는 어린애처럼 당신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처럼 당신에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역사란 자신의 공적을 뒤따라가는 인간의 활동일 뿐이다.' 역사의 이해가 주어지는 것은 바로 역사적 행동 안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당신이 내 글에 답하고 싶다면 우리 잡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응수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침묵으로 이 논쟁이 잊혀지기를 바랍니다.

이 논쟁 이후 사르트르와 카뮈는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된다. 이후 1957년,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받고,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던 1960년 그만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카뮈가 세상을 떠나자 사르트르는 짧지만 아름다운 추도사로 두 사람 사이의 회복되지 못한 우정을 기리며 애도를 표한다. 그는 추도사에서 카뮈라는 인간 자체가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던 하나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카뮈의 초기 작품들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멈춰버린 삶조차도 깨진 디스크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삶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 잘려진 작품을 전체적인 작품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그는, 카뮈의 작품과 삶에서 매 순간 미래의 죽음에 기대어 자신의 실존을 획득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순수하고 승리에 찬 시도를 알아봐야 한다고 썼다.

다시 우리 앞에 선 니장: <폴 니장(Paul Nizan, 1905~1940)의 『아덴 아라비아』에 붙인 서문>1920년부터 1930년 사이, 즉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던 시절까지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는 동갑내기였고, 철학교수 자격시험도 함께 통과했다. 우리는 파리의 인파들을 관통하며, 걷고, 이야기하고, 모든 대학생들이 만들어내던 우리의 언어를 개발해내곤 했다. 그는 내게 초인이 되자고 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야망, 심한 변덕, 하얗게 질린 부드러운 분노, 나는 이 차분하고 신의 없고 매력적인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의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에콜노르말(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그는 같은 방을 쓰면서도 몇 달이고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또 2학년 때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술에 취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더 집착하지 않고 아덴으로 떠났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이듬해 어느 한밤중이었다. 그는 음울했고, 나는 여자 친구의 배신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되찾은 일체감에 기뻐하며 술을 마시고 세상을 재판하러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에 불과했다. 나의 분노란 비누거품이었을 뿐이고 그의 분노는 진정한 것이었다. 다음날로 그는 도망쳤다. 그는 공산당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철학을 가르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나는 르아브르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는 공산당을 지지했지만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청년기 친구로, 그가 꽤 좋아하던 프티부르주아 친구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의 고뇌를 그저 괴벽이라고 생각했다. 왜 내가 그를 이해하지 않았을까? 신호들이 없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치기어린 행동'의 이면에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환자의 초조함이 있었다. 그가 내게 초인이 되자는 이상한 제안을 했던 것도 조건을 벗어날 막연한 필요성이 그를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그 조건이란 다름 아닌 부친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회사의 노동자에서 기술자가 되고 책임자가 된 프티부르주아였다. 아버지는 프롤레타리아를 배반하고 부르주아지가 되었으며 가족과 회사를 위해 15년을 별 자의식 없이 살았다. 하지만 항상 언젠가는 자기 실력을 진정한 투쟁에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퇴할 무렵 진짜의 자기 모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방황을 시작한다. 그는 매일 밤 사라졌다가 새벽녘에 들어와서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고 되뇌었다. 그가 사라지면 그의 아내는 아들을 깨우면서 "이번엔 분명히 자살했을 거야"라고 말한다. 죽음은 이렇게 어린 아들의 내부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미리 다가온 죽음, 그것이 도둑맞은 니장의 삶의 의미이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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