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로완 제이콥슨 지음 | 에코리브르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로완 제이콥슨 지음
에코리브르 / 2009년 3월 / 334쪽 / 16,000원
<미국에서 맞는 아침식사>2007년 7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우리 가족이 먹을 아침식사를 차리고 있다. 허니넛 오즈 시리얼은 아들을 위한 것이고, 나와 아내를 위해서는 아몬드 그라놀라(귀리를 주원료로 한 건강식)를 식탁에 올린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에 블루베리와 체리를 듬뿍 얹는다. 식탁 양쪽에는 멜론 조각, 사과 주스, 커피가 놓여 있다. 맛있는 아침식사다. 꿀벌이 없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베리, 체리, 멜론, 사과 등은 모두 과일이다. 아몬드와 다른 견과류들도 과육이 둘러싸고 있다. 커피콩 또한 과육으로 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오이, 토마토, 후추, 호박처럼 우리가 채소라고 여기는 식물들도 대부분 과일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과일은 꽃을 통해서 맺힌다. 핵심은 과일이지만 꽃이라는 고도의 기능적인 존재를 통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능이란 성(性)을 의미한다. 꽃의 목적은 동종의 다른 개체와 유전 물질을 교환하여 번식을 이루는 것이다. 어떤 꽃은 자신의 꽃가루로 직접 밑씨에 수정시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개체에서 온 꽃가루로만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 바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하나라도 수정을 성공시키려면 100만개의 꽃가루를 날려보내야 하니, 광고지나 스팸 메일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방식은 꽤 낭비가 심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식용식물은 배달부에게 꽃가루를 맡긴다. 이런 임무에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춘 것이 바로 곤충이다.
곤충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그 수많은 식물들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3억 년 전 지구에는 고작 500종의 육상식물이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가루받이를 하며 번식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공룡과 포유류가 1억 년 이상 지구를 어슬렁거린 후에야 열매를 맛보게 만들었고, 그 수도 겨우 3000종으로 늘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1억 5천만 년 전 육식성이었던 말벌이 식물로 주식을 바꾸고 이후 속씨식물들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식물학자들이 소위 '속씨식물 폭발'이라고 말하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급작스레 등장한 이 새로운 식물들은 바람을 이용하는 것보다 곤충을 통해 꽃가루 알갱이를 전달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남다른 색깔이나 모양, 향기를 조합해냄으로써 곤충들을 유혹했다. 꽃이 탄생한 것이다. 곤충들은 꽃이 제공하는 꽃가루와 영양 가득한 꽃꿀에 흠뻑 빠져들었다. 특히 꿀벌은 이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그 많은 특징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꿀벌들은 떠돌이 농사꾼이 되어 힘겹게 살아간다.
과거에는 농부들이 땅과 물과 해에 관해서는 걱정을 해도 과일을 맺게 하는 곤충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농기계와 농약의 도입으로 농장이 거대 기업형으로 확대되자, 점차 꿀벌 대여는 농장의 필수 과정이 되어갔다. 플로리다의 꿀벌들만 해도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트럭에 실려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다녀야 한다. 2월이면 캘리포니아에서 아몬드를, 3월이면 워싱턴에서 사과나무를, 5월이면 사우스다코타에서 해바라기와 유채를, 6월이면 메인에서 블루베리를, 그리고 7월이면 펜실베이니아에서 호박을 가루받이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넘쳐나는 작물에 비해 꿀벌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2006년 가을 위기에 처한 양봉업은 마침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불가사의한 증후군이 미국 전역에 걸쳐 꿀벌 봉군을 휩쓸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증후군은 사태의 원인만큼이나 모호한 이름을 얻었다. 즉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는 명칭이다. 당시 언론은 이 현상을 줄인 말로 CCD라고 불렀다.
<꿀벌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스파냐 발렌시아 인근 산악 지대에는 바랑크 폰도라는 동굴이 있다. 이 동굴에는 인류가 행한 꿀 사냥의 기록이 있다. 벌이 윙윙대는 키 큰 나무 위로 여섯 사람이 밧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그중 한사람이 구경꾼들의 환호성에 놀라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은 다른 유적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절벽이나 나무 위의 벌집, 꿀 사냥꾼, 횃불, 벌집을 담기 위한 호리병 혹은 성난 벌떼들이 언제나 등장한다. 꿀 사냥은 늘 위험한 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단념하지 않았다. 이러한 습성에 대해 꿀이 최초로 인간의 미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충분히 근거 있는 말이다. 수렵 채집 시대에 사람들은 짐승이나 잎사귀와 뿌리, 견과류 등을 먹으며 지냈을 뿐 과즙이 넘치는 큼지막한 사과를 재배해서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움푹 패인 나무 구멍에서 황금빛 액체를 한 줌 퍼낸다면 얼마나 황홀했겠는가.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를 거치면서 단맛에 사로잡혔고, 이렇게 시작된 꿀 사냥은 정착생활을 하면서 양봉업으로 대체되었다. 2007년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900년경으로 추정되는 레호브 시의 유적에서 짚과 진흙으로 된 벌통 30개를 발견했다.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지칭한 성경 구절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양봉을 해왔지만 아무 벌이나 함께 살아온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벌들은 개체 단위로 살거나, 아니면 뒤영벌처럼 100마리씩 모여 단순한 땅속 '마을'에서 살아간다. 뒤영벌은 서로 협동하지 않으며 애벌레들에게 먹일 아주 작은 '꿀단지' 몇 개를 모아둘 뿐이다. 반면 꿀벌은 근면함과 단결력으로 엄청난 꿀을 생산해낸다. 그러한 결실은 육각형 구조 때문에 얻어진다. 꿀벌들은 수만 마리가 모여 사는 고도의 사회구조를 이룬다. 이들은 밀랍 제조술을 써서 꿀단지와 봉아(蜂兒, 발육단계의 알, 애벌레 등)를 돌볼 공장 규모의 탁아소와 창고를 짓는다. 이는 육각형 밀랍 원통 수 만개로 구성되며 그 안은 먹이와 새끼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구조는 거의 일벌에 의해서 유지된다. 전체 벌집 속에는 대략 5만 마리의 벌이 사는데 그 가운데 4만 9000마리 이상은 임신 불가능한 암컷 '일벌'이다. 벌이 애벌레에서 여왕벌로 성장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면 난소가 굳고 독이 든 주머니와 벌침이 생겨난다. 그러면 이들은 봉군의 모든 일을 떠맡는다. 먹이구하기, 벌집 짓기, 양육 등 무슨 일이든 해낸다. 하지만 번식만은 이들의 능력 밖이다. 그 일은 여왕벌이 맡는다.
여왕벌은 다른 벌집에서 온 수컷 여러 마리와 짝짓기를 하며, 날마다 많은 알을(2000마리까지) 낳는다. 가끔씩은 수정되지 않은 알을 낳는데, 이 알이 부화하면 수컷 벌이 된다. 수벌들은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암컷이 가져다주는 먹이만 축낸다. 그리고 종종 이웃 벌집의 수벌들과 어울려 놀다가 처녀 여왕벌을 쫓아다닌다. 처녀 여왕벌을 붙잡으면 벌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붙잡지 못하면 돌아온다. 하지만 겨울나기 동안 벌집의 자원이 줄어들면 암벌들에게 쫓겨나서 생을 마감한다. 이에 비해 새끼벌은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애벌레로 지내는 닷새 반나절 동안 크기가 1300배나 커지는데 이는 양육벌로부터 공급받은 고급단백질 덕분이다. 양육벌은 먹이구하기 벌이 건네준 꽃가루를 섭취하여 이를 머릿속의 하인두(下咽頭)샘에서 나온 효소를 통해 소화하여 로열젤리를 생산한다. 하얀 알처럼 보이는 로열젤리는 쉽게 소화되는 단백질 부유물로서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피로와 노화를 방지한다. 로열젤리는 애벌레와 여왕벌이 거의 다 먹는데, 6주 동안 사는 일벌과 달리 여왕벌이 2~3년 동안 산다는 것을 보면 경이로운 물질이 아닐 수 없다.
애벌레가 몸이 방에 꽉 찰 정도로 커지면 양육벌은 몸에서 나오는 밀랍으로 방을 봉한다. 그 안에서 홀로 탈바꿈을 겪는 새끼 벌은 3일이 지나면 잔털이 묻은 성체벌로 태어난다. 성체 벌은 자기 몸을 덮었던 밀랍을 먹어 치우고 생일잔치도 없이 일을 하러 나간다. 하지만 이제 갓 부화한 그들은 기술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방금 태어난 자기 방을 청소하거나 다른 벌들의 방을 청소하는 등 시시한 일로 며칠을 보낸다. 이렇게 안살림을 맡아 지낸 지 대략 4일이 지나면 새끼를 돌보는 양육벌이 된다. 그리고 다시 열흘쯤 지나면 먹이구하기 벌의 지원 요청을 받는다. 먹이구하기 벌들은 8자 춤과 엉덩이의 씰룩거림으로 꽃가루를 구할 위치와 시간 등을 표현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안살림을 맡았던 벌들은 세상 밖으로 나간다. 이들은 열심히 꽃가루와 꽃꿀을 실어 나르는데 꿀을 직접 저장하지는 않는다. 먹이구하기 벌들은 가져온 꽃꿀을 벌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짐나르기 벌들의 입 속으로 쏟아 붓는다. 그러면 벌들은 꽃꿀을 입안에 넣었다 뱉었다 하면서 물기를 증발시키고 효소를 첨가해 투명한 자당(蔗糖)을 끈적끈적한 과당(果糖)으로 바꾼다. 이런 방법으로 본래 70퍼센트 정도이던 수분 함량이 대략 40퍼센트로 떨어지면 동료 벌들과 함께 날개를 진동함으로써 맛있는 설탕 조림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마침내 수분 함량이 20퍼센트 밑으로 떨어져 꿀이 되면 밀랍으로 잘 봉한다.
꿀벌이 일생 동안 하는 일은 매우 많지만 이 모든 일들은 겨우 6주 동안만 펼쳐진다. 벌집 속에서 안살림 벌로 3주간을 살고 먹이구하기 벌이 되어 3주를 보내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생애동안 뛰어난 지능과 협조를 통해 업적을 남겨놓는다. 이들은 인원이 5만 마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아가는데 그중에 총책임자는 없다. 모든 일이 단체 차원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면 분봉을 위해 절반(2만5천 마리)의 벌들이 대이동을 하는데 이 또한 암묵적 협의에 의해 이행된다. 이러한 체계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치면서 습득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의 지혜에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벌을 죽이지 않고도 꿀벌 사회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꿀벌 사회에서 지능은 대부분 집단에 있을 뿐 각 개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고도로 조직화된 생활방식을 통해 지상 생물들의 진화에 영향을 끼쳐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지능은 군집 붕괴 현상(OCD)이라는 큰 손상을 유발시킬 수 있다. 그들의 기억, 학습 능력, 감각, 식욕, 본능,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개입되면 반응 체계 혼란으로 군집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붕괴>2006년 시작된 꿀벌들의 죽음은 2007년 봄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결과 북반구 꿀벌의 4분의 1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처음에 꿀벌 응애 짓으로 생각했다. 바늘구멍 크기의 이 작은 기생충은 엄니를 꿀벌 성체나 애벌레에 찔러 넣는 과정에서 병균을 옮긴다. 만약 그대로 내버려두면 봉군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녀석들이다. 사실 응애는 약 20년 전부터 수많은 꿀벌 봉군을 도륙했고, 1987년에는 미국 전체 양봉가의 25퍼센트가 업계를 떠나게 만들었다. 이렇듯 응애가 기승을 부리자 기생 생물(응애)만 죽이고 숙주(벌)는 살려둘 수 있는 살충제가 출시되었다. 1990년대 초에 출시된 '아피스탄(Apistan)'이라는 응애 살충제는 플라스틱 끈에 독성이 강한 살충 성분을 바른 제품으로, 벌통 내부에 붙이면 서서히 약품이 기화되어 응애를 죽이는 방식이었다. 그 약효는 놀랄 만큼 뛰어났지만 곧 응애가 강한 내성을 키우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후 새로운 치료제가 계속 등장했지만 응애는 언제나 더욱 강한 내성을 키워 대응했다. 하지만 2006년 CCD(군집붕괴현상)로 일어난 대량 몰살의 원인을 응애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꽤 큰 양봉장을 소유한 데이브 하켄버그는 최상급 벌통을 400개나 갖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꿀벌들이 윙윙댔을 봉군의 3분의 2가 피폐한 상태였다. 벌통 바닥에 벌이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비록 겨울이긴 하지만 꿀벌은 항상 꿀을 모아두는 습성 덕에 추운 북동지역에서도 버틸 수 있다. 게다가 플로리다는 온화한 날씨 덕에 겨울 내내 꽃꿀이 생긴다. 더구나 하켄버그의 농장 주변에는 브라질 고추나무가 무성했기에 벌통마다 꿀벌과 봉아가 가득 찼었다. 그런데 지난 두어 해 동안 꿀벌이 점점 사라졌고, 남아있는 꿀벌들 중에서도 이상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하켄버그는 혹시 응애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상황 파악을 해보니 건강한 벌통보다 죽은 벌통에 응애가 더 적게 들어 있었다. 딱히 어떤 문제라고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꿀벌 응애는 아니었다.
하켄버그는 죽은 벌들을 트럭에 싣고 펜실베이니아 주의 대표적 양봉가이자 과학자인 데니스 반엔젤스도르프를 찾아갔다. 반엔젤스도르프는 현미경으로 죽은 벌의 내부 기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속은 마치 1차 세계대전의 축소판 같았다. 온통 헤지고 구멍이 뚫려 폐허 그 자체였던 것이다. 벌은 본래 창자가 하얀색인데 죽은 벌들은 갈색 점들로 얼룩져 있었다. 침샘 역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이러한 멜라닌화는 무려 50년 전에 희귀한 곰팡이 감염과 관련된 현상으로 보고된 적이 있었다. 반엔젤스도르프는 날개 기형 바이러스, 검은 여왕벌 방 바이러스를 비롯해 많은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벌을 죽인 병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벌은 이미 면역 체계가 파괴되어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사태는 2007년 캘리포니아부터 뉴욕까지 동일하게 발생했다. 도대체 누가 저지른 짓일까? 전체적으로 미국의 꿀벌 봉군 240만 개 가운데 300억 마리의 벌이 죽어나갔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원인을 찾아서>2007년, 언론은 CCD 사건을 다루었다. 그러자 휴대전화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가 벌의 군집 붕괴 현상(CCD)을 일으킨 원인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에서 방출된 전자기파가 벌의 더듬이나 뇌에 미세한 영향을 미쳐 비행능력을 손상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몇 과학자들은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 벌통 중 절반을 골라 그 바닥에 무선전화기를 두고 전화벨 소리를 울렸다. 그러자 무선전화기가 놓인 벌통의 벌들은 그렇지 않은 벌들에 비해 21퍼센트 정도 작게 벌집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2개의 벌통 안에 휴대전화기를 놓아두고 그 안에 있던 벌을 25마리씩 꺼냈다. 그리고 일반 벌통 두 곳에서도 25마리씩 벌을 꺼냈다. 연구자들은 이 벌들을 벌통으로부터 8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풀어주고 몇 마리가 돌아오는지 헤아렸다. 이때 휴대전화에 노출되지 않았던 벌들은 각각 16마리와 17마리가 12분 내에 돌아왔다. 반면 휴대전화에 노출된 봉군에는 한 곳에 6마리가 20분 안에 돌아왔을 뿐, 나머지 봉군의 벌들은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실험이 분명 섬뜩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벌통 속에 전화기를 놓고 휴대전화 전자파를 의심하는 것은 좀 심한 비약이다. 꿀벌은 매우 예민한 곤충이다. 꿀벌은 아침 늦게 일을 나가서 초저녁에 귀가한다. 그리고 기온이 15도 이하로 내려가거나 비가 오면 일을 나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CCD와 관련된 휴대전화 전자기파의 피해는 과도하게 발달된 통신 문명에 대한 오해와 맞물려 생겨난 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구의 몰락에 대한 중요한 은유가 된다. 즉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요인들이 모여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휴대전화 전자파가 CCD의 원인은 아니라고 발표하자 이에 대해 한 대학원생은 "만약 미국인들이 '군집 붕괴 현상'을 해석하고 싶다면 제초제, 살충제를 먼저 조사해봐야 하고, 이와 더불어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다코타처럼 CCD가 기승을 부렸던 지역은 휴대전화 보급률이 극히 낮은데 비해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유채는 가득 뒤덮여 있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흙세균인 바실리우스 투린지엔시스(Bt) 유전자를 식물에 투입하여 천연 살충제 효과를 나타낸다. 옥수수는 굳이 꽃꿀을 만들지 않지만 꼭대기에 자라난 옥수수수염에는 단백질이 풍부한 꽃가루가 묻어 있다. 벌은 이 꽃가루를 신나게 모아서 새끼들에게 먹인다. 이는 Bt가 벌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Bt가 꿀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4년 동안 꿀벌들에게 Bt 단백질을 먹였지만 겉으로는 건재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