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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지쓰카와 모토코 지음 | 문학동네
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지쓰카와 모토코 지음

문학동네 / 2009년 5월 / 374쪽 / 13,800원



나의 운명, 핀란드




칠레 사람이 되어온 언니 중학교 삼 년과 고등학교 삼 년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중고일관교인 도쿄의 사립여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유학을 떠날 때까지 사 년 동안 같은 건물에서 거의 같은 급우들과 수업을 받으며 내가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한 별다른 관심 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교육 시스템이 다른 나라의 교육 시스템과 어떻게 다른지 별 관심이 없었고, 학교란 원래 이런 곳이겠거니 하면서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은 채 그냥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일본 바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언니의 유학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언니는 1997년 2월부터 1998년 1월까지 AFS를 통해 칠레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때 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AFS는 주로 고등학생 교환유학을 주선하는 민간 국제교육 교류단체다. 뉴욕에 국제본부를 두고 있고, 가맹국은 오십 개가 넘으며 교류국은 팔십여 개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뿐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 세계에 유학생을 보내는 기관인 것이다. 그 무렵 언니는 집에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나는 그런 언니와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언니가 칠레를 택한 것은, 어쨌든,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생이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곳, 그리고 따뜻한 곳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엉성한 이유로 일 년간 어딘가로 떠나버리다니, 당시의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니는 유학을 떠났다.

언니가 없는 동안 학교생활 외에는 공부했던 기억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바쁘게, 지금 생각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일 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언니가 돌아왔다. 나리타 공항 로비에서 맞이한 언니는 아무리 봐도 일본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칠레 사람을 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언니가 칠레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겉모습도 알맹이도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 년간의 유학이 언니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칠레에서 귀국한 언니는 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지내던 그 무렵이 순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언니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의 변화에서 유학의 힘을 본 나는 언젠가 나도, 하며 남몰래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흥미가 싹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AFS 시험에 합격하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언니가 AFS를 통해 칠레로 유학을 간 것처럼 나도 북유럽의 어느 나라로 유학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AFS에서 내가 신청한 유학은 약 일 년간 현지 가족(홈스테이를 하기로 선택한 유학생을 돌보는 가정으로 호스트패밀리라 불린다)과 함께 생활하는 홈스테이 방식으로, 그 사이에 귀국하거나 부모가 만나러 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유학중의 여행조차 호스트패밀리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등 현지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생활하게 되어 있었다. 동시에 연간 프로그램은 현지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의무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AFS 시험을 신청하고 몇 주 후 드디어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은 일반 상식과 간단한 면접으로 치러졌다. 이상하게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일 년간 동경해온 유학의 기회를 여기서 놓칠 수 없다는 마음이 나의 의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파견국을 결정하는 AFS 시스템은 제1지망에 이어 제2지망, 제3지망, 제4지망까지 써낼 수가 있는데, 당시의 나는 스웨덴과 핀란드(핀란드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는데, 젊은 여자 탤런트 두 사람이 한 달간 십만 엔으로 한 사람은 핀란드, 또 한 사람은 케냐에서 생활하는 내용이었다) 외에는 그다지 유학 가고 싶은 나라가 없었다. 기억하기로는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라고 적었던 것 같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내가 떠날 곳은 핀란드였다.

엄마의 노트 - 고등학생, 내 아이 유학 보내기까지 AFS라는 국제적인 교육 교류단체를 통해 유학을 가보는 건 어떨까, 하고 딸들에게 유학을 권했을 때 우리는 솔직히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는 것은 학업 면에서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감수성이 풍부한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경험해온 것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보는 체험이 그후의 인생에 커다란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AFS는 원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장이 된 프랑스에서 자원봉사로 부상병을 수송하던 미국인이 '아메리칸 필드 서비스(American Field Service)'라는 조직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현재는 그 머리글자를 딴 AFS가 정식명칭이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국제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와 사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국제교육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파견국가도 2007년에는 삼십여 개에 이르렀으며, 서구만이 아니라 아시아나 남미의 여러 나라까지 유학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일본 고등학생들이 압도적으로 희망하는 것은 미국 등 영어권 국가로의 유학이다. 우리는 어학력, 특히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유학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어권 선진국은 성장한 다음에도 유학갈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처럼 살아볼 기회가 없는 문화권에 가서 고등학생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체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AFS의 고등학생 파견 유학의 기본 목표는 문화 교류에 있었는데, 거기에 공감했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고도 보낸 것이었다.

학원과 입시 없는 학생들의 천국



도착하는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헬싱키 공항에 도착했다. '내 호스트패밀리는 어디 있지 …?'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마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눈이 동그랗고 밤색의 쇼트커트 머리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마유, 핀란드에 온 걸 환영해! 내가 너의 호스트패밀리인 후트넨이야!" 그녀는 영어로 이렇게 말하고 악수를 청했다. "나는 호스트마더인 니나, 저쪽에 가족들이 있어. 자, 가자." 나는 호스트패밀리 전원과 인사를 했다(공항과 후트넨 가의 집에서). 아버지인 라우리 아저씨, 장남 율리우스, 차남 알렉시, 삼남 요엘. 율리우스는 '유리', 알렉시는 '아케', 그리고 요엘은 '요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라우리 아저씨는 아이스하키와 와인과 사우나를 좋아하는 자상한 아버지다. 니나 아줌마는 깨끗한 걸 상당히 좋아한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청소기를 돌린다'고 아들들이 말할 정도로 늘 청소를 한다. 고양이를 네 마리나 기르고 있는데도 집 안에 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니나 아줌마의 청소 덕분이다. 정원 가꾸기와 인테리어에도 흥미가 있는 니나 아줌마는, 여름에는 틈만 나면 뜰에 있는 장미나 사과나무를 돌보거나, 그 계절에 피는 꽃을 사와 심기도 한다.

수업 들으면 되지, 학원을 왜 다녀? 핀란드에는 입시가 없다(대학은 모두 국립, 학생들은 매월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는다. 입학금도 수업료도 공짜니, 내는 건 교통비뿐이다). 입시가 없어서인지 학원도 없다. 실제로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이 있으므로 그 시험을 위한 학원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일본처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삼 년간 학원에 다니며 지망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죽도록 공부해야 하는 '입시 전쟁' 같은 것은 핀란드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하나, 핀란드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학교 공부의 예습과 복습을 도와주는 보습학원이나 가정교사다. "일본의 학생들은 학교 공부 외에도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다니며 입시 준비를 합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핀란드 사람들은 늘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학교가 파하고 나서도 또 다른 곳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트넨 가의 장남 율리우스는 내가 핀란드에 오기 전 일본에서 입시 위주로 교육하는 고등학교를 일 년간 다녔는데, 학생들이 수업중에는 졸고 방과후에는 학원에 가서 수업중에 졸다가 듣지 못한 것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처럼 무의미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한 것 같았다. 핀란드의 고등학생들 사이에 있으면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라는 것을 무척 강하게 느낀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에게는 학교란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핀란드의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수업 중에 절대로 졸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고 '읽다' 핀란드 학생들은 시험 전에 '공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읽는다'고 한다. 엄마는 자식에게 "내일 시험이지? 많이 읽어"라고 말하고, 학생들끼리는 "이제 곧 시험이네. 많이 읽었어?"라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읽다'. 사실 이것이 핀란드 교육의 열쇳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일본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본에서 나의 공부법은 딱 하나, 암기였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책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이 끝나면 머리가 텅 비어버린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시험 전에 학교에 있으면 친구들이 두꺼운 책을 안고 사물함 앞을 왔다갔다했다. "무슨 과제라도 있는 거니?" 하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수업시간에 시험이 있어서 읽어야 하거든." 대체 무슨 말일까? 시험을 보기 전까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핀란드의 시험은 거의 에세이(작문)였던 것이다(핀란드에서 시험은 학생들을 경쟁시켜 등수를 매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을 확인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대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출제된다). 영어, 국어는 물론이고 화학, 생물, 음악까지 에세이, 즉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핀란드 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시험형식이다. 중학교 시험도 에세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이 '쓰기'로 평가된다. 그럼 뭘 쓰게 할까? 그 주제도 재미있다. 영어라면, '당신에게 문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나 '감명 받은 책에 대하여' 등 대체로 예상할 수 있는 문제가 나오지만, 이런 것도 막상 쓰려고 하면 무척 힘들다. 시험이 에세이 위주로 치러지기 때문에 당연히 시험 전에 글을 쓸 수 있도록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넣어야 한다. 일본의 시험에서 암기가 열쇠라고 한다면, 핀란드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지식을 채워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시험 직전에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 대부분은 몹시 두꺼운 책을 들고 있고, 그런 책들을 읽고 또 읽어 지식을 채워넣는 것이다.

지식보다는 생각 그러나 지식을 채워넣는 것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핀란드의 시험은 지식보다는 자기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학교는 책이나 자료에서 얻은 지식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지식은 배경일 뿐이고, 그것에 대해 학생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나도 영어 에세이를 꽤 많이 쓰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달아주는 코멘트를 보는 사이 내가 보여줘야 할 것은 내 나름의 관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노트 - 세계 최고의 교육은 좋은 사회제도에서 나온다 핀란드는 국토 면적 33만 8천 제곱킬로미터로 일본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520만 명으로 일본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국토 면적은 일곱 번째로 크지만 인구 규모는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다. 이것이 핀란드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소국(小國)'이라고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경제 수준은 높다. 스웨덴, 덴마크 등 다른 북유럽 나라들과 나란히 GDP가 3만 5600달러(2004년 OECD 통계)로 무척 높은 편이다.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이 높고,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는 덕분에 사회적, 경제적 격차도 별로 없다. 복지 정책, 특히 의료나 교육면에서 질 좋은 서비스가 빈틈없이 시행되고 있는 점이 다른 나라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임업(종이·펄프·목재)이 주요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핸드폰으로 세계1위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노키아를 비롯한 하이테크 산업이 기간산업이다. 1990년대 초에 경기 후퇴에 빠진 위기감으로 인해 1990년대 말부터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경제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 결과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평균 5퍼센트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인구 규모로는 소국이지만, 풍요로움이라는 면에서는 대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풍요로움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마유의 호스트패밀리였던 후트넨 가는 오십대 부부와 남자아이가 셋인 오 인 가족이다. 남편인 라우리 씨는 회사 경영자, 아내인 니나 씨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결혼한 후에도 계속 맞벌이를 해왔다고 한다. 맞벌이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물론 가계를 부부가 끌어나감으로써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면도 있지만, 인구가 적기 때문에 여자도 경제의 한 담당자로서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 임업에서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을 시도한 1970년대 후반이래,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의 폭이 넓어져 여성의 사회 진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기업뿐만 아니라 행정과 정치계에도 여성이 진출하여 다른 북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여성 의원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2000년에는 첫 여성 대통령도 나왔다.

니나 씨나 라우리 씨는 둘 다 기본적으로 아침 아홉시부터 다섯 시까지 근무시간이 정확히 정해져있다. 니나 씨는 아이 한 명당 이 년씩 육아휴직을 얻었고, 셋째가 태어난 뒤 아이 때문에 시간 여유가 없을 때는 플렉스타임(flex-time 출퇴근시간을 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유를 부여하는 노동시간 관리제도-옮긴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한다. 라우리 씨도 출장이 많고 잔업을 자주 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매일 심야까지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다들 가사와 일을 병행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영어를 잘할까?



근본적으로 다른 영어 수업 일본에서 내가 받은 영어 수업은 듣기와 말하기 외에는 전부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교과서는 옛날부터 써온 낡은 것으로, 영국 시인이 쓴 옛 시라거나 나폴레옹의 일대기, 셰익스피어의 전기 등 고등학생들에게는 딱딱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내용뿐이었다. 수업 전에는 우선 긴 글이 하나 있으면 제목부터 본문까지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의미를 조사한다. 이것이 예습의 한 가지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선생님과 그 의미를 확인하면서 글을 문장마다 자르고 분해해서 해석해나간다. 이것이 주어, 이것이 서술어, 이것이 목적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수업에서 영어는 읽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이어서 나에게는 수학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 내가 받은 영어 수업은 어땠을까? 일본의 영어 수업과는 천양지차였다. 우선 대부분의 경우, 교사는 영어만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초급반에서도 핀란드어를 쓰는 일이 아주 드물고, 설사 학생이 핀란드어로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도 선생님은 영어로 대답한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영화나 드라마, 뉴스 등을 자주 보여줬다. 대체로 처음에는 그냥 감상한다. 내용에 대해 쓰거나 의견을 말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감상하는 것만으로 수업이 끝났다. 뉴스의 경우는 키포인트가 되는 단어를 선생님이 써주고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도 했다.

어느 날 있었던 레데 선생님(마유가 입학한 헤르토니에미 고등학교 영어 담당)의 수업 이야기. 선생님은 수업에 사용하는 교과서를 적당히 줄줄 읽더니 "으음, 별로 재미없네요"라고 한 다음, 책상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틀었다. 한 남자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담담하게 말하는 내용이었다. 뭘 하는가 했더니 레데 선생님은 "이십 분 후에 그 카세트를 끄고 '지금 들은 내용을 떠오르는 대로 종이에 쓰세요' 다 쓰면 내고 가도 좋아요"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십 분 동안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쓰는 건 고사하고 기억해내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단 기억나는 대목만 떠올려 적당히 적었다. 그런데 옆에서 테이프가 흘러나오는 동안 책상에 엎드려 멍하니 있던 남자애가 테이프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굉장한 속도로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애는 노트 두 장을 가뿐히 채우고, 멍하니 쳐다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교실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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