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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지음 | 생각의나무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지음

생각의나무 / 2009년 6월 / 195쪽 / 11,000원



머리말




나는 이번 책에서 민족의 정의, 민족주의의 기원과 등장배경, 그것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간의 충돌을 해부하며,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유효한 이론적 · 현실적 틀인지를 검토해보려 했다. 또한 민족이 다른 중요한 사회적 범주를 압도하며 민족주의가 진보적 세계주의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지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나로서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신화를 넘어서 그것과 관련된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진보적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유효성의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장 '우리', 민족, 민족주의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정의하거나 그 유효성을 따지는 것은 매우 논쟁적이며 지난한 일이다. 논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민족, 민족주의의 불완전한 정의에 대한 논란들은 유익하지 못한 공론이 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에 대한 정의의 문제와 논쟁을 따져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대체로 현실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채, 즉 사실과 신화를 구분하지 않은 채 사용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다수는 민족을 (초)역사적이고 본질이 있는 개념으로, 고조선에서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존재해온 실체로 인식한다. 고등학교 국사를 인용해보자.

우리 민족은 반만 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민족이 반만 년 전부터 존재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영속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민족에게는 본질적 특성이 있고 그것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 즉 같은 혈통, 언어, 관습, 문화, 역사, 조상 등을 공유한 집단이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은 같은 과거가 있고 같은 현재 속에서 살고 있고 미래의 방향에 따라서 삶이 공동적으로 좌우되는 '운명공동체'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일까? 코리아반도 거주민의 종족적 통일성은 아무리 빨라도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성리학 보급으로 인한 지방엘리트들의 교육 · 가치관 · 생활양식의 동질화와 임진왜란 같은 우리 모두에게 가해진 처참한 공동의 역사적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민족'은 조선시대 말과 일제시대 초기에 생겨난 개념이며 의식이다. 조선 말 신분제 폐지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저항적 집단의식의 발흥이 비로소 노비, 상민, 양반을 '조선인'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다수는 고조선 및 삼국시대를 '우리' 역사의 기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삼국시대의 경우 삼국이 공동의 운명체이거나 통치체제였다는 인식에는 사실 별다른 근거가 없다. 당시에 백제에게는 신라가 '한 핏줄'이 아니라 당나라와 같은 '외세'였을 뿐이다. 만약 백제가 살아남아서 '백제민국'이 되었다면 한국인들은 오늘날 충청도 일대의 지역을 '외국'으로 인식하고 충청도 사람들을 '다른' 민족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외국어'로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의 우연과 현재의 관점을 과거로 투사하는 국사 교육 및 비교적 일관된 통치체의 지리적 경계, 특히 고려 및 조선의 국경 덕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삼국을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인식하게 되었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용도 불확실하고 사실에 어긋난다. 사실 '단일'을 이룬 것은 근대 초엽부터 분단까지의 짧은 시간대에만 한정된다. 혈통을 따지더라도 일본, 중국, 거란, 여진, 말갈, 심지어 아랍계 등의 피가 섞여 있다. 몽고족과의 혼혈, '왜인'과의 혼혈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화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함경도에는 재가승인 여진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생활풍습이 '우리'와 많이 다른 집단이었다. 또한 고려시대에 황해도에는 무역에 종사하는 아랍인들의 거주지역이 있었으며 그들 중 일부는 고려 여성들과 '국제' 결혼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1만 명이 넘는 거란인들이 고려에 거주했다. 고구려 역사의 주체 중에는 말갈, 거란, 여진족들이 있었지만 한국사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는 것은 영토순결주의에 가까운 발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에서 '이민족의 흔적'을 삭제하고 부정하려는 근대 민족주의의 결과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이제는 상투적인 개념이 되었지만,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많은 이들이 오독하는 것처럼 그것이 실체가 없는 허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마을 공동체에서와는 달리 민족구성원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그 구성원을 상상을 통해서 같은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사, 국어 등을 통해서 이러한 상상력을 만들어내고 부추긴 것은 근대민족국가의 공통된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근대 이전에 민족이 존재했다고 오인, 착각한다. 고대 및 중세사회에 민족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개념적 혼동'에서 오는 것이거나 현재의 민족적 '위신을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즉 현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역사를 통하여 일관되게 존재하는 실체로서 민족을 규정하면서 민족을 모든 것의 상위개념으로 놓으려는 무의식적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장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렇다면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왜 생겨난 것인가? 민족의 기원과 생성에 대한 논쟁의 한 축은 민족을 '유구'한 것으로 보는 원초론(primordialism, 혹은 기원주의, 근본주의)과 근대론(modernism, 혹은 근대주의) 간의 대립이다. 원초론에 의하면 인간은 '생래적으로' 특정한 종족에 속하고 '민족주의는 인간의 자연적 특질'이다. 그것은 한국의 교과서와 궤를 같이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민족은 근대에 탄생한 개념이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하나의 공동체만 있었으며 일관되게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내 입장은 굳이 규정하자면 근대주의에 가깝다.

근대론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 어네스트 갤너(Ernest Gellner)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적 산업화에 필요한 대규모의 교육받은 계층을 만들어내려는 필요에 대응해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즉 산업화에 필요한 인구를 확보해야 하는 데 마을의 규모는 너무 작고 인류공동체는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중간단계에 있는 민족공동체가 적정한 규모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산업화에 필요한 인적 자원으로 양성되는 데는 가족과 촌락뿐만 아니라 적정한 규모의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촌락은 그것을 자생적으로 재생산하지 못한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시민권 자격의 요건이 글을 쓰고 읽는 능력 및 기술적 능력이라면 '민족 규모의 교육제도만이 그러한 완전한 시민들을 산출'할 수 있다.

또한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계급적 균열을 만든다. 자본-노동, 지배-피지배 간의 균열이다. 이 균열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지향하는 모든 주권국가의 고민이었다. 그 해결책의 하나를 민족주의가 제공한다. 겔너에 따르면 현재의 고통은 '조국 근대화' 및 '민족번영'을 위해서 불가피하다. 즉 민족주의 신화는 계급 간 갈등을 은폐하고 계급적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박정희시대의 관제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민족주의가 산업화과정에서 맡은 이데올로기적 역할이 대표적 예다.

민족의 탄생 및 창조에 대한 또 한 가지 설명은 언어 공동체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유럽에서 봉건 말기에 도시의 상인 및 공장수공업자들은 교역 및 언어망의 중심부에 이미 존재했다. 그리고 행정관리들은 효과적으로 세금을 걷기 위해서 이러한 시민의 언어를 국가의 언어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역망, 행정망, 언어망을 일치시키고 그것의 동질성을 언어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빈번해졌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 상인들이 신흥 부르주아지의 '국내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서 언어에 기초한 민족적 정체성은 물질적 기초를 갖게 되었다. 전근대적 행정망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그것은 수직 연결된 중앙집권적 구조로 대체되었다. 근대의 혁명은 동등하고 단일한 자격을 가진 시민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평등한 권리 및 (병역 의무를 포함한)의무를 부여하고 단일한 언어 및 보통교육제도를 제공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이데올로기의 일부'로 성장했다.

3장 민족의 '안'과 '밖' - 위험한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집단주의다. 울리히 벨러의 말처럼 "민족은 최상의 정당성 기관이자 최상의 가치체계로서 절대적 우선권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민족공동체 안에서 다른 경합적 가치인 정의, 자유, 인권, 환경, 생명 등은 대체로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전제된다. 민족의 번영, 국익, 국력, 경기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보편적 가치의 희생은 정당화된다.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여러분이 필리핀에 유학 간 학생이라고 가정합시다. 거기서 어떤 한국 기업이 체불과 인권침해를 하자 필리핀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겠다고 여러분에게 번역, 시위 조언 등의 부탁을 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자들에게 내가 수업 중에 던진 질문이다. 난감해하던 학생들 중에서 한명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못할 것 같아요." "왜죠?" "우리 기업이기도 하고 국익에 위배되는 것 같아서요. 일단 우리 민족이 잘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여기서 읽는 것은 그 학생이 '민족번영'이나 '국익'이라는 가치를 판단의 주요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정의, 평등, 박애,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특히 필리핀 노동자들을 돕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서 나온다. 인권침해가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은 학생들도 잘 안다. 하지만 그 보편적 가치보다는 민족이 우선시된다. 민족=기업=국가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식의 사고는 교실 안의 소수 학생에게만 한정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중요한 가치로 '국익'과 '선진화'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국익이 사실 사회와 긴장을 이루는 국가라는 조직의 이익(state interest)이 아니라 민족이익 혹은 국민이익(national interest)의 준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반대다. 뭔가 사회와 시민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가치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왜 일반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을 압도할 정도로 강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그것은 강제력을 독점한 국가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교육되기 때문이다. 김상봉의 발언처럼, 민족주의가 폐기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강제성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일원이 된다는 '자아확장의 감각'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이다. 사람에게는 개체적 실존을 초월하여 보편적 프로젝트에 헌신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이상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매개체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일을 행했다. 개인은 여전히 민족ㆍ국가적 규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한 구속성에 대한 저항이 있을 때는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어느새 이기적이고 서구편향적인 것으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민족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다.

민족을 앞장세울 때 나타나는 폐해의 또 하나는 '민족'의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순혈적 민족주의가 해외 입양인, 혼혈인 및 중국 조선족 동포에 대해 가한 정신적 상처를 생각해보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07년에 한국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민족주의의 선 긋기가 가져오는 '밖'으로부터의 위험도 살펴보자. 여성학자ㆍ인류학자 김은실의 지적처럼 민족주의 담론은 '우리'와 타자 즉 외부를 구분하여 '우리'를 본질화, 총체화하는 문화적 힘을 생산해낸다. 또한 동시에 민족주의는 자동적으로 '우리' 밖에 서 있는 '남'을 창출한다. 그래서 민족과 '타민족'이 생겨난다. 따라서 민족국가의 경계와 국적은 그것 '밖'에 서 있는 모든 존재를 타자화한다. 그런데 타자화가 가져다주는 위험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나 타협을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남한, 북조선은 서로를 타자화한다. 타자화된 대상은 언제고 '우리'를 위한 도구로 수단화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이고 가령 일본이나 미국은 악이라는 민족주의적 이분법은 유사시에 다른 민족에게 억압 및 살인을 유발하고 정당화하는 이념적 · 정서적 기초가 될 수 있다(반공주의도 이러한 이분법의 한 형태다). 물론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도 거의 없지만 일단 힘이 실리게 되면 한국의 민족주의도 공격적 민족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는 '역사적 경험의 실패와 얽혀 있는 좌절된 집단적 정서'이다. 일제 식민주의, 그것으로 인한 민족 국가 수립의 실패, 분단으로 인한 두 국가체제의 성립, 전쟁 그리고 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코리아의 민족주의는 매우 감성적인 것이 되어 있다. 최장집의 지적처럼, 한국의 문제는 "민족주의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민족주의 실패의 결과"이다.

높은 수준의 인권보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 소수민족 혹은 종족에 대한 차별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타자화 때문이다. 이 타자화는 평상시에는 타민족의 차별, 위기시에는 타민족ㆍ종족에 대한 제노사이드(genoside, 인종학살)의 근거가 된다. 민족주의의 권역에서 '우리'는 '조국을 위해서 죽는 일로부터 조국을 위해서 죽이는 일'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겪는다. 따라서 울리히 벨러의 단언처럼 민족주의가 가진 맹점은 "사회 내부의 외교적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민족주의의 선 긋기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위험은 '이해의 경계'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경이 명백하게 그어진 세계 속에서 산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다른 나라 대표팀, 가령 이탈리아팀과 맞붙었을 때 한국과 이탈리아의 구분은 너무도 명백하고 두 집단의 경계가 애매모호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한국'과 '외국'의 경계도 두부모처럼 확실하게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단과 개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 이익'과 '외국 이익'의 실질적 경계는 항상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국적과 민족을 넘어선 실제이익의 대차대조표를 세밀하게 작성하는 일이야말로 민족적 경계가 가지는 문제를 증명해줄 수 있다. 가령 현대자동차를 한 대 팔면 한국인들은 그것이 '우리'의 이익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정한 지분을 갖는 일본의 미쯔비시도 이익을 보게 된다. 반대로 독일의 벤츠가 한국에서 판매될 때 '독일'이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통해 한국에 있는 벤츠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들도 이익을 얻는다. 한국의 자동차회사가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멕시코에서 생산된 엔진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타이어 및 다른 부품을 수입해 한국으로 수출한다면 누가 이익을 보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이익의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국제화로 복잡해졌고, 따라서 민족적 경계라는 개념으로는 이런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민족주의는 비자 및 여권, 민족이라는 범주, 지리적 경계, 독자적 화폐 및 언어 등을 통해 그 경계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면서 이익의 대차대조표에 나타나는 '민족의 경계'와는 다른, 때로는 그것과 모순되거나 가로지르는 '이해의 경계'를 은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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