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쓰기
김지노 지음 | 지상사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쓰기
김지노 지음
지상사 / 2009년 3월 / 309쪽 / 13,000원
맨땅에 헤딩하라!『삼국지』에 등장하는 마 씨 5형제는 모두 재주가 출중했습니다. 그중 눈썹이 하얀 '마량'이 가장 뛰어나서 사람들은 "백미가 가장 훌륭하다"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습니다. 그 때부터 가장 훌륭한 것을 일컬어 '백미(白眉)'라고 했습니다. 은유적으로 말해서 적미는 튀는 사람이고, 백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흑미는 평범한 사람이겠지요. 은유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은 백미가 되고 싶어합니다. 훌륭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무엇이 되어야 역사에 이름이라도 한 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죠. 뛰어난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백미는 돌연변이를 필요로 합니다. 이 때 돌연변이는 마량의 흰 눈썹처럼 눈에 보이는 돌연변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돌연변이입니다. 정신적 돌연변이입니다. 하얀색 호랑이, 즉 백호도 백미처럼 돌연변이입니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정신적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신적 돌연변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생물과 다르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돌연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더하기 1은 2다'라는 생각은 정신적 돌연변이가 아닙니다. 인과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과 관계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우연하고도 갑작스러운'생각이 정신적 돌연변이입니다. 갑자기 머리에서 떠오르는 어떤 생각은 예측을 불허하고 놀라움을 불러일으킵니다. 흔히 "영감이 떠오른다"라고 하지요?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착상이나 자극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감은, 정신에서 우연히 번쩍 떠오르는 정신적 돌연변이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정신적 돌연변이입니다. '깨달음'도 정신적 돌연변이입니다. '깨닫는' 행위는, 아무리 인과적 논리적으로 설명해 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작가들 중에는 "글을 쓰고 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때, 그냥 글을 쓴다는 것은 흔히 하는 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냥 글을 쓰는 행동은 달마가 벽 앞에 앉아 '면벽수도'를 했던 행동과 닮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면컴 수도'입니다. 벽이나 컴퓨터는 앞이 가로막혀 있다는 면에서 비슷합니다. 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인식은 정신적 돌연변이를 거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부단하게 벽을 뚫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은 정신적 돌연변이를 거치기 위한 두 번째 단계입니다. 결국 '맨땅에 헤딩하기'야말로 깨달음으로 통하는 왕도입니다. 알렉산더가 스승(메네아크무스)에게 기하학을 배우는 쉬운 방법이 없냐고 묻자 스승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벽 앞에 있었고 스승은 그 벽을 깨는 방법이 맨땅 헤딩뿐이라고 일러준 것입니다. 왕도가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왕도입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창조적인 인재 육성'이 교육의 지상 과제입니다. 어떻게 교육을 하면 창조적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까요? 맨땅에 헤딩하는 연습을 부단히 시키면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습니다. '맨땅 헤딩'이 최고의 교육법입니다.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글을 쓰려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거든요.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나가는 일은 그야말로 맨땅 헤딩입니다. 맨땅 헤딩이야말로 깨달음을 위한 최고의 공부 방법이라는 인식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 인식이 선행돼야 맨땅 헤딩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드디어 벽이 뚫렸을 때 희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맨땅 헤딩을 수없이 하다보면 어느 순간 벽이 뚫립니다. 그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정신적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들이 모일 때 흑미는 비로소 '백미'로 변화합니다.
글쓰기는 삶의 질을 바꾼다글쓰기는 맨땅에 헤딩하며 자신만의 굴을 파 들어가면서 실을 남겨 놓는 것과 같습니다. 맨땅에 헤딩하여 깊은 굴을 파는 사람들은 실을 남겨 놓습니다. 자기가 파 들어가는 굴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 수시로 실을 잡아당겨 보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게 전개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굴에 놓인 실은 흔히 글의 형태를 가집니다. 글이란 '어떤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내 놓은 것'이며, 글자란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낸 기호'입니다. 비슷한 말로 문자가 있습니다. 이 둘을 연결해 보면 글이란 '어떤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호를 사용해 나타내 놓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문자는 시각적인 기호체계입니다. 표음문자는 쉽게 말해서 소리를 표기한 문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머니를 '어머니'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 일단 옮긴 다음, 그 소리를 다시 눈에 보이는 기호로 나타냅니다. 음(音), 즉 소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표음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을 음표로 나타내는, 음표를 이용한 글쓰기 [작곡(作曲)]나 음을 표음문자로 나타내는, 표음문자를 이용한 글쓰기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의문자는 그림을 표기한 문자라고 쉽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머니를 소리로 옮기지 않고 바로 눈에 보이게끔 간단한 기호로 나타냈기 때문에 의(意), 즉 그림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표의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母)라는 표의문자는 어머니가 어린이를 안고서 젖을 주는 그림을 포착하여 눈에 보이게 간단한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음표나 그림으로 글쓰기를 하는 작곡가들이나 미술가들은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창적인 생각을 음악적인 표음문자든 회화적인 표의문자든 간에 문자로써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의 글자들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이런 글자들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다양한 종류의 글자들을 익혀야 합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한문과 같은 과목들을 특히 중요한 과목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런 과목들은 글쓰기를 할 때 필요한 도구를 가르치는 과목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이 있어야 실을 풀어놓을 수 있겠지요. 그 실을 확보하게 해 주는 과목들인 것입니다. 결국 실을 풀어놓기 위해 글을 익히는 것이기 때문에 글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끊임없이 실을 풀어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맨땅 헤딩을 자연스럽게 많이 하게 되어서 머리가 좋아집니다. 실을 따라 굴 끝 막장에 도달하기가 글읽기거든요. 글읽기를 통해 막장에 도달하면 드디어 맨땅 헤딩을 해서 막장을 더 깊게 파야 합니다. 막장까지 가서 우두커니 서 있을 수야 없겠지요? 막장을 더 깊게 파면서 실을 풀어놓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이 같은 글쓰기는 글읽기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는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지 말지 갈등합니다. 오랜 번민 끝에 알려 주기로 결심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풉니다.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책으로 펴낸 것이 불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생들은 불경을 아무리 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경에 쓴 글자들은 단지 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실에 담긴 의미보다는 실 자체에 집착합니다. 불경을 공부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것은 교종(non-Zen Buddhism)의 방식입니다. 이런 교종의 방식에 반(反)하여 선종(Zen Buddhism)이 등장했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선종적 용어는 글은 어차피 실이기에 그 실에 집착해서는 안 되고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글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이 교종의 방식이라면 글을 쓰면서 깨닫는 것은 선종의 방식입니다.
글을 '쓰면서'글을 '읽는다면' 단순한 글읽기를 지양할 수 있습니다. 창조적 글읽기와 비판적 글읽기의 요체는 바로 '글쓰기적 글읽기'입니다. 자신만의 노트에 중요한 내용을 적으면서 글을 읽으면 내용을 더 많이 기억하거나 잘 이해하기 마련입니다.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한 학생들은 흔히 자신만의 노트를 만든 다음에 시험 1주일 전에는 그 노트만 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책을 '노트북'이라고 하죠? 북은 책입니다. 즉 필기는 책을 써 나가는 것입니다. 노트 필기를 잘 하는 학생과 노트 필기를 못 하는 학생의 실력 차이는 현저합니다. 거기에 엄청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충실하게 배양해야 합니다.
글을 비유이다사전을 찾아보면 비유는 '어떤 사물의 모양이나 상태 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그것과 비슷한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함, 혹은 그 표현 방법'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언어나 문자도 일종의 비유입니다. 언어의 기본이 되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외국어를 배울 때 문법은 무시하더라도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죠. 이름이 언어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이나 사람에 붙인 이름을 명사라고 하죠? 어떤 동작에 붙인 이름은 동사입니다. 가령 음식을 먹는 동작을 포착하여 붙인 이름이 '먹다'입니다. '먹다'는 동사지만 달리 표현하면 동작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결국 언어의 핵심은 '이름'입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낸 명장의 이름이죠. 그런데 실체인 이순신 장군은 이미 죽었습니다. 실체가 없는 이순신 장군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입니다. 한눈에 볼 수 있게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 비유잖아요? 이름은 곧 비유입니다. 언어의 핵심은 이름이고, 이름은 비유입니다. 따라서 언어나 문자는 비유이며 나아가 언어체계나 문자 체계는 비유체계입니다.
왜 비유일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고 보이는 세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도 영원에 비하면 순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불변하지만 보이는 세계는 변합니다. 사람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세계, 즉 완전한 세계를 바라지요. 그래서 비유를 남깁니다. 비유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작은 비유를 통해 보이지 않는 큰 실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 미래, 보이지 않는 진리 등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비유의 달인이 된다면 압축적인 글이나 한마디의 말, 혹은 눈빛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훌륭한 이름과 작품을 남김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되려면 비유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인'은 곧 '비유인'입니다.
관찰하라 : 글쓰기는 분석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고, 더 나아가 학문을 탐구합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니까요. 인류는 원시 상태 이래로 지적 탐구를 통해 오늘에 이르는 문명을 창조했습니다. 이 거대한 창조물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현재의 문명을 고치고 재창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창조자들이 필요합니다. 무엇인가 고치고 재창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현실 문명을 관찰해야 하고 분석력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분석'은 '서로 얽혀 있는 것이나 복잡한 일을 여러 갈래로 풀어서 그 속의 개별적인 요소나 성질로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서 라디오를 분석하려면 복잡한 라디오의 얽혀 있는 부품들을 가지런히 풀어놓아야 합니다. 부품들을 풀어놓은 다음, 고장 난 부품을 수리하거나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이 곧 고치는 행위입니다.
반면 무엇인가를 새로 만드는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석력을 고도로 확장시켜 핵심 부품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창조하려면 2만 개가 넘는 부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2만개가 넘는 부품들은 주로 철을 주원료로 합니다. 즉 철이라는 핵심 부품을 다룰 수 없다면 자동차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재창조자나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석력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핵심 부품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배우고 학문하는 것은 분석력을 확장시키는 훈련입니다.
재미없는 글은 쓰지 마라재미의 본질은 첫째, '새로움'입니다. 강의를 해보면 학생들의 반응을 통해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재미없는 이야기인지를 즉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에는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습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는 분명히 재미가 없습니다. 해리포터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상치 못하는 이야기, 즉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측을 불허하는 소설이나 영화에 재미를 느낍니다. 영화나 소설에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거나 쉽게 보기 힘든 것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새로움 때문입니다. 현실 세계와 유사한 멜로물의 소재가 흔히 불륜인 이유도 불륜이 일상생활과 비교했을 때 일탈이라는 의미에서 새롭기 때문이지요. 주제도 새로워야 하지만 문체도 새로워야 하고 전개도 뻔하지 않게 해야 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글의 제목도 새로워야 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내용이라도 글의 제목이 진부하면 흥미를 유발시킬 수 없습니다.
재미의 두 번째 본질은 '치밀한 짜임새'입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와 리얼한 스토리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리얼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치밀한 짜임새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우연의 일치는 치밀한 짜임새가 주는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더욱 짜임새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자칫 치밀한 구성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개그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일은 피를 말리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새로워야 하지만 치밀한 짜임새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완벽한 조화는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사람들은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도 재미를 느끼지만 감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재미를 느끼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재미를 느낍니다. 내용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새로움과 치밀함이 있기 때문이죠. 인간이 새로움과 치밀한 짜임새를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존재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새로움만을 추구했다면 문명은 오래전에 파괴되었을 수 있고 치밀한 짜임새만을 추구했다면 문명은 아직도 옛날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움을 좋아해야 진보가 가능하고 치밀한 짜임새를 좋아해야 진보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새로움과 치밀한 짜임새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항상 대결하는 것 아닐까요?
글쓰기 낙서와 3분간 글쓰기'맨땅 헤딩'으로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하얀 백지가 필요합니다. 예술가뿐 아니라 엔지니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종이에 기록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요. 요즘은 디지털 기기가 발달되어서 디지털 녹음기나 핸드폰에 아이디어를 녹음시키거나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은 신속하고 자유롭습니다. 사실 기록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지요. 낙서라는 표현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록이라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낙서가 적절하겠군요. 글쓰기를 위한 낙서는 브레인스토밍, 마인드 맵 등과 연결됩니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창조적 사고를 자극하기 위하여 알렉스 오스본(Alex Osborne)이 제창한 집단 자유 발상법입니다. 브레인스토밍이란 말 그대로 뇌(brain) 속에 폭풍을 일으키는(storming) 일입니다. 즉,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일깨워 중요한 사고로 일구어내는 방법이지요. 떠오르는 대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절대 남의 의견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레인스토밍은 머리를 유연하게 해서 실낱같은 아이디어라도 놓치지 않고 큰 발상으로 만들어내는 데 매우 유리한 사고 방법입니다.